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둥같은 일꾼의 기둥 (왕상7:15-22)
본문
우리는 믿음직스러운 군인을 군성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단체에서 귀하게 일하는 사람을 보배라고 표현하고 중요한 일꾼을 기둥이라고 말합니다. 솔로몬 성전의 전면 좌우편에는 두 기둥이 우뚝 서 있습니다. 오른편에 있는 기둥은 야긴이라고 불렀고 왼편에 있는 기둥은 보아스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재료는 모두 놋이었습니다. 18규빗되는 높이에 둥그런 공같은 기둥머리를 5규빗되게 만들었습니다. 석류를 한줄에 100개씩 두줄로 줄렀습니다. 기둥머리에는 그물 모양을 만들었고 백합화를 본따서 조각하였습니다. 성경은 일잘하는 사람을 기둥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계3:12) 이기는 자는 내 여호와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이같이 요한은 이기는 자를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갈2:9) 또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기둥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나와 바나바에게 교제의 악수를 하였으니 이는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저희는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야고보와 베드로와 요한을 기둥같이 여겼습니다. 솔로몬 성전의 두기둥은 “기둥같은 일꾼”은 어떤 것을 기둥으로 삼아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두기둥은 천정이나 건물을 받치고 있는 기둥이 아니라 건물 앞에 상징적으로 서 있는 상징물이었습니다. 무엇을 상징합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둥같은 일꾼을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집 정면에 두 기둥을 세우시고 이 기둥을 바라보는 기둥같은 일꾼들에게 이런 것들을 기둥으로 삼고 살라고 ‘소리없는 말씀’을 들려주고 계십니다.
1. 기둥같은 일꾼은 믿음을 기둥으로 삼고 살아 갑니다. 두기둥의 이름은 우편 기둥은 야긴이고 좌편 기둥은 보아스입니다. 야긴은 ‘그가 세우실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보아스는 ‘그에게 능력이 있다’라는 뜻입니다. 둘다 믿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전은 금값만도 900조원이나 들었습니다. 성전은 다윗이 준비하여 솔로몬이 세웠지만 인간이 세운 집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전쟁에 승리하게 하셔서 성전 건축을 위한 물질을 모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시고 솔로몬에게 지을 수 있는 지혜를 주신 것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설계하시고 하나님이 준비하셔서 하나님이 지으신 하나님의 집입니다. 인간은 모두 하나님의 도구에 불과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보아스(능력)를 가지고 하나님이 야긴(세움)하셨습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능력으로 세우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성전이 세워졌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나의 힘이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시18:1), “하나님이 한두 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하는도다.”(시62:11)라는 고백을 할수 있었습니다.
무엇이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신다는 믿음의 고백을 하는 사람이 기둥같은 일꾼입니다. 군형무소에서 두명의 사형수가 같이 사형집행일을 피 마르는 심정으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사람은총기난동을 부려서 죄없는 민간인을 죽였습니다. 한사람은 월남전에서 동료를 총으로 쏘아 죽였습니다. 전방에서 사고를 일으킨 사형수는 죽을 날이 얼마 남지않음을 알았습니다. 그는 감옥에 있으면서도 식욕이 왕성하여 고기나 실컷 먹고 싶어 하였습니다. 곰곰히 생각하던 그는 기발한 생각을 하였습니다. 간수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모 의과 대학에 자기 몸을 해부 실험용으로 사지 않겠느냐고 제안하였습니다. 그렇지않아도 실험용시체가 모자라는 때라 일금 10만원에 사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형을 당하면 시체를 가지고 가기로 계약서를 썼습니다. 그는 10만원으로 닭을 사서 매일 먹었습니다. 옆친구에게는 조금도 주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아까워서 였습니다. 군침을 흘리던 옆 사형수가 물었습니다. “맛있니” 그는 “배야 부르지만 내 살을 뜯어 먹는데 맛있을 리가 있겠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약3만원정도를 사용하여 고기를 먹다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의 주머니에는 7만원이 남아 있었습니다. 한편 다른 사형수의 주머니에는 15,000원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는 믿음이 있는 이였습니다. 그는 “내가 죽기 전에 무엇인가 하나님을 위하여 하고 죽어야 겠다.”라고 결심하였습니다. 친구가 닭고기를 먹을 때마다 자기도 같이 한 마리 사먹고 싶은 돈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혀를 굳게 깨물었습니다. 죽기 전에 한 가지 보람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마침 어떤 교회 성가대가 위문차 교도소에 와서 찬양을 하였습니다. 천사같이 보였습니다. 이 돈을 그들에게 주어서 하나님을 위하여 쓰도록 하자고 생각하고 책임자 전도사님에게 사연을 이야기하면서 드렸습니다. 마침 교도소에 새로 지은 교회에 강대상이 없었습니다. 그 헌금을 드리기로 정한 전도사님은 강대상을 사는 데 보태라고 헌금을 하였습니다. 물론 사형수가 마지막으로 드리는 헌금이라고도 말했습니다. 교회 봉헌식을 하는 데 목사님이 강대상은 한 사형수가 가지고 있었던 헌금이 들어 있음을 알렸습니다. 마침 그 때 신문기자가 취재차 왔다가 감동을 받고 그 이야기를 보도하였습니다. 이 신문을 대통령이 읽었습니다. 대통령은 이런 사형수는 살려 주어도 좋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무기징역으로 형량을 감하여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형수는 지금도 살아 전도하며 교도소이지만 기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기둥같은 일꾼은 믿음을 기둥으로 삼고 살아 갑니다.
2. 기둥 같은 일꾼은 영혼 구원을 기둥으로 삼고 살아 갑니다. 기둥 머리의 모습을 성경 기자는 이렇게 기술하여 주고 있습니다. (왕상7:17) 기둥 꼭대기에 있는 머리를 위하여 바둑판 모양으로 얽은 그물과 사슬 모양의 땋은 것을 만들었으니 이 머리에 일곱이요 저 머리에 일곱이라 (왕상7:18) 기둥을 이렇게 만들었고 또 두 줄 석류를 한 그물 위에 둘러 만들어서 기둥 꼭대기에 있는 머리에 두르게 하였고 다른 기둥 머리에도 그렇게 하였으며 (왕상7:19) 낭실 기둥 꼭대기에 있는 머리의 네 규빗은 백합화 모양으로 만들었으며 (왕상7:20) 이 두 기둥 머리에 있는 그물 곁 곧 그 머리의 공같이 둥근 곳으로 돌아가며 각기 석류 이백이 줄을 지었더라 기둥에는 바둑판 모양으로 얽은 그물과 사슬 모양의 땋은 것을 만들었습니다. 그물은 우리에게 고기잡는 모습을 연상시켜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석류를 100개씩 두 줄로 두 기둥에 사슬로 연결시켰습니다. 모두 400개의 석류가 달렸습니다. 석류 속의 알맹이들은 많은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한 석류에 알맹이가 761개정도가 들어 있다고 합니다. 영혼을 구원하여야 하는 성전에 들어가는 입구 기둥에 석류를 사슬로 매달고 그물처럼 만드신 하나님의 의도를 아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수많은 영혼을 그물로 건져 빠져 나가지 못하도록 사슬로 엮어 하나님의 집으로 모으는 모습인데요 성전의 기본적인 임무입니다.
그러므로 영혼 구원을 기둥으로 삼는 사람이 교회에 기둥같은 교인입니다. 안영호라는 한 남자가 아이들을 태우는 회전목마를 돌리며 두리번 거리고 있었습니다. 돈 버는 것보다는 누군가를 찾고 있는 것 같은 눈초리가 이상하여 사연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기 아들이 유괴를 당하였습니다. 자식을 유괴당한 부모의 심정은 당하지 않은 사람은 정말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 아들을 찾으려고 남쪽 경상도부터 전라도를 거쳐 북으로 북으로 올라와 서울까지 온 것입니다. 그의 마음에는 오직 아들 찾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이 골목에 회전목마를 세워놓고 아이들이 타러 나오면 자기 아들이 혹시 오지않나하여 두리번 거리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잃은 아들을 찾으려고 10여 년을 포기하지 않고 이 도에서 저 도로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이 골목에서 저 거리로 다닌 것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오직 그 아들 하나를 찾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심정입니다. 잃어버린 사람을 찾아 헤메고 계시는 하나님은 오늘도 기둥같은 우리를 사용하셔서 영혼 구원을 기둥으로 삼고 일하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마지막으로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그물을 들고 사슬을 들고 석류같이 많은 사람들을 구하러 나갈 때 기둥같은 일꾼이 되는 것입니다.
3. 기둥같은 일꾼은 향기를 기둥으로 삼고 살아 갑니다. (왕상7:19) 낭실 기둥 꼭대기에 있는 머리의 네 규빗은 백합화 모양으로 만들었으며 기둥에는 백합화 모양이 있습니다. 성전 곳곳에도 백합화의 모양이 많이 있습니다. 백합은 그리스도의 순결, 그리스도의 향기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솔로몬의 모든 아름다움이 백합화 하나만 못 하다고 평가하셨습니다.(눅12:27) 히브리말로 백합을 ‘슈산’이라고 하는데 이 뜻은 아름다움,백색,순결을 말합니다. 아름다움과 순결을 기둥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이 기둥과 같은 일꾼입니다. 국민일보에 실린 글입니다. 어둔 밤이었습니다. 한 여인이 귀중품이 든 보따리를 들고 차에서 내려 어둠 속을 걷고 있었습니다. 한 험상궂게 생긴 남자가 그 여인의 뒤를 쫒아 가고 있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그 여인은 뒤를 보면서 말했습니다. “이 보따리를 들어 주시겠습니까” 그리고 그는 앞만 보고 걸었습니다. 그 남자는 한참에 이런 고백을 하였습니다. “나는 이 보따리를 훔치려고 따라온 강도입니다. 당신이 나를 믿어주고 맡길 때 나는 도저히 훔칠 수가 없었습니다. 나를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입니까 백합화같은 사람이 기둥같은 사람이 됩니다.
4. 기둥같은 일꾼은 원만함을 기둥으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는 솔로몬 성전의 기둥에서 원만한 일꾼의 두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두 기둥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둥글다는 것입니다. 두 개라는 것은 기둥같은 일꾼은 연합할 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공동체에 들어가서 조화를 이룰수가 있어아 한다는 말입니다. 독불 장군처럼 살아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은 70문도를 전도하러 내보내실 때 두 사람씩 보내셨습니다. 성경은 구약과 신약 두권입니다. 구약은 율법서와 선지서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데리고 갈 때 부활의 이삭을 보기 위하여 두증인이 같이 갔습니다. 예수님의 무덤 속에서 두 천사가 주님의 부활을 증거하였습니다. 광야에서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둥글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원만한 성격을 가져야 합니다. 모세는 40세에는 마음에 안드는 사람을 죽일 수있는 정도까지 정확하고 불의를 보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80세에 성령님을 받고 나서는 모든 것을 참으며 이기며 이해할 수 있는 원만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베드로도 그랬고 바울도 그랬습니다. 바울은 칼로 두부를 자르듯이 정확하게 살았습니다. 스데반을 불의한 사람인 줄 알고 돌로 쳐 죽이는 데 동참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난 다음에는 모두에게 관용을 베풀 줄 아는 원만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연합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성격이 둥글둥글하여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기둥같은 일꾼이 될 수가 있습니다. 소크라테스에게 이런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그가 여기저기 다니면서 진리를 전하고 있었을 때 한 괴한에게 폭행을 당했습니다. 동행한 제자들이 그를 잡아서 복수하려고 하였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잡아 온 괴한을 풀어 주면서 제자에게 말했습니다. “당나귀에 채였다고 당나귀에게 복수할 수는 없지 않은가” 얼마나 크게 생각하고 원만한 생각입니까 하나님의 일꾼은 둥근 기둥과 같아야 합니다. 교회에는 여러 형태의 교인이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농담으로 뿌려지는 교인이 있다고 합니다. 일생에 세 번 교회에 나오는 교인입니다. 어린시절 유아세레를 받으러 나오면 물이 뿌려 집니다. 결혼식 때는 꽃가루가 뿌려 집니다. 죽을 때는 흙이 뿌려 집니다. 이를 ‘네바퀴 교인’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네바퀴가 달린 유모차를 타고 한 번 교회에 옵니다. 네바퀴달린 승용차로 결혼식을 하러 옵니다. 그리고 네바퀴 달린 영구차를 교회에 옵니다. 헤일 교수는 교인들을 이렇게 분류 하였습니다.
1). 부동 교인으로서 성전 뜰만 밟고 다니며 한 번도 헌신다운 헌신을 해 보지 못한 교인입니다.
2). 반기구적인 교인으로서 교회의 제도나 조직이나 기구에 불만과 불평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배만 참석하지 어떤 기관에서든지 소속하여 일하지 않습니다.
3). 쾌락주의 교인으로서 자기 구미에 맞는 프로그램에는 참여하지만 자기에게 맞지않다 생각되면 참여하지 않습니다.
4). 자폐증 교인으로서 먼저 믿는 교인들이 자기를 따돌린다고 여기거나 돈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무시한다고 늘 생각하고 사는 교인입니다.
5). 방랑 교인으로서 이 교회 저 교회를 순례자처럼 방랑하는 교인입니다.
6). 세리 교인으로서 교회에는 바리새인같은 위선자들로 가득차 있다고 생각하며 자기만 의롭다고 여기는 교인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 위에 우뚝 솟아 있는 교인이 바로 보아스와 야긴 같은 기둥같은 교인 입니다. 기둥같은 교인은 이런 것들을 기둥 삼아 일하고 있습니다.
1. 기둥같은 일꾼은 믿음을 기둥으로 삼고 살아 갑니다.
2. 기둥같은 일꾼은 영혼 구원을 기둥으로 삼고 살아 갑니다.
3. 기둥같은 일꾼은 향기를 기둥으로 삼고 살아 갑니다.
4. 기둥같은 일꾼은 원만함을 기둥으로 삼고 살아 갑니다.
1. 기둥같은 일꾼은 믿음을 기둥으로 삼고 살아 갑니다. 두기둥의 이름은 우편 기둥은 야긴이고 좌편 기둥은 보아스입니다. 야긴은 ‘그가 세우실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보아스는 ‘그에게 능력이 있다’라는 뜻입니다. 둘다 믿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전은 금값만도 900조원이나 들었습니다. 성전은 다윗이 준비하여 솔로몬이 세웠지만 인간이 세운 집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전쟁에 승리하게 하셔서 성전 건축을 위한 물질을 모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시고 솔로몬에게 지을 수 있는 지혜를 주신 것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설계하시고 하나님이 준비하셔서 하나님이 지으신 하나님의 집입니다. 인간은 모두 하나님의 도구에 불과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보아스(능력)를 가지고 하나님이 야긴(세움)하셨습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능력으로 세우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성전이 세워졌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나의 힘이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시18:1), “하나님이 한두 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하는도다.”(시62:11)라는 고백을 할수 있었습니다.
무엇이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신다는 믿음의 고백을 하는 사람이 기둥같은 일꾼입니다. 군형무소에서 두명의 사형수가 같이 사형집행일을 피 마르는 심정으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사람은총기난동을 부려서 죄없는 민간인을 죽였습니다. 한사람은 월남전에서 동료를 총으로 쏘아 죽였습니다. 전방에서 사고를 일으킨 사형수는 죽을 날이 얼마 남지않음을 알았습니다. 그는 감옥에 있으면서도 식욕이 왕성하여 고기나 실컷 먹고 싶어 하였습니다. 곰곰히 생각하던 그는 기발한 생각을 하였습니다. 간수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모 의과 대학에 자기 몸을 해부 실험용으로 사지 않겠느냐고 제안하였습니다. 그렇지않아도 실험용시체가 모자라는 때라 일금 10만원에 사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형을 당하면 시체를 가지고 가기로 계약서를 썼습니다. 그는 10만원으로 닭을 사서 매일 먹었습니다. 옆친구에게는 조금도 주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아까워서 였습니다. 군침을 흘리던 옆 사형수가 물었습니다. “맛있니” 그는 “배야 부르지만 내 살을 뜯어 먹는데 맛있을 리가 있겠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약3만원정도를 사용하여 고기를 먹다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의 주머니에는 7만원이 남아 있었습니다. 한편 다른 사형수의 주머니에는 15,000원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는 믿음이 있는 이였습니다. 그는 “내가 죽기 전에 무엇인가 하나님을 위하여 하고 죽어야 겠다.”라고 결심하였습니다. 친구가 닭고기를 먹을 때마다 자기도 같이 한 마리 사먹고 싶은 돈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혀를 굳게 깨물었습니다. 죽기 전에 한 가지 보람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마침 어떤 교회 성가대가 위문차 교도소에 와서 찬양을 하였습니다. 천사같이 보였습니다. 이 돈을 그들에게 주어서 하나님을 위하여 쓰도록 하자고 생각하고 책임자 전도사님에게 사연을 이야기하면서 드렸습니다. 마침 교도소에 새로 지은 교회에 강대상이 없었습니다. 그 헌금을 드리기로 정한 전도사님은 강대상을 사는 데 보태라고 헌금을 하였습니다. 물론 사형수가 마지막으로 드리는 헌금이라고도 말했습니다. 교회 봉헌식을 하는 데 목사님이 강대상은 한 사형수가 가지고 있었던 헌금이 들어 있음을 알렸습니다. 마침 그 때 신문기자가 취재차 왔다가 감동을 받고 그 이야기를 보도하였습니다. 이 신문을 대통령이 읽었습니다. 대통령은 이런 사형수는 살려 주어도 좋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무기징역으로 형량을 감하여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형수는 지금도 살아 전도하며 교도소이지만 기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기둥같은 일꾼은 믿음을 기둥으로 삼고 살아 갑니다.
2. 기둥 같은 일꾼은 영혼 구원을 기둥으로 삼고 살아 갑니다. 기둥 머리의 모습을 성경 기자는 이렇게 기술하여 주고 있습니다. (왕상7:17) 기둥 꼭대기에 있는 머리를 위하여 바둑판 모양으로 얽은 그물과 사슬 모양의 땋은 것을 만들었으니 이 머리에 일곱이요 저 머리에 일곱이라 (왕상7:18) 기둥을 이렇게 만들었고 또 두 줄 석류를 한 그물 위에 둘러 만들어서 기둥 꼭대기에 있는 머리에 두르게 하였고 다른 기둥 머리에도 그렇게 하였으며 (왕상7:19) 낭실 기둥 꼭대기에 있는 머리의 네 규빗은 백합화 모양으로 만들었으며 (왕상7:20) 이 두 기둥 머리에 있는 그물 곁 곧 그 머리의 공같이 둥근 곳으로 돌아가며 각기 석류 이백이 줄을 지었더라 기둥에는 바둑판 모양으로 얽은 그물과 사슬 모양의 땋은 것을 만들었습니다. 그물은 우리에게 고기잡는 모습을 연상시켜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석류를 100개씩 두 줄로 두 기둥에 사슬로 연결시켰습니다. 모두 400개의 석류가 달렸습니다. 석류 속의 알맹이들은 많은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한 석류에 알맹이가 761개정도가 들어 있다고 합니다. 영혼을 구원하여야 하는 성전에 들어가는 입구 기둥에 석류를 사슬로 매달고 그물처럼 만드신 하나님의 의도를 아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수많은 영혼을 그물로 건져 빠져 나가지 못하도록 사슬로 엮어 하나님의 집으로 모으는 모습인데요 성전의 기본적인 임무입니다.
그러므로 영혼 구원을 기둥으로 삼는 사람이 교회에 기둥같은 교인입니다. 안영호라는 한 남자가 아이들을 태우는 회전목마를 돌리며 두리번 거리고 있었습니다. 돈 버는 것보다는 누군가를 찾고 있는 것 같은 눈초리가 이상하여 사연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기 아들이 유괴를 당하였습니다. 자식을 유괴당한 부모의 심정은 당하지 않은 사람은 정말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 아들을 찾으려고 남쪽 경상도부터 전라도를 거쳐 북으로 북으로 올라와 서울까지 온 것입니다. 그의 마음에는 오직 아들 찾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이 골목에 회전목마를 세워놓고 아이들이 타러 나오면 자기 아들이 혹시 오지않나하여 두리번 거리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잃은 아들을 찾으려고 10여 년을 포기하지 않고 이 도에서 저 도로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이 골목에서 저 거리로 다닌 것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오직 그 아들 하나를 찾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심정입니다. 잃어버린 사람을 찾아 헤메고 계시는 하나님은 오늘도 기둥같은 우리를 사용하셔서 영혼 구원을 기둥으로 삼고 일하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마지막으로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그물을 들고 사슬을 들고 석류같이 많은 사람들을 구하러 나갈 때 기둥같은 일꾼이 되는 것입니다.
3. 기둥같은 일꾼은 향기를 기둥으로 삼고 살아 갑니다. (왕상7:19) 낭실 기둥 꼭대기에 있는 머리의 네 규빗은 백합화 모양으로 만들었으며 기둥에는 백합화 모양이 있습니다. 성전 곳곳에도 백합화의 모양이 많이 있습니다. 백합은 그리스도의 순결, 그리스도의 향기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솔로몬의 모든 아름다움이 백합화 하나만 못 하다고 평가하셨습니다.(눅12:27) 히브리말로 백합을 ‘슈산’이라고 하는데 이 뜻은 아름다움,백색,순결을 말합니다. 아름다움과 순결을 기둥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이 기둥과 같은 일꾼입니다. 국민일보에 실린 글입니다. 어둔 밤이었습니다. 한 여인이 귀중품이 든 보따리를 들고 차에서 내려 어둠 속을 걷고 있었습니다. 한 험상궂게 생긴 남자가 그 여인의 뒤를 쫒아 가고 있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그 여인은 뒤를 보면서 말했습니다. “이 보따리를 들어 주시겠습니까” 그리고 그는 앞만 보고 걸었습니다. 그 남자는 한참에 이런 고백을 하였습니다. “나는 이 보따리를 훔치려고 따라온 강도입니다. 당신이 나를 믿어주고 맡길 때 나는 도저히 훔칠 수가 없었습니다. 나를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입니까 백합화같은 사람이 기둥같은 사람이 됩니다.
4. 기둥같은 일꾼은 원만함을 기둥으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는 솔로몬 성전의 기둥에서 원만한 일꾼의 두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두 기둥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둥글다는 것입니다. 두 개라는 것은 기둥같은 일꾼은 연합할 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공동체에 들어가서 조화를 이룰수가 있어아 한다는 말입니다. 독불 장군처럼 살아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은 70문도를 전도하러 내보내실 때 두 사람씩 보내셨습니다. 성경은 구약과 신약 두권입니다. 구약은 율법서와 선지서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데리고 갈 때 부활의 이삭을 보기 위하여 두증인이 같이 갔습니다. 예수님의 무덤 속에서 두 천사가 주님의 부활을 증거하였습니다. 광야에서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둥글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원만한 성격을 가져야 합니다. 모세는 40세에는 마음에 안드는 사람을 죽일 수있는 정도까지 정확하고 불의를 보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80세에 성령님을 받고 나서는 모든 것을 참으며 이기며 이해할 수 있는 원만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베드로도 그랬고 바울도 그랬습니다. 바울은 칼로 두부를 자르듯이 정확하게 살았습니다. 스데반을 불의한 사람인 줄 알고 돌로 쳐 죽이는 데 동참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난 다음에는 모두에게 관용을 베풀 줄 아는 원만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연합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성격이 둥글둥글하여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기둥같은 일꾼이 될 수가 있습니다. 소크라테스에게 이런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그가 여기저기 다니면서 진리를 전하고 있었을 때 한 괴한에게 폭행을 당했습니다. 동행한 제자들이 그를 잡아서 복수하려고 하였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잡아 온 괴한을 풀어 주면서 제자에게 말했습니다. “당나귀에 채였다고 당나귀에게 복수할 수는 없지 않은가” 얼마나 크게 생각하고 원만한 생각입니까 하나님의 일꾼은 둥근 기둥과 같아야 합니다. 교회에는 여러 형태의 교인이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농담으로 뿌려지는 교인이 있다고 합니다. 일생에 세 번 교회에 나오는 교인입니다. 어린시절 유아세레를 받으러 나오면 물이 뿌려 집니다. 결혼식 때는 꽃가루가 뿌려 집니다. 죽을 때는 흙이 뿌려 집니다. 이를 ‘네바퀴 교인’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네바퀴가 달린 유모차를 타고 한 번 교회에 옵니다. 네바퀴달린 승용차로 결혼식을 하러 옵니다. 그리고 네바퀴 달린 영구차를 교회에 옵니다. 헤일 교수는 교인들을 이렇게 분류 하였습니다.
1). 부동 교인으로서 성전 뜰만 밟고 다니며 한 번도 헌신다운 헌신을 해 보지 못한 교인입니다.
2). 반기구적인 교인으로서 교회의 제도나 조직이나 기구에 불만과 불평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배만 참석하지 어떤 기관에서든지 소속하여 일하지 않습니다.
3). 쾌락주의 교인으로서 자기 구미에 맞는 프로그램에는 참여하지만 자기에게 맞지않다 생각되면 참여하지 않습니다.
4). 자폐증 교인으로서 먼저 믿는 교인들이 자기를 따돌린다고 여기거나 돈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무시한다고 늘 생각하고 사는 교인입니다.
5). 방랑 교인으로서 이 교회 저 교회를 순례자처럼 방랑하는 교인입니다.
6). 세리 교인으로서 교회에는 바리새인같은 위선자들로 가득차 있다고 생각하며 자기만 의롭다고 여기는 교인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 위에 우뚝 솟아 있는 교인이 바로 보아스와 야긴 같은 기둥같은 교인 입니다. 기둥같은 교인은 이런 것들을 기둥 삼아 일하고 있습니다.
1. 기둥같은 일꾼은 믿음을 기둥으로 삼고 살아 갑니다.
2. 기둥같은 일꾼은 영혼 구원을 기둥으로 삼고 살아 갑니다.
3. 기둥같은 일꾼은 향기를 기둥으로 삼고 살아 갑니다.
4. 기둥같은 일꾼은 원만함을 기둥으로 삼고 살아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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