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드온의 300 용사들 (삿7:1-8)
본문
어느덧 6월의 첫 주일이다. 6월은 나라를 위해 몸 바쳐 충성하신 분들의 희생정신을 기리며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는 달이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기드온의 300 용사들이 미디안을 중심으로 한 아말렉과 동방 사람의 연합군의 손에서 사랑하는 조국 이스라엘을 건져내는 놀라운 역사를 통해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다짐해 보자.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인간의 욕심이나 힘 자랑만도 아니다. 근본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담겨져 있다.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과 미디안의 전쟁도 범죄한 이스라엘을 징벌하시기 위해 이스라엘을 7년간 미디안의 손에 붙이셨다가(삿6:1) 회개하고 부르짖는 이스라엘의 기도를 들으시고 미디안을 물리치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 6.25의 동족상잔(同族相殘)의 비극도 우리 성도의 입장에서 보면 해방된 조국의 교회들이 하나 되지 못하고 서로를 비방하며 싸우고 분열한 우리 교회를 징벌하시는 하나님의 채찍이었다. 미디안에 짓밟혀 7년간이나 산으로 쫓겨다니며 동굴을 파고 산성을 만들어도 평화는 오지 않고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깊은 좌절에 빠져 있을 때(삿6:13) 기드온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계시를 받고(삿6:14, 36-40) 확신을 갖고 조국과 민족을 위해 일어섰다. 300명의 용사를 이끌고 미디안 연합군을 향해 달려갔다.
기드온의 300 용사들은
1.최종 선택받은 사람들이다.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삿6:14)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기드온은 므낫세, 아셀, 스불론, 납달리 지파에 사자들을 보내어 모병했다.
1 1차 32,000명 실의와 좌절에 빠져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통탄만 할 뿐 회개하고 하나님께 찾아나오지 못하던 이스라엘 백성이었으나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확신을 가진 한 사람 기드온의 외침으로 32,000명이 모였다. 한 사람이 중요하다. 확신을 가진 한 사람이 중요하다. 하나님을 위해 몸 바쳐 헌신하고자 하는 한 사람이 중요하다. 인류 역사를 살펴보라 하나님은 한 시대의 변천을 위해 여러 사람이 아닌 한 사람에게 역사의 수레바퀴를 맡기고 계심을 알 수 있다.
2 2차 10,000명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32,000명은 너무 많다고 하셨다. 적군은 수적으로 메뚜기떼 같이 많은데(삿6:5), 동방 사람의 군대만 하드라도 135,000명인데(삿8:10), 수적으로 비교도 되지 않는 32,000명인데도 하나님은 많다고 했다. 그냥 많은 것이 아니라 너무 많다고 했다. 승리하게 되면 하나님을 거스려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염려스럽다고 하셨다(본문2절) 우리 성도는 여기서 참으로 보잘 것 없는 가지고 자기 자랑하기 좋아하는 이들의 모습을 눈여겨 보아야 한다. 하나님이 염려해 주시는 사랑 베풀지 않으시면 교만에 빠지고 마는 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은 우리 자신을 다시 한번 깊이 성찰해 보아야 한다.
3 3차 300명 하나님의 선택받은 최종 인원은 300명이다. 전쟁은 사람끼리 하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뜻 안에 있고, 사람끼리의 전쟁이니 사람에 의해 승리와 패배가 결정될 것 같지만 승패는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두려움에 떠는 자” 곧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승리한다는 확신이 없는 자 22,000명은 먼저 돌아갔다.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 곧 자신이 누구이며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잊어버린 자 다시 말하면 군사로서 임전태세를 항상 갖추어야 하는 사명의식을 잊어버린 자 9,700명도 선택받지 못했다. 승리의 확신을 가지고 임전태세의 사명의식이 깨어 있는 자가 최종 선택의 관문을 통과했다. 불신의 무리들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놀라운 은혜의 자리에 함께할 수 없다. 내어 쫓김을 당한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달리다굼의 그 놀라운 은혜의 현장에 누가 함께 하였는가 예수를 조롱하고 비웃던 무리들은 내어쫓기지 아니하였던가….
2.사람 보기에는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다. 삼상 16:7절에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했다. 하나님 보시기에는 세상을 놀라게 할 사람이요, 온 세상을 소란케 할 사람이요(행17:6), 세상을 변화시킬 사람들이었지만 사람 보기에는 미약하기 짝이 없고 보잘 것 없는 존재였다.
1기드온의 출신 자체 기드온은 자신을 가리켜 므낫세 지파요, 그 중에서도 극히 미약한 내 아버지(요아스) 집이요, 내 아버지 집에서도 제일 작은 자라고 했다(삿6:15)
2수적으로 미디안을 중심한 연합군의 수는 메뚜기의 중다함같다고 했다(삿7:12) 동방 사람의 군대만도 135,000명이다(삿8:10) 기드온의 300 용사들은 거기에 비하면 너무도 적다. 참으로 보잘 것 없는 존재이다.
3피곤에 지친 모습 하롯 샘 곁에서의 전투에서 패배한 연합군은 도망하였고 기드온의 300 용사들을 도와 승리의 기쁨을 함께 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같이 추격할 생각은 없고 오히려 에브라임 사람들은 “네가 미디안과 싸우러 갈 때에 우리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우리를 이같이 대접함은 어찜이뇨” 하고 공적을 다투기에 급급하였다(삿8:1) 그러나 기드온의 300 용사들은 쉴 사이 없이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추격을 계속하였다. 숙곳에 이르러 방백들에게 음식을 청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브누엘에서도 역시 거절당하였다. 숙곳 사람과 브누엘 사람의 눈에는 어리석은 자의 넋나간 행동으로 보였다. 미디안의 두 왕 세바와 살문나가 누구인데 네 손에 잡히겠느냐며 비웃고 조롱할 뿐이다.
3.하나님의 뜻을 이룬 사람들이다. 본문 7절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물을 핥아 먹은 삼백 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며 미디안 사람을 네 손에 붙이리니 남은 백성은 각각 그 처소로 돌아갈 것이니라”고 했다. 사람들 보기에는 미약하고 보잘 것 없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확신하는 기드온의 300 용사들은 하나님의 쓰임 받는 자가 되었다. 미디안의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잡아 처형함으로 최후 승리의 개가를 불렀다. 숙곳 사람과 브누엘 사람을 징벌함으로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알리었다. 전쟁은 하나님의 손에 있고, 승패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을 보여 주었다. 전쟁의 승패는 군사의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헌신하는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 기드온의 300 용사들과 같이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확신하고 투철한 사명의식을 가지고 사는 자라야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다. 숫자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다. 비록 보잘 것 없어도, 남들의 웃음거리가 되어도,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 속에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간다면 그는 인류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어 놓을 수 있는 위대한 힘을 지닌 사람이 될 것이다. 우리 성도의 가슴 속에 전능의 하나님이 살아 계시느냐가 문제이다.
기드온의 300 용사들은
1.최종 선택받은 사람들이다.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삿6:14)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기드온은 므낫세, 아셀, 스불론, 납달리 지파에 사자들을 보내어 모병했다.
1 1차 32,000명 실의와 좌절에 빠져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통탄만 할 뿐 회개하고 하나님께 찾아나오지 못하던 이스라엘 백성이었으나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확신을 가진 한 사람 기드온의 외침으로 32,000명이 모였다. 한 사람이 중요하다. 확신을 가진 한 사람이 중요하다. 하나님을 위해 몸 바쳐 헌신하고자 하는 한 사람이 중요하다. 인류 역사를 살펴보라 하나님은 한 시대의 변천을 위해 여러 사람이 아닌 한 사람에게 역사의 수레바퀴를 맡기고 계심을 알 수 있다.
2 2차 10,000명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32,000명은 너무 많다고 하셨다. 적군은 수적으로 메뚜기떼 같이 많은데(삿6:5), 동방 사람의 군대만 하드라도 135,000명인데(삿8:10), 수적으로 비교도 되지 않는 32,000명인데도 하나님은 많다고 했다. 그냥 많은 것이 아니라 너무 많다고 했다. 승리하게 되면 하나님을 거스려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염려스럽다고 하셨다(본문2절) 우리 성도는 여기서 참으로 보잘 것 없는 가지고 자기 자랑하기 좋아하는 이들의 모습을 눈여겨 보아야 한다. 하나님이 염려해 주시는 사랑 베풀지 않으시면 교만에 빠지고 마는 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은 우리 자신을 다시 한번 깊이 성찰해 보아야 한다.
3 3차 300명 하나님의 선택받은 최종 인원은 300명이다. 전쟁은 사람끼리 하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뜻 안에 있고, 사람끼리의 전쟁이니 사람에 의해 승리와 패배가 결정될 것 같지만 승패는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두려움에 떠는 자” 곧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승리한다는 확신이 없는 자 22,000명은 먼저 돌아갔다.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 곧 자신이 누구이며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잊어버린 자 다시 말하면 군사로서 임전태세를 항상 갖추어야 하는 사명의식을 잊어버린 자 9,700명도 선택받지 못했다. 승리의 확신을 가지고 임전태세의 사명의식이 깨어 있는 자가 최종 선택의 관문을 통과했다. 불신의 무리들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놀라운 은혜의 자리에 함께할 수 없다. 내어 쫓김을 당한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달리다굼의 그 놀라운 은혜의 현장에 누가 함께 하였는가 예수를 조롱하고 비웃던 무리들은 내어쫓기지 아니하였던가….
2.사람 보기에는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다. 삼상 16:7절에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했다. 하나님 보시기에는 세상을 놀라게 할 사람이요, 온 세상을 소란케 할 사람이요(행17:6), 세상을 변화시킬 사람들이었지만 사람 보기에는 미약하기 짝이 없고 보잘 것 없는 존재였다.
1기드온의 출신 자체 기드온은 자신을 가리켜 므낫세 지파요, 그 중에서도 극히 미약한 내 아버지(요아스) 집이요, 내 아버지 집에서도 제일 작은 자라고 했다(삿6:15)
2수적으로 미디안을 중심한 연합군의 수는 메뚜기의 중다함같다고 했다(삿7:12) 동방 사람의 군대만도 135,000명이다(삿8:10) 기드온의 300 용사들은 거기에 비하면 너무도 적다. 참으로 보잘 것 없는 존재이다.
3피곤에 지친 모습 하롯 샘 곁에서의 전투에서 패배한 연합군은 도망하였고 기드온의 300 용사들을 도와 승리의 기쁨을 함께 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같이 추격할 생각은 없고 오히려 에브라임 사람들은 “네가 미디안과 싸우러 갈 때에 우리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우리를 이같이 대접함은 어찜이뇨” 하고 공적을 다투기에 급급하였다(삿8:1) 그러나 기드온의 300 용사들은 쉴 사이 없이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추격을 계속하였다. 숙곳에 이르러 방백들에게 음식을 청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브누엘에서도 역시 거절당하였다. 숙곳 사람과 브누엘 사람의 눈에는 어리석은 자의 넋나간 행동으로 보였다. 미디안의 두 왕 세바와 살문나가 누구인데 네 손에 잡히겠느냐며 비웃고 조롱할 뿐이다.
3.하나님의 뜻을 이룬 사람들이다. 본문 7절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물을 핥아 먹은 삼백 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며 미디안 사람을 네 손에 붙이리니 남은 백성은 각각 그 처소로 돌아갈 것이니라”고 했다. 사람들 보기에는 미약하고 보잘 것 없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확신하는 기드온의 300 용사들은 하나님의 쓰임 받는 자가 되었다. 미디안의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잡아 처형함으로 최후 승리의 개가를 불렀다. 숙곳 사람과 브누엘 사람을 징벌함으로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알리었다. 전쟁은 하나님의 손에 있고, 승패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을 보여 주었다. 전쟁의 승패는 군사의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헌신하는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 기드온의 300 용사들과 같이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확신하고 투철한 사명의식을 가지고 사는 자라야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다. 숫자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다. 비록 보잘 것 없어도, 남들의 웃음거리가 되어도,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 속에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간다면 그는 인류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어 놓을 수 있는 위대한 힘을 지닌 사람이 될 것이다. 우리 성도의 가슴 속에 전능의 하나님이 살아 계시느냐가 문제이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