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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생활자세 (약2:1-13)

본문

본문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의 바람직한 생활자세를 엿볼 수 있습니다.
I.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라(1-4).
오늘날 사회 풍토는 외적 조건들만을 근거로 인간을 너무 쉽게 평가하는 경향이 짙습니다. 한 인간을 그가 지닌 인격, 복잡 미묘한 내면의 성품에 대한 포괄적인 이 해가 없이 단지 외양만으로 평가한다는 것은 인간을 비인간화 시키고 하나의 물건으 로 전락시키는 죄악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는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 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1.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아야 할 이유
1)모든 인간에게 존엄성을 부여하신 여호와 하나님이므로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부여받은 자로서 하나님 앞에서 모두 평등합니다 그리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습니다(창2:26-27). 그래서 인간은 존엄 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엄한 생명체임을 자각하는 동시에 타인도 존엄한 존재로 대접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 내면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그 만두고 세상에서 지니고 있는 조그마한 차이로 차별하고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2)예수님은 가난하고 천대받는 자들의 이웃으로 오셨으므로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간들이 함께 이 세상을 다스리며 평등한 삶을 공유하도록 주셨는데 인간은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사회적 온갖 불평등의 구조악이 생기고 말았 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빈부귀천으로 나뉘어 서로가 차별하고 적대시하는 죄악된 모순이 극에 달한 시대에 이 세상에 오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름다움 형 상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인간다운 대접을 받지 못하는 자들의 친구가 되셨습니다(눌4:18).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들은 잃어버린 인간 존엄성을 다시 회복하여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는 과오를 이제 그쳐야 합니다.
2.교회 안에 평등을 이룩하는 길
1)모든 사람을 형제로 맞아들임 본문에서 야고보가 증거하는 것처럼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인간을 외모로 판단하는 어리석은 죄악이 자행됩니다. 특히 도시화된 교회일수록 가난 가운데서 새로운 소망을 찾아 나아오는 자들을 따뜻이 수용해 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요한자 들이 많은 교회에는 가난한 자들이 선뜻 나갈 엄두를 못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난한 자나 부요한 자나 함께 삶을 공유함으로 진전한 평등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모든 사람들이 진실로 평등한 신앙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사람을 외모로 평가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2)복음으로 하나 됨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모든 사람들을 한 형제로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복음으 로 거듭난 사람들은 모두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형제자매가 됩니다(행2:44-4
6). 가난한 자나 부요한 자나 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자리가 교회입니다.
II.정의로우신 하나님(5-7)
1.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택하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십니다
(5) 본문 5절에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예수님의 복음은 `가난한 자와 억눌린 자들을 위한' 복음이었습니다. 눅4:18-19절에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 름을 부으시고." 또한 자신이 하나님의 사자인가 아닌가 하는 세례요한의 질문 앞에서 `가난한 자 에게 복음이 전파된다'(마11:5)라는 것을 요점으로 대답하셨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산상 수훈에서 마5:3절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 희 것임이요"(눅6:20)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자들을 찾아가서 힘있는 자들에 의해 상실된 마음을 회 복시켜 주시고 소중한 개성과 인격을 인좡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가난한 환경으 로 인하여 체념과 저주 속에서 살아가던 자들이 자신의 삶의 소중성을 깨닫고 하나님 께서 주신 인격의 고귀함을 다방면으로 왈발하게 일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2.하나님은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기업을 주십니다
(5) 본문 5절에서 "하나님이.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 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 이것은 복음을 받아들인 자들이라면 빈부 귀천을 무론하 고 똑같이 적용되는 말씀입니다(롬1:16). 그러나 부자는 주님을 마음으로 사랑하고 모시기가 어렵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기득권을 가지고 있었던 부자나 바리새인으로부터 예수님은 배척을 당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가난하고 억압을 당하는 자들은 예수님을 환영하였고 영접하였습니다. 어쨌든 가난하지만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하늘의 소중한 선물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마음의 평강'과 `내세의 소망'과 하나님이 내리시는 그 외의 신령한 `축복'들이 있습니다.
3.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훼방하는 자들을 심판하십니다. 초대교회 성도들 대부분이 가난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고전1:26). 그리고 믿지 아니하는 부자들이나 권세자들로부터 핍박과 많은 시련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는 것은 곧 그리스도를 핍박하는 것이므로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이 행한대로 보응하실 것입니다(롬2:6).
III.크리스챤의 생활 강령(8-9)
1.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1)누추한 이웃을 멸시해서는 안됩니다 마5:46절에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2)불의한 이웃을 사랑해서는 안됩니다 막3:35절에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자는 성도의 이웃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어쩔 수 없이 넘어져 죄를 범하고 사회로부터 소외된 자들은 친 구로 삼으셨지만, 개인적인 영달을 위해 민중들을 고의로 억압하고 수탈한 바리새인 과 사두개인들은 이웃이 아니라 오히려 적으로 간주하였습니다.
2.자기를 사랑할 줄 모르는 자는 이웃도 사랑할 줄 모릅니다
1)자기 사랑은 이웃 사랑의 기초가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모순 덩어리인 우리들을 끝까지 사랑해 주시므로 말미암아 구원의 자리에 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같이 우리도 자신의 부족과 연약을 용납하고 인정 하는 자가 될 때에 이웃의 실수와 잘못도 용서해 줄 수 있는 사랑의 사람이 될수 있는 것입니다. 실수가 잦고 쉬 범죄하는 자신을 용납하셨다는 사실을 강하게 인식할 때에 성도들은 이웃을 쉽게 용서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2)자기 사랑은 이기주의로 흘러서는 안됩니다. 자기 사랑이 이웃 사랑의 토대가 될찌언정, 이기주의나 자기 중심주의로 흘러서는 안됩니다.
IV.자유의 법의 기초(10-13)
1.율법은 단 한 가지라도 지키지 못하면 모든 것을 어긴 것과 같습니다
2.그리스도인의 율법은 구약 율법 조문들과는 달리 자유의 율법입니다 구약 율법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이었습니다만 율법의 본래 의도를 잊어버리고 외적인 형식에 치우침으로 그 의미가 퇴색되고 말았 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다시 율법의 본래 목적이었던 하나님과 이웃 사랑의 새계명을 주셨던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율법의 조문에 얽매여서 중요한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만 이제 주님 께서 주신 사랑의 계명은 율법의 어느 항목에도 매이지 않고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 을 실천함으로 저절로 율법을 완성시키는 놀라운 자유를 얻은 것입니다.
3.자유의 율법이 사랑에 기초하듯이 심판도 그 사랑의 실천에 따라 정해 집니다 히9:27절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라고 하였습니다. 이 심판에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살아온 신자들은 큰 칭찬과 상급이 있을 것입니다.

<결론>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대로의 삶입니다. 오늘 말씀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잘 헤아려 사랑으로 주님을 온전히 섬기고 이웃을 대하는 복된 사랑 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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