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향기 (고후2:1-17)
본문
1. 고린도 교회는 앞서 살펴 보았듯이 분쟁과 혼란, 음란과 허영, 사치 와 교만 등으로 어지러운 모습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 고린도 교회는 향기나는 교회가 아니라 악취나는 교회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개척한 사람으로 혼심을 기울여 고린도전서 를 기록하여 디모데 편에 보냈지만 그 편지를 받은 고린도 교회는 변화 되기는커녕 상황이 더 악화되어 이제사도 바울을 모함하고 그의 사도권 에 도전하며 교인들을 선동하기 까지 했습니다. 디모데의 보고를 받고 성 급히 고린도 교회에 방문했지만 오히려 극심한 멸시와 냉대, 굴욕을 당한 채 에베소로 다시 돌아와야만 했습니다. 참으로 <가슴 아픈 방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고린도 교회에 대한 그의 사랑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 습니다. 곧 편지를 보냈습니다. 이 편지가 바로 본장(고후2장)으로 <눈물 의 편지>로 불려지고 있습니다. 이 <눈물의 편지>는 매우 신랄하고 준엄 한 내용이어서 고린도 교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을지 모르지만, 바울의 본심은 그들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알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아 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징계하듯이 <눈물의 편지>는 고린도 교회를 향한 사도 바울의 넘치는 사랑의 표출이었습니다. 결국 바울의 사랑이 담긴 <눈물의 편지>를 받은 고린도 교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며 새로 운 각성을 하게 되었다는 기쁜 승리의 소식이 바울에게 전해지게 됩니다. 진정한 바울의 사랑의 <눈물의 편지>를 통한 준엄한 책망이 그들의 마음 을 변화시켰던 것입니다.
2. 교회를 혼란시켰으며 바울을 비난하고 불의를 행한 교회 범법자에 대해 고린도 교회는 준엄한 바울의 <눈물의 편지>에 순종하여 파문이라는 징계를 내렸다는 소식도 전해들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그 징계에 대해 만족하며 이제 그를 용서하고 격려하며 사랑으로 감싸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낙심하여 교회에서 아주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보살펴 주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미워한 것은 죄였지 사람을 미워한 것이 아니었 기 때문이었습니다. 사탄은 남을 용서하지 않는 완고한 마음을 이용하여 파멸로 이끄는 다른 죄를 짓도록 합니다. 교회의 징계는 불의를 행한 사람의 죄를 깨닫게 하고 그를 다시 온전한 성도의 위치로 회복시키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죄를 회개하면 용서해주라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 입니다. 일흔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주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어떤 소년이 "용서가 무엇이냐"고 묻는 말에 "그것은 꽃이 짓밟힐 때 에도 향기를 내뿜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합니다. 바로 그것 이 원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짓밟힘을 당하고, 핍박을 받고, 억 울함을 당해도, 독소를 내뿜지 말고 사랑의 향기를 뿜어야 합니다. 누가복음 9장에 보면, 예수님과 제자들이 예루살렘을 향해 갈 때, 사마 리아의 한 촌에 들어가려 했더니, 사람들이 못 들어오게 막았습니다. 이 것을 본 야고보와 요한은 내심 분개했습니다. "(눅9:54)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가로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좇아 내려 저희를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이에 대해 예수님은 이렇게 책망하셨습니다. (누가복음 9장 55절 난하 주) "너희는 무슨 정신으로 말하는지도 모르는구나. 인자는 사람의 생명을 멸하러 온 것이 아니요 구하러왔노라."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오신 것이 아니라 회개시켜 구원코자 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에게 정신없는 소리 말라고 책망하셨던 것입니다. 원수에 대해 사랑으로 용서하는 마음을 가 지라는 말씀입니다. 가장 향기로운 삶의 모습은 원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구체적으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롬12: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 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롬12:20)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롬12:21) 악 에게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항상 남의 허물을 비판하고 책망만하며 칭찬하지 않는다면 그 책망은 효과가 없는 것입니다. 항상 엄하기만 하면 그 책망의 가치는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책망을 자주 하지 않고 있다가 꼭 필요할 때 한 번 하면 그 책망은 매우 효과적입니다. 사도 바울은 사랑으로 책망하는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유일한 효과적인 책망은 그 사람을 사랑의 팔로 감싸고 하는 책망인 것입니다. 루터는 주기도문을 외우는 것이 몹시 꺼림직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아버지는 너무나 엄격했기 때문에 아버지란 말이 그에게는 무서운 공포의 그림자를 던져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루터는 항상 말하기 를 "채찍을 버리면 자식도 버린다. 그렇다 하지만 채찍 옆에 사과를 놓아 두라. 그리고 그가 잘 했을 때는 그 사과를 주라."고 했습니다. 형벌이나 책망은 사람을 격려하기 위한 것이 되어야 하며 낙담시키거 나 좌절시키는 것이어서는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책망은 슬기롭게, 그리고 사랑의 동기에서 행해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잠25:12) 슬기로운 자의 책망은 청종하는 귀에 금고리와 정금 장식이 니라.(전7:5) 사람이 지혜자의 책망을 듣는 것이 우매자의 노래를 듣는 것 보다 나으니라." 참으로 "슬기로운자, 지혜자의 책망은 생명의 길이며 금고리와 정금 장식"과 같은 것입니다. <눈물로 쓴 편지>에 담긴 사랑의 책망은 악취나는 고린도 교회를 향기나는 교회로 변화시켰습니다. 바울의 사도권에 도 전하며 비난과 멸시를 퍼부었던 사분오열의 고린도 교인들이 사랑으로 하나되는 아름답고 향기나는 교회로 변화된 것이었습니다. 어떤 목사는 설교하는 데에 부인 신자가 졸고 앉았는 것을 보고 발로 강단을 구르며 "여보, 자매! 웬 잠을 그리 자오 그것 참 졸자 노릇하겠구만. 이 다음 에 교회 올 때에는 고춧가루를 가지고 와서 졸음 올 때에 눈에다 치시 오." 하니 그 부인은 한참 졸다가 깨어 목사에게 눈을 흘기며 "흥, 내 눈에다 고춧가루를 치라고 하지 말고 목사님의 설교에다 고춧 가루를 치시오. 설교가 싱거워서 좁니다." 하고 다시 눈을 감았다는 것입니다. 그 교회는 볼장 다 봤습니다. 목사는 신자가 존다고 야단이고 신자는 목사가 설교를 잘못한다고 야단이니 이 일을 어찌하겠습니까 어느 교회의 늙은 집사님은 목사님이 설교를 잘못하고 강단에서 내려 오니 목사님의 손을 잡고 훌쩍훌쩍 울었답니다. 목사님이 "집사님, 왜 우십니까" 하고 물으니 "목사님이 오늘 설교를 잘못하신 것은 내 까닭입니다. 내가 목사님의 주일 설교를 위해서 토요일 밤에는 항상 기도했는데 지난 밤에는 손님이 와서 기도를 못했더니 목사님 설교 죽 쑤었습니다." 하고 울더랍니다. 그 교회는 참 아름답고 사랑이 넘치는 교회입니다.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이 사회에서 피차 책임을 지고 서로 이해 깊은 사랑으로 사는 것이 향기나는 삶인 것입니다.
3. 그리스도의 냄새,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은 죽고 예수만 살아야 합니다. "(빌1: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부패한 자아가 죽고 의로우신 예수가 내 안에 살게 될 때 향기나는 삶 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자신과 자신의 모든 것을 주님께 바칠 때, 그리스도의 냄새,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는 것입니다. 가시밭에 백합화는 더 욱 그 향기가 널리 퍼지게 됩니다. 가시에 찔리고 찢겨질 때마다 백합의 향기는 그만큼 널리 퍼지게 마련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난을 받을 때, 상처를 받을 때, 매를 맞고 박해와 핍박을 받을 때, 십자가 를 지고 가는 등허리에 채찍이 내리칠 때 그리스도의 향기는 더욱 강렬 해지는 것입니다. 본문 15절의 "그리스도의 향기"에서 향기에 해당하는 헬라어 <유오디 아>는 구약에서 <희생 제사>를 가리킬 때 사용되는 말입니다. 이는 하나님과 복음을 위해 희생적인 삶을 살 때 <그리스도의 향기>가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의 복음 전파를 위한 그의 삶은 하나님을 기쁘시 게 하기 위한 희생 제사와 같은 것이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향기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동시에 성도들에게도 기쁨 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향기가 어떤 사람에게는 생명이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사망에 이르게 하는 향기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성도 들에게는 집 모퉁이의 요긴한 돌이 되시나,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깨어지 게 하며 가루되게 하는 돌이 됩니다. "(마21:42)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 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마21:4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마21:44)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
"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을 사랑하시되 십자가에 죽기 까지 사랑하신 하나님의 생명의 향기입니다. 그러나 이 하나님 사랑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아니하는 것은 그 큰 사랑을 배척하는 죄요 사망의 냄 새인 것입니다. 어떤 어머니가 어린 아이 하나를 데리고 와서 고아원에 맡겼습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는 얼굴이 볼모양 없이 허물 자국으로 가득찼고 그 손 들도 허물 자국 천지였습니다. 몇 해 후에 이 어머니는 그 고아원에 찾아 와서 자기 아이를 만나보고자 했습니다. 그 아이는 벌써 한 다섯 살 쯤 되었습니다. 그 아이를 찾아내어 자기 어머니를 만나도록 했을 때에 그 아이는 그 여자를 자기 어머니인 줄 몰랐고 또 그 여자의 얼굴과 손에 가득한 허물 자국들을 보고 놀라서 도망쳤습니다. 그때에 그 어머니는 엎 드려 울었습니다. 실상 그 어머니는 그 아이가 화재로 인하여 죽게 되었 을 때에 그를 불 가운데서 건져 내다가 화상을 입어서 저렇게 허물 자국 을 많이 가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와서 그 여자는 실상 자기 자식 사랑한 것 때문에 배척을 받은 셈입니다. 사랑을 배척하는 것은 죄 중의 죄입니다. 복음으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나 크게 때문에 복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곧 구원을 받으나, 받아들이지 아니하면 멸망을 받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복음은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생명의 향기요, 받 아들이지 아니하는 사람에게는 사망의 냄새인 것입니다. 사망 권세가 지배하고 있는, 사망의 냄새가 나는 세상을 이기는 비결 은 생명의 향기를 발하며 사는 것입니다. 생명의 향기를 발하기 위해서는 "(고후2:17)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서서 순전한 신앙으로 사는 것입니다. 오직 그 길만이 그리스도의 향기로 자기를 지키며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비결인 것입니다. 한 마디로 성경대로 살고 성경대로 죽는 생활을 말합니다.
"(고전15: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고전15:2) 너희가 만 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 암아 구원을 얻으리라 (고전15: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 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고전15:4)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말씀 그대로,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한 순수한 신앙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생명의 향기나는 신앙생활을 보존하는 것입니다. 사망의 악취가 나는 세상을 정화하면서 세상을 변화 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생명의 향기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시에 독일 나치스 정권에게 체포되어 감금되었던 노르 웨이의 에빈 벨그라브라는 감독이 있었습니다. 그의 영력(靈力)의 감화가 무척 컸습니다. 그를 지킨 간수가 11명이나 되었습니다. 나치스 당국에서는 간수들이 벨그리브의 감화를 받지 못하게 하려고 자주 자주 다른 사람들을 보내어 지키게 했던 것입니다. 냄새는 소리없이 고요히 퍼져 나가는 것입니다. 바울이 자기가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라고 한 것은 그 자신이 성령님의 감동을 전달하는 자임을 고백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의 인격의 감화는 그 사람 자신을 남들에게 알려주지만, 성령님의 감화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알게 하여 주는 것입니다. 광야같은 세상, 마른 해골 뼈들로 가득한 골짜기같은 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밖에는 생명의 향기가 없습니다. 예수없이 사는 삶은 사망의 냄 새만 풍길 뿐입니다. 나는 죽고 예수만이 내 안에 살게 될 때 생명과 사랑의 향기가 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속에 진리와 생명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한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시므로 가정과 교회, 그리고 사회 를 향기나는 곳으로 변화시키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2. 교회를 혼란시켰으며 바울을 비난하고 불의를 행한 교회 범법자에 대해 고린도 교회는 준엄한 바울의 <눈물의 편지>에 순종하여 파문이라는 징계를 내렸다는 소식도 전해들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그 징계에 대해 만족하며 이제 그를 용서하고 격려하며 사랑으로 감싸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낙심하여 교회에서 아주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보살펴 주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미워한 것은 죄였지 사람을 미워한 것이 아니었 기 때문이었습니다. 사탄은 남을 용서하지 않는 완고한 마음을 이용하여 파멸로 이끄는 다른 죄를 짓도록 합니다. 교회의 징계는 불의를 행한 사람의 죄를 깨닫게 하고 그를 다시 온전한 성도의 위치로 회복시키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죄를 회개하면 용서해주라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 입니다. 일흔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주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어떤 소년이 "용서가 무엇이냐"고 묻는 말에 "그것은 꽃이 짓밟힐 때 에도 향기를 내뿜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합니다. 바로 그것 이 원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짓밟힘을 당하고, 핍박을 받고, 억 울함을 당해도, 독소를 내뿜지 말고 사랑의 향기를 뿜어야 합니다. 누가복음 9장에 보면, 예수님과 제자들이 예루살렘을 향해 갈 때, 사마 리아의 한 촌에 들어가려 했더니, 사람들이 못 들어오게 막았습니다. 이 것을 본 야고보와 요한은 내심 분개했습니다. "(눅9:54)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가로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좇아 내려 저희를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이에 대해 예수님은 이렇게 책망하셨습니다. (누가복음 9장 55절 난하 주) "너희는 무슨 정신으로 말하는지도 모르는구나. 인자는 사람의 생명을 멸하러 온 것이 아니요 구하러왔노라."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오신 것이 아니라 회개시켜 구원코자 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에게 정신없는 소리 말라고 책망하셨던 것입니다. 원수에 대해 사랑으로 용서하는 마음을 가 지라는 말씀입니다. 가장 향기로운 삶의 모습은 원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구체적으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롬12: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 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롬12:20)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롬12:21) 악 에게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항상 남의 허물을 비판하고 책망만하며 칭찬하지 않는다면 그 책망은 효과가 없는 것입니다. 항상 엄하기만 하면 그 책망의 가치는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책망을 자주 하지 않고 있다가 꼭 필요할 때 한 번 하면 그 책망은 매우 효과적입니다. 사도 바울은 사랑으로 책망하는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유일한 효과적인 책망은 그 사람을 사랑의 팔로 감싸고 하는 책망인 것입니다. 루터는 주기도문을 외우는 것이 몹시 꺼림직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아버지는 너무나 엄격했기 때문에 아버지란 말이 그에게는 무서운 공포의 그림자를 던져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루터는 항상 말하기 를 "채찍을 버리면 자식도 버린다. 그렇다 하지만 채찍 옆에 사과를 놓아 두라. 그리고 그가 잘 했을 때는 그 사과를 주라."고 했습니다. 형벌이나 책망은 사람을 격려하기 위한 것이 되어야 하며 낙담시키거 나 좌절시키는 것이어서는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책망은 슬기롭게, 그리고 사랑의 동기에서 행해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잠25:12) 슬기로운 자의 책망은 청종하는 귀에 금고리와 정금 장식이 니라.(전7:5) 사람이 지혜자의 책망을 듣는 것이 우매자의 노래를 듣는 것 보다 나으니라." 참으로 "슬기로운자, 지혜자의 책망은 생명의 길이며 금고리와 정금 장식"과 같은 것입니다. <눈물로 쓴 편지>에 담긴 사랑의 책망은 악취나는 고린도 교회를 향기나는 교회로 변화시켰습니다. 바울의 사도권에 도 전하며 비난과 멸시를 퍼부었던 사분오열의 고린도 교인들이 사랑으로 하나되는 아름답고 향기나는 교회로 변화된 것이었습니다. 어떤 목사는 설교하는 데에 부인 신자가 졸고 앉았는 것을 보고 발로 강단을 구르며 "여보, 자매! 웬 잠을 그리 자오 그것 참 졸자 노릇하겠구만. 이 다음 에 교회 올 때에는 고춧가루를 가지고 와서 졸음 올 때에 눈에다 치시 오." 하니 그 부인은 한참 졸다가 깨어 목사에게 눈을 흘기며 "흥, 내 눈에다 고춧가루를 치라고 하지 말고 목사님의 설교에다 고춧 가루를 치시오. 설교가 싱거워서 좁니다." 하고 다시 눈을 감았다는 것입니다. 그 교회는 볼장 다 봤습니다. 목사는 신자가 존다고 야단이고 신자는 목사가 설교를 잘못한다고 야단이니 이 일을 어찌하겠습니까 어느 교회의 늙은 집사님은 목사님이 설교를 잘못하고 강단에서 내려 오니 목사님의 손을 잡고 훌쩍훌쩍 울었답니다. 목사님이 "집사님, 왜 우십니까" 하고 물으니 "목사님이 오늘 설교를 잘못하신 것은 내 까닭입니다. 내가 목사님의 주일 설교를 위해서 토요일 밤에는 항상 기도했는데 지난 밤에는 손님이 와서 기도를 못했더니 목사님 설교 죽 쑤었습니다." 하고 울더랍니다. 그 교회는 참 아름답고 사랑이 넘치는 교회입니다.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이 사회에서 피차 책임을 지고 서로 이해 깊은 사랑으로 사는 것이 향기나는 삶인 것입니다.
3. 그리스도의 냄새,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은 죽고 예수만 살아야 합니다. "(빌1: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부패한 자아가 죽고 의로우신 예수가 내 안에 살게 될 때 향기나는 삶 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자신과 자신의 모든 것을 주님께 바칠 때, 그리스도의 냄새,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는 것입니다. 가시밭에 백합화는 더 욱 그 향기가 널리 퍼지게 됩니다. 가시에 찔리고 찢겨질 때마다 백합의 향기는 그만큼 널리 퍼지게 마련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난을 받을 때, 상처를 받을 때, 매를 맞고 박해와 핍박을 받을 때, 십자가 를 지고 가는 등허리에 채찍이 내리칠 때 그리스도의 향기는 더욱 강렬 해지는 것입니다. 본문 15절의 "그리스도의 향기"에서 향기에 해당하는 헬라어 <유오디 아>는 구약에서 <희생 제사>를 가리킬 때 사용되는 말입니다. 이는 하나님과 복음을 위해 희생적인 삶을 살 때 <그리스도의 향기>가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의 복음 전파를 위한 그의 삶은 하나님을 기쁘시 게 하기 위한 희생 제사와 같은 것이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향기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동시에 성도들에게도 기쁨 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향기가 어떤 사람에게는 생명이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사망에 이르게 하는 향기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성도 들에게는 집 모퉁이의 요긴한 돌이 되시나,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깨어지 게 하며 가루되게 하는 돌이 됩니다. "(마21:42)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 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마21:4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마21:44)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
"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을 사랑하시되 십자가에 죽기 까지 사랑하신 하나님의 생명의 향기입니다. 그러나 이 하나님 사랑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아니하는 것은 그 큰 사랑을 배척하는 죄요 사망의 냄 새인 것입니다. 어떤 어머니가 어린 아이 하나를 데리고 와서 고아원에 맡겼습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는 얼굴이 볼모양 없이 허물 자국으로 가득찼고 그 손 들도 허물 자국 천지였습니다. 몇 해 후에 이 어머니는 그 고아원에 찾아 와서 자기 아이를 만나보고자 했습니다. 그 아이는 벌써 한 다섯 살 쯤 되었습니다. 그 아이를 찾아내어 자기 어머니를 만나도록 했을 때에 그 아이는 그 여자를 자기 어머니인 줄 몰랐고 또 그 여자의 얼굴과 손에 가득한 허물 자국들을 보고 놀라서 도망쳤습니다. 그때에 그 어머니는 엎 드려 울었습니다. 실상 그 어머니는 그 아이가 화재로 인하여 죽게 되었 을 때에 그를 불 가운데서 건져 내다가 화상을 입어서 저렇게 허물 자국 을 많이 가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와서 그 여자는 실상 자기 자식 사랑한 것 때문에 배척을 받은 셈입니다. 사랑을 배척하는 것은 죄 중의 죄입니다. 복음으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나 크게 때문에 복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곧 구원을 받으나, 받아들이지 아니하면 멸망을 받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복음은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생명의 향기요, 받 아들이지 아니하는 사람에게는 사망의 냄새인 것입니다. 사망 권세가 지배하고 있는, 사망의 냄새가 나는 세상을 이기는 비결 은 생명의 향기를 발하며 사는 것입니다. 생명의 향기를 발하기 위해서는 "(고후2:17)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서서 순전한 신앙으로 사는 것입니다. 오직 그 길만이 그리스도의 향기로 자기를 지키며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비결인 것입니다. 한 마디로 성경대로 살고 성경대로 죽는 생활을 말합니다.
"(고전15: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고전15:2) 너희가 만 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 암아 구원을 얻으리라 (고전15: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 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고전15:4)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말씀 그대로,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한 순수한 신앙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생명의 향기나는 신앙생활을 보존하는 것입니다. 사망의 악취가 나는 세상을 정화하면서 세상을 변화 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생명의 향기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시에 독일 나치스 정권에게 체포되어 감금되었던 노르 웨이의 에빈 벨그라브라는 감독이 있었습니다. 그의 영력(靈力)의 감화가 무척 컸습니다. 그를 지킨 간수가 11명이나 되었습니다. 나치스 당국에서는 간수들이 벨그리브의 감화를 받지 못하게 하려고 자주 자주 다른 사람들을 보내어 지키게 했던 것입니다. 냄새는 소리없이 고요히 퍼져 나가는 것입니다. 바울이 자기가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라고 한 것은 그 자신이 성령님의 감동을 전달하는 자임을 고백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의 인격의 감화는 그 사람 자신을 남들에게 알려주지만, 성령님의 감화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알게 하여 주는 것입니다. 광야같은 세상, 마른 해골 뼈들로 가득한 골짜기같은 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밖에는 생명의 향기가 없습니다. 예수없이 사는 삶은 사망의 냄 새만 풍길 뿐입니다. 나는 죽고 예수만이 내 안에 살게 될 때 생명과 사랑의 향기가 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속에 진리와 생명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한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시므로 가정과 교회, 그리고 사회 를 향기나는 곳으로 변화시키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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