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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의 결혼관 3 (고전7:25-40)

본문

결혼에 대하여 어느 날 황제가 랍비 가말리엘에게 "당신네들의 여호와 하나님은 도둑이다. 그는 왜 아담을 잠들게 해놓고 갈비뼈를 훔쳐 갔는가" 라고 말했습니다. 황제의 딸이 말을 가로막고 나서서 랍비 가말리엘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아버지의 물음에 대신 답하겠어요." 그러고는 그녀는 황제에게 몸을 돌리면서 "재판관을 불러 주세요!" 라고 말했습니다. "무엇 때문에 재판관이 필요하니" 라고 황제가 놀라서 물었습니다. "간밤에 제 집에 도둑이 들었어요.
그런데 도둑은 은으로 만든 주전 자를 훔쳐 가고는 금으로 만든 주전자를 남겨놓고 갔어요." 라고 공주는 말했습니다. "그런 도둑은 매일 밤 나타나면 좋겠구나!" 라고 황제는 웃으며 말했 습니다. "아담은 그런 행운을 얻지 않았나요 하나님은 그에게서 갈비뼈 하 나를 취한 대신 성실한 아내를 주셨지요.내 생각으로는 하나님이 아담을 잠들게 만든 것이 잘못이란다. 하나님이 갈비뼈를 취하려고 한다면 은밀하게 그 일을 하지 말았어야 했 지"라고 황제가 말했습니다. "아버지, 고기 한 덩어리를 가져오도록 하세요." 황제는 이 말에 놀라기는 했지만 그녀가 말한대로 고기를 가져오게 했습니다. 공주는 날고기를 가지고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뜨거운 재 속 에 집어넣고 구었습니다. 고기 요리가 끝났을 때 그녀는 아버지에게 "여기 있어요, 아버지, 이 고기를 드세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황제는 역겨워하면서 먹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는 처음에 날고기를 보았다가 이제 재를 뒤집어 쓴 모양을 본 것입니다. "구역질이 나는구나!" 라고 그는 소리쳤습니다. "거 보세요"라고 공주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만약 아담이 눈을 뜬 채 하나님께서 자기 갈비뼈를 취하셔서 여자 를 만드는 것을 보았다면 그녀를 보기만 해도 역겨웠을 거예요." 먼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결혼은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축복인 것 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처녀에 대해서 주님께 직접 받은 계명과 계시는 없었지 만 그도 역시 하나님의 영, 즉 성령님을 받은 자로서 처녀의 결혼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는 분별할 수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고전7:40)
그러나 내 뜻에는 그냥 지내는 것이 더욱 복이 있으리로 다 나도 또한 하나님의 영을 받은 줄로 생각하노라.(고전2:15)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 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사도 바울은 성령님의 지시와 인도하심을 따라 판단할 때 환란이 임 박한 상황에서 처녀 총각이 결혼하게 되면 여러 고난과 어려움을 당하 게 될 것을 알고 그들을 아끼는 마음으로 그냥 지내는 것이 좋다고 권 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 "임박한 환란"은 그리스도 재림을 앞두고 이 세상에 임할 대환란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러한 환란은 전무 후무한 것으로서 이 때에는 특히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 으리라고 했습니다. "(눅21:23)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 리니 이는 땅에 큰 환난과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이로다." 그러나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 라"는 말씀은 문자 그대로 해석하기 보다는 세상 기쁨에 푹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화가 있으리라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는 바는 결혼 그 자체가 옳고 그르다는 논쟁이 아니라 성도들이 현재의 주어진 모든 환경과 시간, 능력을 어떻게 옳게 사용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결혼을 하든 안하든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는 것입니다. 독 신으로 지내든 결혼을 하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가정 일을 너무 염려한 나머지 그리스도인의 의무 를 태만히 하는 누를 범치 않도록 일깨워 주려는 데서 독신생활을 언 급한 것이지 결코 독신 생활을 장려하고 결혼 자체를 업신여긴 것이 아닙니다. 바쁜 세상 가운데서 분주히 살아가는 동안에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자칫 잊어버리기 쉽기 때문에 그를 깨우치기 위 해서입니다. "(고전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2. 독신에 대하여 결혼한 자들은 상대방에 대한 의무와 사랑 때문에 마음을 주님께 집 중하지 못하고 갈린 마음을 가지게 되지만, 결혼하지 않은 과부들과 처 녀들은 오직 주님께만 헌신하고 주님에 속한 일들만 염려하며 자신과 영을 거룩하게 할 수 있다고 보고 독신을 선호한 것입니다. 처녀라고 해서 결혼한 여자보다 더 윤리적으로 거룩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바울 이 강조하는 바는 오직 한 마음으로 주님께 헌신할 수 있음을 말하는 것 뿐입니다. 바울이 독신주의를 선호하는 이유는 다음 구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고전7:29)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하며 (고전7:30) 우는 자들은 울 지 않는 자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하며 (고전7:31)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같이 하라 이 세상의 형적은 지나감이니라." 결혼하는 것이 저급한 신앙이 아니라 종말론적 시각에서 볼 때 독신 주의가 더 종말론적 신앙관에 합당하다는 것입니다. 종말론적인 신앙관 이란 예수님이 오실 때가 다 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반드시 오신다는 것을 믿고 장차 그 앞에 설 것을 염두에 두고, 하나님 앞에 설 것(Coram Deo)을 염두에 두고 신앙생활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류 최초로 허락하신 것이 부부입니다. 아담 혼자 있는 것이 보시기에 좋지 않아 친히 이브를 만들어 짝지어 주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결혼을 무조건 안하고 혼자 살면 신앙적인 것이 아닙니다. 결혼을 하든 안하든 이 세상에서의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나 가치를 어디에 두고 사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결혼이든 독신이든 간 에 삶의 최고 목표를 하나님의 영광에 두고 사는 것이 종말론적인 신 앙관인 것입니다. 결혼이 인생 최고의 행복과 목표가 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고전7:33) 장가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꼬 하여 마음이 나누이며 (고전7:34) 시집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꼬 하느니라." 결혼은 그 자체가 인생 최고의 행복과 목표는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것으로 축복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에베소서 5장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엡5: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엡 5: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엡5:24)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 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엡5:25) 남편들 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남편은 그리스도의 상징이고 아내는 교회의 상징입니다.
그러므로 결 혼하지 않고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와 사랑, 그리스도의 구속함으로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된 교회, 즉 신자들의 만족과 감사와 순종 을 드러낼 방법이 없습니다. 결혼이라는 것이 남자에게나 여자에게 이 세상에서 최고의 행복과 최고의 어떤 보상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결혼의 최고의 축복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데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금욕주의와 독신주의는 다른 것입니다. 금욕주의는 사람이 자기 즐거 움을 목표로 삼거나 즐거움을 취하는 것 자체를 범죄 행위로 보는 것 이고 독신주의는 더 좋은 일을 위해서 즐거움을 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혼하는 것이 죄가 아니라는 말씀을 본장에서 거듭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금욕주의자가 아니라 독신주의자입니다. 그래서 장가를 갈 수 있으나 안가면 더 잘하는 것이고, 시집을 갈 수 있으나 안가면 더 잘하는 것이다(30절-34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전7:38) .처녀 딸을 시집보내는 자도 잘하거니와 시집보내지 아 니하는 자가 더 잘하는 것이니라." 자제와 금욕은 휼륭한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연적 인 본능이나 정열을 제거하는 일이 기독교인의 의무가 아니라 오히려 기독교인들은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 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종교를 부자연스런 것으로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수도 승, 은자(隱者), 수녀들의 잘못은 결국 그런 것에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 좀 더 신령해지기 위해서는 인간의 자연적인 감정을 버려야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부류들이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는 일상적인 남녀의 생활에서 자기를 분리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기독교는 결코 일상적이며 또한 정상적인 생활을 버리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하라고 말씀하 고 있습니다. 기독교를 고통을 주는 것으로 만들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육체, 하나님께서 육체 속에 넣어 주신 마음, 하나님의 창조에 의해 인간 속에 살게된 본능이 나 정열을 누구도 부끄러운 것으로 생각해서는 잘못된 것입니다. 기독교은 그것들을 어떻게 하면 제거할 수 있는가를 가르치지 않고, 정열을 순화하며 인간애를 이 세상에서 가장 숭고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가정은 우리가 신앙생활을 영위하는데 가장 좋은 기회를 제공해 주는 장소임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가정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힘의 원천인 휴식과 사랑을 제공해 주는 장소인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가정생활 상담가로 유명한 Y교수가 참 기가막힌 경험 을 했다고 합니다. 어느 교회에서 그가 한참 가정생활 세미나를 인도하 고 있는데 갑자기 서너 살 되어 보이는 사내 아이가 "아빠!" 하고 뛰어 들어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뒤에서 사회를 보시려고 앉아 계시던 목사님이 벌떡 일어나 내려가서 그 애를 안고 나갔습니다. 바로 그 목사님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이의 몰골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얼마나 울었는지 얼굴은 눈물자욱으로 꾀죄죄하고 속바지는 반쯤 흘러 내려온데다가 양말도 신지 않은 맨발이었습니다. 세미나를 끝내고 Y교수가 목사님에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사모님이 안계신가요." 목사님은 말이 없었습니다. 한참 있다가 그가 들려준 얘기는 적지 않 게 충격적이었습니다. 그 교회 사모님은 모신학원을 졸업한 신학석사입니다. 신앙이 뜨겁고 열정적입니다. 주님을 위해서 살고자 하는 적극적 인 태도 덕분으로 목사와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결혼을 하고 보니까 그가 추구하던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 정일을 팽개치고 기도원으로 올라갔습니다. 그곳에서 기도를 마치고 내 려와서는 날마다 성도들의 집을 찾아다니며 기도해 준다고 정신이 없 었습니다. 그리고 또 얼마 후에는 기도 중에 하나님이 선교사가 되라는 계시를 주셨다고 하면서 기도원으로 가버렸습니다. 첫 아이가 태어난지 일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막무간에 아이를 이모에게 맡기고는 기도원에 서 나오지를 않았습니다. 아이는 말할 수 없는 여건 속에서 제멋대로 자라는데도 어머니 되는 사람은 하나님을 일을 한답시고 돌아보지 않 았습니다. 불행하게도 우리 주변에는 이와 비슷한 일들이 적지 않습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신앙생활하지 아니하고 자기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상상외로 많습니다. 자기의 성격에 결함이 있다든지 아니면 가 정에 욕구불만이 있을 때 그것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교회를 이용하는 사람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집안 식구들 앞에서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구실을 내세우며 은혜스럽지 못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가정 일 을 책임있게 한다고 해서 교회 일을 못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이 교회 안에서만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가정을 통해서도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가정생활에 충실치 못 한 사람이 교회에서는 열심히 충성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정을 돌아 보지 아니하면서 교회 일에 동분서주하는 사람은 사도 바울의 말을 빌 린다면 오히려 믿지 아니하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가정이 우상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며, 또한 가정이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 차지해서도 절대 안될 것입니다. 결혼을 고려하고 있는 젊은 남녀들은 다음의 사항을 점검해보시기 바랍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사는 무엇인가둘째, 나는 믿은 사람과 결혼하는가셋째, 현재의 상황은 결혼해도 좋은 상황인가넷째, 이 결혼은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 가 다섯째, 결혼은 평생을 위한 새로운 결합이다. 나는 이에 대한 준비 가 되어 있는가 "(고전7:36) 누가 자기의 처녀 딸에 대한 일이 이치에 합당치 못한 줄로 생각할 때에 혼기도 지나고 그같이 할 필요가 있거든 마음대로 하라 이것은 죄 짓는 것이 아니니 혼인하게 하라." 여기 "혼기"란 처녀가 점점 나이가 들어간다는 단순한 뜻이지만, 케 네드 웨스트 박사는 "청춘이 꽃피는 시기가 지나간 처녀"라고 해석했 습니다. 혼기를 놓친 처녀들은 교회 안에서 "원하는 사람이 없는 축복 (unclaimed blessing)"이 되어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노처녀가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서둘러 결혼을 한 탓에 잘못된 결혼을 할 위험이 있 음을 알아야 합니다. "저주받은 결혼 생활을 하는 것보다는 혼자서 외 롭게 사는 것이 훨씬 낫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각 사람이 처한 상황은 저마다 다르므로 부모와 그 자녀들은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찾아야 합니다. 훌륭한 배우자를 선택하면 훌륭한 결혼생활도 훌륭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훌륭한 배우자의 선택을 위하여 미국의 닐클락 위렌 박사가 제시한 배우자 선택을 그르치게 하는 7가지 원인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결혼하겠다는 결정을 너무 성급하게 내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배우자에 대해 자세히 알아 볼 수 있도록 2년 이상 교제를 해보는 등 의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두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둘째, 너무 어린 나이에 결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통계에 의하면 23-24세 이전에 결혼한 부부가 그 이후에 결혼한 부부보다 두 배의 이 혼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셋째, 혹은 두 사람 다 너무나 결혼을 하고 싶어할 때는 삼가하라는 것입니다.
넷째,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배우자를 선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섯째, 자신과 너무나 차이가 나는 삶을 사는 사람과는 결혼하지 말 라는 것입니다. 여섯째, 비현실적인 기대감을 가지고 결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일곱째, 당신이 영원이 함께 살고 싶은 마음이 없는 그런 성격이나 습성을 가진 사람과는 결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믿음 없는 배우자감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상당수 처녀들 이 흔히 말하기를 <결혼해서 믿게 하면 되지요. 전도도 되고> 결혼해서 배우자를 믿게 하겠다는 사람은 구원이 하나님께 속한 것 을 부인하는 사람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지 인간의 노력으로 주어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만일 하나님이 택한 백성이 아니라면 천 날을 금식하고 철야기도해도 상대방이 변화가 안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정을 주신 것은 축복으로 주신 것이지 결코 선교 지로 주신 것이 아닙니다. 결혼해서 남편을 전도하겠다는 사람은 가정 을 선교지로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3. 과부의 재혼에 대하여 다음으로 과부의 재혼에 대한 문제(39-40절)입니다. 남편이 죽을 경우 과부들은 자유롭게 결혼할 수 있으나 "주 안에서만" 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남편을 여윈 과부가 재혼할 때는 오직 믿는 남자와만 해 야 한다는 말입니다. 재혼을 하든 안하든가는 결정은 본인이 자유로 결 정할 것이지만 믿는 자와만 하라는 것입니다. 재혼에 대해서는 다음 사 실에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1) 부부관계는 죽음으로써 끝이 나는 일시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맺은 부부관계는 하나님 나라에서도 영원히 지속되는 불변의 것입니다. "(계19:1) 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 은 것이 있어 가로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계19:7)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계 19:8)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 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그러므로 우리는 육신의 배우자를 얻은 것 이상으로 그리스도를 나 의 영적인 배우자로 얻은 것에 대하여 기뻐하며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2) 과부의 재혼은 기독교적 원리 즉 남녀 평등의 정신과 일치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자의 재혼을 허용하지 않고 미망인의 정조를 강요하 던 동양의 유교적 전통과는 달리 여자의 또 다른 선택과 삶까지도 존 중되어야 합니다.
3) 과부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재혼이냐, 홀로 지내느냐의 문제자체 가 아니라 그것이 주 안에서 이루어진 삶이냐 아니냐가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그 일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느냐의 여 하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께서 말씀하신 바입니다. "(마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결혼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창조세계의 질서에 순응하는 것입니다. 마 찬가지로 결혼 생활에도 하나님의 질서 가운데 영위되어질 때 가정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과 가정을 통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되는 것 입니다.
어느 날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1819-190
1, 강렬하고 소박, 정직한 성 격에 주도면밀한 정치력으로 다사다난한 국내외 문제를 절묘하게 해결 하고 제국의 번영을 실현하므로 국민의 커다란 존경을 받았다.)이 남편 인 앨버트와 사소한 일로 말다툼을 하였습니다. 앨버트는 흥분하였지만 상대가 아내라 하더라도 여왕인지라 흥분을 억누르고 자기 거실로 가 버렸습니다. 남편의 이런 모습을 본 빅토리아 여왕은 늘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는 남편을 자기가 너무 심하게 대한 것이 아닌가 하고 후회되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사과하려고 남편의 거실을 찾아갔습니다. 남편의 거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여왕은 조용히 문을 노크했습니다. "누구시오" 남편의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여왕입니다." 여왕은 부드러우면서도 위엄있는 어조로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아무 런 반응도 없었고 문도 열리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았나 해서 여왕은 다시 흥분하기 시작했습니다. "문 열어요!" 여왕이 날카롭게 명령조로 말했습니다. 방안에서 다시 되돌아온 말이 있었습니다. "누구요" 전과 다름없이 가라앉은 목소리였습니다. "영국 여왕입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자기의 위엄있는 말투로 인해 이번에는 문이 열리 리라고 생각했으나 역시 문은 열리지 않았고, 방안에서도 아무런 소리 가 나지 않았습니다. 여왕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생각 해 보니 영국 여왕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을 수도 있는 유일한 사람, 그 가 바로 자신의 남편이라고 생각하니 흥분이 차츰 가라앉았습니다. "열어 주세요저예요. 당신의 아내예요." 여왕이 다정하게 이렇게 말하자, 문은 스르르 열렸습니다. 기독교인의 결혼은 보편적인 하나님의 창조 질서이며 축복인 것입니다. 결혼한 사람은 가정의 질서를 지켜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여 가정의 축복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고, 결 혼하지 아니 한 사람들은 더욱 거룩한 생활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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