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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모습들 (마12:1-13)

본문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은 다양합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세가지 유형의 사람들 말 했습니다.
첫째는 거미와 같은 남에게 해를 끼치며 남의 약점을 이용해서 사는 유형과
둘째는 개미와 같이 자기만을 위하여 준비하는 이기적인 유형이 있고,
셋째는 남을 위해 희생하고 수고하는 꿀벌과 같은 남을 위해 희생하고 수고하는 꿀벌과 같은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탈무드에서는 인간을 평가할 때 세가지 기준에서 평가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돈을 잘 사용할 줄 아는 모습을 통해서,
둘째는 쾌락적인 생활에 빠져 있는가를 통해서,
셋째로는 감정이나 노여움 등을 얼마나 억제할 수 있는가에 따라서 그 사람의 됨됨이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도 여러 종류의 신자들의 모습이 각각 나타 납니다.
첫째로는 육에속한 그리스도인,
둘재로는 해야 할 일은 남에게 미루면서 남의 흉과 허물을 발견하면 비판만을 일삼는 그리스도인,
셋째로는 순종을 잘 하면서 충성 봉사 헌신을 잘 하는 그리스도인 등 입니다.
마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조명하면서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예수님 십자가 사건과 부활과 승천하는 과정을 일곱가지 단계로 구분해서 말씀합니다.
첫번째는 탄생과 유년시절,
두번째는 삼년동안의 공생애 사역의 준비과정,
세번째는 갈릴리 바닷에서 전도하던 시기,
네번째는 갈릴리 전도를 마치시는 말기 전도시기,
다섯번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갈릴리를 떠나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시기에 일어난 사건들에 대해서
여섯번째는 예수께서 예루살렘의 성문밖 골고다 언덕에서 "엘리엘리 라마사박다니"하시면서 죽으시고 다시금 그 고통과 괴로움이 죽음으로 끝나는 사건을,
일곱번째는 사흘만에 사망이 권세를 깨치시고, 부활하셔서 사십일동안 지상에서 부활 이후에 제자들을 훈련시키는 모습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2장은 이 일곱가지 단계중에서 특별히 갈릴리 바다를 중심으로 해서 전도하시던 세번째 단계입니다.
안식일에 제자 열두명을 데리시고 회당을 향해서 가실 때에 밀밭사이로 지나가시는 중에 시장해서 배고픈 제자들이 남의 밀 이삭을 따서 손으로 비벼 먹었습니다.
그 모습을 숨어서 바라보던 바리새인들이 "보소서! 당신의 제자들이 밀이삭을 주워 먹는 것을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수님은 힐난하는 바리새인들에게 안식을 어떻게 지키는가를 말씀하시면서 한편 손마른 사람을 고쳐주시는가를 그 기적적인 역사를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여기 볼 수 있는 것은 세종류의 사람들이 나타나게 되는데
제자들과 바리새인, 한편 손마른 사람이 입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손이 마른 사람은 아무 대가도 없이 병이 나았습니다.
값없이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과 9절에 보면 '그 은혜로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의 어떤 노력과 수고와 값으로는 살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에 너무 귀한 은혜라 값없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값없이 주시고 값없이 구원을 주시고 대가없이 축복을 주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중요한 사실은 어떤 사람이 이러한 은혜를 받을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본문은 교회 안에서 세 종류의 사람을 제시해 주면서 우리는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해 줍니다.
1. 교회 안에는 예수님의 제자들 처럼 본능적인 교인들이 있습니다.
본문 1절을 보면 "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쌔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발견 할 수 있는 것은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며 기초적인 신앙은 있었으나 육체적인 욕구를 따라서 움직이는 세속적인 신자의 모습을 발견 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말씀하실 때에 배와 그물과 고기와 모든 가정과 아내와 자식까지 뒤로 하고 주님을 따르던 신앙의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은 순간적인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밀 이삭을 잘라 먹던 본능적인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교인들 중에도 교회 안에서 열심히 봉사는 잘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이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안식일이라는 말은 히브리말로 "사퍄트"라는 말로서 ‘노동으로 부터 쉰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안식일의 참다운 의미입니다.
안식일은 하던 일을 중지하는 단순한 날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하나님을 향해서 거룩하게 경배하며 육체적인 정신적인 노동으로부터 영육간에 쉬는 날이 안식일입니다.
하나님은 안식일을 구별하고 축복된 날로 만들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토요일을 그들의 안식일로 지켰었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고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이후에는 그 구원을 완성하신 다음에 사망의 권세를 깨치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신 날인 주일로 지키는 것입니다. 인류를 죄와 사망에서 구속하신 것은 우리의 조물주 되신 하나님의 피조물인 인간이 망가졌으나 망가진 인간을 예수의 십자가의 보혈로 구속해 주심으로 새롭게 창조하신 새창조의 날이기 때문에 바로 이 주님의 부활의 날을 새로운 안식일로 우리가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날의 안식일입니다.
제자들의 이러한 모습을 통해 오늘날 경제문제로 주일성수를 범하는 교인들의 유형을 볼 수 있습니다.
돈과 세상적 명예라면 신앙도 잘라버리고 ,
돈과 세상적 명예를 얻는 일이라면 세상적으로 해서는 안되는 일도 버젓이 하는 본능적인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 지극히 현세적이고 계산적인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본문 8절에서 "인자는 안식일에 주인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안식일을 지키느냐 못지키느냐는 예수님과 나의 관계가 정상이 되느냐 안되느냐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하디칸은 계산적인 사고의 사람과 영감적 사고를 가진 사람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계산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은 타산적이며, 영감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은 손해를 봐도 그 이상의 축복을 기대하고 믿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계산적인 사고에서 영감적인 사고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에릭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라는 책에서 소유를 위해서 사는 사람과 소유보다는 삶의 의미를 즐기면서 사는 사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얼마나 돈이 많으냐에 삶의 의미를 두고,
또 다른 사람은 삶자체에서 의미와 기쁨을 느낍니다.
제자들과 같은 성도는 아침에 이슬을 머금었다가 태양이 떠오를 때 꽃이 피지만 저녁에는 쭈그러 드는 나팔꽃과 같은 신자이며, 남에 의해 끌려오는 인력거와 같은 신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2.바리새인과 같은 비난을 잘 하는 종류의 교인들이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같은 신자는 적은 문제를 가지고 문제를 만들고 비난하고 비평하고 욕하는 공격적인 언어의 사람들입니다.
1절을 보면 "이삭을 잘라 먹으니"라고 되어 있는데
헬라원문에 보면 "이삭을 잘라 먹기를 시작하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별로 문제될 것도 없는데불구하고 비난을 잘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가시처럼 콕콕 찌르기도 합니다.
교회에서 자기는 안하고 남만 시키는 사람입니다.
주님은 비판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면서 자신의 눈속의 들보를 먼저 보고 네 형제의 티를 빼야 되지 않겠느냐고 말씀했습니다.
(마7: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마7:2)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마7: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마7:4)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마7:5)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누가복음 16장을 보면 바리새인들도 돈을 좋아했습니다. 그들은 영적인 능력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허물이 있다면 이삭을 잘라 먹는 제자들보다 그런 영져인 잘못을 범함 바리새인들이 더 큰 허물이 있는 것입니다.
3.한편 손 마른 사람처럼 순종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13절을 보면 "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하시니 저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 회복되어 성하더라"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은 건강하지도 못하고 초라한 사람이었지만 예수께서 손을 내밀라고 했을 때 손을 내밀었습니다.
비록 불구자였지만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는 그때 순종함으로서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주님의 관심과 사랑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는 순종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예수님은 회당 안에 수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그 중에 한편 손마른 사람을 보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관심을 주었습니다.
12절 말씀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귀하냐"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은 불구였지만 예수님은 그를 인정해 주었으며 귀중하게 여겨 그는 너무 감격하여 순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나은 것입니다.
13절을 통하여 순종하면 회복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순종하면 축복을 받는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먼 바다를 항해하는 선원들은 어둡고 거친 수면을 볼것이 아니라, 북극성이 빛나고 있는 맑고 푸른 창공을 보고 있어야 합니다.그래야 방향을 찾을 수가 있는 것 입니다.
유명한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는 "나는 이적을 행하기 보다는 순종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어느 부대에 신앙생활을 잘 하는 장군이 있었습니다. 그의 신앙이 점점 자라자 헌신할 마음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을 찾아가서 내가 교회를 위해서 무슨 일이든지 헌신하고자 하는데 내게 맞는 일이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 말을 들은 목사님은 꼭 한가지 장군님이 할 일이 있다고 하면서 말씀하기를, 다음 주일부터 평소보다 교회에 30분만 일찍 나오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교회에 나오는 사람마다 안내를 하면서 주보를 나누어주는 것이 장군님이 해야 할 가장 필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말입니까 군장성에게 주보를 나누어달라니요그러나 이 장성의 믿음이 놀랍습니다. 그는 아무 소리없이 목사님의 그 말에 순종하기로 대답하고는 그 다음 주일부터 30분 일찍 교회에 나와서 주보를 나누어 주면서 봉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등병을 비롯한 사병들이 이 교회에 들어와도 인사를 깍듯이 하고는 주보를 나누어 줍니다. 그 다음 주일부터 놀랄 만큼의 많은 병사들이 그 교회에 나오게 되었답니다. 군장성의 인사를 받으러 교회에 가자! 하고 너도 나도 교회로 나오게되고 교회는 금방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게 된 것 입니다.
교회는 말없이 충성 하고 헌신 희생 봉사하는 교인들이 많을때에 그 교회는 은혜스러운 교회가 되는것이며 부흥이 되는 것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능적인 신앙을 본받지 말고
남의 일에만 간섭하고 평가하는 습성들을 본 받지 말고
늘 겸손하며 주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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