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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고통 (롬9:1-3)

본문

빌 4:4절에서 바울은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말하노니 기뻐하라"고 말했고 살전 5:16절에서도 "항상 기뻐하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다가 고통을 겪을때마다 기뻐하고 찬송했습니다.
그런데 롬 9:1-3절에서는 바울은 내 마음에는 큰 근심 이 있고 끊이지 않는 고통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감옥에서도 기뻐 찬송했던 바울,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말하노니 기 뻐하라"고 선포했던 바울이 내 마음에 끊이지 않는 고통이 있다고 했 습니다. 과연 이 고통은 어떤 고통일까요 오늘은 본문 말씀을 통하 여 가장 모범적인 그리스도인이었던 바울이 근심하고 고통스러워한 그 고통이 어떤 고통인지 생각해 보길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모두 바울처럼 근심하고 고통하는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첫째, 그리스도인의 고통은 민족을 위한 고통입니다. 본문 말씀을 살펴보면 바울의 마음속에 있었던 큰 근심과 고통의 주제는 자기 민족의 영혼을 위함이었음을 알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단절된 민족의 영혼들, 영적으로 핍절하고 정신적으로 나약하여 황폐 해진 자기 민족의 영적인 상태를 보고 바울은 깊이 근심했고 끈임없는 고통을 안고 하나님께 엎드렸습니다. 역사가 토인비는 위대한 공적을 남긴 민족의 공통점을 굳건한 단 결력, 왕성한 활동력, 민족의 진실성등 세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36년 동안 일본의 압제하에서 살았습니다. 나라를 찾 아야 한다는 애국심, 애족심에 뜻있는 사람들은 울었고 특별히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앞에 눈물을 흘리고 목숨걸고 기도했습니다. 자주 독 립을 위해 민족적인 대 궐기를 한3.1절이 74돌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국가의 독립과 번영을 위해서 우리 선열들은 목숨을 바쳤고, 그 들의 고귀한 삶을 통해 우리나라는 해방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민족이 망하면 개인도 가정도 망합니다. 지금은 우리 국민들이 새롭게 마음을 다지고 정신적인 혁명을 일으켜야 할때입니다. 많은 국민들이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에 붙잡혀서 국가와 민족은 어떻게 되던지 자신 의 부와 안락과 영광만을 위하여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치닫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국가적으로 새로운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우리 모두 패망의 늪에서 함께 울때가 올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개 인과 가정만을 위해서 염려하며 살았던 우리의 삶의 차원을 한단계 높입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국가와 민족을 위해 근심하고 고민 하는 사람은 개인의 근심과 고민이 초월되는 것입니다. 민족의 영적 인 부강함을 위해서 국가의 정신적인 위대한 역사를 위해서 버울처럼 고민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그리스도인의 고통은 가정을 위한 고통입니다. 눅 28:28절이하에는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오르시던 예수님의 모습이 나타나 있습니다. 침뱉음 당하시고 발로 채임을 당하시면서 끌려가시던 주님을 보고 예루살렘의 여인들이 울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예루 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해 울지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들을 위해 울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의 자녀들이 보다 육신적으로 안락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피땀흘려 노력하는 일은 훌룽한 일입니다. 그러나 자식 들의 영혼과 정신적인 삶을 위해서 얼마나 울며 고통스러워하는 부모 가 되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영적으 로 황폐하고 정신적으로 나약한 자식들을 두고 어찌 기도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아직도 구원받지 못한 가족과 혈육 친척을 위해 고민 하고 울며 기도하는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셋째, 그리스도인의 고통은 자신을 위한 고통입니다. 형과 아버지를 속여 장자의 축복을 받은 야곱은 삼촌 집으로 피신 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장자의 축복을 받은 야곱은 큰 재 산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얍복 나루터에 이르렀습니다. 야곱에게는 해결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형과 원수 되었던 일입니다. 야곱은 가족과 짐승들을 강 건너로 보내고 홀로 남았습니다. 그 리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임재 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이신즐 모르고 그분과 밤새도록 씨름했습니다. 야곱은 영적인, 정신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그분을 붙잡고 밤새도록 사정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환도뼈를 쳤습니다. 그래도 야곱은 그분 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때 그분이 "내가 하나님이다"라고 말씀하시며 야곱을 축복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내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위해, 영적인 부요를 위해, 빛되고 정신적인 위대한 삶을 위해 고통하고 고민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야곱은 지금까지 사 실상 물질적인 기준을 두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영적인, 정신적 인 삶의 중요성을 깨닫고 얍복강 나루터에서 이를 위해 씨름하고 기도하고 고민할때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영적인 축복을 주셨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고통은 나약함, 실패, 비굴함에서 오는 고통이 아닙니다. 바울은 "이는 내가 원하는 바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의 고민과 고통은 민족의 내일을 위해 자청한 의로운 고민이었고 희망의 고통이 었습니다. 위대한 역사를 창출하기 위한 고통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 들은 마음의 소원때문에 고통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고민과 고통은 민족의 번영과 가정의 앞날, 그리고 위대한 역사와 개인의 삶을 값있고 복되게 하기위한 것입니다. 이같은 고민과 고통이 여러분의 것이 되 길 원합니다. 성도 여러분 ! 의로운 고통을 통해서 우리 민족의 앞 날에 새로운 역사가 이루어지게 될 것을 믿습니다. 여러분과 나의 개 인적인 삶속에 새 빛이 임하게 될줄로 확신합니다. 제 목:믿음앞에는 불가능이 없다 성경:마17:14-20 이 시대를 가르켜 러셀은 말하기를 [인간오해로 가득찬 시대]라고 했고 에 밀 부르너는 [모순의 시대] 라고하였습니다. 왜 오해가 되게 되었을 까요 믿지 못핫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못 믿기 에 그 사람에 대하여 오해를 하게됩니다. 믿지 못하기 때문에 두려운 마음 도 있습니다. 요즘 세상은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려고 하면 감사한 마음이 아니라 오히려 오해를 하게됩니다. 이와같은 불신 때문에 사람들의 감정이 사라지고 순수성 을 상실하게되었고 모든 것이 삭막하기만 합니다. 사람들은 믿지 말아야 할 것은 믿고 믿어야 할 것은 믿지 못하는 모순의 시대에 살고 있기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7장에서 예수님께서 헬몬산에서 기도하실때에 모습이 변형되어 산에서 내려오셨을 때 한 사람이 예수께 꿇어 엎드려 [주여 내 아들을 불쌍 히 여기소서, 저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고 물에도 넘어 지는 데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려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라고 하였 을때 예수님은 말씀으로 귀신을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때 부터 낫게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건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당 부하셨습니다. 왜내하면 믿음이 없고 패역한 새대이기 때문입니다. 또 말씀하 시기를 너희에게 만일 겨자씨 만한 믿음이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것이 없으리라고 마태복음 17:13-20에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믿음도 있어야 사명도 수행합니다. 성경 본문에 이 아리를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데려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였습니다. 왜입니까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성도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독일의 유명한 교육자인 에드워드 스프랭거는 그의 저서 생의 형식에서 인간을 여섯가지로 분류했습니다.
첫째, 이론적 인간-말로만 살아가려는 사람
둘째, 경제적 인간-돈만있으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세째, 심미적 인간-아름다움을 찾는 사람 네째, 사회적 인간-사회를 위하여 희생하고 봉사하려는 사람 다섯째, 권력적 인간-권력이나 명예를 얻고자 노력하는 사람 여섯째, 종교적 인간-믿음의 사람으로 신앙으로 삶을 지배하도로 하며 자 기 사명에 책임을 질줄 아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믿음이 있어야 문제를 해결할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수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야말로 문제로 가득찬 세상입니다. 질 병의 문제도 있고 정신적인 병도 있습니다. 또한 사회도 병들어가고 있습니다. 문명이 병들고 정치가 병들고 있습니다. 종교도 병들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육체의 병 뿐만아니라 정신적인 문제 부패된 이 사 회를 정화시키는 역할을 해야합니다. 믿음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 입니다. 마가복음 9장 20절에 할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 할일이 없느니라. 고 말씀했습니다. 믿음으로 우리 앞에 자애물이 제거됩니다. 산적한 문제가 해결됩니다. 믿음으로 회개하면 죄를 용서받고 사망에서 구원 을 받게됩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는 믿음을 가져야 구원을 얻습니다. 사람을 보고 따르고 시대를 따르고 환경을 따르면 안됩니다. 믿음의 주요 온 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고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따르는 자에게 큰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이 시대는 믿음이 회복이 요구되는 때입니다. 서로믿고 살 수 있는 사회 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을 믿고 말을 믿고 물건을 믿고 사고 팔고하는 세상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일을 위해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철저하게 믿는 신앙의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굳은 신앙으로 불신앙을 헤쳐나가는 믿음의 사람들. 믿음의 용사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제 목:하나님을 닮은 사람들 성경:마5:43-48 태초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 하실때에 당신의 형상을 따라 만드셨다고 했습니다(창 1:8). 여기 형상이란 속성을 뜻하며 더 쉬운 말로 표현 한다면 성품이란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닮도록 인간을 만들었다는 말입니다. 결국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닮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여기 닮는 것도 두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선천적 닮음 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성격이라고 하고, 후천적인 닮음이 있는데 이것을 우리는 인격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하늘 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닮으라는 뜻입니다. 성격은 타고난 것이라면 인격은 내 노력으로 다듬는 것입니다. 조각가가 돌을 다듬는 것처럼 우리 인격도 다듬어서 만드는 것입니다. 다듬을 때에 모델이 있어야 합니다. 포인트가 있어야 합니다. 구상을 가져야 합니다. 인 격의 모델은 바로 예수님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를 닮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첫째:예수님의 생활 철학을 닮아야 합니다.
1) 활동적 삶입니다:노력하는 생활 이었습니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 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요 9:4). 인간의 생존 가치는 일하기 위한 존재입니다. 내가 살아있는 것은 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30년 나사렛 목수생활에도 충실 하셨고 공생활 3년 쉴새없이 일 하셨습니다.
2) 외적인 모습입니다:예수를 닮은 사람은 말씨 걸음걸이 옷 입는것 까지도 냄새가 나야 한다는 말입니다. 크리스챤은 외모에서 풍겨나는 모습이 겸손과 온유 가 배어져야 합니다. 신경질을 부리거나 거짓말이나 욕같은 것은 결코 나타내지 않도록 삽시다. 사람은 감정을 한 박자만 늦추면 감사가 찾아오게 됩니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잠15:1).
3) 원수까지 사랑하는 윤리관을 가르칩니다:주님은 오늘 성경 본문에서 이렇 게 말합니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와 같이 아니 하느냐고. 내게 잘 해 주는 사람 나도 잘해 줄 수 있습니다.
둘째:예수님의 마음을 닮아야 합니다 너희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2:5)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는 것이 그리스도의 인격이라고 했습니다. 그의 마음은 겸손 한 마음입니다. 온유한 마음입니다. 희생하는 마음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겉사람은 부패해도 속사람은 새로워 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인격입니다. 오래전 노래 가사가 생각납니다. 얼굴이 예쁘다고 여자냐 마음이 고와야 여자지. 그렇 습니다. 우리 모두 속사람을 단정히 합시다. 그리스도의 온유와 겸손한 마음을 닮 읍시다. 예닮교회란 간판을 본 일이 있습니다. 예수닮는 교회란 말이겠지요. 말만 이 아닌 생활이 닮도록 나를 쳐서 십자가 밑에 사형 시키시기 바랍니다.
셋째:예수님의 교육방법을 닮아야 합니다. 그는 어떤 권위와 물리적 방법으로 가르쳤거나 훈계치 않으셨습니다. 느끼게 하는 교육방법을 선택 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감화력이라고 말합니다. 그의 제자 요한은 자기 제자들이 사랑이야기 말고 다른 이야기는 없느냐고 했더니 내 주님이 사랑이야기만 하셨으니 나도 사랑이야기 밖에 없다고 하였답니다. 바울은 디모데 를 향해 네 어머니 유니게와 할머니 로이스에게 있더니 너에게도 있는줄 안다고 감화력있는 교육을 지적해 주었습니다(딤후1:3). 성도여러분! 죄된 인성을 갖는 인간이기에 나쁜것은 곧 닮지만 좋은 것은 닮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모두 예수를 닮고 삽시다. 예수님의 마음을 닮고 그의 삶의 철학을 닮아 봅시다. 이것이 하나님을 닮은 자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닮는 사람들은 함부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닮은 사람은 예수 냄새를 풍기고 삽니다. 하나님을 닮은 사람! 성도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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