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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편지 (고후3: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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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즈음 서점가에 베스트셀러 가운데 하나인 <마음을 열어주는 101 가지 이야기3>에 다음과 같은 감동적인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토미라는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은 명랑하고 협동심이 많고 학업 성적이 뛰어났는데, 최근 급격히 학업성적이 떨어지고 행동은 파괴적이어서 담임 교사가 그의 부모를 면담하고자 각각 호출했습니다. 토미의 부모는 별거 중이어서 각각 호출했는데 서로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외아들인 토미가 갑자기 문제아로 전락해가는 것은 그 부모의 별거와 이혼 소송에 따른 절망감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토미를 위해 그 부모를 호출했지 만 어떻게 그들을 납득시킬지 막연했습니다. 이윽고 토미의 어머니가 들어왔고 그의 아버지도 곧 도착했다. 이들은 서로 놀라며 서로를 무시하며 짜증스러워하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담임 교사는 부모의 별거와 이혼이 자녀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토미 의 부모가 깨달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마음 속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좋은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때 문득 토미의 지저분한 시험 답안지를 보여 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담임교사는 토미의 책상 안에서 구겨진 영어 시험지를 한 장 꺼냈습니다. 시험지는 눈물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험지 앞뒤로 빼곡히 토미의 글씨가 적혀 있었습니다. 문제에 대한 답이 아니라 똑같은 문장을 끝없이 반복해서 휘갈겨 쓴 것이었습니다. 담임교사는 아무 말 없이 그 시험지를 펴서 토미의 어머니에게 건넸습니다. 그녀는 한참 동안 그것을 들여다 보더니 아무 말 없이 남편에게 주 었습니다. 남편은 기분 나쁘다는 듯이 얼굴을 찡그렸습니다.
그러나 이내 그의 얼굴이 펴졌습니다. 그는 거의 영원이라고 느껴질 만큼 오랫동안 그 휘갈겨쓴 말들을 들여다보고만 있었습니다. 마침내 토미의 아버지는 시험지를 조심스럽게 접더니 그것을 자신의 호주머니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아내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녀는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그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담임교사도 눈물이 글썽 거렸지만 그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토미의 아버지는 아내 가 코트를 입는 걸 도와 주고는 둘이서 함께 교실을 나갔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가정이 다시 합쳐질 수 있도록 적당한 방법을 나한테 가르쳐 주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그 노란색 영어 시험지로 인 도하셨다. 그 시험지에는 어린 소년의 괴로운 마음에서 토로된 고뇌에 찬 문장이 다시 끝없이 반복되어 적혀 있었습니다. 그 문장은 이런 것이었다. "엄마, 아빠 . 사랑해요. 엄마, 아빠 . 사랑해요." 비록 시험지 답안지이지만 별거중인 엄마 아빠에 대한 한 어린 소년의 사랑의 편지가 엄마 아빠의 마음을 변화시켜 가족이 다시 하나가 되게 했습니다. 편지란 그 사람의 마음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를 가리켜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할 때, 그것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전달하는 자가 되 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자, 하나님의 사랑을 전 달하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복음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편지 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원수와 하 나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죽은 자를 살리는 생명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달하는 자는 사랑을 전달하는 것이요 생명 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세상 사람들에게 생명을 전달하는 생명의 편지, 사랑의 편지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인류가 사랑으로 하나가 되게 하며 사람과 사람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화목하게 하라는 것 입니다. "(고후5: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 으니 (고후5:19)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또한 편지란 그 사람의 진실한 마음과 인격이 담겨있습니다. 모든 기독교인인 그가 원하든 원치 않든 그리스도와 기독교를 위한 하나의 광고 판입니다. 교회의 명예, 그리스도의 명예는 신자들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그가 팔고 있는 상품을 보고 그 상인을 판단하며, 그 교회가 길러 낸 사람들을 보고 그 교회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신자 들을 보고 그리스도를 판단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에 나갈 때 우리는 그리스도와 교회를 위한 공개장이며, 광고판이 된다는 엄숙한 책임을 지녀야만 합니다. 기독교인은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기쁨, 희 망과 용기, 그리고 생명을 전달하는 편지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서는 그리스도의 흔적을 몸에 지녀야 그리스도의 인격과 생명이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편지가 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갈6:17)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영국의 옥스퍼셔란 마을의 한 여성도가 임종을맞고 있었다. 그녀는 30 여 년 동안 시온 산을 오가며 순례하였던 신실한 믿음의 소유자였다. 그 녀의 얼굴이 다가오는 하늘의 영광으로 밝게 빛나고 있을 때, 카톨릭파의 사제는 자기가 하늘 나라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자기 교구인 중 그 누구도 하늘 나라로 갈 수 없다는 생각에서 그녀를 방문하였다. "제가 여기 온 것은 당신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사제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이 여성도는 되물었다. "그게 무슨 뜻이죠당신의 죄를 용서하려 왔다는 말입니다." 그러자 이 여성도는 말했다. "어디 손 좀 보여주시겠어요" 어리둥절한 사제가 내민 손을 잠시 쳐다본 그녀는 부르짖었다. "이 사기꾼 같으니라구!" 깜짝놀란 사제가 항의하자 그녀는 대답했다. "그래요. 당신은 사기꾼이에요. 저의 죄를 용서하신 그분은 그 손에 못 자국이 있단 말이예요." 그리스도의 흔적, 못자국이 있어야 삶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의 몸에 그리스도의 흔적을 지 녀야만 합니다. 그리스도의 흔적은 곧 손과 발에 십자가에 못박힌 흔적입니다. 양손 양발에 못박힌 흔적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요 예수의 몸에 새긴 사랑의 편지입니다. 자신은 십자가에 죽고 예수만이 내 속에 살아 역사할 때 그리스도의 편지가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뜻을 구 하기보다는, 자신의 기쁨을 구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 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가질 때 그리스도의 편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바울은 바로 그렇게 살았습니다. 어떤 사람을 평가할 때, 하나님께서 그를 어떻게 생각하시는가보다도 사람들이 그에 대해 뭐라 말하는가에 더 의존하는 것이 상례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까보다는 항상 하나님께서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실까, 사람이 기뻐할까보다는 과연 이 일을 하나님 께서 기뻐하실까를 먼저 생각하는 삶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갈1: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 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2.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님이 그 사람 의 심령을 지배해야만 합니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십계명)을 주실 때, 그것을 돌판(돌비)에 직접 써서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돌비는 언약궤 속 에 넣어 보관했습니다. 이 돌비에 새겨진 십계명을 읽을 수는 있었지만, 그것이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의 삶이 변화 되려면 '내적인 힘'이 필요한 것인데 율법(십계명)은 '외적인 것'이었습니다. 율법은 '이것을 하라', '저것을 하지 말라'고 훈계할 수는 있지만 그러 한 훈계들이 순종할 능력은 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맡았던 바 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외식하는데만 치중했던 것입니다.
"(마23:2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 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마23:26)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마23: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마23:28)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속 사람이 깨끗해지려면 성령님과 말씀이 역사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이들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 행위는 본받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마23:2)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마23:3)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 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행위의 결과에 대해서만 율법으로 다스릴뿐 그 행위의 근본 원인이 되는 마음의 상태에 대해서는 다스릴 수가 없었습니다. 마음으로 얼마든지 사람을 미워해도 죄가 되지 않습니다. 다만 상해 를 입히거나 살인을 행했을 때만 율법으로 다스려 죄를 정하고 처벌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정하시고 요구하시는 의의 기준은 그 렇치 않습니다. "(마5: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5:21)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마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 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마5: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마5: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 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마5:25)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관예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마5:26)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 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율법으로는 사람을 근본적으로 의롭게 변화시킬 수 있는 힘 이 없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믿어 부어주시는 성령님을 통해서만 그 사람 의 삶을 으롭게 변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심령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람의 마음판에 하나님의 말씀을 새겨야만 합니다. 사람 의 마음판, 즉 심비(心碑)에 새겨진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어 얼마 든지 사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스스로의 힘 으로는 도무지 구원받을 수 없는 죄인임을 깊이 자각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는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없으며 사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 성령님에 의해 역사된 하나님의 은혜만 이 죄인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영호롭게 하는 살아있는 편지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고후3:3)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 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 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 이와같은 성령님을 통한 사람의 변화는 일찍이 구약 시대에 예언하신 바 입니다. "(겔11:19) 내가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신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겔11:20) 내 율 례를 좇으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살아있는 그리스도의 편지, 사랑의 편지가 되기 위해 여러분에게 성령님 과 말씀이 이전보다 더욱 더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3. 또한 그리스도의 편지가 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것을 말합니다.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할 수는 있지만 우리로 하여 금 그리스도를 닮게 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뿐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율법서를 백성들에게 낭독하면 백성들은 거기에 동의 하는 것이 그칩니다. 내심으로 거절하기를 바라면서도 겉으로는 복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그의 마음에 임하고 그의 마음을 주장하면 그는 변화받은 사람이 되기 때문에 법을 어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기 려고 하지도 않게 되는 것입니다. 씌워진 율법은 단지 율법만을 변화시킬 수 있고 오직 성령님만이 인간의 본성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성령님에 따 라 행하며 성령님에 따라 살아 갈 때 하나님의 형상, 신의 성품을 이룩하며 넉넉히 천국에 들어가는 천국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율법은 병을 진단할 수는 있었지만 치료할 수는 없었습니다.
옛 언약 은 그 율법을 다 지켜야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법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새 언약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생 겨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는 아버지와 자녀 관계입니다. 이제 인간은 언약을 불이행한 죄인일 수 없습니다. 비록 불순종할지라도 여전히 하나님의 사랑스런 자녀입니다. 끊어버릴 수 없는 하나님 아버지 의 자녀인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이 인간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가 있으며, 인간으로 하여금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힘과 용기, 힘을 부 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까지도 지킬 수 있는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의 관계 속에서는 아무리 낮고 비천한 직무라도 영광으로 옷입히는 것입니다. 옛 언약은 죽이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따른 직분이 영광이라고 했는데, 새 언약은 사랑의 영으로 살리는 것이기 때문에 그 영광이 더욱 크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과 만나 대화를 나누고 산에서 내려왔을 때, 그의 얼굴 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반사하는 광채가 났었습니다. 그가 백성들에게 말할 때에 그들은 그의 얼굴에서 영광을 볼 수 있었고 그것에 크게 감동 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 영광이 곧 사라질 것임을 잘 알고 있었 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을 다 가르치고 나서 그는 곧 수건을 썼던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사라질 영광을 주목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다시말해 누가 영광을 잃어가는 그런 지도자를 따르고 싶어하겠습니까 바울이 영광의 직분, 복음을 전하는 사도 직분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 를 전파했을 때 동족이 이스라엘 사람들은 진리를 배척하며 바울과 교회 를 핍박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그들의 마음과 심령에 "영적인 수건"이 덮여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영적인 수건"이 덮여 "영적인 소경"이 된 상태였기 때문에 구약성경을 읽어도 메시야, 그리스도에 대한 기록된 진리를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종교, 율법 으로 말미암아 수건으로 가리워져서 소경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소망이 있습니다.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오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고 했 습니다. "(고후3:13)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로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 을 주목치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같이 아니하노라 (고후 3:14)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 어질 것이라 (고후3:15)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오히려 그 마음을 덮었도다 (고후3:16)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 건이 벗어지리라." 하나님의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수건이 벗겨져서 영적인 시각을 가지고 예수님을 바로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서야 비로서 주의 영광을 보며, 하나님의 형상, 즉 신의 성품을 이룩하는 변화된 삶의 모습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고후3: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 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이제 산에 올라갈 필요가 없게 된 것입니다. 본문의 "거울"은 상징적 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나타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여다 보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성령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 곧 신의 성품으로 변화시켜주시는 것입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그의 음성을 듣고 땅바닥에 거꾸러진 사울은 눈 을 떴으나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소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성령님이 충만하게 하심으로 즉기 눈에서 비늘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행9:3)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행9: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행9:5) 대답하 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행9:6) 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행 9:7)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섰더라 (행9:8)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행9:9) 사흘 동안을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하니라.(행9: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가로되 형제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 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님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 니 (행9: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 라." 이후 사울은 변하여 바울이 되었고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기 위해 더욱 더 성령님이 충만한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구약시대에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을 반사하는데 그쳤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발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 고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여 만나게 될 때 성령님께서는 우리 를 변화시키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게 만드는 것입니다. 영광 에서 영광으로 이르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부귀영화를 영광으로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형상,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것, 곧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는 것을 영광으로 여 기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는 것은 잠시 있다 사라지는 영광 이 아니라 영원한 영광의 직분입니다. 영원토록 영광스런 그리스도의 편 지가 될 수 있도록 자신의 몸에 그리스도의 흔적을 가지시며, 성령님과 말씀이 충만하여 살아있는 그리스도의 편지로 사시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 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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