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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자의 네 가지 승리 (행16:16-34)

본문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을 크게 이하게 하는 자라 바울과 우리를 좇아와서 소리질러 가로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여호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이 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와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종의 주인들은 자기 이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잡 아 가지고 저자로 관원들에게 끌어 갔다가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케 하여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 고 행치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송사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분부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그가 이러한 영을 받아 저희를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착 고에 든든히 채웠더니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 수들이 듣더라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 고 죄수들이 도망한줄 생각하고 검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바울이 크게 소리질러 가로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부복하고 저희를 데리고 나가 가 로되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거늘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밤 그 시에 간수가 저희를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기고 자기와 그 권속이 다 세례를 받은 후 저희를 데리고 자기 집에 올 라가서 음식을 차려주고 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사도행전은 무슨 교리를 증거하는 책이 아니고 믿는 사람들이 실제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그 역사를 기록한 책입니다.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어 떻게 역사하시는가 하나님의 역사를 기록한 책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도행전에 기록한 말씀들은 우리가 알기 쉬운 말씀입니다. 그렇지 만 우리가 실제로 하나님 말씀대로 그대로 순종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이지 모릅니다. 우리는 이 역사적인 사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려 고 하는 구원의 도리를 우리가 배워야 되겠고 우리도 우리 실생활에서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있는 역사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사도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 성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기이한 역사를 통해서 빌립보 성을 구원하셨는데 우리가 알기 쉽게 사도 바울과 실라가 네 차례의 승리를 통해서 큰 구원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네 가지 승리를 거두었는지 그 승 리한 순서를 우리가 배우고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할 때에 이런 여러 차 례에 승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큰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믿고 우리가 순종해 살아 야 되겠습니다.
첫째 승리는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성에 들어가서 여기 본문에 보니까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하는 귀신들린 여종을 만났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바울 과 실라는 기도하러 가다가, 그 앞에 사도행전 16장 13절에서 15절에는 자주 장사 루디아를 만났고 또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그 집이 구원을 얻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도 기도하러 가다가 귀신들린 여종을 만나서 그 귀신들린 것을 쫓아내고 그를 구원함으로 시작해서 빌립보 성에 큰 구원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과 실라는 기도하러 가다가 자기 할 일을 찾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첫번째 승리가 되겠습니다. 오늘도 예수 믿는 사람들이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자기가 무슨 일을 해야 할 지 자기 할 일을 만나게 됩니다. 믿는 사람들이 기도는 안하고 그저 세상 일에만 분주하고 돈이나 권세나 정욕이나 거기에 자기 마음을 다 기울이고 있다고 하면 마음이 어두워져서 자기 구원 이루는 일을 찾지를 못합니다. 또 자기가 꼭 무슨 일 을 해야 할지 자기 할 일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이것을 우리가 여기에서 배울 수가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기도하러 가다가 빌립보 교회를 세우는 큰 복음 역사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서든지 기도할 수 있지만 할 수 있는대로는 자기가 기도하는 장소를 정해놓고 기도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시간도 자기가 기도하는 시간을 정해놓고 하 면 더 좋습니다. 사도 요한과 베드로도 사도행전 3장에 보면 제 9시 기도 시간에 성전에 올라가다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된 사람을 만났고 그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으켜 세우는 그 사건을 통해서 그날에 큰 구원 운동이 일어났 던 것입니다.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기도 시간을 양보하면 안됩니다. 모든 일을 조절을 해서 자기 기도할 시간을 빼앗기지 않도록 합시다. 믿는 사람이 기도하지 아니하면 자기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자기가 꼭 해야 될 자기 일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이것을 여기서
첫째로 우리가 배워야 되겠습니다. 2차 승리는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러 가다가 빌립보 성에서 점치는 귀신들이 여 종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 여종은 주인들에게 점을 쳐가지고 큰 수입을 얻게 하 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바울과 실라를 보고는 뒤쫓아 와서 소리를 질렀 습니다.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들인데 너희들에게 구원의 길을 전 하고 있다' 이렇게 하기를 여러 날을 하였습니다. 바울이 이것을 보고 여기 성경 본문에 말씀하기를 "심히 괴로워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 사도 바울이 괴로워 하였을까 무엇 때문에 괴로워 했는가 이 일에는 두 가 지 갈랫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귀신들린 여종이 증거하는 말을 듣고 사도 바울이 생각하기를 '아, 우리들이 하나님의 도를 전하러 오니까 하나님이 이 여자 를 보내가지고 우리 하는 일을 협조하도록 했구나. 이렇게 우리를 알아주고 또 우리가 하는 이 일에 동참해 주니까 참 반갑고 고맙구나. 이 사람은 우리의 동지이구 나.' 이렇게 생각하고 또 그렇게 말을 했더라고 하면 그만 그 성에서 대 환영을 받 았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모여들었을 것이고 또 이 두 사람 을 아주 잘 대접도 해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성령님의 사람이라서 그 뒤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금은 이 귀신들린 여자가 하는 말을 들어보면 말은 맞는 말입니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사 도 바울과 실라는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들이요, 또 생명의 도를 전하러 왔기 때문에 그 하는 말이 맞습니다. 맞아서 환영을 하고 또 그 성에 있는 사람들이 '아, 정말 놀라운 일이다' 이렇게 해서 따르는 것은 좋지만 우리들이 이 성을 떠나고난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나겠나 하고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이렇게 환영하 고 좋아했지만 이 귀신들린 여자가 그만 그 성중에서 아주 높아질 것이고 또 마지 막에는 귀신이 그 여자를 사로잡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는 완전히 박살이 나 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실패가 될 것이다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사도들을 알아주고 참 하나님의 종으로 높이고 또 생명의 도를 전한다고 선전을 해주면서 이렇게 복음 운동하는 것을 도와주는 것이 좋기는 좋지 만 사도 바울이 잘한다 참 고맙다 이렇게 그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편으로는 '자, 그러면 이 귀신들린 여자가 증거하는 증거를 물리치고 또 이 귀신들 린 여자 속에 있는 귀신을 쫓아내어 주는 것이 하나님의 종으로서 사람 구원하는 도리이고 또 이 성에 온 목적인데 이대로 하면 어떻게 되겠나' 가만히 생각해 보 니까 사도 바울은 성령님의 사람이기 때문에 능히 알 수가 있었습니다. 이 복음으로 인해서 큰 환난과 핍박이 자기들에게 올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여자를 통해서 길흉을 점치고 또 어려운 일이 있으면 찾아가 서 귀신의 도움으로 지도를 받고 또 그 주인들도 점치는 일을 통해서 많은 이익을 보고 있었는데 그만 귀신이 쫓겨 나가고 점을 치지 못한다고 하면 성안에 있는 백성들도 소동을 할 것이고 주인들도 가만히 있지 아니할 것입니다. 이래서 사도 바울은 두 가지 갈랫길에서 괴로워했습니다. 더 간단히 말하면 귀신들린 여자의 말을 앞뒤 생각하지 아니하고 받아들이면 당 장에 환영을 받는 길이 있고 또 하나는 복음을 위해서 귀신을 쫓아내면 당장에 큰 핍박을 당하는 길이 있었습니다. 이 두 갈랫길에 선 바울은 며칠을 괴로워하다가 그들은 하나님의 종이오, 하나님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바른 선택을 했습니다. 복음을 위해서 자기가 환난을 당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이것이 두번째 승리였습니다.
'내가 여기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맞아죽었어도 복음이 승리를 해야 온 백성들이 살고 주님이 기뻐하시지 내가 환영을 받고 대접을 받기 위해서 복음을 저버려서는 안되겠다.' 사도 바울은 바른 선택을 하고 바른 깨달음을 가지고 담대하게 귀신들 린 여자를 향해서 귀신에게 명령을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 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너라." 명령을 하니까 그 귀신이 여자에게서 나와버렸습니다. 귀신이 떠나고 나니까 그 여자는 정상적인 사람으로 돌아왔고 그 여자 본인 에게 큰 구원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주인들에게는 큰 손해가 발생했습니다. 이래서 그 주인들이 화를 내고 이 사도들을 잡아다가 저자에 끌고 가서 상관들 에게 고소를 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우리 로마 사람이 따를 수 없는 이상한 풍속 을 전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말했고 상관들은 이 사도들을 붙잡고 옷을 찢고 매를 때리고 그리고 간수에게 명해서 옥에 단단히 가두도록 했습니다. 예측한대로 복음 때문에 이 두 사도는 깊은 감옥에 갇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도 그러합니다. '내가 죽고 복음이 사느냐 내가 살고 복음이 죽느냐' 이 문제로 우리가 고민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자기가 죽고 복음을 위하는 그 길을 택해야 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믿는다 하면서 자기를 위해서 복음 을 희생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복음보다도 우선 자기에게, 또 자기 욕심, 자기 하는 사업에 무슨 손해가 있지 아니할까 이것부터 걱정을 먼저 합니다. 복음 때문에 자 기가 손해보는 길을 피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오히려 자기 육체의 이익을 위해서 복음 전하는 사람들을 핍박하기도 합니다. 바울과 실라는 자기 죽이고 복음을 살리기로 각오하고 하나님의 뜻을 쫓아 그 여자를 구원하기 위해서 귀신을 쫓아내었습니다. 이것이 제 2차 승리였습니다. 그런데 이 복음을 전한 효과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언뜻 생각하면 귀신이 쫓겨나간 것이 '이게 복음을 전한 효과다.' 생각하기 쉽지만 사도 바울과 실라가 복음을 전한 효과는 그들이 몽둥이를 맞은 것이 복음을 전한 효과입니다. 우리들도 복음을 전하 다가 복음대로 순종하는 생활을 하다가 환난과 핍박이 일어나면 '내가 참 하나님의 복음대로 순종을 하고 복음을 내가 바로 전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복음이 마귀의 대가리를 깨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복음을 전해도 또 복음대로 우리가 순종을 해도 아무런 마찰이 없고 아무런 환난이 없다고 하면 그 복음은 죽은 복음입니다. 탄환이 없는 헛총질과 같은 일이 되는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3차 승리는 바울과 실라가 복음 때문에 몽둥이에 맞고 또 그 발이 착고에 채이 고 깊은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때에 그들이 자기들이 당하는 고통과 억울함과 또 고독 때문에 원망 불평 낙심을 하였다고 하면 거기서 실패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는 본문 말씀에 보니까 감옥에 들어가서 기도하고 찬송하였다 했습니다. 이것이 제 3차 승리입니다. 여기 기도했다고 하는 것은 옥중에서 묵상한 것을 말합니다. 명상한 것을 말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무엇을 생각했겠습니까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의 사활대속을 생각하고 주님의 고난에 동참함을 생각하고 또 주님이 약속하신 하늘 나라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또 우리가 알기 쉽게 간추려서 배운대로 열여섯 가지 구속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전지전능의 완전 주권의 만왕의 하나님께서 전부 나를 위해서 기울이기로 목적 을 정하시고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다 예정하셨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전부를 나를 위해 기울여서 하나님처럼 온전하고 깨끗하고 거룩하고 완전한 사람을 만드시려고 하셨다. 이렇게 생각을 했을 것이고 이어서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주권 개별 섭리하시는 일을 생각하고 또 예수님이 하나님이 사람으로 도 성인신해 오신 일이나 또 십자가 사활 대속이나 피와 진리와 성령님의 세 가지 보증 이나 또 우리가 가질 제사장, 선지자, 왕의 이 세 가지 직분등 이걸 자꾸 생각을 하니까 그만 먼저 육체적으로 아픈 고통이 사라지고 마음에 불안이 없어지고 평안 이 생기고 마음 속에 감사가 생기고 기쁨이 생겼던 것입니다. 또 이렇게 되어진 모든 순서가 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구원을 이루는 순서 인 줄 알고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붙들고 이 구원 운동을 하시는 것을 깨닫게 되고 주님이 자기들 곁에 서서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는 그 주님을 만나게 되니까 그만 기뻐서 즐거워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이러니까 감사가 나오고 거기서 찬송이 터 져 나왔던 것입니다. 무슨 찬송을 했을까 오늘도 우리가 '내 주는 강한 성이요' 하는 그런 찬송이나 '예수가 거느리시니 즐겁고 화평하구나' 하는 찬송이나 또 '믿음으로 사는 자는 모 든 일이 형통하다'는 찬송이나, 아마 우리 찬송가에 있는 이런 찬송같은 그런 종류 의 찬송들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이렇게 기뻐서 찬송을 하니까 하나님께서 지진으로 응답을 했습니다. 옥터가 움직이고 옥문이 열리고 착고에 채워졌던 그 발들이 착고에서 풀 려나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복음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3차 승리는 우리가 복음 때문에 오는 모든 환난과 핍박을 견디고 거기서 주님 을 생각하고 주님을 생각하는 가운데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서 거기 서 참 감사와 찬송을 할 수 있게 되는 그것이 제 3차 승리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제 3차 승리를 하고 보니까 주님께서 땅을 진동시키는 그런 큰 운동을 주님이 일으켰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손 하나 대지를 안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직접 역사하셔서 이렇게 놀라운 일이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바울과 실라의 한 일은 그 깊은 옥중에서 고통 가운데서 참 억울함 가운데서 또 외로운 가운데서 낙 심 낙망할 수밖에 없는 그런 형편이었지만 주님 한분 생각하고 기도하고 주님 만 나서 기뻐서 찬송한 일 그것뿐인데 더 쉽게 말하면 찬송했는데 하나님께서 큰 능 력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이 하시는 이 구원 운동, 복음 운동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다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지진처럼 이렇게 큰 복음 운동을 하시는 것은 우리 편에서는 하나님 만나서 하나님과 하나되어서 하나님 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그것만 우리 할 일입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여기서 오해를 하면 안되겠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내가 무 슨 능력이 있어가지고 사람을 고치고 또 복음 운동을 해서 많은 사람들을 주님 앞 으로 이끌고 온 세계에 가서 많은 사람들을 병도 고치고 또 귀신들린 사람도 낫게 하고 또 많은 민족 종족들을 주님 앞으로 이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오해입니다. 내가 하는 일이 아닙니다. 이거는 마치 하나님께서 옥터를 움직이고 모든 매인 것을 이렇게 풀어주시는 것처럼 하나님이 죄와 사망과 마귀에게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을 건져서 구원하는 이 큰 구원 운동의 역사는 하나님 자신이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객관적인 능력의 역사입니다. 우리 할 일은 무엇인가 우리 할 일은 여기 바울과 실라가 3차 승리까지 온 것처럼 우리 할 일은 기도하는 것이 우리 할 일이요,
두번째는 복음을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는 것이 우리 할 일이요, 또 복음을 위해서 고난을 당할 때 주님 생각하고 주님 만나는 것까지 주님 만나서 기뻐하고 즐거워 하는 것까지는 우리 할 일입니다. 주관적인 우리 할 일이고 그다음에 우리가 세 가지 승리를 통해서 본 것처럼 기도하러 가다가 귀신들린 여자를 만나는 것이나 또 귀신들린 여자를 만나서 그 귀신을 쫓아낸 일이나 또 감옥에 들어가서 찬송할 때 감옥이 진동한 일이나 그 일 은 다 하나님이 하신 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인 것을 우리가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바울과 실라는 이 감옥 가운데서 주님 생각하고 주님의 열여섯 가지 구속을 생각하고 자기는 죽고 복음이 살아나는 것과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을 생각을 할 때에 이 기도하는 가운데서 주님을 만났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여러 가지 어려 움들을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할 때에 어려움들을 우리가 당하기도 하고 또 순종하 고난다음에도 여러 가지 참 낙심할 만한 그런 일을 만나지만 우리 할 일은 기도 하는 것입니다. 기도 가운데 묵상 가운데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의 고난을 생각하고 주님의 약속 을 생각하고 이렇게 생각하는 가운데서 우리가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위로를 받습니다. "네가 내게 합당하구나. 네가 바른 마음을 가졌구나. 내가 너를 기뻐한다." 이렇게 주님이 우리 곁에 서 계시는 것과 우리를 위로하시는 그 위로를 받을 때는 우리 속에는 성령님께서 주시는 기쁨과 즐거움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 고 또 찬송하지 아니할 수 없게 됩니다. 이렇게 주님 만나서 주님과 하나가 되니까 그다음부터는 하나님이 역사를 합니다. 옥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구원을 받는 그런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이 3차 승리에서 하나님이 오셔서 하나님이 친히, 여기 옥문이라고 하는 것은 이 거는 주님께서 상징적으로도 말씀을 했습니다. 이 죄와 사망과 마귀에게 사람들이 사로잡혀 살고 있는 것이 불쌍한 우리 인생입니다.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죄와 사 망과 마귀에게 갇혀 있는 인생을 거기서 옥문을 열고 해방 자유를 줄 수 있는 분 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만 실제로 역사를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객관의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를 해야 이 사람 살리는 운동이 일어나지 어떤 훌륭한 목사님이나 전도사님이 자기 개인의 능력과 경건으로서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제 4차 승리는 옥문이 열리고 죄수들이 매이는 것이 풀리니까 그만 간수가 놀랬습니다. '아이고, 이렇게 지진이 나고 옥문이 열린 것을 보니까 죄인들이 다 도 망을 쳤을 것이다.' 여기 본문에 보니까 상관들이 엄중히 명했습니다. '이 죄인들을 단단히 가두어서 도망가는 일이 없도록 해라.' 엄명을 했는데 옥문이 열렸으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죄인들이 문이 열렸는데도 앉아 있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 까 '틀림 없이 다 도망쳤을 것이다.' 이래 생각하고 칼을 빼서 자결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럴 때에 사도 바울이 "네 몸을 상하게 하지 말아라. 우리가 다 여기 있다." 이 말을 듣고 간수가 놀랬습니다. 등불을 들고 달려가서 깊은 옥속을 살펴보니까 죄수 들이 다 그대로 있었고, 성경에는 기록은 안되었지만 그 얼굴에 기쁨이 넘치고 환 한 얼굴로 자기를 향해서 참으로 너무나도 참 인간으로서는 들을 수 없는 놀라운 말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간수가 두려워서 벌벌 떨면서 이 두 사람 앞 에 엎드러지고 절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 겠습니까" 구원의 길을 물었습니다. 사도들이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사도행전 16장 31절, 구원의 길을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 습니다. 그 밤에 이 간수와 간수의 온 가족이 복음을 듣고 세례를 받고 예수를 믿 어서 온 가족들과 사람들이 구원의 큰 기쁨을 가졌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 4차 승리는 사랑의 승리입니다. 세상에 이런 사람들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루 종일 상관들에게, 또 백성들이 고소를 하는 가운데서 상관들에게 맞아서 큰 고통을 당하였고 또 간수가 깊은 옥에다가 가두어 두었고
그런데 그 옥문이 열리고 착고 가 다 풀렸는데도 도망가지도 아니하고 또 자기를 만나서 욕하고 원망하지도 아니 하고 '잘 됐다. 이제는 네가 죽어서 마땅하다.' 얼마든지 자살하도록 할 것입니다. 도망갈 기회가 있었지만 도망도 아니 가고 자살하려고 하는 사람을 오히려 말리면 서 그 몸을 상하지 않도록 그렇게 할뿐만 아니라 구원의 길을 가르쳐 주었던 것이 이것이 사도 바울과 실라가 사랑으로서 승리한 제 4차 승리였습니다. 이 사랑의 폭 탄이 터지니까 거기서 이 간수와 온 가족이 구원을 얻게 되고 빌립보 교회가 그날 밤에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앞에 자주 장사 루디아의 집안이 예수를 믿게 된 일이 있지만 합해 가지고 빌립보 교회가 이렇게 해서 성립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할 때에 우리의 신앙생활이 전부가 다 복음 생활입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에 말씀한 그 말씀을 하나 하나 믿고 그대로 순종해서 우리가 살고 또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원 운동을 일으켜서 우리 인격 구원이나 행위 구원이나 소유 구원이 이루어지고 또 다른 사람들의 구원이 다 이렇게 이루어지는 데 우리 구원이 이루어지는데는 이렇게 네 가지 승리의 순서를 거쳐서 하나님께서 네 가지 단계로 역사해서 하나님의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오늘 우리가 여기서 배울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네 가지 승리, 네 가지 역사가 꼭 정한대로 그렇게 되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사람은 한 번 승리로 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열 번 스무 번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바울과 실라는
첫째 기도로 승리했습니다. 아무리 복잡하고 어려운 일, 또 복음 전하는 큰 일이 있었지만 뭐 다른 계획 을 세우고 꾀를 쓸려고 하지 아니하고 그저 믿는 사람이 기도하는 게 합당하지 않 습니까 무슨 일이 있든지간에 새벽기도하고 먼저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하는 가운데서 자기 할 일 자기 갈 길을 찾아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로 승리를 하고 두번째로는 자기를 죽이고 복음대로 순종하는 이 순종으로 승리를 했습니다. 우리가 언제든지 하나님 말씀대로 하려고 하면 내게 손해가 오고 또 하나님 말씀을 피하기만 하면 자기에게 큰 유익이 올 것 같은 그런 일들이 우리에게 언제든지 닥칩니다. 그때 믿는 성도는 다른 것 할 것 없습니다. 그저 성경 에 말씀하고 진리가 말하고 영감으로 하나님께서 "이거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거는 복음이다." 이럴 때 우리는 순종만 하면 그다음에는 하나님이 능력으로 역사를 하십니다. 하나님이 귀신을 쫓아내시는 그런 역사를 하십니다. 귀신 쫓아내는 것이 무슨 큰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하실 일입니다. 우리 할 일은 이거는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내가 순종해야지 자기에게 어떤 손해가 오더라도 어려움이 오 더라도 환난과 핍박이 오더라도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승리입니다. 그러면 이 승리를 통해서 세번째 승리는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할 때에 자기 희 생이 있고 우리가 희생을 당할 때 여러가지 고통을 당하게 되고 또 특별히 우리 순교하신 백 목사님이 늘 강조한 것을 보면 믿는 사람이 하나님 말씀지키면서 당 하는 고통은 육체의 고통도 크지만 고독을 참고 견디기는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그럴 때 거기서 낙심 낙망하지 아니하고 주님 생각하는 것, 주님의 고난을 생각하 고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이 생각, 주님 생각할 때에 우리가 주님 만나는 게 승 리입니다. 그만 주님 만나면 찬송나오고 이렇게 해서 주님 만나 찬송하는, 낙심하 지 아니하고 주님 만나 찬송하는 이것이 세번째 승리고, 네번째는 사랑의 승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고 또 하나님이 역 사해 가지고 기이한 일이 일어날 때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봐라, 내가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니까 이렇게 하나님이 큰 역사를 하시고 나는 승리했 으니까 나를 핍박하고 내게 말할 수 없는 억울한 그런 일을 당하게 한 세상이나 나라나 사람이나 조직이나 그런 것에 대해서 우리가 보복하려고 하는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이 승리같은데 마지막에 마귀가 교묘하게 그만 하나님의 객관적인 복음 능력의 역사를 망가뜨리는 그런 역사가 되는 줄 알아야 됩니다. 이게 최후의 승리고 가장 어려운 승리입니다. 그럴 때에 우리 할 일은 복수하는 게 우리 할 일 아닙니다. 사람 살리는 것이 우리 할 일이고 구원하는 것이 우리 할 일입니다. 사람 사랑하는 것이 우리 할 일입니다. 우리가 잘 알지만 요셉도 자기 형들에게 복수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오히려 말하 기를 '이거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하신 일인데', 말은 안 했지만 '형님들은 그만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마귀에게 속아서 그렇게 했지만 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인데 '또 내가 이렇게 했다 하더라도 내 한 일이 뭐 내 능력으로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하신 일인데 이거는 원망할 것도 없고 자랑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면서 오히려 '내가 형님들을 보호하고 형님들의 자녀를 내가 키우겠습니다. 우리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 떠나지 맙시다.'
이렇게 하는 데에서 요셉은 최후 승리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 애굽에서 총리로서 성공한 것이 문제가 아니고 사람들을 구원하는 선지자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여기에서 사랑의 승리를 통해서 옥터가 움직이는 것도 기적이 일어 나는 것도 참 기이한 일이지만 그런 것은 다 하나의 방편에 지나지 않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한 사람 구원하는 것, 한 가정 구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고 이 세상을 창조하고 또 세상을 하나님이 섭리 역사하시는 목적이기 때문에 그것은 사랑으로만 됩니다. 자기를 때리고 자기를 옥에 집어넣고 핍박한 원수지만 그들을 사랑하는 이 사랑으로서 승리를 하니까 하나님이 그 가정을 구원하고 그리고 그 성 을 구원해서 빌립보에 아주 큰 교회가 서서 주의 복음이 널리 전파될 수 있게 되 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 생활하는 것은 이 네 가지 승리를 통해서 되는 것입니다. 이 네 가 지 승리는 우리가 할 일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거기에 따라서 하나님이 큰 구원 운동으로 역사를 하십니다. 이래서 우리가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 네 가 지 승리한 순서를 기억하면서 이렇게 승리 생활을 하도록 합시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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