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응답을 받고서 (시116:1-19)
본문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저를 사랑하는도다"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본편의 시인은 곤고한 중에 기도하여 그 응답을 받고 서 새로운 결심을 하였습니다.그 결심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는 나도 하나님을 사랑하겠다는 것입니다.기도의 맛을 보았으니 내 평생에 기도하면 서 살겠다는 것입니다.그리고 그 은혜를 어떻게 하든지 보답하는 마음으로 살겠다는 각오였습니다.이 세 가지의 주제를 묵상하면서 은혜를 나눕시다.
I.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도다 1절을 봅시다."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저를 사랑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사랑의 고백입니다.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하나님을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은 체험한 자의 고백입니다.하나님 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 선 것입니다.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단다! 그 증거 로 내 기도를 응답하셨단다! 내 음성을 들으셨다.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셨다.좀은 투정을 부리고 짜증을 부렸던 내 음성을 들으셨다.좀은 원망 섞인 내 음성을 들으셨다.주님이 내 소리를 들으셨단다! 참을 성이 없고 성급한 내 음성을 들으셨다.다분히 이기적이고 내 뜻만을 내세우고 고집을 부렸던 내 기도를 들으셨단다! 이 시인은 기도의 응답을 받고서 사랑의 고백을 하 였습니다.이제는 "내가 저를 사랑하는도다!"라고 확실히 외칠 수 있었던 것 입니다.어그스틴은 기도의 응답을 받고서 "오 주여 나는 주를 너무 늦게 사랑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사실은 기도의 응답을 받기 전에 하나님을 사랑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인데,고난을 당하기 전에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인데,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것입니다.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늘 한 박자 늦습니다.
II.평생에 기도하리라 2절을 봅시다."그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라 고 했습니다.기도의 응답이 왔으면 다시 기도할 필요가 없을 것이지만 이 시인은 평생에 기도하겠다고 다짐합니다.기도의 응답을 체험한 자는 그 맛 을 알기 때문에 앞으로,아니 평생토록 기도할 것이라고 다짐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하나님이 내게 관심을 보이시고 나를 알아주셨으니 나 또한 평생 에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살겠다는 것입니다.그러나 시인의 결심을 단지 조 건부로만 이해할 것이 아닙니다.기도응답으로 기쁨을 주셨으니 그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 계속 기도하겠다는 것은 아닙니다.물론 이런 응답이 기도에 자극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시인의 의도를 좀더 깊이 들어가보면 기도의 응답이 없을지라도 계속해서 기도하겠다는 각오입니다.기도 그 자체가 좋아 서 기도하겠다는 것입니다.하나님과의 교통은 그 자체가 큰 축복입니다. 지난날의 기도는 어떤 것이었나요 어떤 상황에서 기도한 것이었나요 3 절 이하에 보면 그 어려웠던 환경과 그 가운데서 부르짖었던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인이 처한 상황은 어느 정도였나요 견딜 만한 그런 상황이었나요 아 닙니다.아주 심각한 위기상황이었습니다.3절을 볼까요."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음부의 고통이 내게 미치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사망의 줄','음부의 고통','환난과 슬픔'이라는 말이 이 시인이 당면한 상황을 짐작하케 합니다.육체의 위험만이 아니라 '영혼을 건 지소서'라고 하였습니다.또 15절을 보면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 중히 보시는도다"라고 했습니다.죽음의 문에 이르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건저주셨다는 것입니다.시인은,모든 사람이 죽고 성도들도 죽게 되어 있 지만,성도들의 죽음에는 특별한 뜻이 있다고 해석합니다.더군다나 죽을 나 이가 차기 전에 죽을 때는 뜻이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물론 죄 아래서 사망의 종노릇하는 사람들에게 죽기에 적당한 나이가 어디 있겠는가 만은 '인생이 70이오'라고 한 모세의 말을 상기해보면 그렇다는 말입니다.아무튼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죽음을 귀히 보십니다.이 극한 상황에서 시인은 무엇 을 하였나요 기도했습니다.그렇습니다.이럴 때는 기도해야 합니다.위기의 때,곤고한 때는 기도해야 합니다. 어떤 태도로 기도했는가요 하나님께 대한 확신을 가지고 기도했습니다.5 절에 보면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우리 하나님은 자비하시도 다"라고 말합니다.하나님의 인격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기도할 수 있는 것 입니다.하나님의 인격에 대한 어떤 신뢰가 있었나요 하나님은 '은혜로우시 다'는 것을 믿었습니다.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은혜의 하나님을 믿었습니다.또 '의로우시다'는 것을 믿었습니다.따라서 억울함을 당하고 애매하게 고난을 당하는 자를 구원하여 주시고 원수들을 심판하며 그들의 핍박과 압 박으로부터 건져주실 공의의 하나님임을 믿었습니다.그리고 '자비하시다'는 것을 믿었습니다.이 자비는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허덕이는 자들을 그냥 지 나칠 수 없는 하나님의 관대한 애정을 일컫는 말입니다.하나님을 이와 같이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다.하나님은 의로우시다.하나님은 자비하 시다.이런 신뢰를 가진 자는 하나님께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해서는 확신을 가지고 기도했으나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어떤 태도를 가지고 기도하였나요 자기 자신에 대한 태도는 하나님에 대한 태도 와도 밀접하게 관련을 맺습니다.시인은 자기를 겸손히 낮추었습니다.자신의 어리석음을 인정하고 겸손히 자기를 낮추었습니다.06절에 보면 "여호와께서는 어리석은 자를 보존하시나니 내가 낮게 될 때에 나를 구원하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자기의 어리석음을 인정하고 겸손할 때에 구원이 임했습니다.사 실 어려움을 당했을 때에 우직하리만큼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아가는 것을 보면 사람들의 눈에는 어리석어 보일 뿐입니다.그러나 이런 자를 하나님은 건지신다.발 빠르게 상황에 대처하면서 인간적인 잔꾀를 부리는 자보다는 어리석어보일 만큼 하나님께 맡기고 신뢰하는 자들을 기뻐하십니다.하나님 은 언제나 겸손한 자의 기도를 들으십니다.하나님의 광대하심과 그의 위엄 을 알고 있는 자라면 자기를 겸손하게 낮출 수밖에 없습니다.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는 자가 자기를 높이고 교만하게 행동합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자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인정하고 자기의 추하고 부족함을 인정해야 합니다.그래야 진정한 신뢰와 기도가 나오게 됩니다. 이와 같이 기도할 때에 응답에 대한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07에 보면 "내 영혼아 네 평안함에 돌아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후대하심이로다"라 고 하였고 08절에도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내 눈을 눈물에서,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혼란하고 불안해 하던 영혼이 주 님 안에서 평정을 얻었습니다.기도응답을 받고는 마음에 고요한 평안이 찾 아왔습니다.확신이 선 것입니다.하나님이 자신을 후대하신다는 것을 깨달았 습니다.사망에서,눈물에서,넘어짐에서 건져주셨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은혜를 입었으니 시인의 마음에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은혜에 대 한 감사가 있었고 조금이나마 그 은혜에 보답해야겠다는 결심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III.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보답하리라 12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은혜를 보답하는 일에 대해서 근심하고 고민하는 시인의 모습입니다. 이 시인은 걱정 때문에 기도했지만 기도의 응답으로 걱정이 해결되자 또 하나의 새로운 걱정이 생겼습니다.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 를 보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었습니다.정말 좋은 걱정입니다.여러분은 이런 걱정 해보셨나요 이런 걱정은 온종일 해도 좋습니다.어찌하면 하나님 의 은혜를 조금인들 보답하랴! 시인은 결심합니다.이렇게 보답하리라! 13절 이하를 봅시다.시인이 생각하고 있는 보답의 방법을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찬송으로 보답하리라! 13절에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 을 부르며"라고 하였습니다.17절에도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여러 의 미가 있겠지만 '구원의 잔'과 연관시켜 보면 여기서는 찬송입니다.그 찬송 은 내용은 '구원의 잔','감사의 제사',그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름'이었 습니다.구원과 감사와 거룩한 이름을 내용으로 한 찬송을 드리겠다는 것입니다.하나님은 찬송의 하나님이십니다.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고 찬송 을 받으시기 좋아하십니다.
둘째,서원한 것을 갚으리라! 14절에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의 서 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18절에도 "내가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을지라"라고 하였습니다.맹세가 사람 을 상대로 하는 것이라면 서원은 오직 하나님만을 상대로 해서 하는 것입니다.서원은 고난을 당할 때에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하면서 드리는 약속입니다."이 고난에서 건지시면 내가 그 은혜를 이러이러한 것으로 갚겠습니다" 라는 식의 서약입니다.함부로 서원하는 것은 삼가야 하지만 서원하는 것은 신앙의 새로운 각오와 결단을 표명하는 것이기에 유익하고 하나님께서도 기 뻐하십니다.그러나 그 서원이 이루어졌을 때는 반드시 갚아야 합니다.그렇 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속인 것이 됩니다.시인은 어떻게 하나님께서원했는지는 밝히지 않았으나 그 서원을 반드시 갚겠다는 다짐합니다.하나님과의 약속은 해로울지라도 지켜야 합니다.
셋째,감사제를 드리리라! 17절에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구약 성도들은 감사한 일이 생겼을 때는 제물로써 그 감사를 표현했습니다.신약의 성도들은 감사한 일이 생겼을 때 에 연보로써 표현합니다.감사의 연보를 드린다든지 주의 집에 필요한 물건 을 드린다든지 하는 것입니다.감사하면 마음으로 표현하면 되지 꼭 연보를 드려야 하는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마음으로 표현해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그러나 진정으로 감사한 마음이 생겼을 때에 그냥 있을 수 있겠습니 까 그런 정도의 감사라면 풍성한 감사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그래서 감사는 예물이 따릅니다.많고 큰 것이라야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천지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라고 했습니다.하나님은 물질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우리의 마음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세상적인 것으로는 결코 갚을 수는 없습니다.신령한 하나님께는 신령한 것으로만 만분지 일이라도 갚는 흉내를 낼 수 있습니다.그 것은 찬송입니다.서원을 이행하는 것입니다.감사하는 것입니다.감사의 예물 을 드리는 것입니다.이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것입니다.19절을 봅시다."예루살렘아,네 가운데서,여호와의 전 정에서 내가 갚으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하나님께만 드리겠다는 것이요 모든 사람이 보는 가운데서 공개 적으로 드리겠다는 것입니다.하나님의 하신 일을 간증하고 고백하는 뜻도 포함되어 있습니다.이 시인의 각오를 한 구절로 요약하면 9절의 말씀대로 "내가 생존 세계에서 여호와 앞에 행하리로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하나님 앞에서 살겠다는 것입니다. 시인은 고난 중에 기도하여 응답을 받았습니다.그리고는 신앙의 새로운 각오를 하였습니다.내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기도의 맛을 보았기 때문에 내 평생에 기도하리라.아니,기도하기가 좋아서 기도하리라.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갚으리라.찬송으로 보답하리라.서원을 이행하리라.감사의 제물을 드 리리라.하나님 앞에서 살겠노라고 외칩니다.시인처럼 사랑의 고백을 하고, 기도하기로 결심을 하고,은혜를 어떻게 보답할지 고민할 수 있자면,우선 기도부터 해야 합니다.기도하는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기도의 달,8월의 마지 막 주일을 보내면서 시인이 기도응답을 받고 한 결심을 살펴보았습니다.우리도 이런 각오와 결심을 합시다.
I.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도다 1절을 봅시다."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저를 사랑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사랑의 고백입니다.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하나님을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은 체험한 자의 고백입니다.하나님 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 선 것입니다.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단다! 그 증거 로 내 기도를 응답하셨단다! 내 음성을 들으셨다.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셨다.좀은 투정을 부리고 짜증을 부렸던 내 음성을 들으셨다.좀은 원망 섞인 내 음성을 들으셨다.주님이 내 소리를 들으셨단다! 참을 성이 없고 성급한 내 음성을 들으셨다.다분히 이기적이고 내 뜻만을 내세우고 고집을 부렸던 내 기도를 들으셨단다! 이 시인은 기도의 응답을 받고서 사랑의 고백을 하 였습니다.이제는 "내가 저를 사랑하는도다!"라고 확실히 외칠 수 있었던 것 입니다.어그스틴은 기도의 응답을 받고서 "오 주여 나는 주를 너무 늦게 사랑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사실은 기도의 응답을 받기 전에 하나님을 사랑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인데,고난을 당하기 전에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인데,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것입니다.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늘 한 박자 늦습니다.
II.평생에 기도하리라 2절을 봅시다."그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라 고 했습니다.기도의 응답이 왔으면 다시 기도할 필요가 없을 것이지만 이 시인은 평생에 기도하겠다고 다짐합니다.기도의 응답을 체험한 자는 그 맛 을 알기 때문에 앞으로,아니 평생토록 기도할 것이라고 다짐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하나님이 내게 관심을 보이시고 나를 알아주셨으니 나 또한 평생 에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살겠다는 것입니다.그러나 시인의 결심을 단지 조 건부로만 이해할 것이 아닙니다.기도응답으로 기쁨을 주셨으니 그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 계속 기도하겠다는 것은 아닙니다.물론 이런 응답이 기도에 자극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시인의 의도를 좀더 깊이 들어가보면 기도의 응답이 없을지라도 계속해서 기도하겠다는 각오입니다.기도 그 자체가 좋아 서 기도하겠다는 것입니다.하나님과의 교통은 그 자체가 큰 축복입니다. 지난날의 기도는 어떤 것이었나요 어떤 상황에서 기도한 것이었나요 3 절 이하에 보면 그 어려웠던 환경과 그 가운데서 부르짖었던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인이 처한 상황은 어느 정도였나요 견딜 만한 그런 상황이었나요 아 닙니다.아주 심각한 위기상황이었습니다.3절을 볼까요."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음부의 고통이 내게 미치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사망의 줄','음부의 고통','환난과 슬픔'이라는 말이 이 시인이 당면한 상황을 짐작하케 합니다.육체의 위험만이 아니라 '영혼을 건 지소서'라고 하였습니다.또 15절을 보면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 중히 보시는도다"라고 했습니다.죽음의 문에 이르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건저주셨다는 것입니다.시인은,모든 사람이 죽고 성도들도 죽게 되어 있 지만,성도들의 죽음에는 특별한 뜻이 있다고 해석합니다.더군다나 죽을 나 이가 차기 전에 죽을 때는 뜻이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물론 죄 아래서 사망의 종노릇하는 사람들에게 죽기에 적당한 나이가 어디 있겠는가 만은 '인생이 70이오'라고 한 모세의 말을 상기해보면 그렇다는 말입니다.아무튼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죽음을 귀히 보십니다.이 극한 상황에서 시인은 무엇 을 하였나요 기도했습니다.그렇습니다.이럴 때는 기도해야 합니다.위기의 때,곤고한 때는 기도해야 합니다. 어떤 태도로 기도했는가요 하나님께 대한 확신을 가지고 기도했습니다.5 절에 보면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우리 하나님은 자비하시도 다"라고 말합니다.하나님의 인격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기도할 수 있는 것 입니다.하나님의 인격에 대한 어떤 신뢰가 있었나요 하나님은 '은혜로우시 다'는 것을 믿었습니다.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은혜의 하나님을 믿었습니다.또 '의로우시다'는 것을 믿었습니다.따라서 억울함을 당하고 애매하게 고난을 당하는 자를 구원하여 주시고 원수들을 심판하며 그들의 핍박과 압 박으로부터 건져주실 공의의 하나님임을 믿었습니다.그리고 '자비하시다'는 것을 믿었습니다.이 자비는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허덕이는 자들을 그냥 지 나칠 수 없는 하나님의 관대한 애정을 일컫는 말입니다.하나님을 이와 같이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다.하나님은 의로우시다.하나님은 자비하 시다.이런 신뢰를 가진 자는 하나님께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해서는 확신을 가지고 기도했으나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어떤 태도를 가지고 기도하였나요 자기 자신에 대한 태도는 하나님에 대한 태도 와도 밀접하게 관련을 맺습니다.시인은 자기를 겸손히 낮추었습니다.자신의 어리석음을 인정하고 겸손히 자기를 낮추었습니다.06절에 보면 "여호와께서는 어리석은 자를 보존하시나니 내가 낮게 될 때에 나를 구원하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자기의 어리석음을 인정하고 겸손할 때에 구원이 임했습니다.사 실 어려움을 당했을 때에 우직하리만큼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아가는 것을 보면 사람들의 눈에는 어리석어 보일 뿐입니다.그러나 이런 자를 하나님은 건지신다.발 빠르게 상황에 대처하면서 인간적인 잔꾀를 부리는 자보다는 어리석어보일 만큼 하나님께 맡기고 신뢰하는 자들을 기뻐하십니다.하나님 은 언제나 겸손한 자의 기도를 들으십니다.하나님의 광대하심과 그의 위엄 을 알고 있는 자라면 자기를 겸손하게 낮출 수밖에 없습니다.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는 자가 자기를 높이고 교만하게 행동합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자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인정하고 자기의 추하고 부족함을 인정해야 합니다.그래야 진정한 신뢰와 기도가 나오게 됩니다. 이와 같이 기도할 때에 응답에 대한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07에 보면 "내 영혼아 네 평안함에 돌아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후대하심이로다"라 고 하였고 08절에도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내 눈을 눈물에서,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혼란하고 불안해 하던 영혼이 주 님 안에서 평정을 얻었습니다.기도응답을 받고는 마음에 고요한 평안이 찾 아왔습니다.확신이 선 것입니다.하나님이 자신을 후대하신다는 것을 깨달았 습니다.사망에서,눈물에서,넘어짐에서 건져주셨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은혜를 입었으니 시인의 마음에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은혜에 대 한 감사가 있었고 조금이나마 그 은혜에 보답해야겠다는 결심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III.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보답하리라 12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은혜를 보답하는 일에 대해서 근심하고 고민하는 시인의 모습입니다. 이 시인은 걱정 때문에 기도했지만 기도의 응답으로 걱정이 해결되자 또 하나의 새로운 걱정이 생겼습니다.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 를 보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었습니다.정말 좋은 걱정입니다.여러분은 이런 걱정 해보셨나요 이런 걱정은 온종일 해도 좋습니다.어찌하면 하나님 의 은혜를 조금인들 보답하랴! 시인은 결심합니다.이렇게 보답하리라! 13절 이하를 봅시다.시인이 생각하고 있는 보답의 방법을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찬송으로 보답하리라! 13절에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 을 부르며"라고 하였습니다.17절에도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여러 의 미가 있겠지만 '구원의 잔'과 연관시켜 보면 여기서는 찬송입니다.그 찬송 은 내용은 '구원의 잔','감사의 제사',그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름'이었 습니다.구원과 감사와 거룩한 이름을 내용으로 한 찬송을 드리겠다는 것입니다.하나님은 찬송의 하나님이십니다.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고 찬송 을 받으시기 좋아하십니다.
둘째,서원한 것을 갚으리라! 14절에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의 서 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18절에도 "내가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을지라"라고 하였습니다.맹세가 사람 을 상대로 하는 것이라면 서원은 오직 하나님만을 상대로 해서 하는 것입니다.서원은 고난을 당할 때에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하면서 드리는 약속입니다."이 고난에서 건지시면 내가 그 은혜를 이러이러한 것으로 갚겠습니다" 라는 식의 서약입니다.함부로 서원하는 것은 삼가야 하지만 서원하는 것은 신앙의 새로운 각오와 결단을 표명하는 것이기에 유익하고 하나님께서도 기 뻐하십니다.그러나 그 서원이 이루어졌을 때는 반드시 갚아야 합니다.그렇 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속인 것이 됩니다.시인은 어떻게 하나님께서원했는지는 밝히지 않았으나 그 서원을 반드시 갚겠다는 다짐합니다.하나님과의 약속은 해로울지라도 지켜야 합니다.
셋째,감사제를 드리리라! 17절에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구약 성도들은 감사한 일이 생겼을 때는 제물로써 그 감사를 표현했습니다.신약의 성도들은 감사한 일이 생겼을 때 에 연보로써 표현합니다.감사의 연보를 드린다든지 주의 집에 필요한 물건 을 드린다든지 하는 것입니다.감사하면 마음으로 표현하면 되지 꼭 연보를 드려야 하는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마음으로 표현해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그러나 진정으로 감사한 마음이 생겼을 때에 그냥 있을 수 있겠습니 까 그런 정도의 감사라면 풍성한 감사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그래서 감사는 예물이 따릅니다.많고 큰 것이라야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천지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라고 했습니다.하나님은 물질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우리의 마음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세상적인 것으로는 결코 갚을 수는 없습니다.신령한 하나님께는 신령한 것으로만 만분지 일이라도 갚는 흉내를 낼 수 있습니다.그 것은 찬송입니다.서원을 이행하는 것입니다.감사하는 것입니다.감사의 예물 을 드리는 것입니다.이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것입니다.19절을 봅시다."예루살렘아,네 가운데서,여호와의 전 정에서 내가 갚으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하나님께만 드리겠다는 것이요 모든 사람이 보는 가운데서 공개 적으로 드리겠다는 것입니다.하나님의 하신 일을 간증하고 고백하는 뜻도 포함되어 있습니다.이 시인의 각오를 한 구절로 요약하면 9절의 말씀대로 "내가 생존 세계에서 여호와 앞에 행하리로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하나님 앞에서 살겠다는 것입니다. 시인은 고난 중에 기도하여 응답을 받았습니다.그리고는 신앙의 새로운 각오를 하였습니다.내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기도의 맛을 보았기 때문에 내 평생에 기도하리라.아니,기도하기가 좋아서 기도하리라.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갚으리라.찬송으로 보답하리라.서원을 이행하리라.감사의 제물을 드 리리라.하나님 앞에서 살겠노라고 외칩니다.시인처럼 사랑의 고백을 하고, 기도하기로 결심을 하고,은혜를 어떻게 보답할지 고민할 수 있자면,우선 기도부터 해야 합니다.기도하는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기도의 달,8월의 마지 막 주일을 보내면서 시인이 기도응답을 받고 한 결심을 살펴보았습니다.우리도 이런 각오와 결심을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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