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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기쁨 (빌1:3-11)

본문

빌립보의 본명은 크레니테스(κρνιδε), 곧 ‘작은 우물’ 혹은 ‘샘’이라고 하는 뜻이었습니다. 마게도냐 지방의 수도로 여겨집니다(행16:12). 이 곳은 주전 358년, 알렉산더 대왕의 부왕(父王)인 빌립(phillip 2세)에 의하여 점령 되어 새 도시를 건설한 이후로 그 이름을 따라 빌립보라고 명명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여러 전쟁을 겪은 후 로마의 식민지가 된 이후 부터 빌립보 시민들에게는 로마의 시민권과 자치권이 부여 되면서 부터 빌립보의 명성이 나기 시작하였습니다. 빌립보는 아시아와 유럽, 동서를 잇는 교통의 요새지였기 때문에 역대 지배자들의 전투 격전지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러한 빌립보에 여호와 하나님은 유럽 선교의 처음 기지로 삼고, 바울과 실라를 처음으로 보냈습니다. 바울 일행이 제 2차 선교원정시에 드로아 항구에서 밤에 환상을 본 후 에게해 바다를 건너 이곳에 도착하던 날이 바로 복음이 유럽에 건너 간 최초의 날이었습니다. 유럽 복음의 원년이 된 것입니다. 그 일로 인하여 오늘에 유럽은 아시아 보다 앞선 선진국의 문명시대를 이룩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학자 토인비 교수는 ‘바울을 싣고 가던 배는 바로 유럽을 싣고 가던 배’라고 말하므로 기독교의 복음이 인류문화에 끼친 선도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말을 하게 된것입니다. 만약에 그 때 복음의 진로가 아시아를 향했더면 인도와 중국과 한국은 세계의 선진국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속사적 섭리는 아시아를 종말선교의 무대로 축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은 여기 빌립보에서 루디아와 그 가정, 그리고 점치던 여자, 또한 간수(看守)와 그 가정의 회개를 통하여 처음 교회 멤버로 삼았던 것입니다. 그 후 빌립보 교회는 계속되던 바울의 선교 여로에 중요한 역활을 하였습니다. 교회사의 기록에는 안디옥의 유명한 감독 익나티우스는 로마를 향하여 순교의 여행을 할 때 드로아, 네압볼리등, 그 전의 바울의 진로를 따라 빌립보에 들렸는데 그 교회에서 열열한 환영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어떤 경우든 빌립보 교회는 바울에게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영의 로맨스를 듬뿍 남겨준 교회입니다. 지금 이 편지는 바울이 투옥이 되어 있는 옥고의 몸이었을 때입니다. 빌립보 교인들이 사랑의 연보를 해서, 에바브로디도를 교회의 대표로 뽑아 바울에게 보낸 사신(私信)입니다. 그래서 그는 로마의 감옥에 가져가서 빌립보 교회를 대표하여 바울을 섬기던 중에 몸에 병이 나기까지 하였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빌립보 교인들은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후 에바브로디도는 건강을 되찾았고 다시 빌립보로 되돌아 가게 되었습니다. 그 때 바울은 옥중에서 이러한 일을 감당한 빌립보 교우들에게 편지한 내용입니다. 사실상 이 편지의 중심 내용은 ‘사랑의 편지’입니다. 또한 ‘기쁨의 편지’입니다. ‘사랑과 기쁨’은 함께 따라 다니는 그리스도교 윤리의 2대강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는 기쁨이 있고, 기쁨이 있는 곳에는 사랑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특별히 빌립보에 언급한 ‘기쁨’이란 말에 유의하고 몇곳의 성경을 찾아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기쁨! 그것은
I. 기도의 기쁨입니다. 본문 1장 4절에 간구 할 때 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간구’(δησι)은 ‘간청적’인 소원을 뜻함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생각할 때 마다 감사가 나오고(빌1:3), 간구 할 때마다 기쁨으로 간구할 마음이 일어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유대민족을 위해서는 근심중에 기도한다고 하였습니다(롬9:3). 갈라디아 교회와 고린도 교회를 위하여 기도 할 때는 마음에 눌림과 근심과 걱정으로 기도했다고 하였습니다(갈1:6, 고후2:4). 그러나 빌립보 교회(무리)를 향하여 간구 할 때는 기쁨이 일어난다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즐거운 일입니다. 히브리서 13장 17절에는 교회의 지도자들이 즐거움으로 양들을 인도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진징한 기쁨 중에 하나는 기도 할 때 일어나는 기쁨입니다.
II.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기쁨입니다. 빌립보서 1장 18절에 그러면 무었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를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기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바울의 투옥 문제를 두고, 두가지 종류의 사람들이 생긴 결과를 두고 한 말입니다. 한 종류의 사람들은 착한 마음으로 복음을 전했으나 다른 한 종류의 사람들은 바울을 투기하여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므로 바울을 괴롭히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감옥에 있는 바울은 자신이 문제가 아니라, 그리스도 복음 전파가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하기를 무슨 방도 이든지 간에 그리스도가 전파 된다고 하면 이것으로써 나는 기뻐하고 기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에게 있어 서로 복음 전파의 여부가 희비를 결정 지우는 열쇠였습니다. 그 큰 이유는 복음만이 인류의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복음만이 역사의 힘이요 의미요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복음의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는 날은 우주의 종말입니다.
III. 신앙의 기쁨입니다. 빌립보서 1장 25절에 내가 살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에게 있는 기쁨은 빌립보 교인들의 신앙의 진보와 기쁨의 진보였습니다. 믿음의 진보는 곧 기쁨의 진보와 정비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예수를 믿는다’는 그 자체 앞에 기쁨을 얻게 됩니다. 그 이유는 ‘예수’는 만민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눅2:10). 바로 ‘구원’은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그래서 순교자 손양원 목사님은 여수 애양원 옆에 있는 동산에 올라가 밤세워 기도하던 중 일어나서 춤을 덩실덩실 추었다고 합니다. 그 큰 이유는 나같은 죄인이 어떻게 예수를 믿어 구원을 받게 되었는가 함에 감격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를 믿은다는 그 자체가 기쁨인데, 예수 믿은 신앙이 더 자라가고 있다는 사실은 모두에게 기쁨일 수 밖에 없습니다.
IV.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기쁨입니다. 빌립보서 2장 17-18절 중에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너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이 하나님께 헌신하고 봉사하는 일, 곧 자기를 위하여 연보를 보내어 에바르로디도 편으로 보내어 자기를 섬기게 하는 이 일을 ‘제물’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그 제물 위에 바울 자신을 관제물이 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관제물’이란 제물 위에 마지막으로 붓는 술을 뜻합니다. 이것은 바울 자신이 뿌릴 피의 순교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입니다. 자신은 빌립보 교우들의 그 제물(사랑의 봉사)위에 피를 쏟아 하나님께 드리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고,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고 하였습니다. 4중기쁨입니다. 바울 자신의 기쁨(나는)무리와 함께하는 기쁨, 너희 자신들의 기쁨(개인), 나와 함께 하는 기쁨 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그리스도 때문에 고난 당하는 그 자체는 바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 행위요, 또 순교행위라고 본것입니다. 옛날에 어느 순교자는 그를 죽이는 핍박자 앞에 겸손히 웃으면서 하는 말이 ‘당신은 내가 간수하기 어려운 이 육신의 생명을 취하고, 내가 잃을 수 없는 생명으로 인도하는 구나’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순교자 폴리캅은 ‘오 하나님 아버지 나를 이곳에 적합한자로 판단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장미꽃이 피어 있는 제단에서 내 평생에 기다리던 주님을 대하게 되니 참 감사합니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자기를 태우는 불꽃이 장미꽃으로 보여진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그리스도인의 기쁨입니다.
Ⅴ. 사랑하는 사람을 보는 기쁨입니다. 빌립보서 2장 28절에
그러므로 내가 더욱 급히 저를 보낸 것은 너희로 저를 다시보고 기뻐하게 하며 근심을 들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교회의 대표로 파송을 받은 에바브로디도를 빨리 돌려 보냄으로 빌립보 교인들에게 근심을 덜어 주고 대신 기쁨을 주려 함에 있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빌립보교인들에게 다시 보내 줌으로 저들에게 기쁨이 올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별이라고 하는 것은 슬프고 괴로운 것입니다. 그것은 아프고 쓰라린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의 경우엔 더욱 그러합니다. 바울 그리고 에바브로디도, 또한 빌립보 교우들, 모두 다 사랑하는 관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은 사랑하는 빌립보 교인들에게, 에바브로디도를 보냄으로, 저들을 기쁘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저들 모두의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실로 그리스도인들만이 주고 받는 아가페의 로맨스가 아닌가
Ⅵ. 주 안에서 영접을 받는 기쁨입니다. 빌립보서 1장 29절에 이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저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빌립보교인들이 에바브로디도를 주 안에서 열열히 환영할 것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혹 만에 하나이라도 왜 바울과 함께 있으면서 그를 돕지 않고 돌아왔는가 하는 교인들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주를 위하여 수고하는 자들은 언제나 모든 교우들에게 기쁨의 영접을 받아야 된다는 뜻이 됩니다. 바로 이것이 열려 있는 개인의 마음이요, 열려 있는 가정이요, 열려 있는 교회입니다. 형제가 죄를 범하면 일흔번씩 일곱번 까지라도 용서해야 되는 것이 교회의 마음일진대, 선한 일을 하고 돌아오는 충성된 사람을 기쁨으로 영접함은 너무도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열려 있는 사랑과 기쁨의 문이어야 합니다. Ⅶ. 주 안에 있는 기쁨입니다. 빌립보서 3장 1절에 종말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하였습니다.
빌립보서 4장 4절에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하였습니다. 빌립보서 4장 10절에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주 안에서 산다는 것은 마치 새가 공기 중에 살고 고기가 물 가운데 사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 밖에서는 살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기뻐해야 합니다. 왜냐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결코 정죄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는 생명의 성령님의 법이 있어서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살려 냈기 때문입니다(롬8:1-2). 우리가 죄인일 동안 주 밖으로 나갈 수는 없습니다. 어린아이가 어머니와 함께 사는 것은 그에게도 어머니에게도 행복감이 없을 때 그 모자는 피곤하고, 지루하고, 권태로와서 견딜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어머니 안에는 어린 자식을 향한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우리 주 안에는 변할 줄 모르고, 시들 줄 모르는 사랑이 있기 때문에 기쁨의 노래가 나옵니다. 그래서 4장 1절에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고 하였습니다. 4장 2절에는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하였습니다. Ⅷ. 사랑의 선물을 받는 기쁨입니다. 빌립보서 4장 10절에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빌립보 교회가 바울을 위하여 에바브로디도 편으로 보내 준 사랑의 연보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가리켜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빌4:18).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자기에게 있는 좋은 것을 주님의 이름으로 남에게 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받는 것 보다 복이 있는 일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의 사랑을 받고 기뻤다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향기로운 제물이 되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의 기쁨은 다른 사람들이 할수 없는 일을 하는데 있다’(버제트)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전혀 세상 불신자들이 할수 없는 것들을 하는데 있다고 할 것입니다. ‘기쁨은 자연을 움직이게 하는 강한 용수철이요, 기쁨이야 말로 대우주의 시계 장치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힘이다’(J.
C.F 쉴러/기쁨을 노래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의 기쁨이야 말로 사람과 사람의 역사를 움직이게 하는 생명의 용수철일 것입니다. 기쁨이야 말로 구속사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동력(動力)이 될 것입니다. 기쁨이야 말로 세계선교를 감당하는 출력(出力)이 될 것입니다. 기도의 기쁨!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기쁨! 신앙성장의 기쁨!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고난의 기쁨! 사랑하는 사람을 보는 기쁨! 주 안에서 영접을 하고 영접을 받는 기쁨! 주 안에 있는 기쁨! 사랑의 선물을 주고 받는 기쁨! 바로 경향인의 기쁨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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