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참된 제자 (요6:66-68)
본문
그리스도와 신앙에 대하여 전혀 관심이 없다고 솔직하고 분명하게 말하는 것과 그릇되고 거짓된 이유에서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것,이 두 가지 태도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위험한 것인지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한 일입니다. 이 두 사람에게서 궁극적인 차이가 하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잘못되고 거짓된 이유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은 전혀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천국 문 밖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릇되고 거짓된 이유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은 그 자신을 속일 뿐만 아니라 교회도 속이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에게는 분명히 전도를 할 수가 있고,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해 주어야 할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은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고 말할 때, 교회가 그사람을그리스도인으로 당연히 받아들이며,도리어 그가 신자인지 아닌지 의심하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하여 모욕적인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교회에서는 그가 자기 자신을 믿는 자라고 말하기 때문에 그를 그리스도인이라고 당연히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유년주일학생 하나까지도 그저 교회로 인도시켜 자리에 앉으면 그의 신앙고백과는 상관없이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로 여깁니다. 어떤 사람이든 교회의 일원이 되는 것을 예수그리스도의 참된 제자가 되는 것으로 너무나 쉽게 생각해 왔고,교회에 나오는 사람은 누구든지 참되게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다고 추정해 왔다.교회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 넣어두고 세상의 모든 유혹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으리라 생각함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교회가 이런 사람들을 모두 참된 그리스도인이라고 당연시 하는 데에서 비극이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교회는 진짜 그리스도인에게는 꼭 필요한 말씀이나,아직 변화된 적도 없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말씀을 전해왔습니다. 이런 이유로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대답을 해야하는 근본적인 질문조차도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가지 이유로 입교한 사람이라도 나중에 복음을 받아 들여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는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그러나 그런 사람을 대상으로 천국시민으로서의 행실을 가르친다는 것은 아직 나지도 않았는데 자라기를 원하는 모순입니다. 복음서를 읽어 가면 사람들이 잘못된 이유로 주님께 오는 것을 보시고 주님께서 사람들에게 몹시 염려하신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올바른 이유에서 주님을 따르고 있는지 때때로 같은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산상보훈 끝 부분에서 주님께서 하신 놀라운 말씀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내게 와 이르되,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다른 것도 하지 않았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그들은 모든 것이 옳았다고 생각을 했으나 그 날에야 모든 것이 잘못되었던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가라지 비유와 그물 비유에서와 같이 두 종류로 사람들이 분류가 될 것이다고 하신 말씀입니다. 누가 9장 끝 부분에 보면, 한 젊은이가 주님께 와서 말합니다. "주님,당신이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다른 사람들에 관해서는 몰라도) 저는 끝까지 주를 좇겠나이다." 확실히 교회가 찾는 사람이 이런 사람 아닙니까 틀림없이 주님께서도 그를 환대했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주님께서는 바로 그 사람에게 "여우도 굴이 있고,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셨습니다.그리스도는 이 열심 신자를 보시면서 "너는 참으로 열심과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그러나 잠깐만 기다려 보아라.너는 정말 나를 따르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았느냐 그것은 아마도 네가 인생에서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을 포기하고 배척해 버리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네가 정말 각오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라." 복음서를 읽고 나가면 주님께서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의 그릇되고 그럴듯한 이유에서 그를 따르고 있지는 않는지 언제나 염려 속에서 경고하고 주의를 주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 사도들의 글에서도 꼭 같은 말씀을 초기 그리스도인에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우리 자신을 조사해보고 자신은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는지,
그렇다면 어떤 이유에서 따르고 있는지를 살펴보지 않으면 자신도 속고,다른 사람도 속이는 것이 됩니다.그러나 하나님은 속일 수 없고,모든 것이 다 드러나는 때에는 숨길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 때로 부터 많은 사람이 물러가고", 한 편에서는 열 두 제자들만 남아 있습니다. 여기에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많은 이들은 물러가고,아주 적은 사람들만이 남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이유에서 주를 따랐는데 아주 적은 사람 만이 올바르고 진실된 이유에서 주를 따랐고,동료가 되었다.제자들만 남았다. 우선 먼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잘못된 이유 중 몇가지는, 다른 사람들이 다니기 때문에 따라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성경에서나 교회의 역사를 보면 거기에는 언제나 궁중심리가 작용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모든 사람들이 하려고 하는 것이니 거기에 매혹이 되어서 아무 때나 군중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단순히 다른 사람이 교회를 가자고 하기 때문에,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교회를 나가고 있기 때문에 나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결코 "나는 왜 교회에 있는가"라고 스스로 묻지 않습니다.그들은 그것이 당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부모,할아버지,할머니도 그렇게 했기 때문입니다.그것은 그들의 도시에서의 한 전통과 같은 것입니다.아무런 생각없이 단순히 군중에 싸여 교회에 나와 있는 상태,이들을 교회에서는 오히려 귀하게 보고 저가 어쨌든 교회를 나올 것이기 때문에 안심을 합니다.그러나 주님은 그런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 건져 주시길 원하십니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전도를 받은 그 동네 사람들의 고백은"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처음에는 너의 소개로 예수님을 알게 되었으나 이제는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이신줄 앎이니라"하였습니다. 삭개오도 예수님을 만나고자 했으나 군중에 둘러싸인 예수님을 만나지를 못하였으나 거기서 그치지 않았고,뽕나무에라도 올라가 예수님을 보고자 할 때에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가 되었던 것입니다.(여론신앙) 또 다른 이유는 26절에서 지적하십니다."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 부른 까닭이로다” 주님은 이러한 사람들은 순전히 금전적이고 물질적인 이유로 주님을 따르는 것임을 보여 줍니다.그들은 주님께 달려와 절하며 숭배를 하는 것 같으나,그러나 그들은 실지로 영적이고,신성하며 초자연적인 것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은 왜 그리스도를 따릅니까 그것은 그리스도에게서 그들의 마음을 끄는 것,즉 떡을 얻었기 때문입니다.그들은 떡을 몹시 바랐고,바로 그런 이유에서 그것을 주님께로부터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주님을 따랐던 것입니다. 지위나 신분,권력,그리고 어떤 영향력을 얻기 위하여,교회에 나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어떤 사람은 사업과 직업을 위하여 교회로 나옵니다.약간의 사적인 관심과 욕구를 위하여 교회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영원한 형벌을 싫어하고,죄를 사해 주신다는 교리나 예수님의 선행과 그 말씀이 명언이기 때문에 듣기 위해서 수양을 위해서도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이 주님앞에 올 때에야 아직 그런 사람이니까 그런 마음으로 오는 사람들이라도 어쩔 수 없고 ,그래도 고쳐 주면 되는 것이나,몇 십년을 믿어도 아직 그런 사람이라면 성전 미문에 앉은 구걸하는 앉은 뱅이에 불과 할 것입니다.그는 성전 문에 앉았으나 들어가려 앉고,안에서 무슨 변화의 역사가 있는지도 자기의 관심 밖입니다. 다음으로 2절에서는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인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봄이라"이들은 신앙의 껍데기에만 신경을 쓰는 관심을 가지는 부류의 사람입니다.이런 사람이 요즘은 더욱 많아지고 있습니다.이런 사람은 믿음의 외적인 현상에만 관심을 가지는 사람입니다.그들은 예수님이 행하시는 기적을 보고 그를 따릅니다.그리스도의 기적적인 능력의 역사는 그들의 흥미와 호기심을 만족시킵니다.초자연적인 힘이 나타나는 곳이면 그들이 있습니다.그리스도의 기적의 역사는 표적입니다.그것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능히 세상의 구주되심을 가르쳐 주시고 구원의 도리를 가르치시는 것인데,기적 그 자체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이 세상에서 많은 기적의 역사를 일으키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의 주 목적이 아닙니다.우리의 생활을 변화시키는 것도 주님이 오신 목적이 아닌 것입니다.그는 오로지 죄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자기에게로 오도록 하고 깨끗이하여, 하나님과의 화해를 시키고,우리가 참된 진리의 사람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외적인 것에만 더 관심이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따르나 미신적이요,세상적입니다. 이제 우리는 14절과 15절에서 마지막 부류의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거기에는"그 사람들이 예수의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그의 전하시는 말씀을 전적으로 오해를 한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그들이 본 기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5,000명을 먹이신 일이었습니다.이 사람들은 수 주일 동안이나 주님을 따라 다녔고,그들은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그러나 그들은 기적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이는 구원자,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고 하면서 그들이 수근거리며,예수님을 잡아서 자기들의 왕을 삼아야 한다고 합의를 봤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미리 아시고,산으로 조용히 물러나 혼자서 머무르셨다는것을 알 수 있습니다.이 유대인들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생각을 정치적인 개념으로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그들은 메시야를 정치적인 해방자로 생각을 하고,그가 로마의 속박에서 그들을 건지고 예루살렘의 왕이 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에게서 물러났고,그들은 예수님을 떠난 무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을 정치적인 메시야로,혹은 사회개혁가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아직도 하늘나라의 복음을 세속적이고,정치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을 보통 사람들과는 동떨어진 나사렛 사람으로 생각하는 사람도있고, 위대한 수도자,혹은 비길 데 없는 위대한 철학가로 생각학고,성경 말씀을 단순히 인간의 고전의 훌륭한 문학작품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만일 교회에서 이 온갖 부류의 사람들을 빼 버리면 과연 얼마나 남게 될런지. 여러분들은 그리스도를 따릅니까 이 같은 질문에 부딪쳐 본 적이 있습니까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습니다.그들은 상당한 시간을 주님을 따랐고,그들은 자신을 그의 제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주님의 제자라는 사람들이나 추종자들이 그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던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떠났다는 사실에 놀란다. 우리는 왜 주님을 따릅니까 우리에게 합당한 이유가 있습니까 시몬 베드로가 우리에게 그 대답을 줍니다."너희도 가려느냐"는 주님의 말씀에 수제자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줄 믿고 알았삽나이다." 이제 우리는 이 대답에 기뻐할 수 있습니다.주님은 그들을 시험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많은 사람들이 떠나고 있지 않느냐 너희들도 그들과 함께 가지 않겠느냐물으실 때에 시몬 베드로의 대답에서 참된 그리스도인의 최소의 요건을 볼 수 있습니다.
"주여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겠습니까"이 말은 기독교의 가장 심오하고 근본적인 답입니다. 베드로는 스스로를 구원을 할 수 없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이 말을 할 수 있었습니다.오랫동안 자신의 비참한 상태를 깨닫고 있었고,율법으로도 세례요한을 따라 다녔으나 해결 안되었고, 그리스도 외에는 구원이 없다고 하는 사실을 깨닫고 인정했습니다. 우리가 따를 수 있는 다른 누구가 우리에게는 있습니까 주님 외에는 구원을 줄 다른 이는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무엇에게 그리고 누구에게 우리의 믿음을 두고 있는지 궁금합니다.그리스도와 바꾸어 가진 그 무엇이 있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세상이 아무리 발전하고 인간의 문화가,문명이 진보하고 있어도 구원에 대한 진리에는 여전히 이 길 뿐입니다.세상이 우리를 구원해 줄 수 없고,내가 나를 구원할 수 없음은 육신의 죽음이 임할 때 누구도 죽음을 이길 수도 없는 연약한 인간임을 아는 데서 겸손해 지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말합니다.“나는 나를 구원할 수 없다.인간은 나를 구원할 수 없다.그러나 주님만 할 수 있습니다.그것은 당신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며,영생의 말씀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시몬 베드로와 같은 신앙고백이 여러분에게 있습니까 여러분 자신의 파멸상태와 죄스러움을 깨닫습니까 그리스도께 "주님 만이 구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말해 본 적이 있습니까 다른 사람들은 이 베드로의 말을 듣고서 떠나버립니다.이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따랐고,귀를 기울여 그의 말씀을 들었고,주님의 기적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어렵다고 생각하고 떠났습니다.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습니까 그러나 그런 중에서도 베드로는 "비록 나는 그것을 다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것이 옳은 것으로 믿습니다.
왜냐하면 주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영생의 말씀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해하려 않았고,먼저 믿었다.그리고는 자신의 삶을 주님께 다 맡겼던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그 자신을 우리를 위하여 내어 줘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다시 부활했습니다.주님은 우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대속물로 주셨습니다.또 성령님으로 우리 안에 함께 사시는 분이십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에게서 멀어지고 있습니다.교인은 많으나 신자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잘못되고 거짓된 이유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은 전혀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천국 문 밖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릇되고 거짓된 이유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은 그 자신을 속일 뿐만 아니라 교회도 속이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에게는 분명히 전도를 할 수가 있고,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해 주어야 할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은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고 말할 때, 교회가 그사람을그리스도인으로 당연히 받아들이며,도리어 그가 신자인지 아닌지 의심하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하여 모욕적인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교회에서는 그가 자기 자신을 믿는 자라고 말하기 때문에 그를 그리스도인이라고 당연히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유년주일학생 하나까지도 그저 교회로 인도시켜 자리에 앉으면 그의 신앙고백과는 상관없이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로 여깁니다. 어떤 사람이든 교회의 일원이 되는 것을 예수그리스도의 참된 제자가 되는 것으로 너무나 쉽게 생각해 왔고,교회에 나오는 사람은 누구든지 참되게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다고 추정해 왔다.교회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 넣어두고 세상의 모든 유혹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으리라 생각함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교회가 이런 사람들을 모두 참된 그리스도인이라고 당연시 하는 데에서 비극이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교회는 진짜 그리스도인에게는 꼭 필요한 말씀이나,아직 변화된 적도 없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말씀을 전해왔습니다. 이런 이유로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대답을 해야하는 근본적인 질문조차도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가지 이유로 입교한 사람이라도 나중에 복음을 받아 들여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는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그러나 그런 사람을 대상으로 천국시민으로서의 행실을 가르친다는 것은 아직 나지도 않았는데 자라기를 원하는 모순입니다. 복음서를 읽어 가면 사람들이 잘못된 이유로 주님께 오는 것을 보시고 주님께서 사람들에게 몹시 염려하신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올바른 이유에서 주님을 따르고 있는지 때때로 같은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산상보훈 끝 부분에서 주님께서 하신 놀라운 말씀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내게 와 이르되,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다른 것도 하지 않았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그들은 모든 것이 옳았다고 생각을 했으나 그 날에야 모든 것이 잘못되었던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가라지 비유와 그물 비유에서와 같이 두 종류로 사람들이 분류가 될 것이다고 하신 말씀입니다. 누가 9장 끝 부분에 보면, 한 젊은이가 주님께 와서 말합니다. "주님,당신이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다른 사람들에 관해서는 몰라도) 저는 끝까지 주를 좇겠나이다." 확실히 교회가 찾는 사람이 이런 사람 아닙니까 틀림없이 주님께서도 그를 환대했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주님께서는 바로 그 사람에게 "여우도 굴이 있고,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셨습니다.그리스도는 이 열심 신자를 보시면서 "너는 참으로 열심과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그러나 잠깐만 기다려 보아라.너는 정말 나를 따르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았느냐 그것은 아마도 네가 인생에서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을 포기하고 배척해 버리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네가 정말 각오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라." 복음서를 읽고 나가면 주님께서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의 그릇되고 그럴듯한 이유에서 그를 따르고 있지는 않는지 언제나 염려 속에서 경고하고 주의를 주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 사도들의 글에서도 꼭 같은 말씀을 초기 그리스도인에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우리 자신을 조사해보고 자신은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는지,
그렇다면 어떤 이유에서 따르고 있는지를 살펴보지 않으면 자신도 속고,다른 사람도 속이는 것이 됩니다.그러나 하나님은 속일 수 없고,모든 것이 다 드러나는 때에는 숨길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 때로 부터 많은 사람이 물러가고", 한 편에서는 열 두 제자들만 남아 있습니다. 여기에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많은 이들은 물러가고,아주 적은 사람들만이 남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이유에서 주를 따랐는데 아주 적은 사람 만이 올바르고 진실된 이유에서 주를 따랐고,동료가 되었다.제자들만 남았다. 우선 먼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잘못된 이유 중 몇가지는, 다른 사람들이 다니기 때문에 따라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성경에서나 교회의 역사를 보면 거기에는 언제나 궁중심리가 작용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모든 사람들이 하려고 하는 것이니 거기에 매혹이 되어서 아무 때나 군중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단순히 다른 사람이 교회를 가자고 하기 때문에,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교회를 나가고 있기 때문에 나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결코 "나는 왜 교회에 있는가"라고 스스로 묻지 않습니다.그들은 그것이 당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부모,할아버지,할머니도 그렇게 했기 때문입니다.그것은 그들의 도시에서의 한 전통과 같은 것입니다.아무런 생각없이 단순히 군중에 싸여 교회에 나와 있는 상태,이들을 교회에서는 오히려 귀하게 보고 저가 어쨌든 교회를 나올 것이기 때문에 안심을 합니다.그러나 주님은 그런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 건져 주시길 원하십니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전도를 받은 그 동네 사람들의 고백은"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처음에는 너의 소개로 예수님을 알게 되었으나 이제는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이신줄 앎이니라"하였습니다. 삭개오도 예수님을 만나고자 했으나 군중에 둘러싸인 예수님을 만나지를 못하였으나 거기서 그치지 않았고,뽕나무에라도 올라가 예수님을 보고자 할 때에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가 되었던 것입니다.(여론신앙) 또 다른 이유는 26절에서 지적하십니다."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 부른 까닭이로다” 주님은 이러한 사람들은 순전히 금전적이고 물질적인 이유로 주님을 따르는 것임을 보여 줍니다.그들은 주님께 달려와 절하며 숭배를 하는 것 같으나,그러나 그들은 실지로 영적이고,신성하며 초자연적인 것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은 왜 그리스도를 따릅니까 그것은 그리스도에게서 그들의 마음을 끄는 것,즉 떡을 얻었기 때문입니다.그들은 떡을 몹시 바랐고,바로 그런 이유에서 그것을 주님께로부터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주님을 따랐던 것입니다. 지위나 신분,권력,그리고 어떤 영향력을 얻기 위하여,교회에 나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어떤 사람은 사업과 직업을 위하여 교회로 나옵니다.약간의 사적인 관심과 욕구를 위하여 교회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영원한 형벌을 싫어하고,죄를 사해 주신다는 교리나 예수님의 선행과 그 말씀이 명언이기 때문에 듣기 위해서 수양을 위해서도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이 주님앞에 올 때에야 아직 그런 사람이니까 그런 마음으로 오는 사람들이라도 어쩔 수 없고 ,그래도 고쳐 주면 되는 것이나,몇 십년을 믿어도 아직 그런 사람이라면 성전 미문에 앉은 구걸하는 앉은 뱅이에 불과 할 것입니다.그는 성전 문에 앉았으나 들어가려 앉고,안에서 무슨 변화의 역사가 있는지도 자기의 관심 밖입니다. 다음으로 2절에서는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인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봄이라"이들은 신앙의 껍데기에만 신경을 쓰는 관심을 가지는 부류의 사람입니다.이런 사람이 요즘은 더욱 많아지고 있습니다.이런 사람은 믿음의 외적인 현상에만 관심을 가지는 사람입니다.그들은 예수님이 행하시는 기적을 보고 그를 따릅니다.그리스도의 기적적인 능력의 역사는 그들의 흥미와 호기심을 만족시킵니다.초자연적인 힘이 나타나는 곳이면 그들이 있습니다.그리스도의 기적의 역사는 표적입니다.그것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능히 세상의 구주되심을 가르쳐 주시고 구원의 도리를 가르치시는 것인데,기적 그 자체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이 세상에서 많은 기적의 역사를 일으키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의 주 목적이 아닙니다.우리의 생활을 변화시키는 것도 주님이 오신 목적이 아닌 것입니다.그는 오로지 죄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자기에게로 오도록 하고 깨끗이하여, 하나님과의 화해를 시키고,우리가 참된 진리의 사람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외적인 것에만 더 관심이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따르나 미신적이요,세상적입니다. 이제 우리는 14절과 15절에서 마지막 부류의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거기에는"그 사람들이 예수의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그의 전하시는 말씀을 전적으로 오해를 한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그들이 본 기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5,000명을 먹이신 일이었습니다.이 사람들은 수 주일 동안이나 주님을 따라 다녔고,그들은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그러나 그들은 기적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이는 구원자,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고 하면서 그들이 수근거리며,예수님을 잡아서 자기들의 왕을 삼아야 한다고 합의를 봤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미리 아시고,산으로 조용히 물러나 혼자서 머무르셨다는것을 알 수 있습니다.이 유대인들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생각을 정치적인 개념으로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그들은 메시야를 정치적인 해방자로 생각을 하고,그가 로마의 속박에서 그들을 건지고 예루살렘의 왕이 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에게서 물러났고,그들은 예수님을 떠난 무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을 정치적인 메시야로,혹은 사회개혁가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아직도 하늘나라의 복음을 세속적이고,정치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을 보통 사람들과는 동떨어진 나사렛 사람으로 생각하는 사람도있고, 위대한 수도자,혹은 비길 데 없는 위대한 철학가로 생각학고,성경 말씀을 단순히 인간의 고전의 훌륭한 문학작품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만일 교회에서 이 온갖 부류의 사람들을 빼 버리면 과연 얼마나 남게 될런지. 여러분들은 그리스도를 따릅니까 이 같은 질문에 부딪쳐 본 적이 있습니까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습니다.그들은 상당한 시간을 주님을 따랐고,그들은 자신을 그의 제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주님의 제자라는 사람들이나 추종자들이 그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던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떠났다는 사실에 놀란다. 우리는 왜 주님을 따릅니까 우리에게 합당한 이유가 있습니까 시몬 베드로가 우리에게 그 대답을 줍니다."너희도 가려느냐"는 주님의 말씀에 수제자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줄 믿고 알았삽나이다." 이제 우리는 이 대답에 기뻐할 수 있습니다.주님은 그들을 시험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많은 사람들이 떠나고 있지 않느냐 너희들도 그들과 함께 가지 않겠느냐물으실 때에 시몬 베드로의 대답에서 참된 그리스도인의 최소의 요건을 볼 수 있습니다.
"주여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겠습니까"이 말은 기독교의 가장 심오하고 근본적인 답입니다. 베드로는 스스로를 구원을 할 수 없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이 말을 할 수 있었습니다.오랫동안 자신의 비참한 상태를 깨닫고 있었고,율법으로도 세례요한을 따라 다녔으나 해결 안되었고, 그리스도 외에는 구원이 없다고 하는 사실을 깨닫고 인정했습니다. 우리가 따를 수 있는 다른 누구가 우리에게는 있습니까 주님 외에는 구원을 줄 다른 이는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무엇에게 그리고 누구에게 우리의 믿음을 두고 있는지 궁금합니다.그리스도와 바꾸어 가진 그 무엇이 있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세상이 아무리 발전하고 인간의 문화가,문명이 진보하고 있어도 구원에 대한 진리에는 여전히 이 길 뿐입니다.세상이 우리를 구원해 줄 수 없고,내가 나를 구원할 수 없음은 육신의 죽음이 임할 때 누구도 죽음을 이길 수도 없는 연약한 인간임을 아는 데서 겸손해 지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말합니다.“나는 나를 구원할 수 없다.인간은 나를 구원할 수 없다.그러나 주님만 할 수 있습니다.그것은 당신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며,영생의 말씀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시몬 베드로와 같은 신앙고백이 여러분에게 있습니까 여러분 자신의 파멸상태와 죄스러움을 깨닫습니까 그리스도께 "주님 만이 구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말해 본 적이 있습니까 다른 사람들은 이 베드로의 말을 듣고서 떠나버립니다.이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따랐고,귀를 기울여 그의 말씀을 들었고,주님의 기적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어렵다고 생각하고 떠났습니다.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습니까 그러나 그런 중에서도 베드로는 "비록 나는 그것을 다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것이 옳은 것으로 믿습니다.
왜냐하면 주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영생의 말씀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해하려 않았고,먼저 믿었다.그리고는 자신의 삶을 주님께 다 맡겼던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그 자신을 우리를 위하여 내어 줘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다시 부활했습니다.주님은 우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대속물로 주셨습니다.또 성령님으로 우리 안에 함께 사시는 분이십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에게서 멀어지고 있습니다.교인은 많으나 신자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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