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만족 (빌3:12-14,4:10-13)
본문
사람은 누구나 만족한 삶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이 이 세상에서 만족하며 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순간적인 만족은 있어도 영원한 만족은 없습니다. 바울사도는 본문4:11"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다는 것은 "나는 언제나 만족한다"는 말씀과 같은 뜻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세상에서 만족하지 못하며 사는 우리들로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말씀입니다. 더우기 나는 만족한다고 바울사도가 말할 때 그는 감옥에 있었고, 바로 그전에는 매를 맞앗고 조금전에는 탔던 배가 파선하는 일이 있었고 돌에 맞았고 굶주렸고 죽을 고비를 여러번 넘겼던 것입니다. 이처럼 불행하고 처참한 바울이 "모든 경우에 만족할 수 있는 비결을 배웠다"고 했습니다. 과연 바울 사도가 어떠한 처지에서도 만족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입니까
1.여호와 하나님게서 자기를 움직이고 계신다는 신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빌1:6"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빌 1:6) 하나님께서 우리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셨고, 그 착한 일은 그리스도가 오실 때 완성하신다고 믿는 신앙이 있기 때문에 만족감을 가졌던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내 속에서 착한 일을 하도록 움직인다고 믿었기 때문에 만족감을 가졌던 것입니다. 미국의 천주교의 정신적인 지도자였던 쿡대주교가 별세하자 관 속에 그가 항상 입고 다니던 옷을 한 벌 넣어 주었는데 그 옷에는 평생 표어로 삼은 글이 세겨져 잇었습니다. "당신의 뜻이 이루어 지이다." 쿡대주교는 무슨 일을 하던지 "이것이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것인가" 항상 자신에게 물으면서 행동했던 것입니다. 즉 1 자기 자신의 뜻대로 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했던 것입니다. 자기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뜻대로만 살려고 했던 쿡대주교는 만족한 삶을 살았을것입니다. 우주를 창조하신 능력의 하나님이 나를 움직이고 계신다는 신념과 신앙을 가질 때 어던 환경속에서도 만족감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2.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복종하는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바울은 만족하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빌2:5-8"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 2:5)-(빌 2:8) 바울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순종한 삶을 본받아 순종하였기 때문에 만족의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은 하나님께 대한 복종입니다. 빌2:1-4"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빌 2:1)-(빌 2:4) 만족한 삶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본받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은 지금 읽은 말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1)마음을 같이 하여,
2)같은 사랑을 가지고,
3)뜻을 합하여, 4)한 마음을 품어 5)아무 일에나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6)겸손한 마음으로 남을 낫게 여기고, 2 8)각각 다른 사람들을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는 생활입니다. 이러한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이며 이러한 마음을 가질 때 우리는 진정으로 만조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3.바울은 주님이 자신을 불러 주셨다는 신념을 가졌기 때문에 만족한 삶을 살았습니다. 빌3:13-14"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빌 3:13)-(빌 3:14) 하나님이 나를 불러 주셨다는 신념으 가질 때 바울선생의 마음은 만족으로 충만했습니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나를 인정해 주고, 불러 주셨다고 할 때 기쁨이 넘칩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나를 불러 주셨다고 하면 기쁨이 넘치고 만족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인도에 선교사로 갔던 명설교가 스텐리 존스목사는 "내 이름이 하나님의 출석부에 기록되어 있고 날마다 내 이름을 불러 주시는 것을 느낄 때 나는 어떤 어려움속에서도 생기를 얻고 힘차게 일할 수 있다:고 그는 고백을 하였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불러 주셨습니다. 이것을 참으로 확신하고 믿는 사람은 오늘의 삶속에서 만족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4.주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빌립보4장에는 주안에서"라는 말이 일곱번이나 나옵니다. 바울은 크리스천은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자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주안에 산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한다면 3 "예수님은 나의 주인이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만족은 주안에 있을 때 옵니다. 바울 선생은 인간으로 말하면 자랑거리가 많습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자랑 속에서 만족을 얻지 못했던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고통을 당했지만 참된 만족을 맛보게 된 것입니다. 솔로몬왕은 부귀영화를 누린 후에 "헛되고 헛되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의 것으로 진정한 만족을 누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으로만 진정한 만족을 누릴 수 있습니다. 만족은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들이 많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없이 지내도 되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를 깨달음으로써 얻어지는 것입니다. 셈프로니우스는 옷이 없어서 투덜거렸으며 새 양복 한벌을 마련하기를 몹시 바랬습니다. 해진 양복을 입고 극장에 가기가 부끄러웠기 때문입니다. 그가 마침내 새 양복을 마련하였을 때 그는 헌 양복을 가난한 코두르스에게 주었습니다. 코두르스는 뛸듯이 기뻐하며 자신을 멋있게 차렸습니다. 셈프로니우스와 코두르스는 자연적인 욕구는 조금도 차이가 없었습니다. 오직 저들은 주어진 여건에서 각자의 주관이 달랐습니다. 셈프로니우스는 있어야 된다는 것에만 치우쳤고 코두르스는 없어도 된다는 사고방식을 가졌기 때문에 주어진 모든 것으로 만족을 느낄 수 있었던 것입니다.
1.여호와 하나님게서 자기를 움직이고 계신다는 신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빌1:6"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빌 1:6) 하나님께서 우리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셨고, 그 착한 일은 그리스도가 오실 때 완성하신다고 믿는 신앙이 있기 때문에 만족감을 가졌던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내 속에서 착한 일을 하도록 움직인다고 믿었기 때문에 만족감을 가졌던 것입니다. 미국의 천주교의 정신적인 지도자였던 쿡대주교가 별세하자 관 속에 그가 항상 입고 다니던 옷을 한 벌 넣어 주었는데 그 옷에는 평생 표어로 삼은 글이 세겨져 잇었습니다. "당신의 뜻이 이루어 지이다." 쿡대주교는 무슨 일을 하던지 "이것이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것인가" 항상 자신에게 물으면서 행동했던 것입니다. 즉 1 자기 자신의 뜻대로 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했던 것입니다. 자기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뜻대로만 살려고 했던 쿡대주교는 만족한 삶을 살았을것입니다. 우주를 창조하신 능력의 하나님이 나를 움직이고 계신다는 신념과 신앙을 가질 때 어던 환경속에서도 만족감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2.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복종하는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바울은 만족하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빌2:5-8"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 2:5)-(빌 2:8) 바울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순종한 삶을 본받아 순종하였기 때문에 만족의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은 하나님께 대한 복종입니다. 빌2:1-4"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빌 2:1)-(빌 2:4) 만족한 삶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본받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은 지금 읽은 말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1)마음을 같이 하여,
2)같은 사랑을 가지고,
3)뜻을 합하여, 4)한 마음을 품어 5)아무 일에나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6)겸손한 마음으로 남을 낫게 여기고, 2 8)각각 다른 사람들을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는 생활입니다. 이러한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이며 이러한 마음을 가질 때 우리는 진정으로 만조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3.바울은 주님이 자신을 불러 주셨다는 신념을 가졌기 때문에 만족한 삶을 살았습니다. 빌3:13-14"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빌 3:13)-(빌 3:14) 하나님이 나를 불러 주셨다는 신념으 가질 때 바울선생의 마음은 만족으로 충만했습니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나를 인정해 주고, 불러 주셨다고 할 때 기쁨이 넘칩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나를 불러 주셨다고 하면 기쁨이 넘치고 만족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인도에 선교사로 갔던 명설교가 스텐리 존스목사는 "내 이름이 하나님의 출석부에 기록되어 있고 날마다 내 이름을 불러 주시는 것을 느낄 때 나는 어떤 어려움속에서도 생기를 얻고 힘차게 일할 수 있다:고 그는 고백을 하였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불러 주셨습니다. 이것을 참으로 확신하고 믿는 사람은 오늘의 삶속에서 만족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4.주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빌립보4장에는 주안에서"라는 말이 일곱번이나 나옵니다. 바울은 크리스천은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자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주안에 산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한다면 3 "예수님은 나의 주인이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만족은 주안에 있을 때 옵니다. 바울 선생은 인간으로 말하면 자랑거리가 많습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자랑 속에서 만족을 얻지 못했던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고통을 당했지만 참된 만족을 맛보게 된 것입니다. 솔로몬왕은 부귀영화를 누린 후에 "헛되고 헛되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의 것으로 진정한 만족을 누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으로만 진정한 만족을 누릴 수 있습니다. 만족은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들이 많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없이 지내도 되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를 깨달음으로써 얻어지는 것입니다. 셈프로니우스는 옷이 없어서 투덜거렸으며 새 양복 한벌을 마련하기를 몹시 바랬습니다. 해진 양복을 입고 극장에 가기가 부끄러웠기 때문입니다. 그가 마침내 새 양복을 마련하였을 때 그는 헌 양복을 가난한 코두르스에게 주었습니다. 코두르스는 뛸듯이 기뻐하며 자신을 멋있게 차렸습니다. 셈프로니우스와 코두르스는 자연적인 욕구는 조금도 차이가 없었습니다. 오직 저들은 주어진 여건에서 각자의 주관이 달랐습니다. 셈프로니우스는 있어야 된다는 것에만 치우쳤고 코두르스는 없어도 된다는 사고방식을 가졌기 때문에 주어진 모든 것으로 만족을 느낄 수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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