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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과 인내 (약1:1-4)

본문

시험,입학시험,졸업시험)이 있습니다. 그 외에도 자격시험, 면허시험, 취직시험 등 수많은 시험을 거치게 됩니다.
그런데 만일 이 시험이 귀찮고 싫다면서 여러 가지 시험을 피해 간다면 사회의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시험에는 세상 적인 이런 시험도 있지만 영적인 시험도 있습니다. 영적인 시험에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가정문제, 사업문제, 직장문제, 물질문제, 자녀문제 등 여러 가지 방편으로 시험이 다가옵니다. 성 안토니는 온갖 정욕을 정복 할 수 없어서 사막의 동굴에 가서 34간 금식하였으나 사단 의 유혹은 더욱 심하여 어떤 때는 꿈속에 어떤 때는 대 낮에 친구의 모습으로 혹은 아리따 운 처녀의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 성도에게는 여러 가지 시험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은혜를 받고 집에 들어가면 시험이란 놈이 나보다 먼저 대문 앞에 와 있습니다. 시험은 혼자 있을 때도 오고 여럿이 있을 때도 옵니다. 교회 안에 있을 때도 오고 밖에 있을 때도 오고 때와 장소 를 가리지 않습니다. 선한 것으로부터 오고 악한 것으로부터 올 수도 있습니다. 사자와 같이 공격하는 것도 있고 천사와 같이 매끄럽게 오는 것도 있습니다. 이 시험을 크게 나누면 두 가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시험이 있고 마귀에게서부터 오는 시험이 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시험은 외적인 것입니다. 이 시험은 처음에는 쓰리고 힘든 것 같지만 잘 받아드리는 자에게는 큰 축복이 됩니다. 그러나 마귀가 주는 시 험은 내적인 것이고 처음에는 달콤한 것 같지만 이 시험에 넘어 지면 치명적인 손해를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을 영어로 Test, trial라고 하고 마귀가 주는 시험을 Temptation 유혹이라 번역합니다.
오늘은 본문 말씀을 통하여 성도와 시험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교훈을 깨닫고 은혜 받기를 원합니다.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12지파에게 편지를 하고 있습니다. 이 흩어진 많은 성도들은 그 가운데서 환란과 핍박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런 성도들에게 시험에 관한 교훈 을 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예수를 믿는 것은 오늘날의 상황과 너무나 다릅니다. 예수 믿으면 그 즉시 내 생 명이 끊어질지 모르는 위험을 각오해야 했습니다. 주후 313년까지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 를 국교로 공인하기까지 격심한 박해를 당해야 했습니다. 네로의 박해를 위시한 10대왕들에 의해 혹독한 박해를 당해야 했습니다. 마치 저인망으로 송사리 떼를 다 쓸어가듯 철저하게 탄압했습니다. 이로 인하여 그리스도인들은 평생 지하무덤 카타콤에서 햇볕을 보지 못하며 숨어서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이런 환란을 당하는 성도들에게 내 형제들아 하고 존칭을 쓰고 있습니다. 내 형제들아 하 고 부르는 것은 극진한 사랑과 친근감에서 나오는 소리입니다. 환란을 당하는 성도들에게 형제여! 할 때 얼마나 위로와 용기를 불어넣는 음성이겠습니까 야고보서에서는 내 형제들 아 하는 호칭이 많이 나옵니다.(1:16,19,2:5,4:1,5:7,9,19) 야고보의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마음 을 느끼게 합니다. 환란을 당하는 성도들에게 이웃에게 진정으로 형제가 되어 준다면 그것 이 얼마나 환란을 겪는 형제에게 위로가 되겠습니까 야고보는 환란을 당하는 형제들에게 몇 가지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읽어봅시다. 02 내 형제들아 !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0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0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함 이라 여기서 중요한 3가지 동사를 주목해 볼 수 있습니다.
1) 여기라 환란과 시험을 만날 때 기쁘게 여기라. 여기라는 말은 consider 간주하라는 말입니다.
2) 알라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앎이라 했습니다. 알라는 말은 깨달아라는 말입니다.
3)이루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성도가 당하는 시험에 관하여 이 세 가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 이제 다시 말씀을 세밀 하게 분석하며 시험에 관한 교훈을 깨달아 봅시다.
1. 시험을 기쁘게 여기라 말씀합니다. 시험에는 한 두 가지 시험이 아닙니다. 여러 가지 시험입니다. 개인적으로 오는 시험, 공동 체 전체적으로 오는 시험, 육체적으로 오는 시험, 성적인 시험, 명예 적인 시험, 자존심에 대 한 시험, 가정 적으로 오는 시험, 사업적으로 오는 시험, 직장으로부터의 시험 등 여러 가지 입니다. 이 여러 가지 시험을 모두 기쁘게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시험을 가리켜 헬라어로 여러 가지 색깔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T. V도 흑백 T. V보다 칼라 T. V가 보기 좋듯이 시험도 여러 가지 시험을 통하여 아름다운 신앙인격을 만 들어 냅니다. 이런 여러 가지 모든 시험을 기쁘게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 아무 시험이 없고 만사형통 하다고 말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 믿기 때문에 여러 가지 시험을 더 많이 받습니다. 행 14:22절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 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시험에 대하여 불평하지도 말 고, 원망하지도 말고, 분노하지도 말고, 기쁘게 여기라고 말씀합니다.기쁘게 여기라는 말은 기쁘게 평가하라 기쁘게 간주하라는 말입니다. 생각을 바로 하라는 말입니다. 어떤 생각을 가지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태도는 달라집니다. 사실 알고 보면 신앙이 시원치 않은 사람은 시험을 당해도 시시한 시험을 당하고 신앙이 높고 큰 사람은 큼직한 시험을 당합니다. 나에게 닥친 시험이 너절하고 시시하거든 마귀도 나를 하찮게 보는 구나라고 생각하고 시험이 크거든 마귀도 역시 나를 알아보는구나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예수님께서 40일 금식기도하고도 시험을 당하셨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기도 많이 하고 성령님을 받았기 때문에 시험이 없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에 빠지는 것입니다. 이 사람에게는 이런 시험 저 사람에게는 저런 시험이 다가 온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해야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목회에 어려움을 겪는 중에 민수기를 공부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 을 고난받던 애굽에서 구출하여 내어준 모세, 홍해를 육지같이 건너게 해 주었던 모세, 생명 의 은인 같은 모세를 향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토록 불평하고 원망하는 모습을 바라보면 서 그 위대하였던 모세도 이렇게 당하는데 모세보다 형편없는 나에게 고작 이 정도의 비난 만 주어지는 것이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안 당해야 할 사람이 당한다고 생각하니 억울해 서 잠을 못 이루지만 마땅히 당할 사람이 당한다고 생각하니 모든 것이 쉽게 풀리고 감사가 되고 은혜가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마땅히 시험받을 사람이다 생각하고 모든 시험을 기쁘게 여겨야 합니다. 다 시없는 기쁨으로 여겨야 한다는 말입니다.
2. 시험을 기뻐해야 할 이유 시험을 기쁘게 여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기뻐하되 조금 기뻐하지 말고 모든 기쁨을 총동 원하라는 말입니다. 기쁨을 전부 드러내라는 말입니다. 여기라는 말은 계산하라는 말입니다. 여러 가지 종류의 시험들은 모든 기쁨을 총동원하여 기뻐할 것들로 간주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면서 기뻐 할 것들이 많지만 야고보 사도는 시험을 기뻐 할 것으로 간주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시련하기 때문입니다. 여러 가지 시험을 통하여 시련을 받으며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시련이라는 말은 벤전1:7절 에 연단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벧전 1:7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 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함이라 시험을 통하여 내 믿음이 불로 연단 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게 됩니다. 마치 뜨거운 용광로에 들어가 온갖 불순물이 다 제거되고 순수한 광물이 나오듯 시험을 통과하면서 시련 을 받아 순수해 진다는 것입니다. 모든 동식물은 시련을 통하여 성장합니다. 좋은 나무는 온실에 자란 것이 아니라 높은 산꼭대기에서 온갖 비바람과 폭풍우를 맞으면 서 비단결 같은 아름다운 무늬가 생기며 강하여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애벌레가 고 치에서 나비가 되어 날게 되는 과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날 카프만 부인이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몇 개의 고치 속에서 나비들이 되어 나오는 것을 흥미롭게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고치의 구멍은 좁고 나비의 덩치는 커서 나비가 나오는 데 여간 힘이 들지 않습니다. 저 구멍이 조금만 넓으면 쉽게 나올텐데 하고 부인은 가위를 가져와서 나머지 고치 구멍을 보다 넓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나비는 쉽 게 구멍을 빠져 나왔습니다. 부인은 깊은 명상을 하였습니다. 어찌하여 하나님께서는 좀더 넓게 만드시지 못하셨을까 내가 창조했다면 더 쉽게 만들었을 텐데 신의 지혜가 나보다 못하단 말인가 나비들은 고치 에서 나온 후에 차츰 몸을 움직이더니 얼마 후 날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그 때부터 일어났습니다. 좁은 구멍에서 고생고생하며 나온 나비는 벌써 푸드덕푸 드덕 날고 있는 데 비하여 자신이 넓혀준 구멍에서 나온 나비들은 도무지 날지를 못합니다. 안타깝게도 몇 번 날개를 파르르 떨다가 포기를 하고 맙니다. 이상히 여긴 부인은 그날부터 열심히 그 문제에 대해서 연구를 하였습니다. 즉 고치 안에 있을 때 나비의 모든 영양분은 어깨에 쌓여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어깨 에 있던 영양분은 좁은 구멍으로 나올 때 어깨의 에너지 가 점점 몸으로 특히 날개 쪽으로 골고루 퍼져서 드디어 날개에 힘이 생기는데 자기가 넓혀서 나온 나비의 영양분은 어깨에 그대로 있기 때문에 깡패 모양으로 어깨만 힘이 있어 으쓱거렸지만 정작 날아야 할 날개 쪽 에는 전혀 힘이 가질 않아서 날지 못하였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카프만 부인은 아! 역시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그 분 만이 가장 지혜로우시다 라 고 감탄했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생명이 잉태되는 순간부터 그 생명이 태어나기까 지 어머니가 열 달 동안 호된 시련을 겪었습니다.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에도 어머니는 죽을 고비를 넘깁니다. 동시에 아기도 죽을 고비를 넘기며 왜 이런 세상에 날 태어나게 했느냐고 항의하듯 있는 힘을 다하여 울어 재낍니다. 시련을 통하여 성장합니다. 아프면 재주 하나가 늘어난다고 합니다. 아프면서 아이가 자라나듯이 우리 성도들의 신앙 도 시험을 통하여 시련을 겪으면서 성장합니다. 곽선희 목사님이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한때 윌리엄스 포지(williams Forge)라고 하는 공장 에서 일을 하였다고 합니다. 여름방학 동안 학비를 벌기 위해 그 뜨거운 곳에서 일을 하였는데, 그곳에 무게가 40톤이나 되는 해머가 있었습니다. 망치 하나의 무게가 40톤인 것입니다. 그 큰 쇠 덩이가 중기의 힘으로 칙 하고 공중으로 올라갔다가 쾅하고 떨어져서 아래에 놓인 쇠를 때립니다. 물에 넣었다가 꺼내서 또 때리고 하여 강철을 만드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이 때리는지 모 릅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쇠가 쇠를 자르고 깎는 쇠입니다. 쇠를 강하게 만들어서 그 쇠로 쇠를 자르는 것입니다. 쇠를 마음대로 자를 수 있습니다. 그렇게되기 위해서 그토록 많 은 매를 맞는 것입니다. 해머에 한번 맞으면 금이 생깁니다. 금이 생기면 그 부분을 갈아서 없애고 그 위에 잉크를 뿌리고 또 갈아서 깨끗하게되면 물에 담갔다가 또 쇠망치로 때리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강한 쇠를 만드는 것입니다. 쇠망치로 때리는 소리 가 얼마나 요란한지 차 타고 30분 거리 안에는 집도 짓지 못합니다. 믿음이 어떻게 꿋꿋이 이루어지겠습니까 시험을 많이 당해야 합니다. 시련을 겪어야 합니다. 시험을 당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죽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생명이 없습니다. 그런 신 앙은 연단이 되지 않아 쓸모 없게 된 쇠붙이와도 같이 보잘 것 없는 신앙입니다. 시련이 필 요합니다. 본문에서는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내고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 이 없게 합니다. 욥이 수많은 시련을 겪으면서 고백하는 말이 욥 23: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 이 나오리라 하였습니다. 시험을 기쁘게 여겨야 할 이유는 시험을 통하여 나를 시련하기 때문입니다.
2) 인내를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시련을 잘 받을 때 인내를 만들어 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용광로를 거쳐 나올 때 인내라는 놀라운 덕목올 선사해 주십니다. 롬 5:3-4 0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0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하였습니다. 인내라는 말은 (휘포모네)라는 말입니다. perseverance 인데 단순히 인내하는 것이 아니라 확실한 소망가운데서 확고부동하게 견디어 내는 것을 말합니다. 인내란 견디어 내기 어려운 상황과 조건을 극복하여 좋은 결실로 바꾸는 능력입니다. 인내라는 것은 맨 밑에 있다는 뜻입니다. 밑에서 견딘다는 뜻으로 원문대로 하면 억지로 참는다는 소극적인 태도라기보다 어려움을 환영하고 시련을 즐겁게 받아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넉넉한 기쁨으로 수용한다는 적극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시련이 그 정도의 인내로까지 도달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박해시대에 이교도들이 경탄케 한 것은 순교자들이 수없이 죽어 가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찬미하면서 죽어 가는데 있습니다. 어느 순교자는 화염 속에서 미소를 짓고 있었 습니다. 이교도들은 그에게 무엇을 보고 웃음을 짓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환란 가운데 기뻐하는 것이요 참으로 인내하는 것입니다. 인내(忍耐)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한문으로 참을 인이라는 것은 검도(刀)밑에다 마음 심(心)자를 씁니다. 참는다는 것은 칼을 내 마음가운데 놓는 것같이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쓴 약을 마지못해 먹는 것처럼 억지로 참는 것이 아니라 기쁨가운데 참는 것을 말합니다. 인내라는 것은 우리말에 가장 적합한 번역은 불요불굴(不搖不屈)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조금도 요동(搖動)함이 없이 조금도 굴복함이 없이 마치 불독이 한 번 물면 끝까지 놓 지 않는 것처럼 견고하게 서 있는 것을 말합니다. 시련을 통해 이런 인내가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의 큰 단점 중에 하나는 잘 참 지 못하는 것입니다. 생활상에 실례를 들어보면 차를 운전할 때도 질서대로 차례로 빠져나 가면 쉽게 빠져나갈 수 있는데도 서로 빨리 갈려 하다가 뒤엉켜서 꼼짝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빨리 안가면 뒤에서 크락손을 마구 눌러댑니다. 그러다가 안되면 욕을 해대고 조금 더 심하면 나와서 멱살 붙잡고 싸웁니다. 어느 나라가도 차 세워 놓고 싸우는 민족은 우리 나라 외에 없습니다. 차를 타거나 물건을 구입하거나 공공건물에 입장을 할 때 새치기하는 것 모두가 참지 못함 에서 생겨진 것입니다. 사탕을 먹을 때도 살살 녹여 먹으면 되는데 딱딱 깨물거나 바삭 부 수어 먹어야 직성이 풀립니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때도 타고 있으면 문이 저절로 닫히는 데도 닫침 버튼을 누르고 내릴 때도 이미 눌러진 층에서 자연히 열리는데도 열림 버튼을 누 르는 조급함을 보입니다. 커피를 서서히 음미하며 먹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숨에 마시 다가 입천장이 데어 허물이 다 벗겨집니다. 수세식 화장실 사용할 때도 용변을 보고난 후 천천히 눌리면 되는데 미리 눌러서 몇 번이나 사용하므로 물의 낭비를 하게 됩니다. 생활에 나타난 이런 현상이 신앙생활에도 그대로 나타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한꺼번에 모든 것을 이루려고 합니다. 금방 개척교회를 해놓고 1-2년 내 몇 백 명, 몇 천명 모이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물불을 가리지 않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열성은 좋으나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준비하는 신앙이 없기에 하나님은 허락해 주지 않습니다. 허락해 주면 오히려 이것 때문에 그 사람은 망합니다. 하나님! 나에게 인내를 주십시오. 해놓고 지금 당장 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울진 성류굴이나 고수동굴에 종유석이 매달려 있는데 이 종유석이 백년 동안데 1인치씩 자 란다고 합니다. 이렇게 자란 것이 큰 석순이 되어 대 장관을 이룹니다. 이 자연 현상을 보면 서 인내의 아름다움을 느껴볼 수 있습니다. 무디 선생이 스코틀랜드에 갔을 때 한 신기한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는 15세에 등뼈가 상하 여 40년 동안 누워서 고통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병자는 고통 중에서도 은혜 충만하여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무디 선생이 그 병자에게 "사단이 당신으로 하여금 하나님 을 의심하도록 시험하지 않는가" 물어보자 그 병자는 "사단이 시험하기를 하나님이 선하시 면 왜 너를 이 여러 해 동안 이 고통에 처하게 할까 할 때 나는 말하기를 십자가에서 그리스도께서 고난 당하신 것을 보고 나는 그의 사랑을 안다고 합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확 고부동한 믿음은 의심하지 않는 믿음입니다. 김현봉 목사님에게 어떤 사람이 묻기를 목사님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 고 물었습니다. 그때 목사님은 대답하기를 참고 견디는 것이다 말했습니다. 둘째는 무엇입니까둘째도 참고 견디는 것이다. 셋째는 무엇입니까
셋째도 참고 견디는 것이다 라고 했다 고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참아야 합니까 하고 물으니까
1 먼저 감사하게 받으면서 참아야 한다.
2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면서 참아야 한다.
3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난 것을 회개하면서 참아야 한다.
4 바로 걸어가면서 참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인내는 소망의 진주를 만들어 줍니다. 롬5:4 안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진주조개 살에 찢긴 상처가 진주를 만들어 냅니다. 그 고통을 인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천국의 열두 개의 성문은 각각 하나의 거대한 진주로 되어있다(계21:21)고 한 말씀은 참으 로 의미가 깊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내와 성도들의 인내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 열두 대문을 지나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믿음을 지키기 위해 여러 가지 고통을 인내한 성도들입니다.
3) 부족함이 없는 인격을 만들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0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하였습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룬다는 말은 끝까지 중도에 포기함이 없이 성취하라는 말입니다. 끝까지 완주하라는 말입니다. 누가 나폴레옹에게 물었습니다. 싸울 때에 어떻게 해야 승리합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때 이런 명답을 했습니다. 최후 5분까지 최선을 다하 여 싸우는 자가 승리한다고 했습니다. 인내를 이렇게 온전하게 이룰 때 어떻게 됩니까 3가지입니다.1 온전하고2 구비하여 3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인격을 만든다고 하였습니다.
1 온전이라는 말은 성숙과 가장 가까운 말입니다. 견습공이 훈련기간을 다 끝내고 정식으로 일을 맡았을 때 온전케 되었다 말합니다. 어린아 이가 그 모습을 벗고 모든 것이 다 자란 어른의 상태를 온전이라 말합니다. 시험을 통한 시 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었고 결국 이것이 온전케 되었다는 것입니다. 시험이 결국 온전하게 만들었습니다.
2 구비하여 라는 말은 흠이 없다는 말입니다. 제사장을 세울 때 흠이 없는 사람을 세웠고 제물로 사용되는 것도 흠이 없이 자질이 구비 된 것을 사용하였습니다. 이처럼 시련을 통하여 하나님께 드리기에 합당한 제물로 구비되는 것을 가르칩니다.
3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원래 부족이라는 말은 (레이포메노이) 군대가 패배했을 때, 투쟁을 단념하였을 때, 도달해야할 표준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 사용되는 말입니다. 부족함이 없다는 것도 하나님의 표준에 도달하는 인격을 말합니다. 내가 여러 가지 시험을 통하여 시련을 받고 온전하 게 인내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부족함이 없는 인격으로 빚어낸다는 것입니다. 이 상태를 알기 쉽게 한 예를 듭니다. 하나님께서 석탄 한줌을 그의 크신 손으로 붙드셨습니다. 그 크신 손으로 압력을 가합니다. 아마 거대한 압력 속에 흑자는 고통스럽다고 비명을 질렀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장기간에 걸친 거대한 압력을 끝내시고 손을 펴셨습니다. 그때 에 손바닥 안에는 영롱한 다이아몬드가 빛나고 있었습니다. 석탄과 다이아몬드는 똑같은 탄 소입니다. 그러나 압력을 많이 받고 연단을 받으면 다이아몬드가 되지만 연단이 없으면 그 냥 석탄일뿐입니다 다이아몬드같이 부족함이 없는 인격으로 나오기를 원하면 시험을 잘 받 아 시련을 받고 인내를 온전히 이루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이아몬드처럼 귀하게 쓰시는 사람은 연단 받아 부족함이 없는 인격의 소유자 를 사용하십니다. 아브라함은 25년간 시험과 연단을 받았습니다. 요셉은 13년 동안 시험과 연단을 거쳤습니다. 모세는 80년 동안 시험과 연단을 거쳤습니다. 예수님은 3년의 사역을 위 해 30년 동안 훈련과 시련의 기간을 거쳤습니다. 다윗은 20년 동안 이런 저런 시련과 연단 을 겪었습니다. 그 후에 하나님께서 귀한 일을 맡겼습니다. 다윗의 고백이 어떠합니까 시119:57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시119: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 이다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콩을 타작할 때 도리깨로 바싹 마른 콩 단을 펴놓고 두들겨 댑니다. 그러면 그 껍질이 깨어져 벗겨지면서 콩 알맹이가 튀어나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 께서 고난의 도리깨로, 시련의 막대기로 두들겨서 우리 모난 것과 우리의 육 적인 것과 죄 성을 벗겨 온전한 인격을 만듭니다. 그림 중에 유화는 가까이 보면 볼품이 없습니다. 전혀 아름답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그림을 멀리서 볼 것 같으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습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다가오는 시련과 고난도 가까이 서 보면 보기 싫고 증오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얼마 시간이 흐른 뒤 멀리서 볼 것 같으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이것 을 통하여 나의 인격을 다듬으셔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 나에게 축복을 주십시오. 하나님! 나를 금 그릇처럼 귀하게 써 주십시오. 하나님! 교회에 기둥 같은 일군 되게 해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 나에게 많은 시험 을 주셔서 시련을 잘 겪어 온전한 인내를 이루어 부족함이 없는 인격을 만들어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하는 것과 같습니다. 롬8;28 우리자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을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한 꼬마가 닭장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닭장 안에서는 암 닭이 병아리를 까기 위 해서 알을 품고 있었습니다. 하루 이틀 시간이 갈수록 꼬마는 초조해졌습니다. 언제쯤이면 병아리가 나올까 그것만 기다리고 있던 어느 날 꼬마는 암 닭이 품고 있던 알을 빼앗았습니다. 그리곤 알을 깨뜨려 버렸습니다. 알에서 병아리가 나올 줄 알았던 꼬마는 깜짝 놀랐습니다. 계란 안에서는 채 모습을 갖추지 못한 병아리가 죽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온전하게 인내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주님 보시기에 온전한 인격이 되지 않으 면 이 꼬마와 같은 실수를 범하게 됩니다. 인내력을 충분히 발휘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완전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저와 사랑하는 성도님들이 여러 가지 닥쳐오는 모든 시험을 불평이나 원 망하지 말고 온전히 기쁘게 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여러 가지 시험이 시련을 만들고 또한 이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고 또한 인내를 온전히 이루게 되면 온전하 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인격을 만들게 됩니다. 이 놀라운 축복이 저와 여러분의 것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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