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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은 무엇이 다른가 (눅6:2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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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우리는 하나”를 외치며 일체감을 표현하는 때가 있습니다. 좁게는 운동 경기에서 연고팀을 응원하는 것도 일체감의 표현입니다. 굶주리는 북한 동포를 생각하며 쌀을 지원해 주는 것도 우리는 한 민족이라는 인식 때문입니다. 질병 퇴치를 위해 전세계가 함께 힘쓰는 것도 우리는 한 공동체라는 인식이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지난 달 29일에 미국 우주왕복선 애틀란티스 호와 러시아 우주정거장 미르가 도킹에 성공하는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국제 우주정거장을 오는 97년에 착공하여 2002년에 완공할 계획이 수립되었습니다. 이 계획에는 미국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세계 13개국이 공동으로 참여하기로 하였습니다. 냉전 기간 중에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으나 이제 공산주의의 붕괴로 세계가 공동 번영을 위한 우주 개발을 함께 추구하는 분위기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매사에 일체감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차이점을 부각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학교는 다른 학교와 다르다고 하면서 학생들의 긍지를 심어주려고 합니다. 우리 회사는 경쟁 회사와 다르다고 광고합니다. 상품을 판매할 때 차별화 전략을 씁니다. 우리의 상품은 질이 다르다고 주장합니다. 가격이 저렴하다, 서비스가 다르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느니라”는 말씀으로 그리스도인이 비그리스도인과 달라야 할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첫째로, 그리스도인은 원수를 대하는 면에서 달라야 합니다. 소크라테스에 관한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어느 날 소크라테스가 길을 가고 있는데 악한 사람들이 뒤를 따라오면서 돌을 던지며 분개했습니다. 그의 제자들이 격분하여 스승에게 대신 복수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소크라테스는 이런 말로 제자들을 타일렀습니다. “당신들은 동네 개가 지나가는 사람을 보고 짖으면 같이 짖겠소 나귀가 차면 같이 차겠소” 역시 그는 보통 사람처럼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들에게 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이들을 개나 나귀와 같은 짐승으로 취급하며 경멸했습니다. 예수님에게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예견하시며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중에 사마리아의 한 촌에 들어가셨는데 유대인들에게 적대적이었던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 일행을 쫓아냈습니다. 이에 격분한 제자들 가운데 야고보와 요한이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좇아 내려 저희를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하고 여쭈었습니다(눅9:5
4). 이에 예수님은 그들을 꾸짖으시고 다른 곳으로 가셨습니다. 우리는 십자가 위에서 주님께서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하고 기도하신 것으로 판단해 볼 때 그분은 비록 원수라 하더라도 상종치 못할 자처럼 경멸하신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끝까지 대하려 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원수 사랑을 실천하시면서 신자의 차별화를 선언하셨습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고 축복하고 위하여 기도하라. 이 말씀은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의 유대교는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분의 제자들이 유대교인과 달라야 하고, 세상 사람들과 달라야 하고, 죄인들과 달라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느니라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를 선대하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 라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빌리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의수히 받고 자 하여 죄인에게 빌리느니라”(32-34절)
둘째로, 사랑은 가장 강력한 힘입니다. 미움은 미움을 부르고, 폭력은 폭력을 부르고, 복수는 복수를 부릅니다. 그 연결 고리는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강자 앞에서 미움은 표출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기회가 주어지면 언제든지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복수심으로 폭발합니다. 동물이 자기 방어를 위해서 본능적으로 웅크리거나 신체 일부를 감추면 그것을 강압적으로 되돌려 놓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그 예로 거북이를 들 수 있습니다. 18㎏밖에 되지 않는 거북이라고 할지라도 목을 한 번 움츠리면 80㎏ 되는 사람의 힘으로도 그 목을 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만큼 거북이의 생명 보존에 대한 힘은 강력합니다. 그러나 거북이가 목을 쉽게 빼게 하는 방법이 한 가지 있습니다. 적당히 따뜻한 불 곁에 두면 그 온기에 의해 거북이는 당장 목을 뺍니다. 온화한 사랑이 냉혹한 미움과 증오를 이깁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사랑으로 악을 이기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네 원수가 배고파 하거든 식물을 먹이고 목말라 하거든 물을 마시우라 그리하는 것은 핀 숯으로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요 여호와께서 네게 상을 주시리라” (잠25:21-22)
우리에게 온갖 도발을 일삼아 온 북한에게 인도적인 입장에서 쌀을 지원하게 된 것은 이러한 성경의 가르침을 볼 때 잘한 일입니다. 한 사람의 서민으로서 그들의 오만불손한 받는 태도에 분통이 터지기도 하지만 인내를 가지고 이 일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상호신뢰를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원해야 하겠습니다. 비록 당장은 쌀을 지원하는 데 많은 비용이 요구되지만 이 일이 남북통일의 물꼬를 틀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궁극적으로는 해마다 엄청나게 지출되는 국방비가 삭감되어 국가적으로 이득이 될 것입니다. 결국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지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것입니다.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 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 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롬13:17-21)
셋째로, 원수 사랑은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기에게 잘 대해주는 사람을 좋아하고 자기를 적대하는 사람을 미워합니다. 따라서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본능에 거스르는 것이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까지 말하는 것입니다. 회교도의 경전인 코란에 그들의 위대한 선지자 모하메드에 관한 일화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숙부와 숙모에게 많은 핍박을 받았습니다. 숙부는 그에게 돌을 던지기도 했고 숙모는 그가 맨발로 걸어다니는 곳에 가시를 놓아두곤 했습니다. 또 아침 기도를 드리기 위해서 가고 있는 그에게 숙모가 쓰레기를 던지기도 했습니다. 모하메드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숙부의 두 손이 저주를 받아 멸망하게 되리라. 그의 재물과 그가 번 것이 그에게 쓸모 없게 되리라. 그는 곧 이글거니는 불 속에 들어가게 되고, 비방하며 돌아다니는 그의 아내도 그렇게 되리라. 그녀의 목에 종려 섬유를 꼬아서 만든 밧줄이 감기게 되리라” 그 위대한 선지자도 원수에게 관대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일차적으로 제자들을 염두에 두고 하셨습니다.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 같이 너희도 자비하라”(36절)고 말씀하셨는데 예수님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의 아버지가 되신다고 가르치신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라고 하셨습니다(요8:44).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만이 하나님의 성품을 닮게 됩니다(요일4:7-11,19-21).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난 사람만이 원래의 본성을 벗어나서 원수를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5:4) 원수를 사랑하십시오. 우리는 할 수 없으나 믿음으로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는 자에게 큰 상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성품을 잘 나타내는 것이고 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랑하고 용서하지 못할 대상이 어디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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