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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거룩 (벧전1:13-25)

본문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되는 가장 소중한 생활 덕목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거룩입니다. 이 거룩은 구별된 삶의 요소를 말합니다. 그리고 성별된 삶의 내용을 말합니다. 성경은 줄기차게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점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사욕에서 부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벧전1:14)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벧전1: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고 했습니다. 여기서 사욕이라는 말은 여호와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때의 생활을 말합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옛 생활”이라고도 합니다. 사람마다 보면 다 옛 생활이 있습니다. 그 옛 생활은 모두 구원과는 거리가 먼 생활입니다. 여러분, 믿지 않는 사람들과 앉아서 대화를 해보십시오. 그 사람들이 지금 가지고 있는 관심과 생각과 삶의 목표가 무엇인지 들어 보십시오. 모두 구원과는 거리가 먼 것들입니다. 아주 구태의연한 것들입니다. 지극히 현세적이고 이생적인 생각들만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전에는 모두 그랬습니다. 그 차원을 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생활을 옛 생활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들은 모두 그런 생활로부터 극복되었고 그런 생각으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이제는 관심과 목적이 변화를 받았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저 높은 세계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되었고 그곳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곳오로부터 오는 은혜를 알고 소망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큰 변화이고 신비한 일입니까 이것이 구원이고 부르심입니다. 그래서 이 구원이라는 것은 다른 차원의 삶을 의미합니다. 우리들이 지금 신앙인이 되지 않았더라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겠습니까 이런 문제에 대해서 한번 깊이 생각해 보신 일이 있습니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것은 참 기적 같은 일입니다. 우리들이 지금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부름을 받아서 현재 구별된 사람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실로 신비한 일입니다. 그리고 기적 같은 일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들에게 거룩한 생활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의무입니다.
2. 주님의 부탁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왜 거룩해야 하는가 하면 주님의 부탁이 있기 때문입니다. 16절을 보면 “(벧전1:16)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하셨느니라 ”고 했습니다. 주님은 우리들의 모델입니다. 그리고 기준이고 이상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분은 우리의 거룩의 표본입니다. 그러기에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이 시대에서 신앙생활을 하기가 어려운 것은 이 거룩을 유지하며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세상에서 거룩하게 살기는 쉽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거룩한 틈에서 나도 거룩하게 살기는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들이 거룩하게 살아가기가 힘든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거룩하게 살지 않고 있는데 나 혼자서 거룩하게 살자니까 힘들고 어려운 것입니다. 모두 타락한 세상에서 나 혼자만이 온전하게 살아가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모든 사람들이 적당히 살아가는데 나 혼자서 원칙을 고수하며 고고하게 살아가기가 얼마나 힘이 듭니까 사람들이 모두 놀러가고 즐기며 살아가고 있는데 나 혼자서만 주일을 지키며 살아가기가 어려운 일이라 그 말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려고 하면 우선 갈등이 많아집니다. 얼마나 고민이 많은지 알 수가 없습니다. 특히 오늘 같은 시대는 신앙인들의 마음에 갈등을 일으키게 할 만한 조건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모두 갈등의 요인들입니다. 그래서 구별된 삶을 살아가다가도 순간 추해지기 쉽습니다. 그래도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구원받은 사람은 거룩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부탁입니다. 어렵지만 그래도 해보라는 것입니다. 먹을 것 다 먹고, 놀 것 다 놀고, 할 것 다 하고 그러고 나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신앙은 유치할 만큼 순진하게 하고 우직할 만큼 순수하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신앙에는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우리들이 이 시대에 짊어지고 살아가야 하는 가장 고민스러운 십자가인지 모릅니다. 이 십자가를 질 용기가 없으면 오늘 이 시대에서 신앙생활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신앙의 길은 언제나 좁은 길이고 그 문은 좁을 수밖에 없습니다. 옛말에 동가식 서가숙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집에 무남독녀가 있었습니다. 이 딸을 애지중지 길렀는데 시집 보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어느 날 동시에 두 집에서 혼담이 들어왔습니다. 동쪽에 사는 총각은 부잣집 아들인데 좀 부족합니다. 아버지는 딸이 그 청년에게 시집 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서쪽에 살고 있는 청년은 집은 가난한데 사람이 워낙 좋은 청년입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그 청년에게 딸이 시집 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때 딸이 고민을 하다가 이렇게 말합니다. “먹기는 동쪽 부잣집에 가서 먹고 살기는 서쪽 가난한 집에 가서 살면 좋겠습니다.” 이것이 “동가식 서가숙”입니다. 이런 일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지만 오늘 우리들이 세상을 살면서 이런 고민에 빠질 때가 많습니다. 우리들의 마음은 서쪽에 있고 몸은 동쪽에 있습니다. 마음과 생각이 따로 놉니다. 우리의 신앙과 생활이 일직선상에 놓여 있지 않습니다. 거룩과 세속 사이에서 여전히 따로 따로입니다. 이것이 이 시대 신앙인들의 최대 고민입니다. 그래도 성경은 거룩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느 시대나 환경과 조건 그리고 입장을 떠나서 신앙인은 신앙인으로서 품위를 지키고 중심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삶이 곧 거룩한 삶입니다.
3. 심판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왜 거룩해야 하느냐 하면 바로 마지막에 있을 심판 때문입니다. 마지막에 있을 인생의 감사, 인생의 결산 때문에 그 삶이 거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3절을 보면 “(벧전1:13)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찌어다 ”고 했습니다. 이 말은 쉽게 말하면 심판 때를 생각해서 거룩하게 살라는 말입니다. 앞으로 종말도 없고 심판도 없다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가끔 들 때가 있습니다. 마음 편하게 살아가다가도 이 심판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괜히 긴장이 됩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우리 앞에 이 법이나 심판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유익하고 좋은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장차 올 이 심판이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얼마나 조심스럽게 만들어 주는지 모릅니다. 생활에 때로 긴장을 주기도 하고 세상을 함부로 살다가도 순간마다 두려운 마음을 갖고 살게도 해줍니다. 그래서 때로 흐트러졌던 마음을 고쳐 먹게 되고 무절제하게 살던 생활을 절제하게도 되고 악으로 달려가던 발길을 되돌아서게도 하고 유혹을 물리치는 힘을 제공해 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에는 어느 정도 긴장이 주어지는 것이 좋습니다. 바이올린이 얼마나 아름다운 소리를 냅니까 그렇지만 그 바이올린의 현이 느슨하면 소리를 내지 못합니다. 현이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을 때가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처럼, 신앙인의 삶에도 적당한 긴장이 주어지고 영적으로 긴장되어 있을 때가 가장 좋은 영혼의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고난받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심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벧전1:13)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찌어다 ” 이 말은 지금 우리가 고난을 당하고 있지만 이 고난이 영원한 것이 아니다. 박해자 네로 황제도 잠시 후면 종말을 맞이할 것이고, 오늘의 이 고난도 잠시 후면 끝이 날 것인데 그러면 박해자 네로도 우리도 모두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날이 올 것이다. 너희는 그때를 생각해 보라. 그때 주어질 그 영광을 생각해서 오늘 인내하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확신에 차있는 권고입니까 그런 의미에서 생각해 보면 앞으로 이 세상에 종말과 심판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만일 이 세상에 앞으로 종말과 심판이 없다면 세상에서 의롭게 살았던 사람들의 실망이 너무 클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디가서 보상을 받을 것입니까 위로받을 곳이 어디입니까 만일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말씀한 것처럼 가장 불쌍한 사람은 그리스도인들일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거룩하게 사는 것입니까 베드로는 여기서 몇 가지 삶의 내용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1) 나그네로 있는 동안 두려움으로 지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나그네라는 말은 짧은 인생을 일컫는 말입니다. 잠깐 살다가 가는 인생을 성경은 나그네라고 표현했습니다. 사람은 이 짧은 인생을 살다 가는 것인데 너무 추하게 살지 말고, 너무 비굴하게 살지도 말고, 책임 있는 인생을 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나그네로 살아가는 동안 두려움으로 살라”고 했습니다. 그 두려움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허리를 동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지금 당하고 있는 고난 앞에서 더욱 긴장하라는 말입니다. 자세를 가다듬고 이 고난 앞에서 더 비장한 각오를 가지고 비굴하지 말고 약해지지 말고 좀더 당당하고 의연하게 받아들이라는 말입니다. 베드로는 여거서 고난받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참 중요한 역할을 다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힘있는 격려입니까 신앙인의 멋은 이 의연함에 있습니다. 이 모습이 중심 있는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우리들이 신앙생활하면서 이런 중심이 없으면 우리의 신앙 모습은 보잘것없어지고 값이 없어집니다. 그리고 부끄러운 모습만 남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여기서 그리스도인들에게 권고하기를 지금은 핍박과 고난이 크지만 너희는 허리를 동이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인내하며 지내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이 마음이 없이는 고난을 이겨낼 수가 없습니다.
2) 피차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박해와 핍박이 무섭게 가해지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에 휩싸여 있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22절에서 그런 말을 합니다. “마음으로 서로 뜨겁게 사랑하라” 이 말은 믿음의 형제들을 위해서 서로 격려하고 힘을 합하라는 권고입니다. 고난시에 남다른 형제애가 싹트는 법입니다. 어려움을 함께할 때에 동지애가 생깁니다. 가난했을 때 형제애가 더 두텁습니다. 전란시에 전우애가 더 강하게 싹틉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여기서 힘주어 말합니다. “너희는 마음으로 서로 뜨겁게 사랑하라.” 고난시에는 서로 격려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그런 면에서 그리스도인은 교우 관계를 중시해야 합니다. 넘어질 수밖에 없는 사람이 나로 인해 온전하게 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실족할 사람이 나의 관심과 배려로 넘어지지 않고 잘 견디어 나간다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그래서 어려운 때일수록 서로 사랑하고 격려하고 관심을 나누는 일은 성도들에게 주어진 거룩한 삶의 모습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3) 값을 알고 살라는 것입니다. “(벧전1:23)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고 했습니다. 성도가 구원을 받고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 일시적으로 된 것이 아니고, 썩어질 것으로 된 것도 아니고, 적어도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으로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여기서 복음의 영원성, 즉 신앙의 값을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박해가 심해져 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몹시 흔들리고 있습니다. 신자들이 모두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고 이 고난을 피하고 싶은 마음에 자꾸 약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굳게 먹었던 마음들이 자꾸만 흔들립니다. 당시에 가장 무서운 형벌은 물론 십자가에 매달리는 형이었지만 또 다른 형벌로 겹십자가 형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죽은 사람의 시체에다가 산 사람을 함께 묶어 놓는 형입니다. 얼굴과 얼굴을 맞닿게 핸호고 몸과 몸을 서로 맞닿게 묶어 놓습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루도 지나지 않아 지레 죽는다고 합니다. 그것이 소위 겹십자가 형입니다. 당시 그런 형벌들을 가해 왔습니다. 그러니 그 고난 앞에서 성도들이 얼마나 두려워 떨었겠습니까 그때 베드로가 말합니다.
“너희가 구원을 받고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일시적으로 된 것이 아니고 더구나 썩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살아 있는 영원한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얼마나 강렬한 교훈이고 의연한 격려입니까 그러면서 다시 권고합니다. “(벧전1: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벧전1:25)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 얼마나 멋있는 교훈입니까 얼마나 좋은 교훈입니까 베드로는 여기서 복음의 영원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신앙과 믿음의 값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무엇보다도 값을 알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값을 모르면 헐값에 내다 버리기가 쉽습니다. 사람이 값을 모르면 그래서 무지하게 되고 불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구원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에서 이보다 더 소중한 일은 없습니다. 이 구원의 문제는 더할 수 없는 값진 축복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여기서 이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금 고난 속에서 두려워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값을 알라고 타이르고 있습니다. 이 구원은 일시적으로 된 것이 아니고 더구나 썩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당하고 있는 잠시의 고난 때문에 이 소중한 구원을 잃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모르면 값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무지하면 뜻을 모르고 의미를 알 수가 없습니다. 무지가 죄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소중하게 주어진 신앙들을 헌신짝 버리듯 쉽게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신앙의 길에서 미련 없이 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모두가 그 값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우리 신앙인에게는 이 거룩한 속성이 주어져 있습니다. 신앙은 거룩이 생명입니다. 믿음을 소중하게 간작하려면 이 거룩과 경건의 요소를 지녀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신앙 모습을 보기 좋게 만들어 줍니다. 오늘 주님께서 주신 이 말씀이 큰 은혜와 힘이 되시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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