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 (요5:1-15)
본문
지난 시간에 우리는 은혜를 받는 비결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는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기다리는 사람, 소망을 갖는 사람, 사람을 기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 자신의 실패를 자인하는 사람이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며 자라난 신앙을 체험적 신앙이라고하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성적인 신앙이 아니라 몸과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는 체험적인 신앙을가질 때 그것이 바로 온전한 신앙이라는 것도 공부 했습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의 베데스다 연못가의 38년된 병자를 고치신 주님의 이 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대표하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죄와 사망 속에 갇혀 있던 백성들을 구속 하시는 구속의 그림지가 이 말씀 속에 기록되어져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38년된 병자를 고쳐주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은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에게만 주시는 축복임을 알게 됩니다.또한 구 속은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구 속함을 받은 사람에게는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음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네가지 중요한 점을 통해서 하나님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살펴봅시다. 우선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구속적인 은혜를 받은 사람의 특징을 살펴보겠 습니다.
첫째, 은혜를 받으면 정상적인 사람이 됩니다. 모든 면에서 비정상적이던 38년 된 병자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고침 을 받고 그후에는 자기 스스로 설 수 있었고, 자기 스스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정상적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성도는 과거의 구원받기 전의 비정상적인 생활에서 뛰쳐나와 정상적인 삶의 자리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둘째,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힘이 생깁니다. 예수께서 38년 된 병자에게 말하기를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명령하셨을 때 본문 9절에서는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처럼 38년된 병자는 하나님의 은혜로 병고침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자신이 덮고 자던 자리를 들고 걸어갈 수 있는 힘이 생긴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만이 힘을 얻습니다. 봉사의 힘을 얻고 헌신의 힘을 얻고, 기도생활의 힘을 얻고, 찬송의 힘을 얻습니다. 그리고 그 삶의 자체가 힘있는 삶이 되는것입니다.
셋째, 신앙생활이 활발해 집니다. 본문 14절에 보면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라고 말씀 합니다. 38년된 병자는 예수님이 병을 고쳐준 후 집으로 달려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믿음생활을 시작한 것입니다. 은혜를 체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주일이 너무 자주 온다고 느낍니다. 자신의 사정과 형편에 따라 교회에 출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은혜를 받는다고 해서 모든 면에서 완전히 진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다시 말해서 은혜를 받는다고 완전자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말 입니다. 본문 13절에 보면 "고침을 받은 사람이 그가 누구신지 알지 못하니"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병을 고쳐주셨지만 병자는 자기를 고쳐준 사람이 누구인 지를 몰랐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은혜를 받았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알게 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의 38년된 병자는 육체적으로는 회복이 되었지만 영적으로는 무지했 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무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인간에게 완전함을 요구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은혜 를 받았지만 불완전한 모습으로 자신의 앞에 놓여진 일들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철학자 윌리암 제임스는 말하기를 "목포에 대한 결정없이 습관적으로 인생 을 살아가는 사람보다 더 비참한 사람은 없다"라고 했습니다. 삶의 목적없 이 그날그날을 살아가는 사람은 아주 비참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헨 리 포드는 '무엇인가 성취해놓고 그 결과에 안주하려는 사람들이 항상 일의 흐름에 막아버린다"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이제 성공했어."라고 생각하고는 자기의 앞길에 목표를 세우지 않은 사람은 삶의 흐름을 막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목표를 세워놓고 인생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서 어 떻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으로써 올바른 삶인가 하는 것에 대한 해답으리 보여주고 있습니다.
1.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본문 9절에 보면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순종의 삶을 뜻하고 있습니다. 이 환자는 자신의 옷가지의 자리 등을 들고 걸어갔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입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는 사무엘서의 말씀은 순종은 신앙의 본질이요, 신앙의 최고봉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본문 9절의 말씀에서 그 환자가 순종함으로 병고침을 받은 것이 아니라고 병고침을 받은 후에 순종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은혜받기 전에 순종한 것이 아니라 은혜 받고 나서 순종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기적이 자리 어난 후에 순종하기가 쉽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생각해 보면 병고침을 받고 순종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병이 나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쁨에 들떠서 예순미을 잊게 되 기가 쉽습니다. 병고침 받은 은혜를 잊게 되는 것입니다. 술맡은 관원장도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잊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철썩같이 약속했던 요셉 을 잊은 것입니다. 엘리사가 나아만에게 요단강에 가서 일곱번 목욕하라고 했을 때도 나아만 은 화를 내며 불순종했습니다. 엘리사가 직접 자기를 고쳐줄 줄로 알았는데 자신의 생각과 다르자 불순종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순종하기가 왜 어렵습니까 나아만의 경우를 살펴보면 교만 때문 입니다. 열왕기상 5장 1-6절까지 보면 나아만이 문둥병에 걸렸을 때 엄청난 재산을 가지고 자기의 병을 고치기 위해 엘리사에게 갔습니다. 그러나 막상 엘리사에게 가보니 자기를 보지도 않고 몸종에게 시킵니다. 자신이 권력과 재력 앞에서는 상대가 안되는 엘리사이기에 나아만은 은근히 교만해졌습니다. 그래서 엘리사의 말에 순종하지 않은 것입니다. 또한 나아만은 자기생각이 앞섰습니다. 열왕기하 5장 11절에 보면 나아만 생각에는 자신을 엘리사가 안수해서 고쳐줄 줄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처 럼 자신의 생각을 앞세우면 순종할 수 없고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자기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이치에 맞지 않고 논리에 맞지 않아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도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한 주님의 말씀을 의 지하여 몇 번이나 그물을 던졌지만 고기를 잡지 못했던 그 자리에 다시 그 물을 던진 베드로는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앞으로 성경말씀 그대로 순종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2. 자신으리 살피며, 허물을 발견하며 살아야 합니다. 14절에 보면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말라"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은혜를 받으면 사람 들은 대부분 '이제 나에게는 죄가 없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38년된 병자는 무지몽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두가지를 몰랐습니다. 자신의 병을 고쳐 주신 분이 예수님인지, 누구인지를 몰랐습니다. 또한 자신이 병든 이유, 자 신의 죄를 몰랐습니다. 14절에 "다시는 죄를 범치말라"는 말씀은 더 심한 병에 걸리지 않도록 죄를 범치 말라는 말씀입니다. 결국 그 병자가 병은 죄 로 인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그 사람의 죄가 남았음에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은혜를 받으면 죄가 다 없어지는 줄로 알지만,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죄사함을 받았어도 다시 마음 속에 죄가 들어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용서받은 죄인일 뿐이지 의인은 아닙니다. 우리들에게 가장 큰 불행은 무능이 아니라 무지입니다. 알아야 할 것을 모 르는 것은 불행인 것입니다. 무능력한 것은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여 살 수 도 있습니다. 중풍병자는 무능력하니까 친구들에게 부탁했습니다. 네명의 친구들의 도움으로 들것에 실려 예수 앞에 나왔고 병고침을 받았습니다. 무 능했지만 예수를 통해서 병고침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예쑤 앞에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무지몽매하면 예수께로 나아올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는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이 있습니다. 또한 노자도 말하기를 "남을 아는 것은 지요, 자기를 아는 것은 명이라"고 했습니다. 볼테르는 "현대인 은 세계를 알지만 자기 자신을 모른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자신을 알 고 있습니까 죄인임을 알고 있습니까 자신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나의 무지와 나의 허물과 나의 죄악을 바로 알아야 주의 보혈로 죄사함을 받고 새롭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그리스도를 전파하며 살아야 합니다. 복음을 전파하십시오. 15절에 보면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더라"고 말씀합니다. 세계인구 중 예수의 이름을 돌부 지 못한 사람이 아직도 27억이라고 합니다. 세계 칠천개의 언어 중 오천 이 백개의 언어가 성경으로 번역되지 못했습니다. 한국사람의 3/4이 아직도 예수를 안믿고 있습니다. 85,000명의 선교사로는 너무도 부족합니다. 여러분,전도하십시오. 개인선교사가 되십시오.
그렇다면 전도는 어떤 사람이 할 수 있습니까전 도는 은혜를 받은 사람이 할 수 있습니다. 병고침을 받은 삶이 전도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병든 사람은 전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결국 전도 안하는 사람은 병든 사람인 것입니다. 전도를 하려면 본문 15절 말씀의 "그 사람" 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그 사람'은 누구입니까 병고침을 받고 은혜를 체험한 사람이 '그 사람' 인 것 입니다. 핍박하는 사람들을 향해 전도해야 합니다. 본문의 고침을 받은 병자는 유 대인들에게 가서 예수를 전했습니다. 그당시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핍박하 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에게 예수믿고 병이 나았다고 전 도하십시오. 불안하던 마음이 사라지고 잠이 잘 온다고 전도하십시오. 이렇 게 예수믿고 변화된 것을 증거하게 되면 놀랍게 전도가 되는 것입니다. 전 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같이 나누었던 말씀을 잘 기억하시고 여러분의 신앙생활에 순종하는 모습, 자신을 잘못을 살피는 모습, 전도하는 모습이 늘 함께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 은혜를 받으면 정상적인 사람이 됩니다. 모든 면에서 비정상적이던 38년 된 병자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고침 을 받고 그후에는 자기 스스로 설 수 있었고, 자기 스스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정상적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성도는 과거의 구원받기 전의 비정상적인 생활에서 뛰쳐나와 정상적인 삶의 자리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둘째,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힘이 생깁니다. 예수께서 38년 된 병자에게 말하기를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명령하셨을 때 본문 9절에서는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처럼 38년된 병자는 하나님의 은혜로 병고침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자신이 덮고 자던 자리를 들고 걸어갈 수 있는 힘이 생긴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만이 힘을 얻습니다. 봉사의 힘을 얻고 헌신의 힘을 얻고, 기도생활의 힘을 얻고, 찬송의 힘을 얻습니다. 그리고 그 삶의 자체가 힘있는 삶이 되는것입니다.
셋째, 신앙생활이 활발해 집니다. 본문 14절에 보면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라고 말씀 합니다. 38년된 병자는 예수님이 병을 고쳐준 후 집으로 달려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믿음생활을 시작한 것입니다. 은혜를 체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주일이 너무 자주 온다고 느낍니다. 자신의 사정과 형편에 따라 교회에 출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은혜를 받는다고 해서 모든 면에서 완전히 진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다시 말해서 은혜를 받는다고 완전자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말 입니다. 본문 13절에 보면 "고침을 받은 사람이 그가 누구신지 알지 못하니"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병을 고쳐주셨지만 병자는 자기를 고쳐준 사람이 누구인 지를 몰랐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은혜를 받았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알게 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의 38년된 병자는 육체적으로는 회복이 되었지만 영적으로는 무지했 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무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인간에게 완전함을 요구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은혜 를 받았지만 불완전한 모습으로 자신의 앞에 놓여진 일들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철학자 윌리암 제임스는 말하기를 "목포에 대한 결정없이 습관적으로 인생 을 살아가는 사람보다 더 비참한 사람은 없다"라고 했습니다. 삶의 목적없 이 그날그날을 살아가는 사람은 아주 비참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헨 리 포드는 '무엇인가 성취해놓고 그 결과에 안주하려는 사람들이 항상 일의 흐름에 막아버린다"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이제 성공했어."라고 생각하고는 자기의 앞길에 목표를 세우지 않은 사람은 삶의 흐름을 막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목표를 세워놓고 인생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서 어 떻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으로써 올바른 삶인가 하는 것에 대한 해답으리 보여주고 있습니다.
1.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본문 9절에 보면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순종의 삶을 뜻하고 있습니다. 이 환자는 자신의 옷가지의 자리 등을 들고 걸어갔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입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는 사무엘서의 말씀은 순종은 신앙의 본질이요, 신앙의 최고봉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본문 9절의 말씀에서 그 환자가 순종함으로 병고침을 받은 것이 아니라고 병고침을 받은 후에 순종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은혜받기 전에 순종한 것이 아니라 은혜 받고 나서 순종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기적이 자리 어난 후에 순종하기가 쉽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생각해 보면 병고침을 받고 순종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병이 나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쁨에 들떠서 예순미을 잊게 되 기가 쉽습니다. 병고침 받은 은혜를 잊게 되는 것입니다. 술맡은 관원장도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잊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철썩같이 약속했던 요셉 을 잊은 것입니다. 엘리사가 나아만에게 요단강에 가서 일곱번 목욕하라고 했을 때도 나아만 은 화를 내며 불순종했습니다. 엘리사가 직접 자기를 고쳐줄 줄로 알았는데 자신의 생각과 다르자 불순종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순종하기가 왜 어렵습니까 나아만의 경우를 살펴보면 교만 때문 입니다. 열왕기상 5장 1-6절까지 보면 나아만이 문둥병에 걸렸을 때 엄청난 재산을 가지고 자기의 병을 고치기 위해 엘리사에게 갔습니다. 그러나 막상 엘리사에게 가보니 자기를 보지도 않고 몸종에게 시킵니다. 자신이 권력과 재력 앞에서는 상대가 안되는 엘리사이기에 나아만은 은근히 교만해졌습니다. 그래서 엘리사의 말에 순종하지 않은 것입니다. 또한 나아만은 자기생각이 앞섰습니다. 열왕기하 5장 11절에 보면 나아만 생각에는 자신을 엘리사가 안수해서 고쳐줄 줄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처 럼 자신의 생각을 앞세우면 순종할 수 없고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자기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이치에 맞지 않고 논리에 맞지 않아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도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한 주님의 말씀을 의 지하여 몇 번이나 그물을 던졌지만 고기를 잡지 못했던 그 자리에 다시 그 물을 던진 베드로는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앞으로 성경말씀 그대로 순종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2. 자신으리 살피며, 허물을 발견하며 살아야 합니다. 14절에 보면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말라"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은혜를 받으면 사람 들은 대부분 '이제 나에게는 죄가 없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38년된 병자는 무지몽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두가지를 몰랐습니다. 자신의 병을 고쳐 주신 분이 예수님인지, 누구인지를 몰랐습니다. 또한 자신이 병든 이유, 자 신의 죄를 몰랐습니다. 14절에 "다시는 죄를 범치말라"는 말씀은 더 심한 병에 걸리지 않도록 죄를 범치 말라는 말씀입니다. 결국 그 병자가 병은 죄 로 인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그 사람의 죄가 남았음에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은혜를 받으면 죄가 다 없어지는 줄로 알지만,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죄사함을 받았어도 다시 마음 속에 죄가 들어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용서받은 죄인일 뿐이지 의인은 아닙니다. 우리들에게 가장 큰 불행은 무능이 아니라 무지입니다. 알아야 할 것을 모 르는 것은 불행인 것입니다. 무능력한 것은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여 살 수 도 있습니다. 중풍병자는 무능력하니까 친구들에게 부탁했습니다. 네명의 친구들의 도움으로 들것에 실려 예수 앞에 나왔고 병고침을 받았습니다. 무 능했지만 예수를 통해서 병고침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예쑤 앞에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무지몽매하면 예수께로 나아올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는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이 있습니다. 또한 노자도 말하기를 "남을 아는 것은 지요, 자기를 아는 것은 명이라"고 했습니다. 볼테르는 "현대인 은 세계를 알지만 자기 자신을 모른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자신을 알 고 있습니까 죄인임을 알고 있습니까 자신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나의 무지와 나의 허물과 나의 죄악을 바로 알아야 주의 보혈로 죄사함을 받고 새롭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그리스도를 전파하며 살아야 합니다. 복음을 전파하십시오. 15절에 보면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더라"고 말씀합니다. 세계인구 중 예수의 이름을 돌부 지 못한 사람이 아직도 27억이라고 합니다. 세계 칠천개의 언어 중 오천 이 백개의 언어가 성경으로 번역되지 못했습니다. 한국사람의 3/4이 아직도 예수를 안믿고 있습니다. 85,000명의 선교사로는 너무도 부족합니다. 여러분,전도하십시오. 개인선교사가 되십시오.
그렇다면 전도는 어떤 사람이 할 수 있습니까전 도는 은혜를 받은 사람이 할 수 있습니다. 병고침을 받은 삶이 전도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병든 사람은 전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결국 전도 안하는 사람은 병든 사람인 것입니다. 전도를 하려면 본문 15절 말씀의 "그 사람" 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그 사람'은 누구입니까 병고침을 받고 은혜를 체험한 사람이 '그 사람' 인 것 입니다. 핍박하는 사람들을 향해 전도해야 합니다. 본문의 고침을 받은 병자는 유 대인들에게 가서 예수를 전했습니다. 그당시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핍박하 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에게 예수믿고 병이 나았다고 전 도하십시오. 불안하던 마음이 사라지고 잠이 잘 온다고 전도하십시오. 이렇 게 예수믿고 변화된 것을 증거하게 되면 놀랍게 전도가 되는 것입니다. 전 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같이 나누었던 말씀을 잘 기억하시고 여러분의 신앙생활에 순종하는 모습, 자신을 잘못을 살피는 모습, 전도하는 모습이 늘 함께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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