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합시다 (눅18:1-8)
본문
1절 말씀을 다같이 읽어 봅시다.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것 을 저희에게 비유하여] 우리주님의 생애는 기도의 생애였습니다. 주님께서 사역을 시작 하 시기 전에 40일 금식 기도로 시작하셨고 공생애 기간동안 주님께서는 습관을 쫓아 한적한 곳에 기도 하셨으며 잡히시기 전날에도 땀바울이 핏방울 되도록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십자가에 달리시면서도 주님은 기도를 쉬지 않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의 모범 을 보이셨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기도에 대한 교훈 뿐 아니라 자신히 친히 본을 보이신 것은 주님을 믿는 모든 성도들 또한 항상 기도 해야 할 것을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항상 기도해야 합니까 기도는 활동이 아니라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숨을 쉬기 위해서 따로 시간을 낼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호흡을 하지 않으면 5분 안에 우리는 죽습니다. 기도는 성도의 영적 호흡이기 때문에 이 호흡이 끊어 진다면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가끔 성도들 가운데 보면 폐활량이 좋은 사람이 참 많습니다. 주일 날 한번 잠깐 와서 여호와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는 일 주닐 내내 호흡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주에 와서 잠간 숨을 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정상적이 영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호흡이 곤란 한 사람은 인공호흡을 시킵니다. 산소마스크를 시웁니다. 인위적으로라도 호흡을 시켜야 만이 그사람을 살 수가 있기때문인 것입니다. 기도를 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귀찮은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나의 생명과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종교에 기도가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드리는 기도와 이방 종교에서 하는 기도가 같은 것이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종교심리학 적으로 볼때 기도를 드림으로해서 심리적으로로 안정을 찾을 수 있습니다. 평안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를 위하는 것 입니다. 자기 중심입니다. 기복적입니다. 우리 기독교에서 말하는 기도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 계정상화입니다. 하나님과의 영적이 교통입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원하시는 것을 묻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기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행 할 바를 마땅히 알 수 없습니다. 우리의 앞날을 누구보다 더 잘 아 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길을 묻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를 원해서 기도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으로 들갑시다. 본문 말씀 1절에 주님께서는 항상기도 해야할 것을 말씀해 주닙니다. 바울은 이와 비슷하게 쉬지말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1. 먼저 기도는 항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영적인 호흡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마음의 소원을 아뢰는 것 만이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주님은 기도하실 필요가 없으 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끊임없이 기도하셨습니다. 왜나하면 하나님과의 대화며 교통이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부부가 같이 살면서 아무런 대화를 하지 않고 서로가 필 요할때만 말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얼마나 재미없는 생활일까요 그렇 게 된다면 사무적이지 애정교환은 오고갈 수 없을 것입니다. 기도도 마찬가지 입니다. 왜 우리가 항상 기도해야 하면 기도는 하나님과의 끊임없는 대화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신앙생활 오래 하는 사람들만이 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말 그대로 생각에 지나지 않습니다. 갓난 아이가 어머니 모태에서 나오자마자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호흡하는 일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 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는 그 순간 부터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항상 기도하라고 해서 일상의 생활을 무시하고 기도만 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교회에 나와서 기도만 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정한 기도하는 시간도 있습니다. 같이 모여 기도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집은 또한 기도하는 집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 간 이외에도 각자 처한 위치에서 직장과 가정에서 일하면서 우리는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교회에만 계시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 은 우리 마음속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크거나 소리낼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귀가 멀으신 분이 아 닙니다. 우리 마음의 창을 열기만 하면 하나님은 들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너무 바빠서 기도할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위하여 토레이는 말하기를 [일이 많을 수록 기도를 많이 하여라. 기도하므로 시간이 낭비되는 것이 아니라 기도는 우리의 시간을 가장 아껴주는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경험만 믿고 아이성을 쳤다가 크게 실패한 여호수아를 잘 알것 입니다. 기도없이 하는 일은 것으로는 잘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아셔야 합니다. 기도없이 하는 모든 것들은 실패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말씀보다 앞서지 말고 기도보다 앞서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2.둘째로 낙망치 말아야 할 것을 말씀해 주십니다. 오늘의 교훈은 낙망치 말것에 대하여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어떤 불의한 재판관이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불의한 재판관이라는 말 속에서 우리는 이사람이 재물과 무관한 사람이 아닌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부정직 하면서도 자기 스스로는 빈틈없는 재판을 시행 한다고 하는 속물에 지나지 않은 재판관인 것입니다. 이사람은 얼마 나 불의한 사람인가 하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그 마음속에 없는 사람은 성경은 악인이라고 합니다. 또한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날 판검사들도 이와같지 안습니까 국가가 위임한 권이를 마치 자기것인양 착각하는 교만한 사람들이 아 닙니까 자기 위에는 사람도 없으며 심지어 하나님도 없으니 얼마나 불의하겠습니까 그러나 이런한 불의한 재판관이라 할 지라도 한 과부가 와서 늘 귀찮게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귀찮게 여깁니다. 쫓아내도 막무가 내입니다. 매일 옵니다. 번거롭게 합니다. 이 [번거롭게]의 원 뜻이 무엇이냐 하면 눈 밑을 때리다, 혹은 눈을 멍들게 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눈언저리를 맞으면 푸르게 멍드는데 남편에게 맞은 여자가 위 장하기 위하여 아이샤도를 만들게 됴다는 근거없는 말도 있습니다만 눈에 멍이들어서 마음대로 다닐 수 없습니다. 왜그럴까요 그 사람의 명예가 있기때문입니다. 번거롭게 한다는 말의 의미가 그렇습니다. 만약 이 재판관이 과부의 원한을 들어주지 않으면 자신의 명예에 손 상이 될까봐서 할 수 없이 원한을 풀어주는 것이라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 가난한 과부는 그 시대에 가장 약한 사람의 대명사입니다. 아무런 힘도 없고 의지할 데라고는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살길을 재판장을 귀찮게 해서라도 원한을 푸는 길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 비슷한 말씀을 눅11장 8절에서 찾알 볼 수 있습니다. [한 밤중에 친구가 찾아와서 빵을 비려 다라고 강청합니다. 강청하다 라는 말이 뜻이 무엇입니까 PERSISTENCE-부끄러움을 무릎쓰다, 귀 찮게 졸라대다는 뜻이 있습니다. 이 말쏙에는 뻔뻔스러움과 염치가 없음을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두번 하다가 만것을 강청이라고 하 지 않습니다. 염치불구하고 귀찬게 붙들고 늘어지는 것을 강청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야곱이 그랬습니다. 속이는 야곱 그는 염치 불구하고 하나님의 축복 을 기필코 받아야 겠다고 메달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은 야곱의 인격을 칭찬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축복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받고 봐야겠다는 그 행위에 대해서는 좋게 표현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 하나님은 불의한 재판관도 의리없는 친구도 아니라 우리에게 좋 은 것을 아끼지 않으신 참좋으신 아버지 이심을 믿으시면 크게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7절과 8절에 보면 원한을 풀어 주시지 않겠느냐 저 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 냐 속히 원한을 풀어주리라. 할렐루야 ! 때가되면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줄 믿습니다. 구한 것은 받은줄로 믿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기도한 것은 응답된줄 믿고 이루얼 질때까 지 계속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 가난한 과부가 누구이겠습니까 종말론적으로 해석한다면 이 과부는 교회입니다. 연약합니다. 힘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신랑이 오셔서 우리의 원수 마귀에게 원한을 갚아주실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걱정하십니다. 인자가 올때 믿음을 보겠느냐
그러므로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의심없는 믿음의 기도를 계속적으로 하십시다. 우리 교회가 다니엘 21일 기도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기도회에 적 극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어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것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분명히 축복 해 주실줄 믿습니다. 우리교회에 약속하신 하나님의 이름의 명예를 놓고
기도하십시다.
.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여러분의 심령과 가정과 우리 교회에 놀라운 축복을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1. 먼저 기도는 항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영적인 호흡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마음의 소원을 아뢰는 것 만이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주님은 기도하실 필요가 없으 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끊임없이 기도하셨습니다. 왜나하면 하나님과의 대화며 교통이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부부가 같이 살면서 아무런 대화를 하지 않고 서로가 필 요할때만 말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얼마나 재미없는 생활일까요 그렇 게 된다면 사무적이지 애정교환은 오고갈 수 없을 것입니다. 기도도 마찬가지 입니다. 왜 우리가 항상 기도해야 하면 기도는 하나님과의 끊임없는 대화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신앙생활 오래 하는 사람들만이 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말 그대로 생각에 지나지 않습니다. 갓난 아이가 어머니 모태에서 나오자마자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호흡하는 일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 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는 그 순간 부터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항상 기도하라고 해서 일상의 생활을 무시하고 기도만 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교회에 나와서 기도만 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정한 기도하는 시간도 있습니다. 같이 모여 기도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집은 또한 기도하는 집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 간 이외에도 각자 처한 위치에서 직장과 가정에서 일하면서 우리는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교회에만 계시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 은 우리 마음속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크거나 소리낼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귀가 멀으신 분이 아 닙니다. 우리 마음의 창을 열기만 하면 하나님은 들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너무 바빠서 기도할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위하여 토레이는 말하기를 [일이 많을 수록 기도를 많이 하여라. 기도하므로 시간이 낭비되는 것이 아니라 기도는 우리의 시간을 가장 아껴주는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경험만 믿고 아이성을 쳤다가 크게 실패한 여호수아를 잘 알것 입니다. 기도없이 하는 일은 것으로는 잘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아셔야 합니다. 기도없이 하는 모든 것들은 실패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말씀보다 앞서지 말고 기도보다 앞서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2.둘째로 낙망치 말아야 할 것을 말씀해 주십니다. 오늘의 교훈은 낙망치 말것에 대하여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어떤 불의한 재판관이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불의한 재판관이라는 말 속에서 우리는 이사람이 재물과 무관한 사람이 아닌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부정직 하면서도 자기 스스로는 빈틈없는 재판을 시행 한다고 하는 속물에 지나지 않은 재판관인 것입니다. 이사람은 얼마 나 불의한 사람인가 하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그 마음속에 없는 사람은 성경은 악인이라고 합니다. 또한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날 판검사들도 이와같지 안습니까 국가가 위임한 권이를 마치 자기것인양 착각하는 교만한 사람들이 아 닙니까 자기 위에는 사람도 없으며 심지어 하나님도 없으니 얼마나 불의하겠습니까 그러나 이런한 불의한 재판관이라 할 지라도 한 과부가 와서 늘 귀찮게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귀찮게 여깁니다. 쫓아내도 막무가 내입니다. 매일 옵니다. 번거롭게 합니다. 이 [번거롭게]의 원 뜻이 무엇이냐 하면 눈 밑을 때리다, 혹은 눈을 멍들게 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눈언저리를 맞으면 푸르게 멍드는데 남편에게 맞은 여자가 위 장하기 위하여 아이샤도를 만들게 됴다는 근거없는 말도 있습니다만 눈에 멍이들어서 마음대로 다닐 수 없습니다. 왜그럴까요 그 사람의 명예가 있기때문입니다. 번거롭게 한다는 말의 의미가 그렇습니다. 만약 이 재판관이 과부의 원한을 들어주지 않으면 자신의 명예에 손 상이 될까봐서 할 수 없이 원한을 풀어주는 것이라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 가난한 과부는 그 시대에 가장 약한 사람의 대명사입니다. 아무런 힘도 없고 의지할 데라고는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살길을 재판장을 귀찮게 해서라도 원한을 푸는 길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 비슷한 말씀을 눅11장 8절에서 찾알 볼 수 있습니다. [한 밤중에 친구가 찾아와서 빵을 비려 다라고 강청합니다. 강청하다 라는 말이 뜻이 무엇입니까 PERSISTENCE-부끄러움을 무릎쓰다, 귀 찮게 졸라대다는 뜻이 있습니다. 이 말쏙에는 뻔뻔스러움과 염치가 없음을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두번 하다가 만것을 강청이라고 하 지 않습니다. 염치불구하고 귀찬게 붙들고 늘어지는 것을 강청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야곱이 그랬습니다. 속이는 야곱 그는 염치 불구하고 하나님의 축복 을 기필코 받아야 겠다고 메달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은 야곱의 인격을 칭찬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축복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받고 봐야겠다는 그 행위에 대해서는 좋게 표현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 하나님은 불의한 재판관도 의리없는 친구도 아니라 우리에게 좋 은 것을 아끼지 않으신 참좋으신 아버지 이심을 믿으시면 크게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7절과 8절에 보면 원한을 풀어 주시지 않겠느냐 저 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 냐 속히 원한을 풀어주리라. 할렐루야 ! 때가되면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줄 믿습니다. 구한 것은 받은줄로 믿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기도한 것은 응답된줄 믿고 이루얼 질때까 지 계속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 가난한 과부가 누구이겠습니까 종말론적으로 해석한다면 이 과부는 교회입니다. 연약합니다. 힘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신랑이 오셔서 우리의 원수 마귀에게 원한을 갚아주실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걱정하십니다. 인자가 올때 믿음을 보겠느냐
그러므로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의심없는 믿음의 기도를 계속적으로 하십시다. 우리 교회가 다니엘 21일 기도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기도회에 적 극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어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것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분명히 축복 해 주실줄 믿습니다. 우리교회에 약속하신 하나님의 이름의 명예를 놓고
기도하십시다.
.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여러분의 심령과 가정과 우리 교회에 놀라운 축복을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