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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삶의 목표 (마6:19-34)

본문

지난 번 말씀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을 얻는 자의 삶의 자세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된 새 생명의 삶은 그 출발점이 값없다, 죄인을 의롭다 하시는 은혜로 시작되고, 그 모든 과정과 목표가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며, 이 모든 것이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만큼 신자의 삶은 늘 그 시선이 하나님을 향할 수 밖에 없고,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의식하고 사는 수 밖에 없음을 말씀드렸습니다. 비록 사람 사람 간에 이루어지는 이웃관계에서도 결코 사람만을 의식해서 살 수 없고, 하나님만을 의식하고 살아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마 6:1이하에서 보면 철저히 하나님을 의식하고 사는 신자의 삶의 자세가 기도하는 자세로 귀결이 된다고 말씀합니다. 기도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에게 드리는 간구인 만큼 철저히 모든 기도는 하나님만을 향한 것일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존재와 삶이 오직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필요를 간구하는 것이요, 더 나아가서는 우리는 연약하고 무능하여서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에게 소망을 두는 것이요, 하나님의 은혜로우심과 긍휼을 믿고, 신뢰하며, 나아가는 자의 기도를 반드시 들어주신다고 믿고 우리의 믿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기도라는 것은 우리의 필요, 우리의 소원을 말씀드리는 것이므로 기도 속에는 우리 삶의 자세와 목표가 반영되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기도의 모본을 가르치시는 주기도문을 본즉 우리가 무엇을 하나님께 구해야 할 것인가를 인간에게 가르치면서, 기도의 내용 즉, 삶의 목표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가이 땅에 온전히 이루어지도록 소원해야 하며, 또 이 땅에서 살아가는데서 필요한, 이웃을 용서하는 가운데 일용할 것을 구해야 하며, 하나님의 용서와 긍휼을 입으며, 모든 악과 악한 자에게서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사는 것이며, 이 모든 삶이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요, 우리가 기도할 내용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마지막 부분 즉, 삶의 목표와 관련해서 더욱 구체적인 교훈을 말씀하신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어떤 사람은 이 말씀을 교회에 헌금을 많이 하라고 하는 말씀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은 매우 피상적인 이해이거나 오해에 지나지 않는 것이며, 오늘 본문 말씀은 더 깊고 넓은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너희를 위해서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말씀하시면서 그 이유에 대해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보물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가진 귀하고 가치있다고 여기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내가 가장 귀하고 가치있다고 여기는 것들을 늘 생각하면, 우리의 마음이 그것에 이끌리고 지배된다고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이 어떤 것에 이끌리고, 이끌림을 받고 그것의 지배를 당한다고 하는 것은 좀 더 깊은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항상 마음에서부터 시작해서 즉, 우리의 마음이 원하는 것을 결정하고 행동으로 옮김으로써 이루어진다고 하면, 우리의 마음이 이끌리고 지배당한다고 하는 것은 실제에 있어서 우리의 삶 전체가, 우리의 모든 행동과 삶이 이것에 의해 지배되고 이끌린다고 하는 것을 뜻하며, 더우기 우리의 마음을 이끌고 지배하는 것이 보물이라고 하면 그것은 우리의 삶 전체를 지배하고 이끈다는 무엇 즉, 우리의 삶의 가치, 우리의 삶의 목표를 뜻한다고 하겠습니다.
학자는 학문이라는 보물로, 예술가는 예술이라는 보물로, 돈이 귀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재물로 마치 재물을 쌓듯이 그의 인생을 쌓아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네 보물을 땅에 쌓지 말고 하늘에 쌓으라고 하신 말씀은, 네 삶의 목표를 땅에 두지 말고 하늘에 두라고 하신 말씀이십니다. 어떤 사람은 이 말씀은 땅의 삶은 헛된 것이니 땅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말고, 천국만을 생각하고 살라는 것으로 잘못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세한 것은 조금 있다가 말씀드리겠습니다만, 가장 간단히 이 말씀을 말하자면 땅에서의 삶 그 자체를 목표로 삼지말고 오직 하늘의 것, 하나님의 것을 궁극적인 삶의 목표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땅에서의 삶은 언제 어떻게 없어질 줄 모르는 잠정적인 것이요, 불안한 것인 반면에 오직 하늘의 것, 하나님의 것만이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궁극적인 것들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이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내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이 말씀은 올바른 삶의 목표를 따라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몸을 보면 눈이 향하는 곳, 시선이 향하는 곳, 우리의 눈이 보고 인도하는 곳으로 따라 갑니다. 따라서 우리 눈이 건강해서 밝히 보고 우리 걸음을 인도한다면, 우리는 마치 환한 대낮에 큰 길을 걷듯이 문제가 없겠으나 만약 우리 눈이 어두우면, 온 몸이 어둠 속을 헤매이는 것 같이 방향없이 헤매다가 위험한 곳으로 가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걷다가 필경 상하거나 목숨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육적인, 외적인 경우 에도 그 비참함이 이러할지대, 어두운 가운데 헤매다가 결국 크게 상하다가 죽는 불상사를 당할진대, 우리 속에 있는 우리의 성경에는 '네게 있는 빛'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내 속에 있는 빛, 말하자면 마음의 눈이 어두우면, 우리 마음을 이끌어 인도하는 삶의 목표가 어두우면, 건전하지 못한 악한 것, 잘못된 것이라고 하면 우리가 당하는 어두움이 얼마나 더 비참한 것이겠는가라는 말씀입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이 말씀에서는 우리는 한꺼번에 여러가지 목표를 추구할 수 없고, 우리의 삶의 중심은, 삶의 주된 목표가 단 하나일 수 밖에 없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두 주인을 함께 섬길 수 없고, 어느 한편을 미워하고 사랑하듯이 우리의 삶의 목표도 동시에 두 가지를 함께 추구할 수 없고, 세상도 적당히 즐기고 하나님도 섬기는 이런 삶도 살 수 없고, 어느 하나를 택하고 어느 하나를 버려야 하는 선택의 결단이 요구된다고 말씀합니다. 또는 어느 하나를 결코 놓칠 수 없는, 꼭 붙잡고 매달릴 수 밖에 없는 최고의 목표를 정한다면 또 하나는 가볍게 여기며 경시할 수 밖에 없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삶의 다양한 목표에 대해서 두 가지 태도가 가능함을 암시합니다. 어느 하나를 택하고 다른 하나는 미워하며 버려야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옳지 못한 악한 삶의 목표에 대해서 말할 수 있습니다. 악한 삶의 목표, 하나님을 거스리는 삶의 목표는 당연히 미워하고 끊어버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한 쪽을 미워하고 버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쪽을 최고의 목표로 삼고, 다른 하나는 최고의 목표에 철저히 종속시킬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최고의 목표와는 별도로 그처럼 중요하게 생각되지는 않지만 예를 들어, 하나님을 제일의 목표로 덜 중요시 여기고 추구한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최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 삶의 목표가 있을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런 경우를 25절에서 마지막 절까지 다루고 있습니다. 우선 '목숨을 위해서 무엇을 먹고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목숨이라는 것은 우리가 육신을 입고 사는 동안의 생명 즉, 현 창조질서 속에서 영위되는 생존과 삶을 뜻합니다. 그리고 몸이라 하는 것은 우리가 육적 생명을 사는 동안에 우리 모든 삶이 이루어지는 기관이라고 할 수있습니다. 우리가 육신을 입고 사는 동안은 우리 오늘 삶이 몸을 기관으로 삼아, 우리 몸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목숨을 위해 무엇을 먹고 마실까, 몸을 위해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하는 말씀은 우리가 육신을 입고 세상을 사는 동안 무엇을 먹고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육적 생명을 위해서 염려하지 말라는 뜻을 바로 깨닫기 위해서는 어떤 사람이 육적 생존을 위해 먹고 마실 것과 입을 것을위해 염려하는가를 아는 것이 필요한 줄 압니다. 육적 생존을 위해서 무엇을 입고 마실까, 입을까 염려하는 것은 육적 생존, 우리가 육신을 입고 세상에 사는 그 자체를 목표로 삼는 사람의 특징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사는 삶 그 자체를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그 자체를 삶의 목표로 삼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들의 관심은 온통, '어떻게 하면 이 세상 사는 동안에 모든 것을 최고로 누리며 살까, 어떻게하면 최고로 먹고 마시며 입고 살까' 하는 것으로 쏠려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사람에게 나타나는 매우 아리러니컬한 현상의 출발점은 이 세상에 사는 삶 자체를 최고의 목표로 삼았기 때문에 먹고 마시고 입는 일에 있어서 최고의 것을 누리자 하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하다보니 목적과 수단이 전도되어서 잘 먹고 마시며, 잘 입는 삶의 수단이 삶의 목적이 되어 버리고, 삶의 수단을 획득하기 위해서 쉽게 말하자면, 돈을 벌기 위해 오히려 자기의 삶을 혹사하는 웃지 못할 일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잘 살기 위해서, 살기 위해서 먹어야 하니까 먹을 것을 구했는데 나중에는 먹기 위해서 아둥바둥 살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돈을 버는데, 또 돈을 벌기 위해서 밥을 굶고 절약하여 자신의 몸과 삶을 혹사하는 경우를 우리는 주위에서 얼마든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런 웃지 못할 어리석은 일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중요한 것은 사는 것이지 육적 생명을 유지하는 수단인 음식이나 의복이 아니다.
쉽게 말하면 우리 육신이 살기 위해서 먹고 입는 것이 필요한 것이지, 먹고 입기 위해서 우리가 사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우선 이 말씀은 육적 생존 그 자체를, 이 세상에서 사는 삶 자체를 삶의 최고 목표로 삼을 때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현상 즉, 잘 먹고 잘 입는 것을 추구하며 이런 것을 위해서 몸을 혹사하는 일은 목적과 수단이 전도된 어리석은 짓임을 일깨워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동시에 육적 생존, 육신을 입고 사는 동안에 우리 삶은 매우 중요하다는 뜻을 동시에 함축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육신을 입고 사는 동안에 사는 삶이 결코 하나님 앞에 무의미하거나 악한 것이거나 한 것이 아니라 극히 중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육적생존이 그렇게 중요한 만큼 하나님께서 우리의 육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공급하시는 것을 그 아래에서 일깨워주고 계십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공중의 새를 보라 먹고 살기 위해서, 육적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씨를 뿌리거나 추수하거나 저장하지도 않지만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들을 먹이시느니라. 이처럼 하찮은 미물에 지나지 않은 새, 하찮은 피조물까지 창조주로서 하나님께서 먹이신다고 한다면 이들보다 훨씬 중요한(귀중한)너희, 새보다도 귀중한 피조물이며, 더우기 죽어 망할 인류 가운데서 구원하사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너희를, 더우기 너희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서 먹이시지 않겠느냐 잘 먹고 입기 위해서 돈 벌러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온갖 수완과 재주를 부리는 사람아, 과연 네가 무엇을 염려하고 힘쓴다고 할 수있느냐 네가 열심히 일해서 벌어 먹고 사니 너의 힘으로 벌어 먹고 사는 줄아느냐 하나님께서 지금이라도 너를 돌보시는 손길을 멈추신다면 네가 천년, 만 년 먹고 살기 위해서 저축한 돈과 재물이 누구의 것이 되는 줄 아느냐 어찌해서 지금껏 너희를 먹여 살리신 분이 하나님이신 줄 모르느냐는 말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들의 하찮은 풀도 저절로, 제 힘으로 자라는 것 같으나 실상은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시며 입히신다고 하면, 들풀보다 한없이 귀한 너희를 헐벗어 얼어죽게 하시겠느냐 이 믿음이 적은 자들아, 늘 하나님의 은혜로 먹고 살면서도 그의 긍휼하심과 사랑의 능력을 신뢰하지 못하는 이 어리석은 자들아 하고 질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무엇을 먹고 마시며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이런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신뢰하지 않는 이방인들이 느끼는 삶의 불안이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그들로서는 당연히 느낄 수 밖에 없는 불안이나,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며 신뢰하는 너희는 염려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 너희들의 육신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너희가 먹어야 산다는 사실을 모르겠는가 더 나아가서는 어떻게 하면 잘 먹고, 최고로 마시며, 입고 살까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 없는 이방인이 생각하는, 세상에 사는 육적 생존이 전부이며, 마치 하늘이나 영혼의 세계, 하나님의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 줄로 알고 살고 하는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삶의 목표일 뿐이며, 너희는 그렇지 아니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어떤 사람들은 이 말씀을 오해해서 먼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봉사, 바치면 하님께서 이 세상의 모든 좋은 것, 특히 돈을 많이 주실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자가 되기 위해서, 육신의 병고침을 받기 위해서, 사업 잘되고 출세하기 위해서 예수를 믿는 사람이 많습니다. 입시철만 되면 새벽기도회가 터져나가고, 남편의 승진을 위해서 철야하는 것을 볼 때 이런 요소가 전혀 없다고 말못할 것입니다. 입시생을 둔 부모들이 자녀를 위해서 기도를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의 의와 나라를 구하는 것이 우리의 삶의 고 목표요, 그 외의 모든 것은 최고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조금 봉사하면 우리에게 좋은 것을 많이 채워준다는 것이 아니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최고 목표요 그 외의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한 것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유일한 최고 목표로서 우리의 전 삶이, 이 세상에서 육신을 입고 사는 모든 삶이 오직 이 목적을 위루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육신의 필요를 위해 하나님에게 간구하는 자체가 주기도문에 보면 일용할 것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육신의 필요를 위해 일용할 것을 하나님께 간구하는 자체가 그저 세상에서 잘 먹고 잘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육적 생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육적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귀한 것이기 때문에 그 귀한 일용할 것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하나님께서 언제 우리 영혼을 부르실지 모르는 항시 대기 상태에서 삶을 사는 이 에상에서 살 때, 이 세상이 전부인 줄 알고 이 세상에서 잘사는 것을, 생의 유일한 목표인 줄로 아는 세상 사람들 처럼 천 년, 만 년 먹고 즐길 것을 준비하기 위해서 동분서주하지 말며, 그날 밤 죽게 될 것을 모르고 '내 영혼아 먹고 즐기자' 하는 어리석은 부자 처럼 되지 말 것이며, 오직 일용할 것을 구하며, 또한 하나님께서 먹이시고 입히실 것을 믿으며,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살아야 할 것입니다. 물론 이 말씀은 아무 일 안해도 먹을 것이 생긴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일을 하며 그 일을 통해 먹을 것을 공급한다는 말씀입니다. 혹시 내가 하는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 많은 재물을 허락하신다면 이것은 나와 내 자식이 잘 먹고 잘 살라고 주신 것이라 생각하지 말고, 뭔가 하나님을 위해 그의 나라를 위해 사용하도록 주신 것으로 깨닫고 뜻있게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돈 많이 생겼다고 먹고 즐기자고 하는 사람은 만일 하나님께서 그대로 놔두신다면 저주지 결코 복이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달란트든지, 재물이든지, 어떤 귀한 것이든지 간에 여러분의 명예나, 자랑이나, 여러분의 자신들을 위해 준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도록, 그의 뜻을 이루도록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세상에서의 삶, 우리의 육적 생존은 무용지물로써 악하거나 버려야 할 무엇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는 삶의 장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오해가 많은데 '보물을 땅에 쌓지 말고 하늘에 쌓으라'는 말씀은 이 세상은 허망한 것이니 이 세상의 삶은 의미도 없고 관심가질 필요도 없으며, 오직 죽어서 갈 천당만을 바라보고 살아야 한다고 오해할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전혀 잘못된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 오히려 세상사는 동안에 육신을 입고 사는 바른 삶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며,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기를 원하십니다. 이 말씀, 하나님께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 있는 동안에 삶을 통하여 그의 나라를 이루어 나가시기를 원하신다라는 말을 인정하는 사람 가운데서도 어떤 삶의 부분은 하나님 나라의 삶이며, 어떤 삶은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삶이라고 오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옳습니다.
그러나 이 많은 사람들 중에 수요일, 교회에서 관계하는 활동 즉, 전도나 심방만이 하나님의 나라의 일이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요, 직장이나 가정에서의 일, 특별히 빨래하는 일은 하나님 나라와는 아무 상관없는 세상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며칠 전에도 어떤 집사님이 그러더군요. '목사님 제발 세상일 그만하고 하나님 일만 했으면 좋겠어요. 매일 밥 짓고 빨래하는 일 못 견디겠어요', '집사님 밥 짓고 빨래하는 일이 하나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입니다'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하나님 나라와 관계없는 세상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경 우, 교회에서는 천사 같은데 직장이나 가정에서는 세상 사람보다 못하는 경우가 있고, 흔히 말하는 대로 교회에서는 천사요, 집에 들어가면 마귀라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물론 일반 직장은 예수믿는 우리와는 전혀 다른 삶의 세상 사람들, 직장은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들과 원리를 따르는 곳이기 때문에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들과의 갈등과 고통이 크고, 교회에 오면 모두 착한데, 그런 사람들에게 시달리다 보니까 나의 연약한 모습이 드러날 경우도 있고, 특별히 가정이라는 것은 가족들과 항시 같이 지냅니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는 속속들이 압니다. 내 약점이 무엇인지 내 모습을 그대로 압니다. 늘 함께 지내는 만큼 나의 모든 약점이 드러나서 부딪히고, 또 만만하니까 나의 연약함이 더 잘 노출될 수도 있어서 교회에서 보다는 직장에서, 사회에서의 모습이 못하다고 하는 것을 이해할만하다 하지만, 절대로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절대 그것이 옳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그러나 전도하고 심방하는 것만이 하나님의 일이요, 가정이나 직장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곳이라고 생각해서 이런 이중생활, 이중인격이 형성된다고 하면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자 청년에게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 청년에게 자기의 전부를 포기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따를 것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부모와 처자와 전토를 다 버리고 오직 주를 쫑았나이다' 하는 말씀은 물론 특별한 경우에는 문자 그대로 가족을 버린 것으로 이해 할 수 있겠으나, 근본 의미는 내 삶 전체를 단 한 개도 남기지 않고 주께 드린다는, 주의 발 앞에 드린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 말을 오해해서 자기 가족과 처자를 죽도록 희생시킨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의 참 뜻은 그 어느 하나라도 나만을 위한 독자적인 영역으로 남겨 두지 않고, 그 모든 것을 주의 다스림에 복속시키나이다, 주의 영광을 위해 드리나이다, 이 모든 삶에서 주의 뜻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도록 하겠다고 하는 헌신의 의미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가정과 자녀가 망가지도록 방치하는 일은 큰죄인 것입니다. 물론 특별한 경우 선교사나 여러가지 특별한 일이 있을 것입니다만은,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한다는 핑계로 가정과 자녀가 망쳐지든, 내 마누라는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은 잘못입니다. 두 사람은 힘을 합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께서 짝지워 주셔서 이루어진 가정이요, 자녀는 내 것이 아니라는, 믿는 가정의 경건한 양육을 받아서 경건한 하나님의 자녀로 키우기 위해 부부에게 위탁하신 영혼, 결코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경건하게 잘 키우도록 맡기신 하나님의 영혼인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자녀는 결코 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경건하게 키우도록 맡기신 하나님의 영혼인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 먼 곳에 있는 남보다, 내 아내와 남편이, 내 자녀를 하나님 앞에 경건하게 살도록 지도해야 할책임이 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내 자식 내 가족만을 아는 저급한 이기주의와는 구별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어떤 특별한 삶의 부분에서만 섬김 받으시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삶에서, 직장과 가정에서까지, 오히려 가정에서부터 출발해서 직장 모든 삶의 영역에서 섬김 을 받으시되, 하나님의 복된 나라가 그의 복된 통치가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하는 것은 세상 일, 직장 일을 하다가 다 팽개쳐 버리고 신학교로 뛰어가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서 있는 처지가 어떠하든지 바로 그 삶의 장소에서 우리의 모든 삶이, 가정과 직장의 일들이 하나님께 거룩하게 헌신되어 진다고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세리 삭개오는 예수님을 믿고 세리직을 그만 두거나 재물을 전부 불태워 쓰레기로 버렸다는 얘기가 없습니다. 그는 오히려 이전에 착취해서 긁어모았던 그 돈을 불쌍한 자의 필요를 채우며, 생명을 구하는, 긍휼을 베푸는 수단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외적인 삶의 모습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으나 그의 삶 전체가 이전에는 더럽고 추하며, 남을 짓밟고 하는 삶, 거스리고 반역하는 삶이 변해서 하나님께로 긍휼을 베푸는 사랑의 삶, 원수까지 사랑해서 화평하게 사는 삶, 하나님께 반역하는 자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기꺼이 고난 받기를 기뻐하는 삶, 자기를 세속과 끊어 날마다 거룩하게 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복된 생명의 나라, 하나님 나라가 여러분 가정과 일터, 교회에서 이루어 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또 이것이 '주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주 기도의 뜻인 것입니다. 이 기도는 주의 나라가 마지막 날 온 우주에 충만되기를, 완성되기를 기도하는 것 뿐만 아니라, 오늘 현재 내 삶 속에서 가정과 일터에서 주의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바울 사도께서는 우리의 삶이, 그 전체가 단 한 곳도 남김없이 전부가 하나님께 드려져야 한다는 것을 암시하기 위해서, 먹고 마시는 것까지 주를 위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일을 이루기 위해 날마다 하나님 앞에 나의 부족과 무능함을 고백하고, 천지를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우리 아버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의 능력으로 신령과 삶 속에 역사하시도록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영생을 누리는 삶의 모습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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