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향기 (고후2:14-17)
본문
그리스도의 향기라는 말은 사도들과 예수님의 제자들, 그리고 많은 무리들이 가는 곳마다 예수의 향기를 풍겼다는 뜻입니다. 좋은 냄새를 풍겼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것 중의 하나인 이 향기는 구약시대에 성막 안에서 소나 양이나 비둘기를 잡을 때 나는 나쁜 냄새를 없애기 위해서 향불 을 피우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사용되었습니다. 솔로몬도 성전을 건축할 때 멀리 레바논에서 백향목을 베어 가져와 성전을 지었고 그의 궁궐도 그것으 로 지었습니다. 백향목은 향기가 좋아서 아주 귀한 나무로 사용되었습니다. 이처럼 구약은 하나님이 향기를 좋아하시는 분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 시대에도 향기와 향료를 매우 신성하고 귀한 것으로 여겼고 충성의 상 징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 옥합을 깨뜨려 발에 발라드 렸던 것은 충성과 사랑의 상징으로 그 향기가 온 방에 가득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향기는 거룩한 것, 깨끗한 것, 의로운 것, 충성을 표시하는 것으로 여겨 온 것입니다. 또한 향기는 좋은 냄새를 풍길 뿐 아니라 피부색을 좋게 하고 면 역효과를 가져오기도 하고 또 인간의 정신을 새롭고 상쾌하게 하여 평화롭게 하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향기로 말하게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 의 복음이 성도의 가슴 속에 들어가 자리잡게 되면 마음의 향기가 나기 때문 입니다. 사람은 마음이 어떻게 정해져 있느냐에 따라 모습이 다르고 행동이 다 르고 말이 다릅니다. 사람의 마음이 포악하고 완악하고 강퍅해지면 남을 대하는 눈초리가 다르고 얼굴 안면이 다르고 말 자체에서 독성이 풍겨 나옵니다.
그런데 마음에 향기가 있는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심성과 사랑, 평화 가 마음 안에 있는 사람은 얼굴이 달라지고 표현과 생활이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각처에서 향기를 풍긴다고 표현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 살아가면서 어떻게 해야 예수의 향기가 잘 풍겨지고 우리의 삶 이 사랑으로 넉넉하고 풍요롭게 될까요
첫째 가는 곳마다 예수향기를 풍겨야 합니다.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는 말씀이 증거하는 대로 바울과 제자들이 세계 각처에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는데 가는 곳마다 예수의 향기가 퍼졌습니다(고후 2:14).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했습니다. 즉 예수님의 제자들의 몸에는 예수의 냄새가 배였던 것입니다. 한번은 옛날 고등학교 동창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반갑다며 함께 잠간 이야 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제 앞에서 계속 담배를 피워댔습니다. 시간이 얼마 지난 후 집으로 들어갔더니 막내 딸 아이가 제게 "아빠, 담배 냄 새가 나!"하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누구와 같이 했는가에 따라 삶의 향기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3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다 보니 그들에게 그들도 모르는 사이에 예수의 향기가 배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혹 재산을 다 몰수한다 해도, 어떤 최악의 경우를 만나도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 면서 예수 자랑을 했던 것입니다.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알게 모르 게 얻은 은혜로, 성령님충만해서 생활 속에서 향기나 났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영향을 마음으로 받았고 생활로 받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말없이 알 릴 수 있는 향기를 풍겼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얼마동안 신앙생활했는가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이 성전 밖에 나갔을 때 여러분의 생활 속에서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사회에서 예수 향기가 배여서 믿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예수 믿는 사람들은 뭔가 다르구나" 하는 말을 듣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 향기가 나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둘째 생명에 이르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 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고후 2:16). 향기에는 2가지 요소가 있는데 한가지는 심판적인 요소이고, 다른 하나는 위생적인 요소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칼과 창으로 직접적인 육박전을 벌였던 고대전쟁은 승자나 패자나 모두 피투성이가 됩니다. 결국 마지막 살아남은 사람이 승전가를 부르 게 됩니다. 승리한 군대는 승전보를 알리고 본국으로 돌아옵니다. 장군은 맨 앞에서 백마를 타고 입성을 합니다. 온 성안의 사람들은 모두 나와서 자기 남 편이 죽지 않고 살아왔는지 자기 자식이 죽지 않고 살아왔는지 살핍니다. 또한 성 안의 사람들은 전쟁에서 승전했을 때 나라에서 주는 하사품과 전리품이 있 을 것을 기대하며 온 성안은 축제 분위기가 됩니다. 백마를 타고 장군이 들어 오는 뒤에는 마차에 큰 향로에 향을 피워 향기가 뭉게 뭉게 올라가게 만들어 끌고 들어옵니다. 그 뒤에는 의기양양하고 당당한 군인들이 들어오고 그 뒤에는 목을 쳐서 사형에 처하거나 눈을 빼내어 사형에 처하거나 가죽을 벗겨 사 형에 처해야 하는 전쟁포로들이 쇠사슬에 묶인 채 들어옵니다. 그 다음 맨 뒤 에 전리품을 실은 마차가 들어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만세를 부르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것보다 앞서 향로 마차가 들어오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사람이 피를 보면 감정적으로 흥분이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 번 잘못하여 살 인을 시작하면 계속 이어서 살인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피는 사람의 감정을 포악하게 만들고 원한을 품게 하고 나쁜 마음을 가지게 하고 복수심을 가지게 하여 결국 사람을 광란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승자나 패자나 할 것 없이 피투성이가 되어 악취를 풍기고 돌아오면 환영하는 군중들이 광란 기를 가질 수가 있습니다.
만약 자기 가족이 살아 돌아오지 않으면 "내 남편이 죽었구나", "내 자식이 죽었구나"하고 실망하여 갑자기 광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향기를 피워 올려 마음을 차분하고 안정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역사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죄악에서 구원시키셨고 자유를 주셨습니다. 나아가서는 잘 못된 죄인들을 영적으로 건강하게 하시고 정신적으로 자유케 하셨습니다. 용기 와 희망과 기쁨을 주셨습니다. 사람이 죄의식에 시달리면 보통 너나 나나 똑같 은데 죄를 범하거나 어려운 일이 생기고 나면 사람의 양심에 깨달음이 옵니다. 사람은 양심의 동물이기 때문에 어려움이 왔을 때, 자기 힘으로 해결할 길이 없을 때 "내가 그때 잘못 한 그 일 때문에 벌을 받나보다……"하고 양심의 가 책을 느낍니다. 사람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한 부딪힌 장벽을 넘어갈 힘이 없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상황에서 양심의 가책이 없어지고 영적으로 자유를 얻어 하나님의 자녀로 확신을 가지고 나면 생명력이 솟아나서 여호와를 의지 하고 장벽을 뛰어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의 경우 전쟁 중에도 그 죽 음의 고비 중에서도 두려움없이 나아가 죽지 않고 살아나 하나님을 찬양하고 승전가를 부르고 좋은 세월의 주인공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면 삶의 용기가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담대해 집니다. 기쁨이 있습니다. 나아가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생활 속에서 전하는 향기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은 참 열심히 살아 가는구나"하고 힘을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에게는 새 힘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독수리가 날개치고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것처럼 솟 아오르는 힘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육신적으로 사회적으로 힘찬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약한 것 같으나 강하고 어리석은 것 같으나 지혜롭고 무능한 것 같으나 능하게 하시고 가난한 것 같으나 부요하다는 바울의 표현처럼 하나님 께서 역사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죽음에서도 생명으로 좇아 옮겨지는 예수님 의 향기가 우리와 함께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향기는 정결하게 하고 마음을 평화롭게 하고 모든 백성들을 안정되게 하는 동시에 전범자들에게는 "나는 왕 앞에서 엎드려야 하겠고 그들이 나를 발로 밟고 처형을 하겠구나"하며 죽음과 심판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향기에는 사망에 이르는 향기가 있고 생명에 이르는 향기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는 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누구든지 멸망치 아니하 고 영생에 이르는 자유의 향기인 동시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멸망에 이 르는 심판의 향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사람들은 마지막에는 죽음을 피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생활 속에 예수 믿는 사람들의 향기로 말미암아 불의를 행하고 죄악을 범하는 사람들에게는 사망과 멸망을 예고하는 심판의 향기로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여름 일본에서 일 주일 동안 무서운 강력사건이 계속 방송된 적이 있었습니다. 26세 된 청년이 일 년 동안 유치원에 다니던 아이들 4명을 유괴하 여 토막을 내서 상자에 넣어 아이들의 집으로 우송을 했습니다. 그 사건이 TV 로 보도되는 것을 보고 그 청년은 집에서 그걸 보고 좋아했답니다. 그리고는 경찰에 연락해서 범인이 있는 곳을 안다고 하며 허위 제보를 하여 경찰을 우 롱하기도 했습니다.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마침내 그 청년이 붙잡혔습니다. 그런데 그 청년이 살던 집을 조사해 보니 거기에서 음란물과 폭력물 비디오 테 이프가 무려 2천 개가 나왔다고 합니다. 그 청년은 평소 집 안에서 그 음란물, 폭력물 비디오 테이프만 보고 지냈던 것입니다. 거기서 살인방법과 음행방법을 배웠던 것입니다. 여러분, 자기 집 안에서 사망의 냄새가 자기 몸에 배여 결국 은 살인자가 되고 붙잡혀 인생이 실패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이 되어서 날마다 생명에 이르는 향기가 풍겨져서 우리의 삶이 주변의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 담대함과 희락 의 향기를 전하는 하나님 기뻐하시는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셋째 열매를 풍성히 맺어야 합니다. 열매를 풍성히 맺으면 향기가 납니다. 열매는 설익으면 설익은 냄새가 나고, 익으면 익은 냄새가 납니다. 제가 어렸을 때 저의 집은 포도 과수원을 크게 경 영했습니다. 겨울 내내 거름을 마차들과 소, 말 등으로 실어 날랐습니다. 가을 쯤 되면 포도가 익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저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원두막에 가서 잤습니다.
왜냐하면 새벽녘에 잘 익고 서리맞은 포도를 먹으면 그것이 너 무 맛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침을 안 먹어도 포도 몇 송이 먹으면 되었을 정 도였습니다.
그런데 사실 정말 맛있는 포도는 포도송이가 좋은 것보다 재래종 으로 까치나 까마귀가 따 먹고 몇 알 달려있지 않은 부실해 보이는 포도입니다. 아침에 서리를 맞은 그런 포도 몇 송이만 먹으면 얼마나 맛있는지 모릅니다. 그런 부실한 포도는 상품으로 내 놓지 않지만 그런 포도가 정말 맛있는 포 도입니다.
그런데 포도가 아직 익지 않았을 때 파란 포도들은 설익은 냄새가 납니다. 반면 익은 포도의 향기는 온 들판에 진동할 정도로 아주 좋은 향기가 납니다. 구미가 저절로 당깁니다.
그런데 못 먹을 포도나 찌꺼기나 썩은 것 등 을 모아 둔 것들은 그 썩는 냄새 또한 대단합니다. 요즘 우리의 정치, 사회 등 각 분야를 보면서 마음 아플 때가 많습니다.
복음이 우리 나라에 전래되면서 각계 각층에 믿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어디에 나 믿는 사람없는 곳이 없습니다. 정치인이나 사회의 저명인사나 상류계층의 사람들 중에도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예수 잘 믿는다고 하는 사람이 청문회에서 거짓말을 하거나 대형사고가 일어나면 예수 믿는 사람이 빠지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런 경우는 아마도 설익었거나 썩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좋은 열매를 맺어 좋은 향기, 예수의 향기를 낼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 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요 15:4)고 말씀하셨습니다. 나 무와 가지는 유기적인 관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떨어지면 말라 죽고 맙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이고 우리는 그 가지입니다. 포도나무되시는 예수님과 생명적인 관계성을 가져서 진액을 빨아들이면 푸르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것이지만 이 가지가 붙었다 떨어졌다 하면 안됩니다. 흔히 교회 생활하다가 어 려운 일이 생기면 한 주일 두 주일 빠지다가 한 달 두 달 빠지고 나중에는 일 년 내내 아주 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영적으로는 다 말라죽습니다. 그러다가 도 좋은 일이 생기면 또 교회 나오기 시작합니다. 반면에 즐겁고 잘 될 때 예수님을 떠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환난의 비바람이 불면 정신차리고 예수님 께 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택한 백성은 환난의 바람이 불 때 예수님께 붙는 사람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종아리를 때리면 용서해 달라고 하면서 아 버지의 바지를 붙잡고 용서를 구하는 자식이 있는가 하면 종아리를 맞았다고 반항하고 가출하는 어리석은 자녀도 있습니다. 붙었다 떨어졌다 하는 가지에는 열매가 없습니다. 열매가 풍성해져야 자기도 이웃도 모두가 다 평화를 얻게 되고 삶에 위로가 따르고 삶의 보람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열매맺는 지름길은 예수님께 붙어 있는 것 뿐입니다. 좋아도 붙어있고 어려워도 붙어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으로부터 진액이 나오고 그 진액으로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생활 속에 좋은 향기가 풍겨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생활 속에서 풍성한 열매를 맺고 예수님의 향기 를 널리 풍기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들어간 사람들은 가정에서 향기가 나기 마련입니다. 직장에서도 예수 향기가 나기 마련입니다. 사회생활 에서도 예수 향기가 나타납니다. 그런 사람들은 성결한 심령이 되고 그 생활이 남모르게 전과 다른 변화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변화되고 희락 으로 변화되고 화평으로 변화됩니다. 그래서 어디를 가나 열매의 향기가 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따라서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예수의 냄새가 우리에게서 풍겨지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향기가 생명력 있게 풍겨 져서 주변 사람들에게 감화와 감동과 희망을 주고 활력을 불어넣어 줄 수 있 기를 바랍니다. 열매가 잘 익은 과일처럼 생활 속에서 사랑, 희락, 화평, 인내,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등의 성령님의 열매가 풍성하여 예수님의 향기를 발하는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마음에 향기가 있는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심성과 사랑, 평화 가 마음 안에 있는 사람은 얼굴이 달라지고 표현과 생활이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각처에서 향기를 풍긴다고 표현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 살아가면서 어떻게 해야 예수의 향기가 잘 풍겨지고 우리의 삶 이 사랑으로 넉넉하고 풍요롭게 될까요
첫째 가는 곳마다 예수향기를 풍겨야 합니다.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는 말씀이 증거하는 대로 바울과 제자들이 세계 각처에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는데 가는 곳마다 예수의 향기가 퍼졌습니다(고후 2:14).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했습니다. 즉 예수님의 제자들의 몸에는 예수의 냄새가 배였던 것입니다. 한번은 옛날 고등학교 동창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반갑다며 함께 잠간 이야 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제 앞에서 계속 담배를 피워댔습니다. 시간이 얼마 지난 후 집으로 들어갔더니 막내 딸 아이가 제게 "아빠, 담배 냄 새가 나!"하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누구와 같이 했는가에 따라 삶의 향기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3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다 보니 그들에게 그들도 모르는 사이에 예수의 향기가 배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혹 재산을 다 몰수한다 해도, 어떤 최악의 경우를 만나도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 면서 예수 자랑을 했던 것입니다.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알게 모르 게 얻은 은혜로, 성령님충만해서 생활 속에서 향기나 났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영향을 마음으로 받았고 생활로 받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말없이 알 릴 수 있는 향기를 풍겼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얼마동안 신앙생활했는가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이 성전 밖에 나갔을 때 여러분의 생활 속에서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사회에서 예수 향기가 배여서 믿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예수 믿는 사람들은 뭔가 다르구나" 하는 말을 듣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 향기가 나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둘째 생명에 이르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 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고후 2:16). 향기에는 2가지 요소가 있는데 한가지는 심판적인 요소이고, 다른 하나는 위생적인 요소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칼과 창으로 직접적인 육박전을 벌였던 고대전쟁은 승자나 패자나 모두 피투성이가 됩니다. 결국 마지막 살아남은 사람이 승전가를 부르 게 됩니다. 승리한 군대는 승전보를 알리고 본국으로 돌아옵니다. 장군은 맨 앞에서 백마를 타고 입성을 합니다. 온 성안의 사람들은 모두 나와서 자기 남 편이 죽지 않고 살아왔는지 자기 자식이 죽지 않고 살아왔는지 살핍니다. 또한 성 안의 사람들은 전쟁에서 승전했을 때 나라에서 주는 하사품과 전리품이 있 을 것을 기대하며 온 성안은 축제 분위기가 됩니다. 백마를 타고 장군이 들어 오는 뒤에는 마차에 큰 향로에 향을 피워 향기가 뭉게 뭉게 올라가게 만들어 끌고 들어옵니다. 그 뒤에는 의기양양하고 당당한 군인들이 들어오고 그 뒤에는 목을 쳐서 사형에 처하거나 눈을 빼내어 사형에 처하거나 가죽을 벗겨 사 형에 처해야 하는 전쟁포로들이 쇠사슬에 묶인 채 들어옵니다. 그 다음 맨 뒤 에 전리품을 실은 마차가 들어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만세를 부르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것보다 앞서 향로 마차가 들어오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사람이 피를 보면 감정적으로 흥분이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 번 잘못하여 살 인을 시작하면 계속 이어서 살인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피는 사람의 감정을 포악하게 만들고 원한을 품게 하고 나쁜 마음을 가지게 하고 복수심을 가지게 하여 결국 사람을 광란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승자나 패자나 할 것 없이 피투성이가 되어 악취를 풍기고 돌아오면 환영하는 군중들이 광란 기를 가질 수가 있습니다.
만약 자기 가족이 살아 돌아오지 않으면 "내 남편이 죽었구나", "내 자식이 죽었구나"하고 실망하여 갑자기 광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향기를 피워 올려 마음을 차분하고 안정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역사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죄악에서 구원시키셨고 자유를 주셨습니다. 나아가서는 잘 못된 죄인들을 영적으로 건강하게 하시고 정신적으로 자유케 하셨습니다. 용기 와 희망과 기쁨을 주셨습니다. 사람이 죄의식에 시달리면 보통 너나 나나 똑같 은데 죄를 범하거나 어려운 일이 생기고 나면 사람의 양심에 깨달음이 옵니다. 사람은 양심의 동물이기 때문에 어려움이 왔을 때, 자기 힘으로 해결할 길이 없을 때 "내가 그때 잘못 한 그 일 때문에 벌을 받나보다……"하고 양심의 가 책을 느낍니다. 사람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한 부딪힌 장벽을 넘어갈 힘이 없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상황에서 양심의 가책이 없어지고 영적으로 자유를 얻어 하나님의 자녀로 확신을 가지고 나면 생명력이 솟아나서 여호와를 의지 하고 장벽을 뛰어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의 경우 전쟁 중에도 그 죽 음의 고비 중에서도 두려움없이 나아가 죽지 않고 살아나 하나님을 찬양하고 승전가를 부르고 좋은 세월의 주인공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면 삶의 용기가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담대해 집니다. 기쁨이 있습니다. 나아가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생활 속에서 전하는 향기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은 참 열심히 살아 가는구나"하고 힘을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에게는 새 힘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독수리가 날개치고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것처럼 솟 아오르는 힘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육신적으로 사회적으로 힘찬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약한 것 같으나 강하고 어리석은 것 같으나 지혜롭고 무능한 것 같으나 능하게 하시고 가난한 것 같으나 부요하다는 바울의 표현처럼 하나님 께서 역사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죽음에서도 생명으로 좇아 옮겨지는 예수님 의 향기가 우리와 함께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향기는 정결하게 하고 마음을 평화롭게 하고 모든 백성들을 안정되게 하는 동시에 전범자들에게는 "나는 왕 앞에서 엎드려야 하겠고 그들이 나를 발로 밟고 처형을 하겠구나"하며 죽음과 심판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향기에는 사망에 이르는 향기가 있고 생명에 이르는 향기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는 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누구든지 멸망치 아니하 고 영생에 이르는 자유의 향기인 동시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멸망에 이 르는 심판의 향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사람들은 마지막에는 죽음을 피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생활 속에 예수 믿는 사람들의 향기로 말미암아 불의를 행하고 죄악을 범하는 사람들에게는 사망과 멸망을 예고하는 심판의 향기로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여름 일본에서 일 주일 동안 무서운 강력사건이 계속 방송된 적이 있었습니다. 26세 된 청년이 일 년 동안 유치원에 다니던 아이들 4명을 유괴하 여 토막을 내서 상자에 넣어 아이들의 집으로 우송을 했습니다. 그 사건이 TV 로 보도되는 것을 보고 그 청년은 집에서 그걸 보고 좋아했답니다. 그리고는 경찰에 연락해서 범인이 있는 곳을 안다고 하며 허위 제보를 하여 경찰을 우 롱하기도 했습니다.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마침내 그 청년이 붙잡혔습니다. 그런데 그 청년이 살던 집을 조사해 보니 거기에서 음란물과 폭력물 비디오 테 이프가 무려 2천 개가 나왔다고 합니다. 그 청년은 평소 집 안에서 그 음란물, 폭력물 비디오 테이프만 보고 지냈던 것입니다. 거기서 살인방법과 음행방법을 배웠던 것입니다. 여러분, 자기 집 안에서 사망의 냄새가 자기 몸에 배여 결국 은 살인자가 되고 붙잡혀 인생이 실패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이 되어서 날마다 생명에 이르는 향기가 풍겨져서 우리의 삶이 주변의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 담대함과 희락 의 향기를 전하는 하나님 기뻐하시는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셋째 열매를 풍성히 맺어야 합니다. 열매를 풍성히 맺으면 향기가 납니다. 열매는 설익으면 설익은 냄새가 나고, 익으면 익은 냄새가 납니다. 제가 어렸을 때 저의 집은 포도 과수원을 크게 경 영했습니다. 겨울 내내 거름을 마차들과 소, 말 등으로 실어 날랐습니다. 가을 쯤 되면 포도가 익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저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원두막에 가서 잤습니다.
왜냐하면 새벽녘에 잘 익고 서리맞은 포도를 먹으면 그것이 너 무 맛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침을 안 먹어도 포도 몇 송이 먹으면 되었을 정 도였습니다.
그런데 사실 정말 맛있는 포도는 포도송이가 좋은 것보다 재래종 으로 까치나 까마귀가 따 먹고 몇 알 달려있지 않은 부실해 보이는 포도입니다. 아침에 서리를 맞은 그런 포도 몇 송이만 먹으면 얼마나 맛있는지 모릅니다. 그런 부실한 포도는 상품으로 내 놓지 않지만 그런 포도가 정말 맛있는 포 도입니다.
그런데 포도가 아직 익지 않았을 때 파란 포도들은 설익은 냄새가 납니다. 반면 익은 포도의 향기는 온 들판에 진동할 정도로 아주 좋은 향기가 납니다. 구미가 저절로 당깁니다.
그런데 못 먹을 포도나 찌꺼기나 썩은 것 등 을 모아 둔 것들은 그 썩는 냄새 또한 대단합니다. 요즘 우리의 정치, 사회 등 각 분야를 보면서 마음 아플 때가 많습니다.
복음이 우리 나라에 전래되면서 각계 각층에 믿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어디에 나 믿는 사람없는 곳이 없습니다. 정치인이나 사회의 저명인사나 상류계층의 사람들 중에도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예수 잘 믿는다고 하는 사람이 청문회에서 거짓말을 하거나 대형사고가 일어나면 예수 믿는 사람이 빠지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런 경우는 아마도 설익었거나 썩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좋은 열매를 맺어 좋은 향기, 예수의 향기를 낼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 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요 15:4)고 말씀하셨습니다. 나 무와 가지는 유기적인 관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떨어지면 말라 죽고 맙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이고 우리는 그 가지입니다. 포도나무되시는 예수님과 생명적인 관계성을 가져서 진액을 빨아들이면 푸르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것이지만 이 가지가 붙었다 떨어졌다 하면 안됩니다. 흔히 교회 생활하다가 어 려운 일이 생기면 한 주일 두 주일 빠지다가 한 달 두 달 빠지고 나중에는 일 년 내내 아주 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영적으로는 다 말라죽습니다. 그러다가 도 좋은 일이 생기면 또 교회 나오기 시작합니다. 반면에 즐겁고 잘 될 때 예수님을 떠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환난의 비바람이 불면 정신차리고 예수님 께 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택한 백성은 환난의 바람이 불 때 예수님께 붙는 사람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종아리를 때리면 용서해 달라고 하면서 아 버지의 바지를 붙잡고 용서를 구하는 자식이 있는가 하면 종아리를 맞았다고 반항하고 가출하는 어리석은 자녀도 있습니다. 붙었다 떨어졌다 하는 가지에는 열매가 없습니다. 열매가 풍성해져야 자기도 이웃도 모두가 다 평화를 얻게 되고 삶에 위로가 따르고 삶의 보람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열매맺는 지름길은 예수님께 붙어 있는 것 뿐입니다. 좋아도 붙어있고 어려워도 붙어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으로부터 진액이 나오고 그 진액으로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생활 속에 좋은 향기가 풍겨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생활 속에서 풍성한 열매를 맺고 예수님의 향기 를 널리 풍기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들어간 사람들은 가정에서 향기가 나기 마련입니다. 직장에서도 예수 향기가 나기 마련입니다. 사회생활 에서도 예수 향기가 나타납니다. 그런 사람들은 성결한 심령이 되고 그 생활이 남모르게 전과 다른 변화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변화되고 희락 으로 변화되고 화평으로 변화됩니다. 그래서 어디를 가나 열매의 향기가 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따라서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예수의 냄새가 우리에게서 풍겨지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향기가 생명력 있게 풍겨 져서 주변 사람들에게 감화와 감동과 희망을 주고 활력을 불어넣어 줄 수 있 기를 바랍니다. 열매가 잘 익은 과일처럼 생활 속에서 사랑, 희락, 화평, 인내,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등의 성령님의 열매가 풍성하여 예수님의 향기를 발하는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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