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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직업관 (전9:10-12)

본문

여유의 생활이라는 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필요합니다. 오랫동안 생활의 어려움에 시달려 오다가 한 때 긴장도 풀고,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사하면서 즐거움을 가진다는 것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요즈음은 지나치게 여가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있어서 걱정입니다. 여가라고 하는 것은 학생들에게 방학 같은 것인데,일하기 위해서 여가가 필요하고, 더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을 위해서 방학이 필요한데, 이제는 놀기 위해서 일하는 풍토가 되었습니다. 쉬는 것이 아니라, 노는 것을 위해서 돈을 버는 것이 되었습니다. 놀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한데, 돈을 얻기 위해서 청소년이 강도짓같은 범죄도 하고, 무슨 짓을 해서라도 잘 먹고,잘 살면 된다는 이 병든 사회가 걱정입니다. 한탕만 잘하면 수 억을 벌 수 있는 때에 푹푹 찌는 더위에,성실하게 논밭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바보 같은 사회가 되었고,일하지 않고도 여유를 부리고 사는 사람이 능력있어 보이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세상을 사는 법을 가르쳐 줍니다. 기독자들 부터 이 말씀대로 산다면, 병든 사회를 고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성경은 일하는 것 자체가 복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과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과는 다른 것이 일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소망과 기회라고 합니다. “(전9:10) 무릇 네 손이 일을 당하는대로 힘을 다하여 할찌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음부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 이 말씀은 사람이 살아 있을 때에 최선을 다해 일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본문의 음부는 지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무덤에 들어가는 것, 곧 육신이 죽는 것을 말합니다.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일하는 것은 이 세상을 살아있을 동안에만 주어지는 특권입니다. 거꾸로 말해서 왜 하나님께서 나를 이 세상에 하루라도 더 두시는가 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살아도 살 의미를 잃어버리는 것이요, 하나님께서 곧 불러가실 것입니다. 자기 일을 찾는 것은 세상에 있으면서 자기 위치를 찾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자기의 존재가치를 찾는 것이 됩니다. 일이라는 것은 창조 때부터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축복입니다. 범죄한 인생에게 하나님께서 저주로 주신 것이 아니라, 그 일을 통하여 하나님을 찾게하고, 구원을 이루도록하기 위해서 일을 주셨습니다. “(창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이 약속과 명령은 창조 때만 주신 것이 아니라, 노아 홍수 후에도 주셨습니다. 이 세상을 힘을 써서 일해서 번성하고,충만하고,정복하고,다스리라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형샹대로 지음받은 사람에게만 주신 특권이요, 의무입니다.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이 권리와 행복을 송두리째 포기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새에게 먹을 것을 주셨지만,그 먹을 것을 새 둥지에 넣어두지는 않았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데 그것을 일이라는 수단을 통해서만 얻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일이 짐스럽고, 우리를 불행하도록 만드는 것은 아니라, 이 일이 행복이요, 살아있다는 의미입니다.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은 일하기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일함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얻게되고,일함으로서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가질 뿐 아니라,일로서 구원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게으르거나 놀기 좋아하는 사람이 믿음 좋은 사람 있습니까 성경을 살펴봐도 일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불러서 하나님의 일도 시켰지 할일없이 노는 사람, 게으른 사람을 부른 적이 없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아벨도, 요셉도, 모세도, 다윗도, 엘리사도, 다니엘도, 사도 바울도, 베드로,야고보,요한,마태도 다 자기 맡은 곳에서 성실히 일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일에 대한 시각을 달리 해야 합니다. 청교도들의 삶은 바로 믿음의 삶인데 그들이 얼마나 열심히 일했습니까 미국이라는 부국을 만드는데 신앙으로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성경에서는 어떻게 가르칩니까
첫째, 무슨 일이나 최선을 다하라고 가르칩니다. “(전9:10) 무릇 네 손이 일을 당하는대로 힘을 다하여 할찌어다” 네가 맡은 일이라면, 최선을 다하여 일하라는 말씀입니다.과연 나는 이 말씀대로 하는지. 목회자도, 농부도, 직장인도, 학생도, 군인도, 주부도, 노인이나 아이나 누구든지 제가 맡은 일이 있습니다. 이 일에서 최선을 다하여 일하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어려운 말씀입니다. 일에 대한 결과,보상이 있어서 보람이 있다고 느껴지거나, 쉽게 마음이 끌리는 적성에 맞는 일이야 누구라도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제 마음에 맞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맡기워진 일이 보람이 없다고 여겨지는 일이나, 많은 힘이 드는 일이나, 하고 싶지 않는 일에도 맡겨진 일이라면 네 최선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네 손이 닿은 일이라면 최선을 다하라는 말씀을 기억합시다. 물론 우리에게 직업이나 일을 선택할 자유가 있습니다. 보다 제게 맞는 일이나,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일단 그 일을 시작했으면,어떤 일이라도 죄 짓는 일니 아닌 다음에는 일하는 데에 보람이 있는 것으로 알고,또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알고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데서 행복도 있고, 구원도 여기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나 어려움은 다 있습니다. 어떤 일이나 힘든 고비는 다 있습니다. 그러니 일을 바꾸는 것보다는 우선 주어진 일에서 있는 힘을 다해 힘써 일할 것을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현대인들,더우기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까지도 일을 차별하고, 직업을 차별합니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병든 점입니다.그러나 차츰 더럽고, 힘들고, 하기 싫어 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대우 받는 때가 오는 것 같습니다. 마음에 드는 일이면 열심히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놀았으면 놀았지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 쉽게 벌려고 하고, 쉽게 성공하려고 하지만 이래서 갖가지 추악한 사건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백영희 목사님께서는 직업이 없으면,골목이라도 쓸라고 하셨습니다. 직업을 부끄러워할 것이 아니라 게으름을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최선을 다하는 그것이면 최고의 직업, 최상의 직업이다’ 이것이 미국을 일으킨 청교도 정신입니다.
후진국 국민일수록 자기 직업에 대한 열등의식을 갖고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직업에 차별이 없고,자신의 일에 열등의식을 갖지 않고 성실히 일하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는 기독교 사상을 받아들인 선진국에서 많습니다. 어떤 더럽고 험한 일도 하는 사람이 필요하고, 귀하게 보이는 일도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다 대통령이면 어떻게 됩니까 이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하는 지체의 원리입니다.우리 지체 가운데 필요치 않은 것이 있습니까 천히 보이는 그것이 우리 몸이 더 요긴하고 소중한 것입니다. 일에 대하여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일하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은 어떤 일이든지 하나님께서 주신 천직으로 알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일합니다. 세상에서 맡은 자신의 일은 대충 대충하면서 교회에 나와서 봉사도 많이하고,예배에 열심히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설령 있다고 해도 그 사람은 정상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은 아닙니다.하나님께 충성을 하는 사람은 세상에 자기 맡은 일에도 충성을 다 해야 합니다. 건강하다면,무엇이나 할 수 있는 사람, 아니,몸이 약해도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찾아서 성실히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사람이 믿음 좋은 사람입니다. 늙어 힘이 없어도, 병들어 누운 자리에서도 할 일이 있습니다. “(골3:22)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골3:23)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하고 사람에게 하듯하지 말라”
두번째는, 모든 일을 즐겁게 하라는 것입니다. 무엇이 세상에 살면서 가장 나은 것, 좋은 것입니까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 선을 행하는 것, 자기의 일을 즐겁게 행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전3:12)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전3:13)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을 또한 알았도다 우리가 하는 일이 전적으로 즐거운 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때때로 힘들고,하기 싫은 일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그러나 그 일을 하는 사람이 최선을 다 할 때에 그 사람은 생활을 즐겁게 살아가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쁘게 하는 사람입니다. 일 자체가 자신을 즐겁게 해준다고 기대하지 말고,최선을 다해 일함으로써 즐거워해야한다고 말씀합니다. 솔직히 일이 즐거우려면 몇 가지 조건이 맞아야 합니다. 하는 일이 하고 싶은 일이든지, 성과가 있는 일이든지, 일한 댓가가 만족스럽든지 해야 합니다.이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그러나 이같이 자신의 일에 만족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우리가 즐거워할 수 있는 일을 하는데 즐거워하라 하신다면 무슨 권면이 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하는 일이 만족할 만한 일이 아닐 때에도 즐거워하는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해서 이 권면을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죄 짓는 일은 결코 할 수 없습니다. 죄 짓는 일을 하면서 웃고 즐거워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나 죄 되지 않는 일을 선택하여 일할 때에는 그 모든 일이 하나님께서 주신 일로 알고, 거기서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을 깨닫고,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하찮은 일을 하면서도,다른 사람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하면서도 즐겁게 일하는 사람이 많습니다.그 사람은 그 즐거워하는 것 부터가 복을 받은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을 보는 것 만으로 힘이 되고 기쁨이 될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의 노동관, 직업에 대한 의식도 이러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 가운데도 이런 삶을 사는 사람이 많은데,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그러해야 할 것입니다. 모든 일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신 것을 깨닫고,그 일의 성과 보다는 그 일에서 믿음을 이루는 구원을 이루는 것을 생각할 때에 우리는 사명감을 가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 곳에 세워 놓았구나.나를 이곳에 세워 놓으신 하나님께서 내게 할 일을 주신다.여기에서 예수 믿는 사람이 어떤 삶을 사는지 많은 사람에게 나타내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서 전도가 되도록 하시기위해서 나를 이 곳에 있도록 하시는구나” 깨달으니 더욱 더 충성스럽게 일하는 사람이 되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일입니다.
셋째로, 일의 결과는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일의 결과를 아주 중요시 합니다.결과가 나타나지 않은 일은 소용없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도 일의 결과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 결과는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자신이 열심히 하지만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복되게 하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너무 결과에 집착하다보면 하나님께서 하실 일까지 내가 월권, 침범하는 죄를 짓게 됩니다. 성경에서 무엇이라 말씀합니까 (전9:11) 내가 돌이켜 해 아래서 보니 빠른 경주자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유력자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라고 식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명철자라고 재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기능자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우연이 이 모든 자에게 임함이라 발이 빠르다고 먼저 골인하는 것은 아니고, 힘이 좋다고 반드시 싸움에 이기는 것은 아닙니다. 지혜가 많다고 해서 양식을 얻는 것이 아니고, 머리가 좋고, 지식이 많다고 반드시 성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솔로몬같이 지혜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러나 그는 그의 지혜를 과신하다가 말년에 타락했고,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습니다. 삼손같이 힘센 자가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그의 최후는 그 힘 때문에 비참했습니다. 사울은 왕위를 사십년을 누렸지만, 그 왕위 때문에 결과가 비참했습니다. 우리의 경우도 그러합니다.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정신 없이 빨리 달렸다고해서 지금 좋은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니고, 남보다 똑똑하다고 그것으로 출세한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 결과는 이루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맡기는 삶은 순종하는 삶이기도 합니다. 또한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바로 살았느냐, 아니냐, 성공하는 삶을 살았느냐, 아니냐 하는 것은 지금 다 모릅니다. 그것은 훗날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판단이 날 것입니다. 한약방하는 부부가 돈도 많이 벌었고,아들을 유학 까지 보냈으니 성공하지 않았다고 누가 봤겠습니까 그 아들 자랑도 많이 했겠지요.그러나 그 결과가 그 아들에게 맞아 죽을 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다 평가되는 것이 아닙니다. 훗날 주님 앞에 섰을 때에 그 평가가 온전한 평가입니다. 우리 중에는 오히려 세상에서 못난 사람, 느린 사람, 저 같이 낭패와 실패를 경험한 사람, 약한 사람이 더 많습니다. 얼마나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까 일의 결과는 하나님께 달려 있고,성공의 여부는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나타나는 평가가 완전한 것입니다. 이러니 우리 할 일은 간단합니다. 맡겨 주신 일에 성실히, 최선을 다해서 일하는 것,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 뿐입니다.그 뒤에 높이시는 이도 하나님,성공하게 이끄시는 이도 하나님이십니다.이 결과는 하나님의 하실 일입니다. 모든 일에는 시기와 우연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시기란 때를 말하는 것인데,하나님께서 정하신 때,높이시는 때,이루시는 때가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또 여기 우연이란 하나님의 정하신 예정을 말합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의 정하신 뜻을 따라서, 또 이루어질 때가 될 때에 그 결과가 나타나는 것을 말합니다. (전3:1)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넷째로, 일을 놓아야 할 때를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들이 열심히 일을 하는 때도 있지만 갑자기 일하지 못하고 쉬어야 하는 때,일을 놓아야 하는 때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전9:12) 대저 사람은 자기의 시기를 알지 못하나니 물고기가 재앙의 그물에 걸리고 새가 올무에 걸림같이 인생도 재앙의 날이 홀연히 임하면 거기 걸리느니라 물고기가 죽을 날이 되면 그물에 걸리고,새가 죽을 날이 되면 올무에 걸리듯이 우리도 죽을 날이 되면 홀연히 죽음의 그물에 걸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는데 거부할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아무리 더 일을 하고 싶어도 주님이 부르시는 그 날에는 하던 일을 놓고 주님 앞으로 가야 합니다. 자기가 하는 일이 아무리 중요하고 위대한 일이라도 그 날이 되면 두고 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 날이 오면 우리 앞에 두 가지 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는 결산하는 것이고,또 하나는 그대로 선악간에 평가받는 일입니다. 그 과정을 거치는 것이 우리에게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그저 이 세상을 산 것으로 다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지나왔든지 결산과 평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두렵고 떨리는 일입니다. 이 일이 끝나면 우리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사는 그 나라에서 안식하면서 하나님을 감사,찬양하면서 잔치에 참여할 것입니다.이것이 우리 소망입니다. 비록 세상 살이가 고달프더라도 이 소망을 가지고 참고,희망을 잃지 맙시다.주님이 예비하신 곳이 우리 살 곳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부르시는 그 날 까지는 이 세상에서 주님께서 맡겨주신 일에 최선을 다하여 일하다는 것이 우리의 자세여야 합니다. 오늘날 이 사회가 병들었으나 낙심할 이유 없고,실망할 이유 없습니다.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성경에 가르쳐 주신 대로 그 원칙대로 힘이 들어도 죄 짓는 일이 아니면 열심으로 일하면 됩니다.이렇게 기독자들이 자기 맡은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산다면 우리 사회도 치료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일들이 급속히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가 노동관을 바로 가져야 합니다. 직업의식을 바로 가져야 합니다. 일 하기 싫은 자는 먹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일이든지 최선을 다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결과를 하나님께 맡깁시다. 자신의 일에 열등감을 가지지 말고 사명감을 가집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서 영광 받으시기를 기뻐하시고,우리를 통해서 당신의 뜻을 이루시려고 하십니다. 얼마나 감격스러운 사실입니까 얼마나 귀한 사명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귀한 자녀입니다. 그 일의 가치를 세상에서는 나타나는 열매에 두지만, 우리는 그 일하는 과정에 둡니다. 일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자기라는 사람과 행위의 온전한 변화, 곧 구원에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 설 때에 우리의 모든 것이 다 드러날 것인데 그 때의 결산, 평가가 영원한 것이고,중대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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