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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성탄절 (마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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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은 성탄절을 전 세계적으로 12월 25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날짜에 예수팀이 태어나셨다는 정확한 근거는 없습니다. 때문에 동방정교에서는 1윌 6일을 성탄절로 지키고 있기도 합니다. 정확한 아기 예수님의 탄생일은 알려지지 않고 있으며, 또 성탄절이 실제로 언제부터 교회에서 지켜졌는지도 알려지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4세기말, 동부지방의 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동방박사의 경배를 기념하기 위한 예배를 바로 12월 25일과 1월 6일에 드렸다는 것 밖에는 특별한 기원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12윌 25일을 예수님의 탄생일 보다는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로 생각하는 것이 더 옳습니다. 요즈음은 기독교인이건 그렇지 않건간에 모든 사람이 즐겁게 생각하는 하나의 공휴일이요, 단순한 축제가 되어버린 성탄절이지만, 본래 성탄절은 떠들썩하거나 화려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오늘날의 성탄절은 믿는 사람들의 진정한 기다림과 기쁨의 날이기 보다는 거리의 백화점이나 레코드 가게에서, 선물용품 가게에서 더욱 기다려지는 날이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보다는 산타크로스 할아버지가 더 유명한 날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더군다나 우리 그리스도인들 중에서도, 성탄절을 맞이하는 마음 속에서 신앙적인 진지함보다는 세상 풍조에 횝쓸린듯한 들떠 있는 마음과, 아기 예수님의 탄생하신 의미를 잃어버린 마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심각한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세상적인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차 버린 성탄절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한 번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주님은 떠들썩하고 요란한 분위기 보다는 고요한 밤이 가져다 주는 차분하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순박한 목자들과 같은 믿음을 가진 성도들의 축하를 받기 원하십니다. 구세주를 간절히 염원했던 저 동방의 박사들파 같은 축하를 받기 원하신다는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 이제 이러한 반성 속에서 오늘 우리는 어떠한 성탄절을 맞이하고 보내야하는지 본문을 중심으로 살퍼보겠습니다.
1. 예수님만을 찾고 구하는 성탄절이 되어야 합니다. 어떠하신 예수님을 찾고 구합니까 왕이신 그리스도 예수입니다. 동방박사들이 말합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2절) 이 말 속에 성탄절의 진정한 의미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왕이시되 '유대인의 왕'이라는 것이요, 성탄은 모든 믿는 성도들의 주로서 오신 예수님을 인정하고 그 분만을 바라보는 날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구주로서 오셨다는 사실을 마음에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많은 부분들에 있어서 우리의 모습은 그렇지 못합니다. 믿음을 하나의 장식처럼 생각하고 교회에서 예배드릴 때는 주님으로 고백하나, 교회를 떠나 각자의 삶으로 돌아갔을 때에는 잊혀진 주님이 되고 만다는 사실입니다. 그 단적인 증거가 바로 성탄절을 맞이하는 교회와 성도들의 모습속에 있습니다.
예화)어느 성도의 가정에서 성탄절을 몇 일 앞두고 있었던 일입니다. 어머니가 여덟 살 먹은 아들과 네 살 먹은 아들과 함께 거실에서 탁자 위에 도자기로 만든 구유셋트를 설치하면서 이것 저것을 지시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을 구유 뒤에 놓아라." 이건 이렇게 놓고 저건 저렇게 하라고 지시하면서, 자기의 생각대로만 구성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셋트를 구성하는 것이 어설프다는 생각이 들어 아이들을 나가 놀라고 내보내고는 보기좋게 다시 배열을 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을 구유 양쪽에 놓고, 목동과 동물들은 요셉의 오른쪽, 동방박사들은 먼 사막의 여행 후 방금 도착한 것처럼 마리아의 왼쪽에 정렬하고는 '보기 좋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저녁이 되어서 거실에 다시 가보니, 모든 인물들이 작은 원을 그리며 안쪽으로 얼굴을 향한 채 촘촘히 배열되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엄마는 화가 나서 "얘들아! 너희들 왜 구유 장면을 바꾸었니" 하면서 아이들을 불러 야단을 쳤습니다. 이 때 큰 아들이 말했습니다. "아무도 예수님을 보지 않기 때문에 그랬어요." 이 말을 듣고는 뭔가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 생 장면을 다시보니 갑자기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마가 배치했던 모습은 모든 인물들을 사람이 감상하기에 좋도록 해 놓았었는데, 아이들이 배치한 모습은 촘촘히 둘러싼 인물들의 중앙에 작은 구유가 있고 모든 눈들은 아기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성탄절은 바로 이렇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모든 행사도 우리의 구주로서 약속대로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바라보기 위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부분들이 잘못되어 있습니다. 성탄을 축하 한다고 하면서 행사를 준비하지만, 우리 끼리의 즐거움을 위해 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우리의 구주로서 오신 주님께 경배드리기 위함이 아니라 사람들의 즐거움을 위한, 행사를 위한 행사로 전락하고만 모습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동방박사들의 질문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시기를 바랍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저들은 확신에 가득찬 마음으로 이와 같이 묻고 찾았지만,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의 마음이 무엇으로 인하여 기뽐니까 명절입니까 아니면 주님께서 구주로 오심입니까 평생을 예수님만을 찾고 구해야 하겠지만, 오늘 성탄절 하루는 자칫 축제의 분위기 속에서 잊어버리기 쉬운 예수님의 탄생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고,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이심을 고백하며, 주님만 바라보는 시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성탄절의 분위기에 도취된 어머니의 모습보다, 우리는 어린 아이들의 모습처럼 성탄절을 있게 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2. 예수님을 경배하는 성탄절이 되어야 합니다. 표면적으로 예수님을 찾고 구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교회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통칭할 때 두 종류의 교인들이 있습니다. 1 동방박사들과 같은 교인들이 있습니다. 동방박사는 정확히 몇 사람인지 알 수 없습니다. 성경이 그 숫자에 대해 기록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후대의 전설에 이들의 이름이 '카스파르, 멜키을, 발타잘'이라 하고있고, 세 가지 선물을 근거로 세 명일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이지, 실상은 이들의 숫자가 열둘, 흑은 열넷 이라고 하는 전설도 있습니다. 이들은 당시 (매기(Magi)라고 불리워졌는데, 페르시아에서 사제직을 담당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이스라엘로 말하자면 레위 족속과 같은 사람들이었으며, 경건과 지혜의 사람들로 페르시아 왕들의 교사나 지도를 담당했으며, 예언자와 같은 사람들로서 철학이나, 의학이나, 자연과학에 전문가들로서 꿈을 해석하는 사람들이기도 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기도에 힘쓰는 가운데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확신으로 가득찬 경건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헤롯과 같은 교인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7-8절까지를 보십시오, 헤롯이 박사들을 가만히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말합니다. "가서 아기애 대하여 자세히 알아 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그런데 그의 본심은 무엇이었습니까 13절과 16절에 보면 그가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그가 예수님을 살해했다면 어떤 결과가 벌어졌겠습니까 인류의 구원이 사라졌을 것이요, 오늘 바로 나 자신의 구원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헤롯과 같은 교인이 누구입니까 헤롯이 제사장과 서기관들에게 예수님의 탄생을 물었던 것처럼, 교회 안에 있고 말씀은 들으나 바르게 서지 못하여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실족케하여, 그 사람에게서 예수 그리스도를 빼앗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뜻깊은 성탄절에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 보아야 하겠습니다. 내가 어떤 모습으로 있습니까 헤롯입니까 동방박사입니까 오늘 동방박사들의 경배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함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11절) 황금과 유향과 몰약은 박사들의 본 고장에서 나는 토산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달란트로써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에게 있는 재능을 부러워 할 것이 아닙니다. 내게 있는 것으로, 경배하는 마음으로 봉사할 때 그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보배요, 황금과 유향이요, 몰약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최선을 다하는 것이요, 그 최선은 오직 주님만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모친 마리아와 함께 계셨으나 오직 아기께만 경배하였다 하였습니다. 이것이 참된 경배입니다. 목회자에게 잘 보이기 위함도 아니요 인정받기 위함도 아닙니다. 다만 주를 위해 충성하는 그 진실된 마음과 모습으로 드리는 봉사와, 충성과, 예배가 참된 경배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문 9절을 주목하십시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이가 있다는 소리에 헤롯과 온 예루살렘이 소동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단 한 사람도 박사들을 따라 나선 사람이 없었습니다. 소동에 그쳤습니다. 여기에서 오늘날의 성탄을 맞는 사람들의 원형을 보게 됩니다. 떠들썩했지만 예수님에로 나가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오늘날 이 축제의 분위기 속에서 예수님을 찾는 자가 누구입니까 백화점이 예수님을 찾고, 레코드 가게가 캐롤로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까 과연 그렇습니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스스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의 마음이 분노하지 아니합니까 왜 휩쓸리고 있습니까 왜 세상에 지배당하고 있습니까 적어도 우리 만큼은 의미있는 성탄을 맞이해야 하겠습니다. 들떠서 흥청거리는 것이 아니라 기쁨 중에, 주님이 오신 이유를 보다 더 분명히 확신하고, 다만 주님을 경배할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온 성도가 함깨 가장 크게 기뻐하는 성탄절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적인 흥분이 아니라 믿음 안에서의 기쁨입니다. 주님이 잊혀지지 않고 더 새롭게 기억되는 성탄절을 보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 말씀을 보니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고, 누가복음의 기록에 의하면 (마굿간)에서 태어나신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증거하기를 예수님이 비천하고 가난한 자, 소외받는 자들을 위해서 오셨다고 증거합니다. 실제로 주님은 자신의 생애 대부분을 죄인들이나, 가난한 자나, 병든 자나, 세리들과 같은 사람들과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합니다. "저희가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10절) '저희가' 하였습니다. 이 말은 작게는 동방박사 자신들이지만, 이보다 넓은 의미로는 '모두'라는 의미입니다. 주님을 찾아온 모두가 기뻐하였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가난한 자나 부요한 자나, 비천한 자나 존귀한 자나, 병든 자에게나 건강한 자 모두를 위해 주님은 오셨다는 것이요, 모두가 함께 즐거워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는 유일한 방법이 무엇입니까 나누는 것입니다. 기쁨을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모두가 다 한 목소리로 주를 찬양하고 서로 격려하는 것입니다. 결단코 가난하거나 비천하고 소외 받는 사람들이 이 성탄의 기쁨에서 제외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매사에 함께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나 입니까 나를 포함하는 우리입니까 주님의 오심이 나 하나만을 위한 것이 된다면 그것은 기쁨입니다만 가장 큰 기쁨은 아닐 것입니다. 오늘날과 같이 갈등이 심하고 고민이 많은 시대일수록 무엇이든지 나누는 것이 필요함을 깊이 기억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이유를 갈 4:4-5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은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실 준비가 다 되어서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탄은 하나님 편에서 보면 약속의 성취이고, 우리 사람의 편에서 보면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따라서 성탄을 맞이할 때마다 이 의미를 재확인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는 우리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성탄절을 먹고, 마시고, 즐기는 날 정도로만 착각하고 있는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우리들에게 주어진 사명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만의 즐거움에서 벗어납시다. 모두 함께 손에 손 잡고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며 주님만 경배하는 성탄이 되게합시다. 온누리에 참으로 주님의 탄생과 우리의 구주되심을 기뻐하는 그 기쁨이 충만하게 되기를 늘 힘쓰고 노력하는 여러분들이 되십시오, 이 노력을 결심하는 오늘, 이 성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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