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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적 가치관 (눅18: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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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간에 유치부 여름 성경학교가 시작이 되었다. 오늘 오후에는 아동부가 시작이 되는데 우리 기도원에서 여름학교를 가진다. 본 교단 총회는 금년의 교육주제를 '그리스도와 문화'라고 정하였고 오늘의 신자들이 살며 활동하고 있는 우리 사회 속에서 어떻게 주님이신 그리스도로 부터 생활양식을 나타내야 하는지를 궁리하는 방향에서 금년 여름성경학교 주제를 '그리스도의 문화를 이 땅에 !'라고 정하였다. 지난 금요일 저는 유치부의 개회설교를 맡아 하면서 문화와 연관된 것을 말하 려 하였으나 문화 자체를 알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이 주제를 이해하도록 말한다는 것이 솔직히 력부족이었다. 이 시간에도 우리들은 문화 속에 살면서 문화를 말하기는 하지만 문화의 속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지금 하고 있는 이것이 옳은 것 인 줄 알고 무작정 동조하며 따라가는 경향을 볼 수 있다. 이 세상의 모든 문화는 종교와 불가분의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모든 문화가 종교 없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폴 틸리히는 '종교가 문화 의 실체이며, 문화는 종교의 형식이다.'라고 말하였다. 이러한 전제에서 오늘 우리들의 문화를 살펴보도록 하자. 사람이 이 세상을 사는 동안 문화를 외면할 수는 없다. 이 세상에는 문화를 가지지 않은 인간이란 하나도 없다.
A. 클루버와 C.클룩혼의 조사를 따르면 문화 에 대한 정의가 무려 154가지나 된다고 한다. 그 중에 대표적인 정의를 몇가지 살펴 보면-도구,언어,추상적인 사유의 체계를 사용하여 지식을 배우고 다음 세대로 전 달할 수 있는 사람의 능력에 종속하며, 사고와 언어와 행위와 가공물의 형태로 구체화 된 인간의 제반행동 양상과 그 산물이다.-종교는 생명의 자기 초월 또는 궁극적인 관심의 상태이나 문화란 정신 차원 에 있어서의 생명의 자기 실현이다. 정 원범 교수는 여러가지 정의를 제시하면서 결론짓기를 '문화란 정신적인 것 에서부터 물질, 제도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삶과 관련된 모든 것을 의미하는 것' 이라고 말하였다. 이와같은 견해에서 우리들의 문화를 살펴보면 의외에도 아주 복잡한 배경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 국민들의 의식 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문 화는 어떤 것인가-선사시대:원시종교인 샤머니즘의 독무대였다. 무속신앙은 우리나라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신령과의 접촉을 통하여 복 을 빌고 재앙을 물리침으로 인간의 소원을 성취할 수 있다고 믿는 무당을 중심한 주술적 종교현상이다. 무속신앙의 대상은 허다하다. 무속신앙은 다신론적인 경향을 가진다. 이 허 다한 신령은 천신,지신,인신,잡신으로 분류되는데 우리나라 무속신앙의 대상은 60%가 천,지,일,월,산,수신등 자연계의 신령이다. 이들이 가진 인간관은 생사화복, 흥망성쇠가 초인적인 신령들의 작용으로 좌우된다는 생각을 가진다. 재물을 위한 재수굿을 귀하게 생각하고 이굿에 많은 돈을 들이는 것은 투자한 비용만큼 이익이 크게 나타난다고 믿는 생각 때문이다.-신라,고구려:불교가 민족을 지배하였다.-이조시대:유교가 전적으로 지배하였다. 지금 우리들의 사고구조는 대부분 유교적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영향이 크 다고 본다. 주후 372 년 고구려 소수림왕 2 년에 국립대학인 태학이 세워진 이후
1,500 년 간을 지배해 온 사상이다. 유교는 인본적인 사상이다. 유교의 근본사상 은 크게 3 가지로 분류한다.
1) 천 사상이다. 천은 의지를 가지고 만물을 주장하는 인격적인 절대자로 보았다.
2) 인 사상이다. 인은 공맹사상의 핵심이며 유교 도덕의 진수이다.
3) 인의 현실화 개념들이다. 효와 례가 여기에 해당이 된다.-대원군의 쇄국정책이 무너지고 서구의 신문화가 도입이 되면서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 이외에 강한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대문화이다. 서구문화란 무엇인가
B.J. Walsh & J.R Middleton 가 분류한 특징을 살펴 보면
1) Scientism 과학주의 과학을 통하여 지상의 유토피아를 건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2) Technicism 기술주의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한 길은 오직 기술을 통하여 열려질 수 있다는 견해 로 과학주의가 전지의 약속을 제시한다면 기술주의는 전능을 약속한다.
3) Economism 경제주의 이윤의 극대화와 물질적인 번영을 추구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신기술의 도입 내지는 개발만이 살 길이라고 혈안이다. 과학이 나 기술의 동기 혹은 궁극적인 목적은 그것이 돈을 벌게 해 주느냐 않느냐에 둔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문화는 경제주의의 지배를 받고 있다. 수서지구 문제 나 정보사 땅 사기의 문제나 모두가 돈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것이 가져오는 쾌 락적인 소비문화 속에 살면서 그것을 누리고자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그리스도와 문화'라는 책에서 리차드 니버는 그리스도와 문화가 만날 때 일 어나는 기독교적인 삶의 방식을 5 가지로 말하였다. 웨버는 이 5 가지를 다시 3 가지로 축소하여 말하였는데
1) 분리모델
2) 동일시 모델
3) 변혁적인 모델 이다.
1) 분리모델:사회적인 구조에 참여거부나, 문화창조에서 활동적인 노력을 하 지 않음으로서 이 세상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을 나타낸다.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전래되었을 때 이미 유교적인 사고문화가 팽배하던 현실로는 서로가 대립하고 분리하는 형태를 가졌다. 전통문화에 대한 분리현상이다. 일본의 압제하에 살면서 교회는 이 세상과 엄격하게 분리하는 경향을 가졌다. 교회는 초기의 개혁적이고 변혁적인 경향보다는 세상을 속된 것으로 여기고 저주하는 경향을 가졌다. 개인 구원만을 강조하는 철야기도회나 심령부흥회 금식 기도가 성행한 것이 바로 이때다.
2) 동일시 모델:문화와 타협하거나 긴장을 인정함으로 삶의 구조에 참여하는 것을 옹호하는 모델이다. 오늘 우리들의 모습에서 쉽게 눈에 띄는 경향이다. 샤마니즘에서 온 지나 친 개인주의적이며 기복적인 사상, 광적인 집회, 윤리적이고 사회적인 참여가 빈 약한생활, 나 혼자 복받고 천당에 가겠다는 식의 신앙생활이 바로 이것이다.
3) 변혁적인 모델:복음을 통하여 지금 여기에서 또 궁극적인 역사의 목표를 통 하여 미래에 변화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오래동안 권력의 독점과 신분적인 차별을 가해 온 유교사상에 대하여 천 주교나 기독교가 전통사회에 나타 낸 큰 변혁을 의미한다. 가정과 사회적 신분이 변화되고 인간의 존엄과 여권이 신장된 점, 주초금지등을 통한 절제운동, 우상과 미신타파, 의료선교, 백정과 노비의 해방,3.1 운동의 교회적참여, 기독교교육과 여러가지 사회참여등은 사회개혁과 변혁을 향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교회사가인 민경배 교수의 주장이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한 관원은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새로운 도전을 만났다. 영생을 구하여 예수께 나아 왔는데 예수님은 그에게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말씀하셨다. 웨버의 견해를 따르자면 확실히 이 관원의 입장은 분 리모델은 아니었던 것 같다. 적어도 그리스도의 생각과는 동일한 평가를 받고자 하는 생각이 있었다고 본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께 나아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은 분리모델 속에 빠지고 말았다.
왜냐하면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는 도전에 대하여 변혁 의 기회를 놓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들은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종교적으로도 꽤 많은 성장을 누리 고 있다. 교회마다 물질적인 풍요와 여유가 넘친다. 교회의 부흥을 교인 머리수 와 헌금액에 비추어 물량적으로 측정하고 물질적 축복이 곧 잘 믿는 신앙으로까 지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Charlse Colson 과 Carl Henry 의 말과 같이 '미국 시민의 1/3 이 중생한 성도라고 하면서 말마다 병들어 가고 부패해 가는 우리 사회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은 매우 당혹스러운 역설이다. 기독교는 향상되나 도덕성은 떨어지고 있다. 교회가 성경적인 진리 위에 서서 행동하는 것이 실패할 때 교회는 문화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실패한다는 것은 사실이다.'는 말을 한번 깊이 생각해 보자. 간디는 '한 국가의 문화는 그 국민의 마음과 영혼 속에 자리잡고 있다.'는 말 을 하였다. 행동은 곧 우리들의 마음의 생각이 표현된 것이다.
오늘 우리는 신앙 의 선배들이 가졌던 기독교적인 가치관을 생각하고 무엇이 우리의 문화 속에 자리잡고 있는가를 판단해 보자. 자기중심, 물질중심, 세상중심의 가치관을 가지고는 영생을 소유하기 어렵다. 여호와 하나님 중심, 그리스도 중심으로 돌아 서야만 한다. 관원은 예수님에게서 '네가 그렇게도 열심으로 율법을 따라 사는 것을 보니 오늘 네가 참으로 영생을 소유하였다.'는 말을 듣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청년 관원은 근심하면서 돌아갔다. 예수님의 말씀이 제 맘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독교적인 가치관은 내 생각에 그리스도를 맞추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생각에 나를 맞추는 것이다. 우리들의 가정과 교회와 사회에 하나님의 뜻이 실천 되어야 한다. 샤마니즘적인 사고구조와 불교, 유고적인 사고를 가지고 신앙생활 하는 사람을 보자. 그들은 대부분 예수를 믿을 때에 자기가 가지고 있었던 전 이해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한다. 등소평이 몇해 전에 시장경제를 도입하면서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된다는 식으로 부타든 예수든 성모 마리아든 무엇이든지 믿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종교 다원주의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하나님의 구원계시가 기독교 뿐 아니라 타종교에도 있고, 기독교만이 구원의 유 일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타종교에도 구원의 길이 있다는 것을 주장한다. 자유주의 신학이 그리스도의 신성, 동정녀 탄생, 대속의 죽음, 부활과 육체의 재 림, 성경의 영감성등을 부인하는 특징이 있는데 비해 종교다원주의는 전통적인 기독교 교리에다가 타종교의 구원을 더 보태고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종교의 평 준화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현대문명의 조류 속에 살아 가면서 분명하게 기억해야 하는 것 한가지는 [교회가 성경을 떠나면 교인들은 교회를 떠난다]는 점이다. 교회가 성경의 가 르침을 따르지 않는다면 더 이상 교회일 수는 없다. 하나님의 계시를 떠나 인간 의 이성을 앞세우다 보면 어느틈에 하나님은 멀리 떠나가 버리고 말 것이다. 에덴에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따 먹은 것이나, 바벧탑 사건이 그것 이고, 소돔과 고모라가 그것이다. 폼페이의 멸망도 소위 인간이 세운 문화의 산 물이다. 그것들이 빛나면 빛날수록 하나님과 동등하고자 하는 마음이 커지는 것 이고 종국에는 하나님을 의존하는 것에서 부터 자유롭게 되고자 한다. 이것이 문 화의 함정인 것이다. 오늘 우리의 가치관은 어디에 있는가 대중문화라는 이름으로 우리들의 정신세계 속에 파고 들어오는 온갖 사탄적인 요소들을 주의해야 한다. 오디오, 비디오, 식생활의 문제, 생활의식 속에 당연히 있어야 할 예의 범절문제, 그리고 풍요한 생활이 가져온 놀이문화 조차 반 그리스도적인 요소들이 너무도 난무하고 있다.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삼가야 할 것들 이 비기독교인들의 삶 속에서 드러나고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종교개혁은 문화 속에 들어 온 로마 가토릭교회에 대하여 참되신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죽음과 부활의 의미를 회복하려는 몸부림이라고 볼 수 있다. 개신교회 가 끊임없이 개혁되어야 한다는 것도 예수의 얼굴에 갓을 씌우고 두루마기를 입 히자는 것이 아니다. 성경이 보여주는 본래의 그리스도의 모습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인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 때에 가치가 주어진다. 제 위치를 떠난 천사를 하늘에서 쫓아버린 것처럼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분명한 것이다. 소금은 그 맛으 로 결정을 한다. 대중문화 속에 빠져 살 것이 아니라 대중문화를 이끌어 가며 변 혁시키는 분명한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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