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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 - 성자냐 세속인이냐? (마5: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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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꼭 60여년 전의 일이 되겠습니다만, 한 불란서 신부와 독일의 루터교목사 가 미국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서로 소개하고 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각자의 삶의 목표가 무엇인가에 대한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불란서 신부는 자신은 성자가 되는 것이 그의 목표이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독일 루터교회 목사는 "나는 신앙을 갖는 것을 배우고 싶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목표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 두 사람들의 생의 마지막이 어떠했는지, 그들이 과연 그들의 생의 목표 를 달성했느냐의 문제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됩니다. 저는 불란서 신부의 그 후의 이야 기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가 생의 목표를 달성하여 성자가 되었을 가능성은 충분 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직자로서 평생 노력하였다면 성자가 못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실제로 로만 카토릭교회에서는 성자로 봉하는 제도를 두고 있고 독신자인 신부 가 노력하면 능히 성자가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독일루터교 목사의 그 후의 이야기에 대하여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는 그의 조국인 독일이 나치의 정 권장악과 2차대전을 일으켜 전 구라파를 전쟁의 도가니에 몰아넣었고 유대인들을 단순 히 바람직 하지 않다는 이유로 학살하는 세기말적인 죄악이 자행되었을 때 그는 히틀 러를 제거하려는 사람들의 조직에 연루되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그는 게스타포에 의해 체포되어 오랫동안 감옥에 있다가 2차대전이 끝나기 불과 수주일 전에 처형되게 되었 습니다. 이 독일루터교회 목사는 바로 본 훼퍼목사였습니다. 본 훼퍼는 과연 그의 생 의 목표를 달성했다고 할 수 있습니까 현직 목사가 히틀러 암살음모단에의 가입협의 를 받아 처형당한 것이 신앙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신앙과 정치가 무슨 관계가 있는 지 등에 대하여 의아해 할 분이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의문을 가지시는 분이 있으면 오늘 제 설교를 다 들은 후에 그 의문이 해결되기를 바랍니다. 본 훼퍼는 그 후에 말하기를, 그 때 그가 신앙을 갖는 것을 배우는 것이 그의 생의 목표라고 했을 때, 그 말은 곧 거룩한 생을 사는 것을 의미했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요즘 우리 한국교회의 말로 바꾸어 말한다면 "영성"을 의미할 것입니다. 어쨌든 목사 이고 신학자인 본 훼퍼가 '신앙이나 영성을 갖는 것이 그의 생의 목표다'라고 말하는 것은 좀 의외라고 생각됩니다. 무릇 목사란 가정의 문제나 인생의 문제등은 물론이지 만 신앙이나 영성의 문제야 벌써 도통하고 '졸업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본 훼퍼의 말은 상당히 놀라움으로 들릴 것입니다. '도대체 목사가 신앙이나 영 성을 갖는 것을 배우고 싶다니 그리고 그것이 생의 목표라니 그게 말이 되는가' 라고 생각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한가지 비밀을 말씀드리면 신앙의 고민은 평 신도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고 목사에게도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아마 평신도와 좀 다른 것이 있다면 그들은 신앙의 문제를 좀 전문적인 신학적 용어로 질문할 뿐일 것입니다. 본 훼퍼목사는 실제로 신앙과 영성의 문제를 가지고 일생동안 씨름하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결론이 무엇이었는지 아십니까 그의 결론은 두가지로 표현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가지는 앞에서 말씀드린대로 그가 처형당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의 말입니다. 그의 말은 이런 것입니다. 우리가 기독교 신앙을 갖고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한 인간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결론은 아주 당연한 이야기 인 것 같기도 하지만 깊이 되새겨 보면 매우 충격적인 것으로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그의 말을 인용해 보겠습니다:"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어떤 특별한 모양으로 종교적이 된다는 것, 어떤 방법 이나 기타 방법으로서 자신을 어떤 종교적인 존재(죄인, 참회자, 또는 성자)로 만드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 인간(어떤 타입의 인간이 아니라)이 되는 것을 의미 한다." 우리는 서두에서도 말했습니다만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종교인이 되는 것이나 교회인이 되는것 등을 의미하는 것 같은데 본 훼퍼는 다르게 이해하고 있는 것이 주목됩니다.
오늘 이 예배시간에 세례식을 거행했고 지난 수요일에 새교우가입식도 했습니다 만 이 문제는 세례를 받으신 분들과 이 교회에 정회원 교인으로 가입한 분들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됩니다(우리는 교회에 다니는 사람, 신자, 종교인 등등 여러가지 용어로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 훼퍼는 다르게 이야기 하고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기독인이 되고 기독인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주로 그의 사상 을 토대로 몇가지로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기독인이 되고 기독인으로 산다는 것은 진정한 인간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흔히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보통 인간이 아닌 어떤 특별한 인간이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처럼 이해하고 그렇게 될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우리는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이제 몇주면 공동의회를 열고 장로를 피택하게 되는데 이와 관련된 우서 운 이야기가 생각나서 그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것은 미국의 한인교회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어떤 신앙이 돈독한 집사님이 장로로 안수를 받았습니다. 이 분은 집사였을 때에는 매우 말이고 행동이고 걸음걸이등이 전혀 자연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장로가 되자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의 말의 억양과 속도 가 달라지고 말 한마디 한마디가 무게가 실렸습니다. 흔히 하는 말로 목에 힘을 주고 말을 하는 것이 모든 사람의 눈에 띄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눈에 띄었던 것은 그의 몸 의 자세였습니다.
한 쪽 어께가 기우뚱하게 되었고 걸음걸이가 갑자기 보행에 불편이 있는 사람처럼 천천히 어슬렁 어슬렁 걷는 것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집사였던 때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정상적인 사람이었는데 장로가 되자 갑자기 이렇게 이상한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다행이 우리 교회 장로님들 중에는 그런 분이 안계시고 또 앞으로 도 그런 분이 나오지 않으리라 믿습니다만 이것은 어쩌면 경건을 표내는 것을 강조하 고 일반 교회의 풍토가 그러하여 그런 장로를 기대하기 때문에 생기는 우서운 현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이 보통인간이 아닌 특별한 인간, 유별난 인간이 된다는 것으 로 믿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별난 인간이란 보통인간이 아닌 어떤 유별난 종교인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유별난 종교인의 가장 대표적인 예는 수도자 또는 성자가 되는 것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본 훼퍼가 말하는 기독인이 된 다는 것은 그러한 수도자나 성자가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 평범한 인간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이 된다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기독교가 역사적으로 휴메니즘-우리말로는 흔히 인본주의라고 번 역하고 있습니다만-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도 같은 이유에서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기독교가 전통적으로 인간을 죄인이란 말과 동의어 처럼 여기고 그렇 게 사용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 중요한 근거는 특히 사도 바울의 신학사상입니다(롬 3:23). 그래서 우리는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을 인간이 아닌 어떤 다른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옳은가를 반성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약 10년 전에 토론토에 있는 어느 한인 장로교회에서 사경회를 인도했던 때 를 잊을 수 없습니다. 어느날 밤에 제가 설교하는 가운데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날 저녁 설교제목은 제가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날 제가 말했던 중요한 말들은 기억합니다. 그것이 오늘 여러분들에게 드리는 설교의 내용이기도 합니다:'여러분 기독교인이 되려고 노력하지 마십시요. 인간이 되려고 노력하십시요. 우리는 기독교인이 되기 위 하여 인간이 된 것이 아니고 인간이 되기 위하여 기독교인이 된다는 사실을 잊어버리 면 안됩니다.' 이것이 오늘 제 설교의 핵심입니다. 이런 말로 제가 설교를 했는데 예배가 끝난 후 그 교회 목사님과 예배실 입구에서 예배자들과 인사를 하고 있었는데 어떤 아름다운 중년여성이 제 앞에 오더니 힘껏 제 목을 끌어안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조금 당황하게 된 것은 그 다음이었습니다. "정말 멋있습니다. 저는 목사님 같이 멋있는 남자는 처음 봤습니다. 정말 저는 목사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예배 끝나고는 그러실 여 성 교우들이 없을 것으로 압니다. 여러분들은 제가 어떤 사람인지, 또 얼마나 멋있는 남자인지 이미 잘 알고 있을 테니까 말입니다. 제가 한 말은 따지고 보면 그렇게 특별 한 말도 아닙니다. 사실 예수님도 기독교인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유대인이었습니다. 기독교란 종교와 기독교인이란 종교인은 그가 이 세상을 떠난 이후에 생긴 사회적 현 상일 뿐입니다. 본 훼퍼는 매우 적절한 말을 했는데 우리가 깊이 음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예수는 인간을 새로운 종교에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생에로 부른다."(상계서, 362).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한 말씀으로 사람이 위로 부터 새로 나야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에배소서에 보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존재가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말들은 인간이 어떤 다른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인간 이 되어야 한다고 말할 뿐입니다. 인간이 되라는 것입니다. 특별난 인간이 아니라 살 과 피가 있고 정말 인간미가 철철 넘치는 인간, 그런 인간 중의 인간이 되라는 것입니다.
한스 큉이란 카토릭 신학자는 기독인이 된다는 것이란 제목으로 매우 두터운 책을 썼습니다. 제가 그 책을 다 읽어 보았는데 아주 우수하고 훌륭한 책입니다. 그 두꺼운 책에서 그는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철저하게 인간이 되는 것"(being radically human((Being a Christian, p.554ff)이라고 했습니다. 기독인이 된다는 것은 종교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세속인이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본 훼퍼는 "인간은 세속인으로 살아야 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가르켜서 그 사람 신앙이 참 좋다는 말을 흔히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하고 있습니까 아마 교회에 열심히 나오고 성서 읽기와 기도를 열심히 하고 도덕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는 뜻일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 요하고 또 필요합니다. 무릇 기독교인이라면 그래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생각하고 있는 것은 기독교인이 되면 이 세상을 부정하고 이 세상적인 것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 하는 것으로 막연히 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바른가를 우리는 질문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고 있고 이 세상을 부정하고서 살 수 없습니다. 이 세상적인 것을 부정할 수도 없습니다.
본 훼퍼는 신앙을 갖는 것은 "이 세상적인 것"(WORLDLINESS)을 인정하고 "이 세상에서 완전하게 삶으로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이 무슨 뜻입니까 "이 세상적"이란 말이 무슨 뜻입니 까 본 훼퍼는 "이 세상적"이란 "생의 의무들, 문제들, 성공과 실패, 경험과 곤경 (PERPLEXITY)에서 거리낌 없이 사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테겔, 1944).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이 세상의 문제-그것이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에술적 문제이거나 간 에-를 잊어버리거나 외면하는 것이 아닙니다. 중립을 지키거나 나 몰라라 해서는 안되는 것을 의미합니다.우리는 기독교인이지만 동시에 이 세상의 국가의 시민으로 살고 있고 경제인으로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따로 떠나서, 또는 반대하여 살도록 부름을 받은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 속에서 사는 존재라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하여야 합니다. 독일의 니멜러(Martin Niemoeller) 목사님은 "나는 그리스도인으로 산다. 그리스도인의 소명 은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 말은 어떻게 보면 매우 싱거 운 말로 들립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이 세상을 도피해야 한다고 믿고 있는 많은 한국기독교인들에게는 충격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기독인이 세속인이 된다는 것은 자유인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배 마지막에 제가 파송을 할 때 "자유인이 되십시요" 라고 말 하는데 그 말이 그렇 게 좋다고 제게 말해주는 분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제가 사용하고 있는 파송의 말은 미국 장로교회가 사용하고 있는 예배서의 말인데 자유인이 된다는 뜻은 저는 두가지로 생각하고서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종교적인 의미에서 자유인이 되라는 말입니다. 본 훼퍼가 세속인이 되라는 말은 "거짓된 종교적 의무와 금지명령으로부터 해방된 사람"이 되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모든 종교적 계율로부터 해방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께서 바리새파 사람들, 율법교사들과 늘 논쟁을 하고 갈등을 빚 었던 이유는 그들이 거짓된 종교적 의무와 금지명령으로 사람들을 억압하였기 때문이 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이런 율법적 의무로 부터 해방된 인간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교회에는 법도 없고 질서도 없고 누구든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교회 안에서의 질서를 강조했습니다. 아무리 자유를 강조하는 공동체나 조직체라 하더라도 그것들이 공동체로, 조직체로 존재하려면 최소한도의 규범(법)과 질서가 있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기독교인들은 가 장 질서정연한 사람들이고 법과 질서를 존중하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자유 인이 된다는 의미는 어떤 사상이나 제도나 권력으로부터도 자유한 존재가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세상과 세상의 사상, 제도, 권력등을 긍정할 것을 긍정하고 존중할 것을 존중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예속되거나 의존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인들은 또 다른 법과 규범,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것들은 단순히 세상의 그것과 병렬적인 것이 아니고 초월해 있는 하나님의 나라, 하느 님의 주권, 하나님의 법을 믿기 때문에 이것들의 빛에서 세상의 주권들을 긍정, 비판, 또는 필요하면 반대합니다. 이것들의 기준에서 세상의 그것이 일치될 때에만 존중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할 때 비판, 저항, 부정하여야 합니다. 그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런 문제와 관련하여 일찍이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옳은 주장을 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그 어떤 존재에게도 예속되지 않고 전적으로 주 인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아주 적절한 말입니다.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타인을 위해 사는 사람이고 특히 어려운 사람들, 약한 사람들, 박해받고 억압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사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간단하게 표현하면 기독교인은 이 세상에서 고난당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산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까닭은 민중들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고난이 있는 곳에, 아니 고난당하는 인간과 함께 하시는 신이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인간이 '세속적 삶을 살아야 하고' 이렇게 함으 로서 '하나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의 세계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유일한 곳은 민중들의 고난, 고난 당하는 민중들이 있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거룩한 성전 안에서, 또는 깊은 산골짜기에 있는 기도원 같은 곳에 있 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의 소명은 '염불'하고 있는 화려하고 거 룩한 대교회당이 아니고 신이 없는 곳 처럼 보일 모르는 세속세계 한 복판으로 (GODLESS WORLD) 그 자신을 던지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계적'(WORLDLY) 생을 살아야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수난에 참여하여야 합니다. 본 훼퍼는 예수를 "타인을 위한 인간"이라고 정의한 바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자신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말씀하시기를 이 세상을 위해 자신을 주려고 왔다고 했습니다. 나는 섬김 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고 남을 섬기러 왔다고 하셨습니다(요한 ). 예수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세상의 빛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분명한 사실은 우리 주님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파견된 사도들임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소금으로, 빛으로 이 세상에 보냄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리, 사명받아 파견된 장소, 그것은 이 세상입니다. 세상 속에 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성육신 사건은 신 이 이 세상에 몸으로 오신 사건입니다. 그가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지만 이 세상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이 세상에로 성육신해야 합니다. 세상과 분리되고, 이 세상과 고립된 채, 무관심하게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이 세상 한 복판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이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고 하셨는데, 소금과 빛이란 상징은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빛은 어두운 세상을 밝힙니다. 모든 불의, 악, 죄를 폭로하 고, 조명합니다. 에베소서에서는 이 빛이 선, 정의, 진리(진실)를 열매 맺는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빛이 하는 일이요, 성과요, 열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바로 이 세상에서 선과 정의와 진실(진리)을 열매맺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소금입니다. 이 세상 속에 침투해야 소금의 노릇을 할 수 있습니다. 맛을 내고 부패를 방지하고, 신선하게 하는 일을 소금이 합니다. 그리스도인 이 세상의 소금이란 뜻은 바로 그러한 역할을 하여야 할 사명이 있음을 말합니다. 세상의 빛, 세상의 소금의 역할을 해야할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성자라기 보다 세속인이 적절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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