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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드온의 삼백명 (삿7:1-8)

본문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였던 피타고라스는 앞으로 다가올 시대의 가장 강력한 신은 숫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군사력도 경제력도 다수의 대결이 될 것임을 예언한 말입니다. 간단히 말해 수를 많이 가진 자가 다가오는 역사의 승자가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그의 예언이 오늘에 꼭 맞는 것 같습니다. 며칠 전 우리나라 국회도 보니까 의장을 뽑는데도 그 어떤 인물이 나은가를 판단하는 것 보다는 어느 당에 속하였는가가 중요하고, 그 당의 의원수가 얼마나 되는가가 아주 중요합니다. 역시 세상은 수가 많으면 힘이 있습니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이라고 다 같습니까 명목상 한 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이지만, 약한 나라의 대통령은 강대국의 장관 정도의 위치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피타고라스의 예언에 비추어 보면, 본문에 나타난 여호와 하나님은 대단히 수에 대해서는 무지하고 비상식적인 신임에 틀림없습니다. 300명의 군대보다 만 명의 군대가 훨씬 더 전투하기에 유리하고,만 명의 군대보다는 삼만 이천 명의 군대가 더 우세하다는 것은 갓난아이도 알 수 있는 상식에 속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굳이 많은 숫자가 모일 수 있음에도 이스라엘이 미디안과 싸우는 병력을 고작 삼백 명으로 일부러 추려 내셨습니다. 미디안이라는 적과 대결하여 조국을 구하기 위해서 기드온이 일어섰습니다. 일종의 의병을 일으킨 셈입니다. 이때 기드온을 좇아 조국을 구하겠다고 자원하고 나선 백성의 숫자가 무려 삼만 이천 명이나 되었습니다.이 많은 백성을 보고 이제 무언가를 할 수 있겠다는 포부와 자신감에 차 있던 기드온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좇은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붙이지 아니하리니(2절). 하나님은 사람들이 너무 많으니 돌려보내라고 하십니다. 미디안 군대는 이스라엘을 위협하면서 메뚜기떼처럼 밀려왔습니다.(12절) 이 많은 적들과 대항하는 데 삼만 이천 명은 그렇게 많은 숫자가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너무 많다고 말씀하십니다. 결국 두려워서 떠는 자 이만 이천 명을 돌려보내고 만 명이 남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이십니다. 4절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또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 그들을 인도하여 물가로 내려가라 거기서 내가 너를 위하여 그들을 시험 하리라 무릇 내가 누구를 가리켜 이르기를 이가 너와 함께 가리라 하면 그는 너와 함께 갈 것이요 내가 누구를 가리켜 이르기를 이는 너와 함께 가지 말 것이니라 하면 그는 가지 말 것이니라 하신지라. 아직도 많다고 하시면서 줄여라고 하셨습니다. 결국 삼백 명이 뽑혔습니다. 하나님이 삼백 명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7절). 이스라엘의 병력은 삼만 이천 명이 아니고, 만 명도 아니고,고작 삼백 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삼백 명을 통해서 역사하시겠다고 하는 이유는 도대체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아무래도 군대의 수가 많아야 전쟁을 수행하기가 수월하고 다양한 전술을 펼칠 수 있고 결국 승리할 것이라 여겨지는데, 왜 하나님은 굳이 적은 인원을 고집하십니까 본문에서 주는 교훈을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기드온을 자긍하지 않게 하려 하심
2절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좇은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붙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기드온이 사람을 모으자 삼만 이천 명이나 되는 장정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이자 기드온의 어깨가 으쓱해졌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전쟁에 승리한다면 기드온은 자신의 실력을 과대 평가하고 백성들도 승리감에 도취되어 하나님을 망각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실을 예측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오만하고 교만해질 가능성을 보셨습니다.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다고 해서 하나님을 망각한다면,이는 이스라엘이 또다시 망하는 길임을 직시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죄는 교만입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이스라엘로 자긍하지 않게 하려 한다 해도, 삼백명은 너무 적은 인원입니다. 메뚜기떼처럼 많은 미디안 군대와 싸워서 이길 승산이 없는 숫자입니다.요즘 같이 최첨단 무기가 있다면 몰라도 그 당시는 오로지 육탄전인데 어찌 감히 미디안 사람들과 맞붙어 전쟁을 일으킬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것을 예상할 수도 확신할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삼백 명의 병력으로 전쟁터에 나가는 심경이 어떠했을지 상상해 보십시오. 미디안의 대군 앞에 선 기드온의 참담한 심경을 짐작할 수 있습니까 어느 누가 보아도 승산이 없는 전쟁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먼저 스스로 할 수 없는 줄 알고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또 결과가 승리로 이끄실 것인데, 승리의 결과가 나타났을 때에 하나님께만 영광돌리고 하나님만을 자랑할 것을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부르신 것도 그렇습니다. 우리들에게 그 어떤 것들이 있다면 우리들이 자고할 것이고, 우리들이 하나님께 감사함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아무 것도 없음에도 우리를 무조건 구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제자신의 능력이나 인간 자기 편을 의지할 수 없는 기드온으로서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전쟁에서 패배할 것이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하나님은 이 겸손을 기드온에게 요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똑같은 이유 때문에 우리의 삶을 난관에 처하게 하십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연약함을 간직한 채로 인생을 살게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고, 그리스도인인데 왜 우리 삶에 바울의 육체에 가시(고후 12:7)와도 같은 아픔을 주십니까 우리는 개인에 따라 가정 문제,직장 문제,성격 문제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남편 때문에,어떤 사람은 아내 때문에,자녀 때문에,도무지 해결되지 않는 고민거리를 안고 있습니다.이 중에 어떤 것은 기도해도 해결이 안되는 것도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바울이 발견한 답이 있습니다.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고후 12:7,9). 바울은 그 당시에 전세계를 뒤흔들던 사람입니다.복음을 들고 다니며 로마 세계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만약 바울에게 육체에 가시가 없었다면 스스로를 하나님 자리에 놓았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교만해질 위험성을 보셨습니다.그를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고 그의 몸에 가시를 주셨습니다.육체에 가시가 그를 하나님만 더 의지하게 만들었습니다. 바울에게 더 큰 축복을 내렸습니다. 아무 고통 없이 편안한 삶 가운데서 교만하게 살다가 하나님과 멀어지는 삶을 사는 사람들은 그 편안함이 오히려 그의 영혼에 해가 됩니다.더욱 위대한 축복,더욱 놀라운 은혜를 내리기 위해서 육체에 가시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으십시오. 삼만 이천 명의 군대를 거느리고 당당한 승리를 거두는 것보다 삼백 명의 군대가 하나님께 도움을 간구하는 겸손이 더욱 필요한 이유가 납득이 갔을 줄 압니다. 하나님 자리에 자신을 두고 싶어하는 자아 망상은 가장 위험 천만한 유혹입니다. 주께서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사람마다 이런 유혹이 있습니다.그래서 주께서 때때로 우리가 교만하여 하나님과 원수가 되기보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도록 연약한 부분을 남겨 두십니다.하나님의 자녀로 지내도록 우리에게 육체에 가시같은 것을 주십니다.저는 여러 가지 병을 가졌습니다. 병이 있는 그 자체가 자랑은 아닙니다만 하나님의 은혜인줄 압니다. 아무 것도 없는 자이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연약을 주지 않았으면 하나님만을 의지 하겠습니까 지금도 몇 가지 병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스위치만 잡고 있고 그 병으로 크게 곤란을 당하지는 않게 하십니다. 햇빛 알레르기는 그 병 자체보다는 활동을 제한시키고 또 이전 보다 지금은 목회자로서 체면이 말이 아닐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몇번이고 바울을 본받아 이 병을 고쳐달라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응답은 없습니다. 다만 깨달음을 주시기를 네게 이런 병이 없었으면 얼마나 죄를 더 많이 지었겠느냐 네 활동을 제한 했지만, 그로 인해서 죄 짓는 자유를 제한 한 것이 되었다는 깨달음을 주셔서 감사를 드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 하는데 그렇게 지장되도록 하시지 않고 오히려 목회에 겸손하며 낮아지는데에는 도움이 많이 됩니다. 우리가 가진 많은 달란트,많은 재산을 가지고 교만하기보다는 모자란 듯하게 살면서 겸손히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의 도구가 되는 것이 복된 일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괜찮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고는 곧 교만해서 버림을 받는 일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이런 까닭으로 주께서 기드온에게 300명의 군대로 만족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자긍하지 않게 하려는 주님의 은혜로운 계획입니다. 오늘 어떤 교회들이 통계를 보고는 교인들의 수가 많고 헌금액수가 많으면 흐믓해하고 자기 교회는 아주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많은 숫자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그것 자체가 하나님의 축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확신을 주심
기드온이 삼백 명의 군대를 거느리고 메뚜기떼같이 무수한 미디안에 감히 도전할 수 있었던 비밀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두 손 들고 포기할 수도 있는데,기드온은 하나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그 비밀은 기드온이 어떤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드온이 부하 부라를 데리고 정찰을 나갔습니다(11절).그때 적군 두 명이 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한 미디안 군사의 꿈 내용인즉,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으로 굴러 들어와서 한 장막을 쳐서 무너뜨렸다는 것입니다.이 꿈을 해석하는 동료 병사의 말을 들어 보십시오. 그 동무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날이라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군대를 그의 손에 붙이셨느니라 하더라(14절). 하나님이 기드온과 함께하시기 때문에 자신들이 패배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적군의 입에서 이런 말을 들었을 때 기드온과 이스라엘의 사기는 아마도 하늘을 찌를 듯했을 것입니다. 15절 말씀을 보십시오. 기드온이 그 꿈과 해몽하는 말을 듣고 경배하고 이스라엘 진 중에 돌아와서 이르되 일어나라 여호와께서 미디안 군대를 너희 손에 붙이셨느니라. 이스라엘은 비록 삼백 명이라는 적은 숫자였지만 승리를 확신하며 전쟁터에 나갔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며 승리하게 해 주실 것을 믿고 힘차게 행군하였습니다. 주님이 함께하신다는 약속을 믿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어떤 역경도 두려워하지 않고 진군할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여호와께서 승리를 보장하시므로 기드온은 삼백 명의 군대를 이끌고도 전쟁에 임할 수 있었습니다. 나의 약함을 고백하고 주께 전적으로 의지할 때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에게 적은 숫자로도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셨습니다. 신앙의 진정한 출발은 하나님을 바로 아는데서 부터입니다. 나 자신이 주님 앞에 얼마나 부족하고 연약한 존재인지를 깨닫는 이것을 겸손이라고 하는데 이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인식함에서 비롯됩니다.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 앞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 자기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벌레 같은 죄인인가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제 신앙의 첫 발을 들여 놓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 단계는 이제 나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믿음을 고백하는 일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나를 창조하고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만을 신뢰해야 합니다. 자기를 부정(否定)하는 고백은 하나님을 인정하는 고백으로 이어져야 합니다.이것을 겸손이라고 합니다. 주님 저는 죽을 죄인입니다에서만 끝나버리면 이 고백은 자칫 우리를 자기 비하의 자리로 이끌 수 있습니다.참된 신앙은 하나님 저는 못나고 부족하고 연약한 것 투성입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라는 단순한 자기 비하가 아닙니다. 이제 아무 것도 할 수 없던 내가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나는 자기 부인이어야합니다.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자리에 섰을 때 무서운 전쟁은 없습니다. 우리 삶에 어떤 폭풍우가 닥쳐와도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역경을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당신은 자기 비하를 뛰어넘어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자리에 서있습니까
준비된 사람을 쓰려 하심
하나님이 기드온에게 삼백 명만 데리고 전쟁에 나가게 하신 세 번째 이유는 준비된 사람만 쓰시기 위함입니다. 본문을 잘못 이해하면 하나님은 무조건 많은 사람을 싫어하시고 소수 정예를 좋아하시는 분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본문을 잘못 읽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숫자가 많고 적음에 있지 않습니다 만약 3만 2천 명의 군대를 지휘하면서도 기드온이 여전히 겸손하였다면 문제는 달랐을 것입니다. 병사들의 수가 많아서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내가 전략을 잘 짜서 이길 수 있는 것도 아니다.주님이 아니면 안 된다라고 하나님을 의뢰하고 주님을 신뢰했다면 하나님은 3만 2천 명 그 이상을 주셨을 것입니다.기드온이 군사의 숫자 때문에 자만하고 교만해질 수 있었기 때문에 삼백 명만 데리고 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문제는 숫자의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신뢰하는 것이 무엇이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똑똑하다고 하나님이 쓰시는 것이 아닙니다.그렇다고 우리가 미련하기 때문에 우리를 쓰시는 것 또한 아닙니다. 하나님은 부자는 싫어하시고 가난한 사람만을 좋아하십니까 하나님은 유식한 자를 싫어하시고 무식하고 못난자를 들어서 쓰시는 괴팍한 하나님으로 보면 안됩니다. 중요한 것은 신뢰입니다. 당신은 무엇을 신뢰합니까 참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사십니까 아니면 내게 있는 지능을 의지하고 계십니까 내게있는 돈을 의지하면서 사십니까 당신이 부자든지 가난하든지 유식하든지 무식하든지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신뢰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남기신 삼백 명은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준비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일련의 시험을 통해서 기드온이 데리고 나갈 삼백 명을 조심스럽게 선택하십니다. 일단 삼만 이천 명 중에서 두려워 떠는 자 이만 이천 명이 돌아가고 일만 명이 남았습니다. 5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에 백성을 인도하여 물가에 내려가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무릇 개의 핥는 것 같이 그 혀로 물을 핥는 자는 너는 따로 세우고 또 무릇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도 그같이 하라 하시더니. 이 말씀은 하나님이 쓰심에 제외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도 교회에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있습니다. 그들이 다 말은 하나님께 쓰임을 받기를 원하다고 하며 교인의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주와 복음을 위해 희생할 것도 두려워하지 않은 제자된 사람, 군사된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의미한 다수보다는 헌신된 소수를 찾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헌신된 소수를 키우기 위해서 다수가 중요하지 그것이 되지 않는다면 참으로 교회에 수가 많은 것은 무의미합니다. 그 숫자로는 전쟁을 치를 수 없습니다. 감리교 창설자 죤 웨슬리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300명을 달라 내가 세상을 변화 시키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들은 6절 말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의 수는 삼백 명이요 그 외의 백성은 다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지라. 손으로 물을 떠서 먹는 것은 경계 태세를 풀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이 자세는 언제 어떤 위험이 닥치더라도 즉시 대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시는 사람은 경계 태세를 풀고 있는 사람입니다. 아직 전쟁이 시작되지 않았지만 준비되어 있던 사람들이 하나님께 쓰임받았습니다.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그들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그 많은 숫자는 의미가 없습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조심스럽게 준비된 사람을 가려냈습니다. 물을 마시는 일만 명 가운데 삼백 명만 선발했습니다. 물을 마시게 하는 것은 시험이었습니다.
그런데 물을 마시고 있던 백성들은 자신들이 시험받는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그들이 물을 마시며 시험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얼마나 정신 차리고 물을 마셨겠습니까 아직 전쟁이 터지지 않았다고 해서 나태한 자세를 취한다면,주님께 쓰임받지 못합니다. 비상 사태는 아니지만 평범한 삶 가운데서도 늘 주님 앞에 준비된 모습으로 살아가야 합니다.장차 주께서 큰 일을 맡기실 때 그 일을 감당할 만한 성실성을 가지고 오늘을 살아가야 합니다.가정에서,직장에서,학교생활에서 하나님께서 당신을 시험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시험을 인식하지 못하지만 말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준비 태세를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다고 생각할 때 작은 행동까지 달라집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은밀한 가운데서 당신을 지켜보고 계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이 순간에도 우리를 관찰하십니다. 우리가 성실한 모습으로 생활하고 있는지,하나님 말씀대로 그리스도인답게 살고 있는지 세밀히 보고 듣고 계십니다.
당신의 삶에 달라질 부분은 없습니까 위대한 개혁자 존 칼빈의 삶의 지표는 라틴어로 Coram Deo였습니다. 이는 하나님 앞에서라는 뜻입니다.칼빈은 이 말을 일생 좌우명으로 삼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인생을 산다고 생각할 때 칼빈은 함부로 말하고 행동할 수 없었습니다.언제나 주님 앞에서 경건하게 살았습니다.우리 역시 칼빈처럼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행동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일상 생활 가운데서 우리를 시험하십니다. 아주 작은 부분까지 성실하게 감당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우리를 멋지게 사용하실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얼마나 주님 앞에 성실한 모습으로 서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의미 없는 삼만 이천 명보다 준비된 삼백 명을 원하시는 뜻을 헤아려 보십시오. 교인들의 수가 날로 더해 가는 것은 구원받은 영혼이 늘어 가는 것이므로 기쁜 일입니다.그러나 숫자만 많은 것이 좋은 일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훈련된 일꾼이 얼마나 되느냐입니다. 무의미한 다수, 삼만 이천 명의 교인들이 교회에 나오는 것보다 우리 안에 복음을 위해서 헌신하고,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드러내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 삼백 명이 필요합니다.이 시대를 책임지고 그리스도를 믿는 자답게 살아가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요구됩니다. 그리스도의 참된제자,하나님 외에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 전하는 일에 생명을 내놓는 삼백 명의 그리스도의 진정한 제자가 이 시대에 필요한 기드온의 군사입니다. 당신도 이 대열에 들기를 원합니까 당신의 모습 그대로,가지고 있는 재능을 다 발휘해서 하나님 앞에서 성실히 생활하십시오 주께서 우리의 뛰어난 능력이나 재력을 원치 않으십니다. 우리 몸을 헌신하며 구체적인 이웃에게 관심을 갖고,말씀을 통해서 그들을 섬기고 사역하기 바라십니다. 여러분들이 이제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귀한 성도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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