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과 이웃 (롬12:14-21)
본문
바울은 본문에서 그리스도인과 이웃과의 관계에 대한 규칙과 원칙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1.그리스도인은 자기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로 품어야 합니다(13,17-21)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향하여 욕하고 때리고 십자가에 못박으라 외치고 악하게 행 하는 무리들을 향하여 `주여, 저들의 죄를 사하소서! 저들은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함이니이다!'고 기도하시면서 그 모든 수모와 핍박들을 당하시며 받아들이셨 습니다.
스데반 집사도 자기를 돌로 쳐죽이는 그들의 잘못한 것을 용서를 빌며 죽어 갔습니다. 어거스틴은 말하기를 `기독교가 바울을 갖게된 것은 스데반의 기도 덕분이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어떻게 용서할 수 있는가 하는 사실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고전4:12-13)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 같이 되었도다 (벧전3:9)악을 악으로,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 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하심이라 그리고 핍박이 때로는 하나님의 신자들을 다루시는 방법이시며 연단하시는 도구가 되시기도 하기 때문에 원수를 친히 갚지말고(19)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도 오로지 참고 기도하고 용서하는 것이 축복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공의로 갚으시며 그 행위대로 보응하시는 분이십니다. 모든 심판과 보응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 을 뿐입니다. 우리들에게는 심판과 앙갚음의 권리가 없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해보 려고 시도하다가 오히려 불을 가슴에 품는 격이 되어 스스로 다치게 되고 상처를 입 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악을 악으로 갚지말고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합니다.
2.그리스도인은 즐거워 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어야 합니다(15).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된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서로의 고통을 함께 느껴야 하며 서로의 즐거움을 함께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만일 그렇지 못하 다면 그 교회는 정상적이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가 되어 느끼려면 머 리를 중심으로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다시말해 먼저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있어야만이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3.그리스도인들은 서로 먼저 겸손하며 남을 나보다 낫게 여겨야 합니다(16) 남을 함부로 판단하는 교만과 자기 혼자만이 제일 잘난체 하는 거만함을 버려야 합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자극하며 상처를 안겨다 주는 말과 행동은 삼가야 합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말과 행동을 힘써야 합니다.
1)마음을 같이하라--서로 마음을 같이 하라는 것은 할 수만 있으면 생각을 같이 하고 그렇지 못할 때에는 애정을 같이하라는 말입니다. 또한 반목하거나 불화할 것 이 아니라, 모두가 하나가 되어 평화의 노끈으로 성령의 통일성을 지키도록 힘쓰라는 것입니다(고전 1:10,빌2:2). 기독교는 하나가 되는 종교로 우리 주님의 희생적인 사랑으로 성도는 주 안에서 하나됨의 증거가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나타나 냐 되는 것입니다.
또한 마음을 같이하라는 것은 서로에 대하여 선한 감정을 가지라는 뜻입니다.
2)높은데 마음을 두지말고 낮은데 두라--성도는 명예와 대접받는 일에 너무 욕 심을 내어서는 안됩니다. 이 세상의 영화와 위엄을 무리하게 과대평가해서도 안됩니다. 오로지 어느 자리에서나 만족하며 살아야 합니다. (빌 4: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그러므로 성도들 은 어느 자리에서나 하나님께서 당신의 섭리 가운데 놓아 두셨음을 인정하고 그곳에 만족할 줄 아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낮은 데 처하라는 말씀은 낮은 사람들에게 공손하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말씀이 기록될 당시는 로마시대로서 많은 계급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낮 은 노예의 신분이나 천민들을 멸시하고 무시하지 말고 한 형제로 생각하여 공손하라는 뜻입니다.
3)스스로 지혜있는 체 하지 말아라--정신적인 교만과 신앙적인 교만을 버려야 합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많이 배우고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자만하 지 말고, 아무리 신앙의 연륜이 깊고 은사가 많고 직분이 중하다고 하더라도 영적인 교만에 사로잡히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로지 하나님만 바로보며 견손히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결론>
세상과 구별되게 살아가라고 성도로 선택해 주시고 불러 주셨습니다. 구별된 삶의 원리들을 오늘도 권면 받았습니다. 여기서 부족한 것이 있습니까 주저하지 말고 과 감히 자신을 개혁하고 고치고 변화된 신자가 되십니다. 옆에 앉은 어느 누구가 이 말씀을 듣고 고쳐져야 되겠다!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임을 명심하십시다. 말씀과 복음은 항상 자기 자신에게만 적용시키는 것이지, 다른 사람에게 빗대어 판단하고 심판하고 탄핵하기 위하여 말씀이라는 복된 도구가 우리에게 허락된 것이 아닙니다.
1.그리스도인은 자기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로 품어야 합니다(13,17-21)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향하여 욕하고 때리고 십자가에 못박으라 외치고 악하게 행 하는 무리들을 향하여 `주여, 저들의 죄를 사하소서! 저들은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함이니이다!'고 기도하시면서 그 모든 수모와 핍박들을 당하시며 받아들이셨 습니다.
스데반 집사도 자기를 돌로 쳐죽이는 그들의 잘못한 것을 용서를 빌며 죽어 갔습니다. 어거스틴은 말하기를 `기독교가 바울을 갖게된 것은 스데반의 기도 덕분이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어떻게 용서할 수 있는가 하는 사실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고전4:12-13)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 같이 되었도다 (벧전3:9)악을 악으로,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 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하심이라 그리고 핍박이 때로는 하나님의 신자들을 다루시는 방법이시며 연단하시는 도구가 되시기도 하기 때문에 원수를 친히 갚지말고(19)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도 오로지 참고 기도하고 용서하는 것이 축복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공의로 갚으시며 그 행위대로 보응하시는 분이십니다. 모든 심판과 보응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 을 뿐입니다. 우리들에게는 심판과 앙갚음의 권리가 없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해보 려고 시도하다가 오히려 불을 가슴에 품는 격이 되어 스스로 다치게 되고 상처를 입 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악을 악으로 갚지말고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합니다.
2.그리스도인은 즐거워 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어야 합니다(15).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된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서로의 고통을 함께 느껴야 하며 서로의 즐거움을 함께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만일 그렇지 못하 다면 그 교회는 정상적이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가 되어 느끼려면 머 리를 중심으로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다시말해 먼저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있어야만이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3.그리스도인들은 서로 먼저 겸손하며 남을 나보다 낫게 여겨야 합니다(16) 남을 함부로 판단하는 교만과 자기 혼자만이 제일 잘난체 하는 거만함을 버려야 합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자극하며 상처를 안겨다 주는 말과 행동은 삼가야 합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말과 행동을 힘써야 합니다.
1)마음을 같이하라--서로 마음을 같이 하라는 것은 할 수만 있으면 생각을 같이 하고 그렇지 못할 때에는 애정을 같이하라는 말입니다. 또한 반목하거나 불화할 것 이 아니라, 모두가 하나가 되어 평화의 노끈으로 성령의 통일성을 지키도록 힘쓰라는 것입니다(고전 1:10,빌2:2). 기독교는 하나가 되는 종교로 우리 주님의 희생적인 사랑으로 성도는 주 안에서 하나됨의 증거가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나타나 냐 되는 것입니다.
또한 마음을 같이하라는 것은 서로에 대하여 선한 감정을 가지라는 뜻입니다.
2)높은데 마음을 두지말고 낮은데 두라--성도는 명예와 대접받는 일에 너무 욕 심을 내어서는 안됩니다. 이 세상의 영화와 위엄을 무리하게 과대평가해서도 안됩니다. 오로지 어느 자리에서나 만족하며 살아야 합니다. (빌 4: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그러므로 성도들 은 어느 자리에서나 하나님께서 당신의 섭리 가운데 놓아 두셨음을 인정하고 그곳에 만족할 줄 아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낮은 데 처하라는 말씀은 낮은 사람들에게 공손하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말씀이 기록될 당시는 로마시대로서 많은 계급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낮 은 노예의 신분이나 천민들을 멸시하고 무시하지 말고 한 형제로 생각하여 공손하라는 뜻입니다.
3)스스로 지혜있는 체 하지 말아라--정신적인 교만과 신앙적인 교만을 버려야 합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많이 배우고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자만하 지 말고, 아무리 신앙의 연륜이 깊고 은사가 많고 직분이 중하다고 하더라도 영적인 교만에 사로잡히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로지 하나님만 바로보며 견손히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결론>
세상과 구별되게 살아가라고 성도로 선택해 주시고 불러 주셨습니다. 구별된 삶의 원리들을 오늘도 권면 받았습니다. 여기서 부족한 것이 있습니까 주저하지 말고 과 감히 자신을 개혁하고 고치고 변화된 신자가 되십니다. 옆에 앉은 어느 누구가 이 말씀을 듣고 고쳐져야 되겠다!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임을 명심하십시다. 말씀과 복음은 항상 자기 자신에게만 적용시키는 것이지, 다른 사람에게 빗대어 판단하고 심판하고 탄핵하기 위하여 말씀이라는 복된 도구가 우리에게 허락된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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