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생활철학 (벧전2:11-12)
본문
미국의 나이애가라 폭포가 그렇게 유명합니다. 물이 떨어져 내리는 모습을 보면 참 장관입니다. 시원스럽고 장엄하고 볼 만한 구경거리입니다.
그런데 물줄기가 그렇게 높은 데서 시원스럽게 떨어져 내리지만 막상 폭포의 상류에 올라가 보면 아주 조용한 연못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거기서 뱃놀이를 하면서 평화스럽게 즐깁니다.
그런데 그 물이 하류로 내려갈수록 물살이 빨라집니다. 거기서 좀더 내려가면 물이 급류로 바뀌어서 나이애가라 폭포로 떨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뱃놀이를 하는 연못에 가 보면 겹겹이 줄이 쳐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줄에는 “이 선을 넘으면 위험하니 넘지 말라”는 경고문을 붙여 놓았습니다. 사람들은 재미있게 놀다가도 그 선이 있는 곳까지 왔다가는 정신을 차리고 돌아갑니다. 그 선이 이를테면 한계선이고 통제선입니다. 그 선은 사람들로 하여금 안전하도록 지켜 주는 생명선인 셈입니다. 사람들이 그 선을 넘지만 않으면 사고가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 신앙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에게도 이 한계선이 있고 통제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신앙인에게는 영적이고 윤리적이고 신앙적인 한계선이 있습니다. 신앙인은 이 선을 넘지만 않으면 세상을 안전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보면 사람들이 종종 이 통제선을 넘어가기 때문에 세상에서 문제가 생기고 그래서 고난을 받고 아픔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인은 한 가지 지니고 살아가야 할 정신이 있습니다. 그것이 신앙인의 생활철학입니다. 사람이 이 신앙 신조만 지니고 살면 세상이 아무리 속된 세상으로 전락할지라도 그 통제선을 지키며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베드로는 바로 이 점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 베드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가리켜서 행인이라고 했고 나그네라고 했습니다. 행인과 나그네는 잠깐 지나가는 사람입니다. 여관에 무물러도
1,2년 머물러 있는 사람이 아니고 하루 이틀 묵었다 가는 사람입니다. 베드로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을 가리켜서 나그네와 행인이라고 했습니다. 잠깐 살다가 가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나그네에세는 하나의 정신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그네의 생활철학입니다. 베드로는 본문에서 그것을 네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들이 가져야 할 생활철학입니다.
1. 청빈 사상입니다. “(벧전2:11)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욕심을 버리라는 말이고 탐욕을 버리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모든 문제들이 유발됩니다. 사람이 욕심이 많으면 반드시 문제가 생기도록 되어 있습니다. 나그네는 무엇보다도 짐이 가벼워야 합니다. 여행하는 사람들을 보면 어떤 이는 짐이 너무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행하는 데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무슨 물건을 그렇게 많이 샀는지 짐 보따리가 너무 많습니다. 그러니까 여행을 효과적으로 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지닌 것이 많고 더 지니려고 하면 반드시 문제가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이 시대의 특징이 바로 너무 많이 지니려고 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툼이 일어나고 마음들이 불화하고 정신이 병이 들고 탐욕은 더 커지고 그래서 온갖 갈등들이 유발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욕망과 탐욕은 한이 없습니다. 돼지는 미련하게 먹는 것같이 보여도 자기 양의 80% 이상은 먹지 않는다고 합니다. 돼지가 배탈이 나지 않는 것은 위장이 좋아서가 아니고 적당히 먹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학은 자기 양의 40% 이상은 먹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학이 그렇게 날씬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자그마치 자기 양의 150%를 먹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인간의 세계가 이렇게 복잡하고 문제들이 많은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는 엄밀하게 보면 순교가 없는 시대입니다. 누가 예수 믿는다고 죽이는 사람이 없습니다. 핍박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순교의 시대는 지났습니다. 있다면 오늘 같은 세상을 청빈하게 살려고 애쓰는 마음이 순교의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청빈하게 살려고 하다 보면 얼마나 유혹이 많고, 불이익이 많고, 그 유혹을 뿌리치며 살아가기가 얼마나 힘이 들고, 자기 자신가 싸우느라고 얼마나 갈등이 많겠습니까 그래도 청빈하게 살려고 고집스럽게 수고하고 갈등들을 무릅쓰고 살아가는 그 수고의 삼이 바로 오늘의 순교의 삶이 것입니다.
특히 오늘 같은 시대에 물질에 대한 유혹이 얼마나 큽니까 물질이라는 것은 이상스럽게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힘이 있습니다. 마력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그 앞에서 모두 정신을 잃고 이성을 잃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청빈의 철학이 없으면 탐욕을 부리게 되고 결국 실수하게 됩니다. 또한 추해지는 것입니다. 지금 전직 두 대통령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얼마나 추합니까 이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국내문제가 아니고 국제적으로 추한 큰 망신입니다. 누가 동정을 해줍니까 대통령을 지냈으면 그것만으로도 영광인데 거기에 왜 불필요한 좋지 못한 돈이 그렇게 많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까 저는 지난 주일 청와대에 가서 주일 예배를 인도하고 왔습니다. 설교 말미에서 그런 말을 했습니다. 목회자로서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한 사람으로서 당부드리는 것은 마지막을 좀 깨끗이 끝내고 유종의 미를 거두어 주기 바란다고 말입니다. 언젠가 영국의 윌슨 수상이 임기를 마치고 나설 때 가방 하나만 들고 수상청을 나서는 모습이 방송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 모습에 영국 국민들이 아낌없는 박수로 떠나 보내는 모습을 인상 깊게 보았는데, 제발 임기를 마치고 청와대를 나설 때는 그렇게 가방 하나만 들고 나서는 모습을 천하에 좀 보여 주라고 했습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멋있는 모습이겠습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자꾸만 책잡히며 살아가는 이유가 이 철학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자꾸만 발목 잡히고 입막히고 그래서 할 말을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목숨은 살아 있으나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욕심을 버리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나그네로 세상을 잠깐 살다가 가는 삶을 더럽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생활철학 제 1조입니다.
2. 순결하라는 것입니다. “(벧전2:12)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순결하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가장 용기가 있고 힘이 있을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아무 거리낌이 없이 살아갈 때입니다. 우리들이 마음에 켕기는 것이 있으면 어쩐지 떳떳하지가 못합니다. 도적이 제 발 저린다고 했습니다. 보석을 밀수해서 몸에 지니고 들어오는 여행객은 어쩐지 그 발걸음이 보석을 밀수해서 몸에 지니고 들어오는 여행객은 어쩐지 그 발걸음이 어색합니다. 그래서 적발되는 것입니다. 운전하고 고속도로를 달릴 때 갑자기 교통 경찰이 나타나면 왠지 마음이 뜨끔합니다.
왜냐하면 속도를 위반해서 그렇습니다. 사람이 거리낄 것이 없으면 세상에서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발걸음이 당당합니다. 다니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습니다. 가서 그 나라 임금님으로부터 신임을 받아 마침내 고관으로 입신을 하게 됩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얼마나 모함을 하고 질투와 시기를 하는지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함에서 끝까지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순결성 때문입니다. 아무리 털어도 먼지 하나가 없었습니다. 만일 그때 다니엘이 책잡힐 일 하나만 있었어도 그는 여지없이 무너져 버렸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말씀하기를 “너희는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보면 어떤 경우는 인간이 짐승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들때가 있습니다. 요즘 일어나는 일들을 보십시오. 어른들이 유치원생들을 성추행했닥 하고, 동네 청년들 14명이 11살 난 동네 여자 아이를 그것도 불행한 아이를 집단으로 성푹행했다고도 하는데, 사람이 어떻게 그런 일을 저지를 수가 있습니까 그래서 사람들이 모두 분개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부분만을 보고 그것이 인간 모습의 전부인 것처럼 판단하고 실망해서는 안 됩니다. 인간의 진면목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극히 일부분의 모습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실 때 모두 그렇게 지으신 것이 아니고 인간의 내면 속에 거룩한 속성을 넣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거룩할 수 있는 자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록 몸은 이 땅에서 살고 있지만 인간은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생각하고 천국을 생각하고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그런 높고 성스러운 자질이 있습니다. 사람은 거룩을 지향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사람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각오만 하면 얼마든지 순결해지고 거룩하게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이 순결의 힘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오늘날 기업들마다 노사 관계가 복잡하고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있는데 여기데도 문제가 있습니다. 어떤 회사에서는 노동자들을 달래느라고 보너스를 더 많이 주고 그러는데 더 많이 준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업이나 단체나 국가나 협잡이나 하고 부정이나 저지르고 있으면서 돈만 많이 주고 열심히 일하라 하면 일을 합니까 기업들이 정당하고 명분 있고 옳은 일들을 해보십시오. 그러고 나서 “우리 모두 함께 절약하고 검소하게 살면서 하나 되자”고 해보십시오. 누가 반대하겠습니까 모두가 기쁜 마음으로 수고하고 노력해서 열심히 일할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가 이렇게 시끄러운 것은 순결성이 없어져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본문을 보면 사도 베드로가 말씀하기를 “(벧전2:12)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리”고 했습니다. 신앙인에게는 이 순결이 주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3. 박애 정신입니다. “(벧전2:12)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게 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박애 정신을 가지고 살라”는 말입니다. 사람이 청빈하고 순결해야 하지만 그것이 자신만을 위한 청빈이고 순결이면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합니다. 거기에 박애 정신이 들어가야 힘이 붙고 위력이 나타나게 됩니다. 여러분, 오늘 이 시대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지독한 이기주의입니다. 모두 나만을 위해서 살아갑니다. 이웃을 모릅니다. 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그런 마음들 속에 무슨 이웃을 생각하는 박애 정신이 깃들겠습니까 어떤 분이 요즘 대학생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서 대학생들의 의식구조를 조사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의식이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앞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무엇을 할거냐고 물으니까 85%의 학생들이 돈을 벌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돈은 벌어 무엇을 할거냐고 물으니까 82%의 학생들이 대답하기를 먼저 집부터 사 놓고 즐기겠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청년의 때는 순수해서 한창 꿈도 많고 이상도 크고 누구보다도 박애 정신이 있을 때인데도 오늘의 젊은이들은 이렇게 현실적이고 기성 세대적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아무리 똑똑하고 유능하고 잘 살고 입신을 하고 신앙이 좋아도 거기에 이 박애 정신이 없으면 그 인생은 빛이나 향기가 나지 않습니다. 슈바이처를 사람들이 그렇게 흠모하는 것은 그의 학식 때문이 아니고 그의 의술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가 얼마든지 편안하게 살고 누구보다도 유복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가장 소외되고 낙후된 검은 대륙에 들어가서 인생을 바치는 헌신의 생활을 하고 희생의 삶을 살아가는 박애 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진정한 가치는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의 값은 섬김과 나눔과 헌신과 봉사의 삶을 살아가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정말 성숙한 사람은 나만을 위해서 살지 않습니다. 사람이 나만을 위해서 살면 진정한 기쁨을 알 수가 없습니다. 진정한 기쁨은 봉사할 때 주어지고 헌신할 때 주어집니다. 오늘날은 독신녀들이 자꾸만 늘어나고 있습니다. 미국에는 결혼 적령기 여성 중에 독신녀가 37%나 된다고 합니다. 이 여성들이 왜 독신으로 살고 있는가 하면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누구를 위해서 일하고 봉사하는 일이 싫어서입니다. 귀찮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행복의 이치는 한 알의 밀알이 썩어질 때 나도 행복하고 남도 행복한 것입니다. 내가 썩지 않으면 나도 불행하고 남들도 불행해집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12절에서 “(벧전2:12)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게 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삶의 원리입니다.
4. 종말 의식입니다. “(벧전2:12)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했습니다. 여기 “권고하시는 날”이라는 말은 종말의 날입니다. 심판의 날을 말합니다. 그날을 기억하고 살라는 말입니다. 신앙인은 이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종말 의식 이것이 바로 역사 의식입니다. 신앙인은 언제나 그날을 의식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지난 주간에 5살 난 어린 아이가 고층 아파트에서 떨어져서 생명을 잃었습니다. 참 슬픈 일입니다. 심방을 가면서 머리를 싸매고 고통스러워하고 있을 그 젊은 부부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가서 보니까 그 부모가 참 훌륭했습니다. 아주 젊은 부부인데 아기가 더럽혀지기 전에 하나님께서 불러 가신 것 같은데 그 아이는 분명히 천국에 갔을 것이라고 확신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아이가 천국에만 갔다면 그것으로 위로가 된다고 말합니다. 그 생각이 바로 역사 의식이고 그 마음이 바로 종말 의식입니다. 신앙인에게 이 마음이 있는 한 그보다 더 큰 슬픔이 주어져도 극복할 수가 있습니다. 사람에게 이 마음이 있으면 세상 속으로 아무리 깊이 빠져 들어가도 한계선을 넘지 않게 됩니다. 신앙을 잊고 살다가도 그 마음만 있으면 어느 날인가 반드시 돌아오게 됩니다. 그것은 이 역사 의식과 종말 의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소중한 의식입니까 사도 베드로는 로마로 올라가서 고난 중에 처해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같이 당부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철학을 가지고 살라. 청빈하고 순결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사람들에게까지 박애 정신을 발휘하고 언젠가 이 땅을 심판하러 오시는 그날을 생각하면서 오늘을 슬기롭게 살라.” 얼마나 진지한 권고입니까 베드로는 어려운 고비를 넘기며 살고 있는 신앙인들에게 종말 신앙으로 권고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무엇보다도 이 생활철학이 요구됩니다. 신앙인들에게 이 신앙 중심이 없거나 약하면 중심을 잃고 헤매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그 모습이 만신창이가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가기는 참 힘이 들지만 그 힘든 삶을 극복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바로 순교의 삶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진지한 보상이 뒤따를 것입니다.
그런데 물줄기가 그렇게 높은 데서 시원스럽게 떨어져 내리지만 막상 폭포의 상류에 올라가 보면 아주 조용한 연못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거기서 뱃놀이를 하면서 평화스럽게 즐깁니다.
그런데 그 물이 하류로 내려갈수록 물살이 빨라집니다. 거기서 좀더 내려가면 물이 급류로 바뀌어서 나이애가라 폭포로 떨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뱃놀이를 하는 연못에 가 보면 겹겹이 줄이 쳐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줄에는 “이 선을 넘으면 위험하니 넘지 말라”는 경고문을 붙여 놓았습니다. 사람들은 재미있게 놀다가도 그 선이 있는 곳까지 왔다가는 정신을 차리고 돌아갑니다. 그 선이 이를테면 한계선이고 통제선입니다. 그 선은 사람들로 하여금 안전하도록 지켜 주는 생명선인 셈입니다. 사람들이 그 선을 넘지만 않으면 사고가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 신앙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에게도 이 한계선이 있고 통제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신앙인에게는 영적이고 윤리적이고 신앙적인 한계선이 있습니다. 신앙인은 이 선을 넘지만 않으면 세상을 안전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보면 사람들이 종종 이 통제선을 넘어가기 때문에 세상에서 문제가 생기고 그래서 고난을 받고 아픔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인은 한 가지 지니고 살아가야 할 정신이 있습니다. 그것이 신앙인의 생활철학입니다. 사람이 이 신앙 신조만 지니고 살면 세상이 아무리 속된 세상으로 전락할지라도 그 통제선을 지키며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베드로는 바로 이 점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 베드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가리켜서 행인이라고 했고 나그네라고 했습니다. 행인과 나그네는 잠깐 지나가는 사람입니다. 여관에 무물러도
1,2년 머물러 있는 사람이 아니고 하루 이틀 묵었다 가는 사람입니다. 베드로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을 가리켜서 나그네와 행인이라고 했습니다. 잠깐 살다가 가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나그네에세는 하나의 정신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그네의 생활철학입니다. 베드로는 본문에서 그것을 네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들이 가져야 할 생활철학입니다.
1. 청빈 사상입니다. “(벧전2:11)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욕심을 버리라는 말이고 탐욕을 버리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모든 문제들이 유발됩니다. 사람이 욕심이 많으면 반드시 문제가 생기도록 되어 있습니다. 나그네는 무엇보다도 짐이 가벼워야 합니다. 여행하는 사람들을 보면 어떤 이는 짐이 너무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행하는 데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무슨 물건을 그렇게 많이 샀는지 짐 보따리가 너무 많습니다. 그러니까 여행을 효과적으로 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지닌 것이 많고 더 지니려고 하면 반드시 문제가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이 시대의 특징이 바로 너무 많이 지니려고 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툼이 일어나고 마음들이 불화하고 정신이 병이 들고 탐욕은 더 커지고 그래서 온갖 갈등들이 유발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욕망과 탐욕은 한이 없습니다. 돼지는 미련하게 먹는 것같이 보여도 자기 양의 80% 이상은 먹지 않는다고 합니다. 돼지가 배탈이 나지 않는 것은 위장이 좋아서가 아니고 적당히 먹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학은 자기 양의 40% 이상은 먹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학이 그렇게 날씬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자그마치 자기 양의 150%를 먹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인간의 세계가 이렇게 복잡하고 문제들이 많은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는 엄밀하게 보면 순교가 없는 시대입니다. 누가 예수 믿는다고 죽이는 사람이 없습니다. 핍박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순교의 시대는 지났습니다. 있다면 오늘 같은 세상을 청빈하게 살려고 애쓰는 마음이 순교의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청빈하게 살려고 하다 보면 얼마나 유혹이 많고, 불이익이 많고, 그 유혹을 뿌리치며 살아가기가 얼마나 힘이 들고, 자기 자신가 싸우느라고 얼마나 갈등이 많겠습니까 그래도 청빈하게 살려고 고집스럽게 수고하고 갈등들을 무릅쓰고 살아가는 그 수고의 삼이 바로 오늘의 순교의 삶이 것입니다.
특히 오늘 같은 시대에 물질에 대한 유혹이 얼마나 큽니까 물질이라는 것은 이상스럽게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힘이 있습니다. 마력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그 앞에서 모두 정신을 잃고 이성을 잃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청빈의 철학이 없으면 탐욕을 부리게 되고 결국 실수하게 됩니다. 또한 추해지는 것입니다. 지금 전직 두 대통령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얼마나 추합니까 이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국내문제가 아니고 국제적으로 추한 큰 망신입니다. 누가 동정을 해줍니까 대통령을 지냈으면 그것만으로도 영광인데 거기에 왜 불필요한 좋지 못한 돈이 그렇게 많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까 저는 지난 주일 청와대에 가서 주일 예배를 인도하고 왔습니다. 설교 말미에서 그런 말을 했습니다. 목회자로서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한 사람으로서 당부드리는 것은 마지막을 좀 깨끗이 끝내고 유종의 미를 거두어 주기 바란다고 말입니다. 언젠가 영국의 윌슨 수상이 임기를 마치고 나설 때 가방 하나만 들고 수상청을 나서는 모습이 방송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 모습에 영국 국민들이 아낌없는 박수로 떠나 보내는 모습을 인상 깊게 보았는데, 제발 임기를 마치고 청와대를 나설 때는 그렇게 가방 하나만 들고 나서는 모습을 천하에 좀 보여 주라고 했습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멋있는 모습이겠습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자꾸만 책잡히며 살아가는 이유가 이 철학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자꾸만 발목 잡히고 입막히고 그래서 할 말을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목숨은 살아 있으나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욕심을 버리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나그네로 세상을 잠깐 살다가 가는 삶을 더럽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생활철학 제 1조입니다.
2. 순결하라는 것입니다. “(벧전2:12)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순결하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가장 용기가 있고 힘이 있을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아무 거리낌이 없이 살아갈 때입니다. 우리들이 마음에 켕기는 것이 있으면 어쩐지 떳떳하지가 못합니다. 도적이 제 발 저린다고 했습니다. 보석을 밀수해서 몸에 지니고 들어오는 여행객은 어쩐지 그 발걸음이 보석을 밀수해서 몸에 지니고 들어오는 여행객은 어쩐지 그 발걸음이 어색합니다. 그래서 적발되는 것입니다. 운전하고 고속도로를 달릴 때 갑자기 교통 경찰이 나타나면 왠지 마음이 뜨끔합니다.
왜냐하면 속도를 위반해서 그렇습니다. 사람이 거리낄 것이 없으면 세상에서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발걸음이 당당합니다. 다니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습니다. 가서 그 나라 임금님으로부터 신임을 받아 마침내 고관으로 입신을 하게 됩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얼마나 모함을 하고 질투와 시기를 하는지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함에서 끝까지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순결성 때문입니다. 아무리 털어도 먼지 하나가 없었습니다. 만일 그때 다니엘이 책잡힐 일 하나만 있었어도 그는 여지없이 무너져 버렸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말씀하기를 “너희는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보면 어떤 경우는 인간이 짐승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들때가 있습니다. 요즘 일어나는 일들을 보십시오. 어른들이 유치원생들을 성추행했닥 하고, 동네 청년들 14명이 11살 난 동네 여자 아이를 그것도 불행한 아이를 집단으로 성푹행했다고도 하는데, 사람이 어떻게 그런 일을 저지를 수가 있습니까 그래서 사람들이 모두 분개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부분만을 보고 그것이 인간 모습의 전부인 것처럼 판단하고 실망해서는 안 됩니다. 인간의 진면목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극히 일부분의 모습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실 때 모두 그렇게 지으신 것이 아니고 인간의 내면 속에 거룩한 속성을 넣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거룩할 수 있는 자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록 몸은 이 땅에서 살고 있지만 인간은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생각하고 천국을 생각하고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그런 높고 성스러운 자질이 있습니다. 사람은 거룩을 지향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사람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각오만 하면 얼마든지 순결해지고 거룩하게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이 순결의 힘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오늘날 기업들마다 노사 관계가 복잡하고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있는데 여기데도 문제가 있습니다. 어떤 회사에서는 노동자들을 달래느라고 보너스를 더 많이 주고 그러는데 더 많이 준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업이나 단체나 국가나 협잡이나 하고 부정이나 저지르고 있으면서 돈만 많이 주고 열심히 일하라 하면 일을 합니까 기업들이 정당하고 명분 있고 옳은 일들을 해보십시오. 그러고 나서 “우리 모두 함께 절약하고 검소하게 살면서 하나 되자”고 해보십시오. 누가 반대하겠습니까 모두가 기쁜 마음으로 수고하고 노력해서 열심히 일할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가 이렇게 시끄러운 것은 순결성이 없어져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본문을 보면 사도 베드로가 말씀하기를 “(벧전2:12)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리”고 했습니다. 신앙인에게는 이 순결이 주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3. 박애 정신입니다. “(벧전2:12)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게 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박애 정신을 가지고 살라”는 말입니다. 사람이 청빈하고 순결해야 하지만 그것이 자신만을 위한 청빈이고 순결이면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합니다. 거기에 박애 정신이 들어가야 힘이 붙고 위력이 나타나게 됩니다. 여러분, 오늘 이 시대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지독한 이기주의입니다. 모두 나만을 위해서 살아갑니다. 이웃을 모릅니다. 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그런 마음들 속에 무슨 이웃을 생각하는 박애 정신이 깃들겠습니까 어떤 분이 요즘 대학생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서 대학생들의 의식구조를 조사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의식이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앞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무엇을 할거냐고 물으니까 85%의 학생들이 돈을 벌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돈은 벌어 무엇을 할거냐고 물으니까 82%의 학생들이 대답하기를 먼저 집부터 사 놓고 즐기겠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청년의 때는 순수해서 한창 꿈도 많고 이상도 크고 누구보다도 박애 정신이 있을 때인데도 오늘의 젊은이들은 이렇게 현실적이고 기성 세대적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아무리 똑똑하고 유능하고 잘 살고 입신을 하고 신앙이 좋아도 거기에 이 박애 정신이 없으면 그 인생은 빛이나 향기가 나지 않습니다. 슈바이처를 사람들이 그렇게 흠모하는 것은 그의 학식 때문이 아니고 그의 의술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가 얼마든지 편안하게 살고 누구보다도 유복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가장 소외되고 낙후된 검은 대륙에 들어가서 인생을 바치는 헌신의 생활을 하고 희생의 삶을 살아가는 박애 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진정한 가치는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의 값은 섬김과 나눔과 헌신과 봉사의 삶을 살아가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정말 성숙한 사람은 나만을 위해서 살지 않습니다. 사람이 나만을 위해서 살면 진정한 기쁨을 알 수가 없습니다. 진정한 기쁨은 봉사할 때 주어지고 헌신할 때 주어집니다. 오늘날은 독신녀들이 자꾸만 늘어나고 있습니다. 미국에는 결혼 적령기 여성 중에 독신녀가 37%나 된다고 합니다. 이 여성들이 왜 독신으로 살고 있는가 하면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누구를 위해서 일하고 봉사하는 일이 싫어서입니다. 귀찮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행복의 이치는 한 알의 밀알이 썩어질 때 나도 행복하고 남도 행복한 것입니다. 내가 썩지 않으면 나도 불행하고 남들도 불행해집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12절에서 “(벧전2:12)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게 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삶의 원리입니다.
4. 종말 의식입니다. “(벧전2:12)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했습니다. 여기 “권고하시는 날”이라는 말은 종말의 날입니다. 심판의 날을 말합니다. 그날을 기억하고 살라는 말입니다. 신앙인은 이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종말 의식 이것이 바로 역사 의식입니다. 신앙인은 언제나 그날을 의식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지난 주간에 5살 난 어린 아이가 고층 아파트에서 떨어져서 생명을 잃었습니다. 참 슬픈 일입니다. 심방을 가면서 머리를 싸매고 고통스러워하고 있을 그 젊은 부부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가서 보니까 그 부모가 참 훌륭했습니다. 아주 젊은 부부인데 아기가 더럽혀지기 전에 하나님께서 불러 가신 것 같은데 그 아이는 분명히 천국에 갔을 것이라고 확신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아이가 천국에만 갔다면 그것으로 위로가 된다고 말합니다. 그 생각이 바로 역사 의식이고 그 마음이 바로 종말 의식입니다. 신앙인에게 이 마음이 있는 한 그보다 더 큰 슬픔이 주어져도 극복할 수가 있습니다. 사람에게 이 마음이 있으면 세상 속으로 아무리 깊이 빠져 들어가도 한계선을 넘지 않게 됩니다. 신앙을 잊고 살다가도 그 마음만 있으면 어느 날인가 반드시 돌아오게 됩니다. 그것은 이 역사 의식과 종말 의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소중한 의식입니까 사도 베드로는 로마로 올라가서 고난 중에 처해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같이 당부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철학을 가지고 살라. 청빈하고 순결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사람들에게까지 박애 정신을 발휘하고 언젠가 이 땅을 심판하러 오시는 그날을 생각하면서 오늘을 슬기롭게 살라.” 얼마나 진지한 권고입니까 베드로는 어려운 고비를 넘기며 살고 있는 신앙인들에게 종말 신앙으로 권고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무엇보다도 이 생활철학이 요구됩니다. 신앙인들에게 이 신앙 중심이 없거나 약하면 중심을 잃고 헤매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그 모습이 만신창이가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가기는 참 힘이 들지만 그 힘든 삶을 극복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바로 순교의 삶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진지한 보상이 뒤따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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