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자의 바른 자세 (창18:1-23)
본문
여호와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의 족장으로서의 아브라함의 태도는 유의할 만하다. 그는 앉았고, “(창18:1) 여호와께서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오정 즈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았다가 ” 절했고, “(창18:2)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섰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 뛰어갔고, “(창18:7) 아브라함이 또 짐승 떼에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취하여 하인에게 주니 그가 급히 요리한지라 ” 모셔서고, “(창18:8) 아브라함이 뻐터와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 들의 앞에 진설하고 나무아래 모셔 서매 그들이 먹으니라 ” 함께 가고, “(창18:16) 그 사람들이 거기서 일어나서 소돔으로 향하고 아브라함은 그들을 전송하러 함께 나가니라 ” 여호와 앞에 서고, “(창18:22) 그 사람들이 거기서 떠나 소돔으로 향하여 가고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니 ” 여기서는 이제 가까이 나아갔다. “(창18:23) 가까이 나아가 가로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려나이까 ” 이 태도의 절차와 과정은 하나님을 접근하는 성도들의 삶이 따라야 할 정도를 보여준다.
1. 그는 경외심으로 그에게 나아갔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한계와 실제를 인식하면서 간구한다. “(창18:27) 아브라함이 말씀하여 가로되 티끌과 같은 나라도 감히 주께 고하나이다.”라는 고백은 바로 자신의 실존을 밝히는 고백이다. 하나님을 배면한 그 땅은 거룩한 곳이었다. 그가 간절한 마음으로 그 땅을 밟거나 건넜을 때 그가 잊지 않은 사실은, 하나님과 사람의 가장 긴밀한 교제에는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소멸하는 불이 그의 손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던 아브라함은 두렵고 떨림을 지울 수 없었다.
2. 그는 믿음으로 그에게 나아갔다. 그는 그리스도의 날을 미리 보는 복을 누렸다. 죄인들이 하나님께 용납되어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완전하고 충분한 희생이 그에게 계시되었다. 그는 지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으며,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진실된 마음으로 가까이 나아갔으며,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열어놓은 새롭게 살아 있는 길을 알았다. 그러기에 그는 두려움 속에서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담대함이 솟아올랐고 용서와 자비의 손길이 하나님께 있음을 충분히 알았다.
3. 그는 중보자로 그에게 나아갔다. 우리가 남을 위해 기도할 때만큼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경우는 없다. 이럴 때 우리는 가장 깊은 방, 지성소에 들어가 우리를 위해서는 감히 할 수 없는 위급성을 가지고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다. 수로보니게 여인이 그 딸을 위해 기도할 때, 그는 예수의 무릎 바로 아래 엎드렸다. “(막7:25)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 엎드리니.” 우리는 이 지성소를 알고 있는가 남을 위한 심부름으로 거기에 들어가 보라. 거기서 새롭게 경험한 기도의 기쁨을 맛보라. 남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경험하라.
4. 그는 전심으로 그에게 나아갔다. 하만이 살려달라고 간청할 때 그의 영혼은 울부짖음으로 왕비의 발 앞에 엎드렸다.“(에7:7) 왕이 노하여 일어나서 잔치 자리를 떠나 왕궁 후원으로 들어가니라 하만이 일어서서 왕후 에스더에게 생명을 구하니 이는 왕이 자기에게 화를 내리기로 결심한줄 앎이더라 (에7:8) 왕이 후원으로부터 잔치 자리에 돌아오니 하만이 에스더의 앉은 걸상 위에 엎드렸거늘 왕이 가로되 저가 궁중 내 앞에서 왕후를 강간까지 하고자 하는가 이 말이 왕의 입에서 나오매 무리가 하만의 얼굴을 싸더라.” 때때로 하나님은 어느 순간 멈칫거리시는 것같아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길은 정확하시다. 나를 위하여 순단의 피난성 기도보다는 내 가족과 이웃을 위하여 하나님께 좀더 깊이 좀더 진지하게 들어가서 전심을 쏟아보라. 그리고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그의 존전에 잡다한 사연을 벗어나 나만 홀로 부르짖고 있는 고귀한 기도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리라. 적용.
1) 나의 기도는 저 멀리 막연한 위치에서 하나님을 쳐다보며 행ㅏ여지고 있지는 아니한가
2) 나의 기도 자세는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과 신뢰성이 어느 정도에서 진행되고 있는가
3) 오늘도 나는 하나님에게서 받고 싶은 복을 간구하는가 아니면 내 이웃과 가정과 나라를 위한 중보 기도에 눈물과 땀을 흘리고 있는가 4) 나의 기도는 잡다한 사연의 파도에 밀리는 기도인가 아니면 전심을 기울이는 고귀한 기도인가
1. 그는 경외심으로 그에게 나아갔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한계와 실제를 인식하면서 간구한다. “(창18:27) 아브라함이 말씀하여 가로되 티끌과 같은 나라도 감히 주께 고하나이다.”라는 고백은 바로 자신의 실존을 밝히는 고백이다. 하나님을 배면한 그 땅은 거룩한 곳이었다. 그가 간절한 마음으로 그 땅을 밟거나 건넜을 때 그가 잊지 않은 사실은, 하나님과 사람의 가장 긴밀한 교제에는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소멸하는 불이 그의 손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던 아브라함은 두렵고 떨림을 지울 수 없었다.
2. 그는 믿음으로 그에게 나아갔다. 그는 그리스도의 날을 미리 보는 복을 누렸다. 죄인들이 하나님께 용납되어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완전하고 충분한 희생이 그에게 계시되었다. 그는 지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으며,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진실된 마음으로 가까이 나아갔으며,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열어놓은 새롭게 살아 있는 길을 알았다. 그러기에 그는 두려움 속에서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담대함이 솟아올랐고 용서와 자비의 손길이 하나님께 있음을 충분히 알았다.
3. 그는 중보자로 그에게 나아갔다. 우리가 남을 위해 기도할 때만큼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경우는 없다. 이럴 때 우리는 가장 깊은 방, 지성소에 들어가 우리를 위해서는 감히 할 수 없는 위급성을 가지고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다. 수로보니게 여인이 그 딸을 위해 기도할 때, 그는 예수의 무릎 바로 아래 엎드렸다. “(막7:25)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 엎드리니.” 우리는 이 지성소를 알고 있는가 남을 위한 심부름으로 거기에 들어가 보라. 거기서 새롭게 경험한 기도의 기쁨을 맛보라. 남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경험하라.
4. 그는 전심으로 그에게 나아갔다. 하만이 살려달라고 간청할 때 그의 영혼은 울부짖음으로 왕비의 발 앞에 엎드렸다.“(에7:7) 왕이 노하여 일어나서 잔치 자리를 떠나 왕궁 후원으로 들어가니라 하만이 일어서서 왕후 에스더에게 생명을 구하니 이는 왕이 자기에게 화를 내리기로 결심한줄 앎이더라 (에7:8) 왕이 후원으로부터 잔치 자리에 돌아오니 하만이 에스더의 앉은 걸상 위에 엎드렸거늘 왕이 가로되 저가 궁중 내 앞에서 왕후를 강간까지 하고자 하는가 이 말이 왕의 입에서 나오매 무리가 하만의 얼굴을 싸더라.” 때때로 하나님은 어느 순간 멈칫거리시는 것같아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길은 정확하시다. 나를 위하여 순단의 피난성 기도보다는 내 가족과 이웃을 위하여 하나님께 좀더 깊이 좀더 진지하게 들어가서 전심을 쏟아보라. 그리고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그의 존전에 잡다한 사연을 벗어나 나만 홀로 부르짖고 있는 고귀한 기도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리라. 적용.
1) 나의 기도는 저 멀리 막연한 위치에서 하나님을 쳐다보며 행ㅏ여지고 있지는 아니한가
2) 나의 기도 자세는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과 신뢰성이 어느 정도에서 진행되고 있는가
3) 오늘도 나는 하나님에게서 받고 싶은 복을 간구하는가 아니면 내 이웃과 가정과 나라를 위한 중보 기도에 눈물과 땀을 흘리고 있는가 4) 나의 기도는 잡다한 사연의 파도에 밀리는 기도인가 아니면 전심을 기울이는 고귀한 기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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