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생활표어 (롬14:6-8)
본문
[잠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라는 책으로 유명한 카알할티는 "인간 생애 최고의 날은 자기 사명을 깨닫는 날" 이라고 하였고 [철학적 이해와 종교 진리]라는 책을 쓴 어릭 프랭크는 그 책에서 말하기를 "우리들이 결국 무엇을 목적하는가 세상을 알고 그것을 경멸하지 않는 것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인생이 자기의 사명이 무엇인지 안다는 일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사람이 또한 삶의 목적을 분명히 깨닫고 산다는 것 역시 중요한일입니다. 인생의 목적을 자각한 사람은 자기 사명을 알게 된 것이요 자기 사명을 자각한 사람은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인생의 목적도 자기의 사명도 깨닫지 못하고 "될대로 되라" 식으로 삶의 태도를 가지고 살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사는 목적을 철저히 깨달은 사람이고 또 정확하게알고 산 사람입니다. 그 분은 사는 목적을 "나를 위해서" 아니라 철저하게 "주님을 위해서" 산다고 하였습니다. 그 분은 말과 글로만이 아니고 실제로 그의 일상 생활을 통해서 주님을 위해서 아니 주님만을위해서 산 사람이었습니다. 본문의 말씀을 보면 바울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훌륭한 표어를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의 생활 표어는,
첫째, 오늘도 내일도 주님을 위해서,둘째, 먹으나 마시나 주님을 위해서,셋째, 사나 죽으나 주님을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철저한 인생관을 가지고 사명을 자각한 바울답게 그의 삶의 표적은 철두철미 주님만을 위한 삶이었음을 알수있습니다. 인생을 목적없이 엄벙덤벙 사는 사람을 보고 평안도에서는 "올꾼이용강 갔다오듯 한다"고 말한다고 합니다. 옛날 평안도 용강 가까이 사는 어떤 사람이 이른 아침에 바로 머슴을불러 말하기를 "올꾼아, 오늘 조반을 먹고서 용강에를 좀 갔다 오너라"고 미리 주의를 시켜 놓았습니다. 조반 후에 심부름을 보내려고 주인이 머슴을 찾았으나 온데 간데가 없었습니다. 주인은 화가 났으나 하는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거의 해가 질 무렵에 바보 머슴이 나타났습니다. 노발대발한 주인이 "어디를 갔다 왔느냐" 물으니 머슴이 대답하기를"아침에 주인께서 용강에 갔다 오라고 하시기에 용강에를 다녀오는 길입니다"고 대답하였습니다.주인은 " 이 올꾼아 아침에 용강 갔다 오라는 것은 심부름을 갔다오라고 한 것이지 공연히 아무 목적없이 용강갔다 오라는 것이 아니다"고 책망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 가운데서도 인생의 목적도 사명도 모른채 올꾼이 용강가듯이 인생을 사는 사람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인생은 무의미, 무목적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크고도 뚜렷한 목적과 사명을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난 것을 깨달아야 하고 이것을 깨달 아서 사는 것이 가치있는 삶인 것입니다.
1. 오늘도 내일도 주님을 위해 삽시다. 과학시대에 사는 현대인 가운데서도 여행을 하거나 이사, 결혼 심지어 간장을 담그는데까지 일진을 보고 길흉을 따져보고 그리고 택일을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과연 이것이 현대인의 바른 생활 태도일까요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좋은 날들을 이렇게 소극적으로 살아서 좋을까고의문을 갖게 됩니다. 모든 날은 다 하나님이 주신 좋은 날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스스로가 자기 자신을 속박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잘누릴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모든 날이 다 주님 주신 좋은 날이니힘써 주님을 위해서 복되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공평하게 시간과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 공평하게 나누어 주신 시간과 날을 부지런히 잘 활용할 사람은 성공한 사람이고 그렇지 못하고 그저 마냥 산 사람은 인생을 실패한 사람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주일만 경건히 지키고 성전에서만 거룩하게 지내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그 나머지 날들도 경건하고 거룩하게주님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어느 종파에서는 특정한 날을 지켜야만 구원이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우리는 어느 한 날만이 아니라 모든 날을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할 것을 주장합니다. 우리는 주일 신자가 아니라 매일 신자여야 합니다. 모든 날을 주님을위해서 산 바울처럼 오늘도 내일도 주님을 위해서, 아침부터 저녁가지주님을 위해서,궈은 날이나 개인 날이나 주님을 위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2.먹든지 마시든지 주님을 위해 삽시다. 사람이 먹어야 삽니다. 어떻게 보면 먹기 위해 사는 것이 인생인 것같습니다. 먹기 위해 노력도 하고 싸우기도 합니다. 작게는 개인간의싸움을 보면 먹는 것이 주원인이며 크게는 국가간의 싸움도 먹는 것때문에 싸우는 수가 많습니다. 앞으로의 전쟁은 사상의 싸움이 아니라있는 나라와 없는 나라의 싸움, 즉 부유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의 싸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그러나 인생이 사는 궁극적 목적이 먹는데 있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먹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라면 이 얼마나 가련하겠습니까 먹는 것은 인생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한 방편이어야 할 것입니다. 잘 먹고 몸을 튼튼히 해서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이웃을 위한 봉사의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무엇을 안 먹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 교회에 있어서 신앙 생활을 시작하면서 먼저 부딪히는 문제가 주초문제입니다. 술과 담배를 금해야 하는가 이것이 교회법이고 관례이니까 안한다는 소극적인 태도보다는 이것을 안먹고 안마심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니 좋고 남에게건덕상 좋고 자신의 건강에도 유익이 되니 좋다는 적극성을 띠고 금하면 더 효과적일 것입니다. 우상에게 바쳤던 고기를 먹어야 되느냐 안먹어야 되느냐는 문제로 교회안에 논란이 야기되었을 때 바울은 하나님이 주신 것을 믿음으로 먹어도 아무런 거리낌이 되지 않으나 믿음이 약한 형제를 위해서는 영원히 입에 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형제의 믿음을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서 먹을 수 있는 것도 안먹겠다는 바울의 신앙 자세는 오늘날 우리에게 큰 교훈이 됩니다.
3. 사나 죽으나 주님을 위해서 삽시다 사람이 태어나는 것과 얼마를 사느냐는 것은 인간의 마음대로 되는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죽는 것도 마음대로 못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생사의 권한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여러해 신문에서 읽은 기사인데 한강에 자살 방지회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 회를 창설하고 친히 회장이 되어 한강에서 투신하는 사람들을 구출하는 것을 생의 사명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그러한 사명감을 가지고 일을 하게된 동기가 여러 차례 그 자신이 자살하기 위해 살아나게 된데서 죽는 것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어떤 위대한 손길에 달려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아서 그후부터는 죽으려는 그 노력을 사람을 살리려는 데로 전환시켰다는 것입니다. 생사의 권한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사는 날 동안주님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다가 죽음의 장막이 우리 앞에 다가올 때에도 주님의 뜻에 순종하여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인생을 제대로 산사람이라 볼 수 있습니다. 어느 죽음을 눈 앞에 둔 사람이 이렇게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여 저를 살려 주소서. 살려 주시면 내 힘껏 주님을 위해서 복음을 전하며살겠습니다.지금까지는 나 자신만을 위해서 애쓰며 살아온 부끄러운삶이었습니다. 주님, 저를 살려 주시면 나머지 시간 주를 위해 살려고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뜻이면 죽는 것도 기쁘게 복종하겠습니다. 살면 주를 위해 더 살고 데려가시면 죽어 저 낙원에 가게 되니 감사할따름입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우며 철저한 생사관입니까 적어도 신자들에게 이런신앙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사람이 사는 목적이 나를 위해 다시 말하면 내 재산을 모으고 내 향락을 도모하다가 내 명예를 위해서 "나" 본위로 산 사람은 무수한 "남"을 괴롭힌 사람입니다. 주를 위해서 산 사람은 나에게는 손해가 되고 괴로움이 되었지만 수많은 다른 사람에게유익을 주고, 기쁨 주고, 행복을 주고,주님께 영광을 돌린 사람입니다.
나를 위해 산 자는 죽음을 두려워하고 저주하지만 주님과 이웃을 위해 산 사람은 죽음에 태연하고 죽음 앞에서 평화롭습니다. 나를 위해산 사람은 육체의 죽음과 함께 그 영혼도 죽지 않고 영원히 살 것입니다. 일생을 전도와 부흥 운동에 몸바친 미국의 대 부흥가 무디 선생은 그의 자서전의 일절에 다음과 같은 말을 기록하였습니다. " 후일에 아마 신문에 동부 노스필드 출신인 D.L.무디가 죽었다는 기사가 날 것이다. 그렇더라도 그 말을 믿지 말기를 바란다. 그때에는지금의 나보다 더 생생하게 살 것이다. 그때는 나는 낡은 육체를 떠나서 영원한 높은 집으로 올라가 있을 것이다. 그때 나의 몸은 사망이침범하지 못하고 죄가 더럽히지 못하는 하나님의 영광스런 몸과 같이 될 것이다. 나의 육신은 1837년에 출생했고 영혼은 1856년에 출생하였다.육신으로 난 나의 몸은 죽을 것이나 영혼으로 난 나는 영원히 살것이다."
첫째, 오늘도 내일도 주님을 위해서,둘째, 먹으나 마시나 주님을 위해서,셋째, 사나 죽으나 주님을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철저한 인생관을 가지고 사명을 자각한 바울답게 그의 삶의 표적은 철두철미 주님만을 위한 삶이었음을 알수있습니다. 인생을 목적없이 엄벙덤벙 사는 사람을 보고 평안도에서는 "올꾼이용강 갔다오듯 한다"고 말한다고 합니다. 옛날 평안도 용강 가까이 사는 어떤 사람이 이른 아침에 바로 머슴을불러 말하기를 "올꾼아, 오늘 조반을 먹고서 용강에를 좀 갔다 오너라"고 미리 주의를 시켜 놓았습니다. 조반 후에 심부름을 보내려고 주인이 머슴을 찾았으나 온데 간데가 없었습니다. 주인은 화가 났으나 하는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거의 해가 질 무렵에 바보 머슴이 나타났습니다. 노발대발한 주인이 "어디를 갔다 왔느냐" 물으니 머슴이 대답하기를"아침에 주인께서 용강에 갔다 오라고 하시기에 용강에를 다녀오는 길입니다"고 대답하였습니다.주인은 " 이 올꾼아 아침에 용강 갔다 오라는 것은 심부름을 갔다오라고 한 것이지 공연히 아무 목적없이 용강갔다 오라는 것이 아니다"고 책망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 가운데서도 인생의 목적도 사명도 모른채 올꾼이 용강가듯이 인생을 사는 사람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인생은 무의미, 무목적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크고도 뚜렷한 목적과 사명을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난 것을 깨달아야 하고 이것을 깨달 아서 사는 것이 가치있는 삶인 것입니다.
1. 오늘도 내일도 주님을 위해 삽시다. 과학시대에 사는 현대인 가운데서도 여행을 하거나 이사, 결혼 심지어 간장을 담그는데까지 일진을 보고 길흉을 따져보고 그리고 택일을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과연 이것이 현대인의 바른 생활 태도일까요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좋은 날들을 이렇게 소극적으로 살아서 좋을까고의문을 갖게 됩니다. 모든 날은 다 하나님이 주신 좋은 날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스스로가 자기 자신을 속박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잘누릴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모든 날이 다 주님 주신 좋은 날이니힘써 주님을 위해서 복되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공평하게 시간과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 공평하게 나누어 주신 시간과 날을 부지런히 잘 활용할 사람은 성공한 사람이고 그렇지 못하고 그저 마냥 산 사람은 인생을 실패한 사람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주일만 경건히 지키고 성전에서만 거룩하게 지내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그 나머지 날들도 경건하고 거룩하게주님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어느 종파에서는 특정한 날을 지켜야만 구원이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우리는 어느 한 날만이 아니라 모든 날을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할 것을 주장합니다. 우리는 주일 신자가 아니라 매일 신자여야 합니다. 모든 날을 주님을위해서 산 바울처럼 오늘도 내일도 주님을 위해서, 아침부터 저녁가지주님을 위해서,궈은 날이나 개인 날이나 주님을 위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2.먹든지 마시든지 주님을 위해 삽시다. 사람이 먹어야 삽니다. 어떻게 보면 먹기 위해 사는 것이 인생인 것같습니다. 먹기 위해 노력도 하고 싸우기도 합니다. 작게는 개인간의싸움을 보면 먹는 것이 주원인이며 크게는 국가간의 싸움도 먹는 것때문에 싸우는 수가 많습니다. 앞으로의 전쟁은 사상의 싸움이 아니라있는 나라와 없는 나라의 싸움, 즉 부유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의 싸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그러나 인생이 사는 궁극적 목적이 먹는데 있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먹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라면 이 얼마나 가련하겠습니까 먹는 것은 인생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한 방편이어야 할 것입니다. 잘 먹고 몸을 튼튼히 해서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이웃을 위한 봉사의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무엇을 안 먹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 교회에 있어서 신앙 생활을 시작하면서 먼저 부딪히는 문제가 주초문제입니다. 술과 담배를 금해야 하는가 이것이 교회법이고 관례이니까 안한다는 소극적인 태도보다는 이것을 안먹고 안마심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니 좋고 남에게건덕상 좋고 자신의 건강에도 유익이 되니 좋다는 적극성을 띠고 금하면 더 효과적일 것입니다. 우상에게 바쳤던 고기를 먹어야 되느냐 안먹어야 되느냐는 문제로 교회안에 논란이 야기되었을 때 바울은 하나님이 주신 것을 믿음으로 먹어도 아무런 거리낌이 되지 않으나 믿음이 약한 형제를 위해서는 영원히 입에 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형제의 믿음을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서 먹을 수 있는 것도 안먹겠다는 바울의 신앙 자세는 오늘날 우리에게 큰 교훈이 됩니다.
3. 사나 죽으나 주님을 위해서 삽시다 사람이 태어나는 것과 얼마를 사느냐는 것은 인간의 마음대로 되는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죽는 것도 마음대로 못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생사의 권한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여러해 신문에서 읽은 기사인데 한강에 자살 방지회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 회를 창설하고 친히 회장이 되어 한강에서 투신하는 사람들을 구출하는 것을 생의 사명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그러한 사명감을 가지고 일을 하게된 동기가 여러 차례 그 자신이 자살하기 위해 살아나게 된데서 죽는 것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어떤 위대한 손길에 달려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아서 그후부터는 죽으려는 그 노력을 사람을 살리려는 데로 전환시켰다는 것입니다. 생사의 권한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사는 날 동안주님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다가 죽음의 장막이 우리 앞에 다가올 때에도 주님의 뜻에 순종하여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인생을 제대로 산사람이라 볼 수 있습니다. 어느 죽음을 눈 앞에 둔 사람이 이렇게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여 저를 살려 주소서. 살려 주시면 내 힘껏 주님을 위해서 복음을 전하며살겠습니다.지금까지는 나 자신만을 위해서 애쓰며 살아온 부끄러운삶이었습니다. 주님, 저를 살려 주시면 나머지 시간 주를 위해 살려고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뜻이면 죽는 것도 기쁘게 복종하겠습니다. 살면 주를 위해 더 살고 데려가시면 죽어 저 낙원에 가게 되니 감사할따름입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우며 철저한 생사관입니까 적어도 신자들에게 이런신앙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사람이 사는 목적이 나를 위해 다시 말하면 내 재산을 모으고 내 향락을 도모하다가 내 명예를 위해서 "나" 본위로 산 사람은 무수한 "남"을 괴롭힌 사람입니다. 주를 위해서 산 사람은 나에게는 손해가 되고 괴로움이 되었지만 수많은 다른 사람에게유익을 주고, 기쁨 주고, 행복을 주고,주님께 영광을 돌린 사람입니다.
나를 위해 산 자는 죽음을 두려워하고 저주하지만 주님과 이웃을 위해 산 사람은 죽음에 태연하고 죽음 앞에서 평화롭습니다. 나를 위해산 사람은 육체의 죽음과 함께 그 영혼도 죽지 않고 영원히 살 것입니다. 일생을 전도와 부흥 운동에 몸바친 미국의 대 부흥가 무디 선생은 그의 자서전의 일절에 다음과 같은 말을 기록하였습니다. " 후일에 아마 신문에 동부 노스필드 출신인 D.L.무디가 죽었다는 기사가 날 것이다. 그렇더라도 그 말을 믿지 말기를 바란다. 그때에는지금의 나보다 더 생생하게 살 것이다. 그때는 나는 낡은 육체를 떠나서 영원한 높은 집으로 올라가 있을 것이다. 그때 나의 몸은 사망이침범하지 못하고 죄가 더럽히지 못하는 하나님의 영광스런 몸과 같이 될 것이다. 나의 육신은 1837년에 출생했고 영혼은 1856년에 출생하였다.육신으로 난 나의 몸은 죽을 것이나 영혼으로 난 나는 영원히 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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