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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과 율법정신 (마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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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정의한 것과 같이 인간은 결코 사회생활을 떠나서 홀로 살 수 없다. 우리는 가족이나 학교 또는 시, 크게는 국가의 한 구성원으로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사나 학교나 국가는 가정이나 마을, 민족과는 성격이 다르다. 독일의 사회학자 퇴니스는 전자를 의식적이며 인위적으 로 모인 이기적인 이권사회라고 하였고 후자를 이타적. '공동사회'라고 하였다. 국가는 인간의 공동생활을 보호하고 통계하는 이익사회요 목적 사회인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는 일정한 목적 안녕과 질서-를 위하여 사람들의 행동을 규제하는 수단으로서 체계적인 계도와 법질서를 갖게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 국가의 국민된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국가에 대한 숭고한 권리와 준엄한 의무를 동시에 지게 되는 것이다.
서서의 신학자 부루너는 "우리 인간은 국가에서 우리 자신의 죄가 천배 로 확대된 것을 볼 수 있다"고 하였다. 사실 법적인 질서 유지를 위하여 설정된 국가의 외적 강제력의 발동이 없다면 우리 인간들은 서로 무서운 생존경쟁의 생지옥속에 떨어질 것이며 너도나도 못살게 될 것이기 때문 이다. 법적 강제는 우리 인간들의 죄때문에 필요한 악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빌라도 법정 앞에서서 재판을 받으신 것이다. 우리는 이제 죽기 3일전에 빌라도 앞에 서신 예수님의 모습을 생각해 보자. 그것은 전혀다 른 두나라. 지상의 도시와 여호와 하나님의 도성의 만남이었다. 기독교인은 천국의 시민인 동시에 이 세상 나라의 시민이다. 그는 천국 의 율법에 속한 사람이면서 이 세상 국가의 법률아래 있는 사람인 것이다. 지상의 도시와 하나님의 도성! 이 두나라는 대립하고있는 것만은 아니다. 그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나라는 내적으로 결합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을 자기에게 독배를 주는 아테네의 법을 끝까지 지켰던 소크라테 스처럼 국가의 존재 이유와 법의 신성함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셨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헤롯당들에게 납세의 의무를 가르 쳐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 (마22:21) 말씀 하시지 않았는가
또한 바울은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롬13;1) 고 로마인에게 보낸 그의 편지에서 강조하 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로마의 기독교도 박해의 피비린내 나는 어두운 참극을 눈앞에보 면서 결코 자기들을 핍박하는 국가에 악으로 대적하지 말것이며 그 현실 을 도피하여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끝까지 참고 견디라고 한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권력은 하나님에게서 부터 온 것이요. 그 뒤에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서 계시기 때문이다. 이 놀라운 힘과 위로에 넘친 복음, 사랑과 은혜에 넘친 전능하시고 살 아계신 부활과 생명의 하나님의 이 복음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변함 없는 충실한 애국자이다. "기독교에는 국경이 없으나 기독자에게는 조국이 있다"는 말과 같이예수님과 바울의 제자인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세계동포주의자이면서 동시 에 철저한 민족주의자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라 사랑하는 바 른길이 질서있는 나라를 만드는 길이며 그 질서의 첫째는 법질서이기때문에 우리는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곧 법을 지키는 것으로 나타냐야 된 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인간은 모두 죄인이어서 만일 법률과 경찰이 우리를 통제하고 강제하 지 않으면 그 악한 본능때문에 우리의 사회생활이 얼마나 위태롭게 될 것인가를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정의와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 그리스도 교인들은 법과 질서를 유지시키기 위하여 선도적인 역할을 감당 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국가의 법적인 요청에 대하여어떤 기독자는 의식적으로 반대하는 것이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인줄 아는 사람이 있으나 그것은 잘못된 견해이다. 얼마전 미국에서 어떤 목사님 한분이 세금을 바치지 않아 문제가 되었는데 그분의 반대이유는 자기의 귀중한 세금을 받아다 군비를 확장하고 바른 도리대로 쓰는 일이 적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한면만 생각 하고 다른 한면은 생각지 못한 결과로 일어나는 일이라 하겠다. 징병에 대해서는 미국이나 캐나다의 퀘이켜 교도를 중심으로 하는 평 화주의자들의 반대와 같은 경우도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여호와증인, 기 타 어떤 신자들이 징병을 반대하여 문제가 된 것은 우리가 다 잘아는일 이다. 납세와 징병문제뿐 아니라 국가의 법률이나 공공생활을 하는 가운데국 가가 요구하는 여러가지 일에 옳지 못하다는 생각에서 반대하는 신자들이 있으나 이는 분명 잘못인 것이다. 이런점에서 우리에게 가장 모범을 보여준 이는 소크라테스이다.
그는 일생동안 스스로 인류의 산파역을 자처하면서 아테네의 청년들에게 선 과 양심과 정의의 길을 가르쳐 주기 위해 애를 썼다. 그러나 아테네의 청년들에게 선과 양심과 정의의 길을 가르쳐 주기 위해 애를 썼다. 그러나 아테네의 정부는 그가 청년들을 그릇된 사사으로 타락시켰다는 죄명을 씌어 투옥을 하고 사형을 선고하여 독배를 마시게 하여 죽인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이 일에 대하여 항의할 수 있었으나 그는 다른 아 테네의 시민들에게 국법의 존엄성과 국법에 복종한다는 예를 보여주기 위해서 순순히 독배를 마시고 죽어갔다. 그는 도망할 수 있었다. 그가 옥중에 있을 때에 그의 제자들이 찾아와서 탈출할 것을 권했으나 그는 이것을 일축해 버리고 말았다. 그리스도인은 나라의 모든 법을 잘 지키는 사람이어여 한다. 기독교는 순종의 교리를 가르친다. 국가의 안녕과 질서를 위하여 마련된 법을 기 독자가 지키지 않는다면 그는 도덕과 법률이상의 복음을 믿는 사람이될 수는 없는 것이다. 법을 잘 지킬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자유의 가치를 바로 아는 사람이며 말로 애국의 지름길임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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