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종 (롬1:1-7)
본문
로마서는 한마디로 그 사상을 요약한다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바울이 말 한대로의 복음입니다.
물론 이것은 바울이 새롭게 만든 창작은 아닙니다. 그 뿌리는 구약에 있으며,성 장해서 예수님을 통해서 성취되고, 바울에게서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그 후에는 우리가 아는대로 중세에 이르러 카톨릭 교회에 의해서 유린 당하다가 개혁가들에 의해서 다시 부활한 교리인 것입니다.
이 로마서는 단순한 신학논문이 아니라 로마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편지라는 것은 상대편의 요구와 필요에 따라서 거기에 응해주는 것입니다.로마서는 로마 교회를 상대하여 로마전도라는 전제하에 보낸 편지입니다.
그러므로 1장에서 11장까지의 교리편도 그렇지만 12장에서 16장 까지의 실천편 에서는 더구나 로마에 있는 교회의 당면한 실제문제를 조리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로마서를 읽는 사람은 누구나 이편지가 매우 잘 정돈되고,정중한 서신인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그것은 편지를 받는 사람들이 로마에 사는 분들이기 때문입니다.그 당시의 로마는 지상의 모든 권위 위에 있는 영화롭고도 영원한 도성으로 모 든 사람들이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아와같은 대도시에 있는 알지 못하는 교회를 상대하여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복음전도의 준비로 보낸 편지는 오늘 대도시를 자랑하는 서울의 1000만 시민과 현대 문명 속에서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에게 적절한 말씀이 될 것이고,청주 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너무나 의미있는 시간들이 될 것입니다.
로마서의 구분
로마서를 집으로 구분을 한다면 1-7절까지는 대문에 해당하는 인사와 소개의 말씀입니다.
8-17절은 문안하는 말씀입니다.
1장18-8장 끝까지는 행랑채에 해당하는 개인의 구원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9장-11장은 본채에 해당하는 인류의 구원을 취급하고 있습니다.
12장-15장13절까지는 안마당에 해당하는 것으로 성도의 윤리적인 면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15장14절에서 16장 끝까지는 뒷문에 해당하는 결론의 부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 정함을 입었으니" 1절
이 귀절은 바울의 자기 소개입니다.
헬라 사람들은 우리들과는 다르게 편지의 처음에 보내는 사람(발신자)를 쓰고 그 다음에 수신자,그리고 문안을 합니다.
그러나 바울이 자신을 소개하는 편지의 서두에서 조차 복음이라는 말을 사용 하고 있을 뿐 아니라, 복음이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그의 정열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봅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좋아하는 것이 있습니다.평소에는 느낄수 없는 흥분과 신나는 기분을 가지고 이야기한다든지 일을 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 데, 이것은 그 사람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살아가는 가를 나타내 줍니다.
우리는 무엇에 신이나는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복음에 신들린 사람입니다. 복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만 하면 흥분을 감추지 못하였고,예수와 구원에 대해서는 무엇을 하든지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저는 설교하고 싶어서 예배시간이 기다려질 때가 많습니다. 설교 준비를 다해 놓고 있는데 시간이 멀어서 조바심이 날 때가 있습니다.그리고 말씀을 전하면서 느끼는 희열과 기쁨은 목회자들만이 가진 축복일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복음에 대한 정열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교회의 일을 하는데 신들린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하나님의 일이 하고 싶어 서 몸이 근질 거리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바울은 자기를 소개할 때에 에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하고 자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표현입니다.
헬라 원문에는 첫글자가 [바울]하고 둘로스-종 라고 시작합니다.
로마에는 인구의 3/1이 종(slave)임을 사도 바울은 잘 알고 있었으며,또한 로마 사람들의 종의 개념이 얼마나 비참한 존재로 인식되고 있는가를 잘 알고 있는 바울입니다.
종은 일생동안 주인의 소유물이었으며,그들에겐 도덕도 륜리도 없으며 무조건 주인에게 복종할 뿐만 아니라,팔려 가기도 하고 팔려 오기도 했습니다.그래서 "노 예와 당나귀는 똑 같은데,당나귀는 말을 못하고,노예는 말을 하는 것이 다르다"라는 기록까지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바울은 자기를 종이라고 소개하면서 조금도 부끄럽지 않게 당 당히 말했습니다.
로마 사람들은 권력을 자랑하고 주인 됨을 자랑하고 로마 시민 됨을 자랑하고 자유민임을 자랑합니다.어디를 가나 나는 노예가 아니고 특별히 로마 권력을 가진 특권층임을 자랑하고 있는데,바울은 자신이 자유인이 아니고 종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누구의 종이냐 하는 것입니다.
바울도 사람의 종이 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라울전-라울:얌전하고 성실한 사람 바울:교만하고 불성실 하면서도 남에게 지지 않으려는 사람,행운을 잡 기를 원하고 또 용케도 이 행운을 잡으며 출세해온 사람
그러나 이 바울이 예수를 믿는데서도 라울보다 한 발 먼저 빨랐고, 순교를 위해 서도 한 발이 빨랐음.
우리는 세상을 정복해야 합니다.세상을 다스리고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것을 누 리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입니다.
그러나 오직 한 분 하나님에게는 종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과의 생활속에서는 영악하고 우쭐대고 교활하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만난 다음부터는 종처럼 온순해지고,우직해지고,맹목적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에서는 권력있는 사람에게 굽신거리고,명예 앞에 무릎 꿇고,힘있는 사람에게 종노릇 하면서,하나님 앞에서 큰소리 치려고 하며, 하나님의 성전에 나 와서 자기의 주장을 내세 우려고 하고, 다스리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종이라는 말은 자신에게만 사용해야 합니다.그리고 자신이 종이 되는 것이지 다 른 사람은 종으로 보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종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오직 예수님 한분의 종이 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들이 여러 가지를 배우고,외우고 합니다만, 이 모든 것을 간단히 줄인다면 주님의 종을 만들기 위한 과정이 바로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입니다.라는 고백이 나올수 있어야 참 성도입니다.
어느 장로님의 기도에서 이 장로가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 하옵기는 당신의 어 린종을 겸손하게 하시고. 자신은 높이면서 다른 사람, 더군다나 자신의 영적인 지도자인 목사님은 종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신학적으로도 어법상으로도 도저히 맞지 않는 것입니다.또 이것은 그의 신앙의 상태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말은 언제나 자신을 낮추어서 하도록 되어졌습니다.이것이 인륜이며,도덕입니다.
그런데 하물며,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높이고, 하나님의 사람을 낮추면 되겠습니 까
바울은 이어서 자신을 사도로 부름을 받았다 라고 말합니다.
사도라는 말은 사명을 받은자,보냄을 받은자,또는 부르심을 받은자,라는 뜻입니다.
사람의 가치는 그가 가지고 있는 사명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물건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것이 왜 만들어졌느냐 또 어디서 어떻게 씌여 지느 냐에 따라서 그것이 소중히 여김을 받느냐 천히 여김을 당하느냐가 결정 됩니다.
바울은 스스로 그리스도의 종이 되기를 원했지만 하나님은 그 바울을 복음을 위 해서 사도로 세우신 것입니다.
이것이 믿는 성도들과 하나님과 의 영적인 관계입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포기하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높이시고,우리를 더 귀한 일을 위해서 쓰시는 것입니다.
또 바울이 전한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2절 )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말씀하는 약속은 역사성을 말합니다.
또선지자들로 하여금 미리 예언하셨고,후에 육신으로 오셨다는 것은 복음의 두 가지 차원을 말하는데,하나는 약속이며,또 하나는 약속에 대한 현실적인 성취입니다.
바울은 성경과 수천년의 역사의 바탕 위에 서있었습니다. 이 얼마나 진정한 전 도자입니까 요즈음도 우리나라에는 자기 나름대로의 설을 만들어 주장하는 일이 있지만 오 래 가지를 못합니다.(감람나무,문예수)
약속이 없이는 성취가 없습니다.약속을 통해서 은혜도 축복도 임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통해서 주신 이 약속은 남김없이 예수를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은 한마디로 예수가 하나님임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냐에 대해서는 문화권마다 다를수 있습니다.(민중신학,희망 의 신학,풍류신학 등등) 그러나 그 분이 하나님이심을 부인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신학적으로는 예수를 종말론적 계시자라고 말합니다.(하나님의 아들이 라는 말이 너무나 포괄적이기 때문에 보다 확실한 의미를 찾기 위해서) 예수님이 최종적인 하나님의 계시이고,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최후의 증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계시에다 덛 붙이려고 합니다.자신이 특 별한 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그럴리가 없습니다. 우리는 누구나다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것을 받은 것입니다.
6절에는 '너희는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 라'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을 믿은 모든 성도들은 복음을 위해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명만을 소중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것은 바울이 새롭게 만든 창작은 아닙니다. 그 뿌리는 구약에 있으며,성 장해서 예수님을 통해서 성취되고, 바울에게서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그 후에는 우리가 아는대로 중세에 이르러 카톨릭 교회에 의해서 유린 당하다가 개혁가들에 의해서 다시 부활한 교리인 것입니다.
이 로마서는 단순한 신학논문이 아니라 로마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편지라는 것은 상대편의 요구와 필요에 따라서 거기에 응해주는 것입니다.로마서는 로마 교회를 상대하여 로마전도라는 전제하에 보낸 편지입니다.
그러므로 1장에서 11장까지의 교리편도 그렇지만 12장에서 16장 까지의 실천편 에서는 더구나 로마에 있는 교회의 당면한 실제문제를 조리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로마서를 읽는 사람은 누구나 이편지가 매우 잘 정돈되고,정중한 서신인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그것은 편지를 받는 사람들이 로마에 사는 분들이기 때문입니다.그 당시의 로마는 지상의 모든 권위 위에 있는 영화롭고도 영원한 도성으로 모 든 사람들이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아와같은 대도시에 있는 알지 못하는 교회를 상대하여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복음전도의 준비로 보낸 편지는 오늘 대도시를 자랑하는 서울의 1000만 시민과 현대 문명 속에서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에게 적절한 말씀이 될 것이고,청주 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너무나 의미있는 시간들이 될 것입니다.
로마서의 구분
로마서를 집으로 구분을 한다면 1-7절까지는 대문에 해당하는 인사와 소개의 말씀입니다.
8-17절은 문안하는 말씀입니다.
1장18-8장 끝까지는 행랑채에 해당하는 개인의 구원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9장-11장은 본채에 해당하는 인류의 구원을 취급하고 있습니다.
12장-15장13절까지는 안마당에 해당하는 것으로 성도의 윤리적인 면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15장14절에서 16장 끝까지는 뒷문에 해당하는 결론의 부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 정함을 입었으니" 1절
이 귀절은 바울의 자기 소개입니다.
헬라 사람들은 우리들과는 다르게 편지의 처음에 보내는 사람(발신자)를 쓰고 그 다음에 수신자,그리고 문안을 합니다.
그러나 바울이 자신을 소개하는 편지의 서두에서 조차 복음이라는 말을 사용 하고 있을 뿐 아니라, 복음이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그의 정열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봅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좋아하는 것이 있습니다.평소에는 느낄수 없는 흥분과 신나는 기분을 가지고 이야기한다든지 일을 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 데, 이것은 그 사람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살아가는 가를 나타내 줍니다.
우리는 무엇에 신이나는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복음에 신들린 사람입니다. 복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만 하면 흥분을 감추지 못하였고,예수와 구원에 대해서는 무엇을 하든지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저는 설교하고 싶어서 예배시간이 기다려질 때가 많습니다. 설교 준비를 다해 놓고 있는데 시간이 멀어서 조바심이 날 때가 있습니다.그리고 말씀을 전하면서 느끼는 희열과 기쁨은 목회자들만이 가진 축복일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복음에 대한 정열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교회의 일을 하는데 신들린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하나님의 일이 하고 싶어 서 몸이 근질 거리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바울은 자기를 소개할 때에 에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하고 자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표현입니다.
헬라 원문에는 첫글자가 [바울]하고 둘로스-종 라고 시작합니다.
로마에는 인구의 3/1이 종(slave)임을 사도 바울은 잘 알고 있었으며,또한 로마 사람들의 종의 개념이 얼마나 비참한 존재로 인식되고 있는가를 잘 알고 있는 바울입니다.
종은 일생동안 주인의 소유물이었으며,그들에겐 도덕도 륜리도 없으며 무조건 주인에게 복종할 뿐만 아니라,팔려 가기도 하고 팔려 오기도 했습니다.그래서 "노 예와 당나귀는 똑 같은데,당나귀는 말을 못하고,노예는 말을 하는 것이 다르다"라는 기록까지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바울은 자기를 종이라고 소개하면서 조금도 부끄럽지 않게 당 당히 말했습니다.
로마 사람들은 권력을 자랑하고 주인 됨을 자랑하고 로마 시민 됨을 자랑하고 자유민임을 자랑합니다.어디를 가나 나는 노예가 아니고 특별히 로마 권력을 가진 특권층임을 자랑하고 있는데,바울은 자신이 자유인이 아니고 종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누구의 종이냐 하는 것입니다.
바울도 사람의 종이 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라울전-라울:얌전하고 성실한 사람 바울:교만하고 불성실 하면서도 남에게 지지 않으려는 사람,행운을 잡 기를 원하고 또 용케도 이 행운을 잡으며 출세해온 사람
그러나 이 바울이 예수를 믿는데서도 라울보다 한 발 먼저 빨랐고, 순교를 위해 서도 한 발이 빨랐음.
우리는 세상을 정복해야 합니다.세상을 다스리고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것을 누 리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입니다.
그러나 오직 한 분 하나님에게는 종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과의 생활속에서는 영악하고 우쭐대고 교활하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만난 다음부터는 종처럼 온순해지고,우직해지고,맹목적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에서는 권력있는 사람에게 굽신거리고,명예 앞에 무릎 꿇고,힘있는 사람에게 종노릇 하면서,하나님 앞에서 큰소리 치려고 하며, 하나님의 성전에 나 와서 자기의 주장을 내세 우려고 하고, 다스리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종이라는 말은 자신에게만 사용해야 합니다.그리고 자신이 종이 되는 것이지 다 른 사람은 종으로 보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종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오직 예수님 한분의 종이 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들이 여러 가지를 배우고,외우고 합니다만, 이 모든 것을 간단히 줄인다면 주님의 종을 만들기 위한 과정이 바로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입니다.라는 고백이 나올수 있어야 참 성도입니다.
어느 장로님의 기도에서 이 장로가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 하옵기는 당신의 어 린종을 겸손하게 하시고. 자신은 높이면서 다른 사람, 더군다나 자신의 영적인 지도자인 목사님은 종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신학적으로도 어법상으로도 도저히 맞지 않는 것입니다.또 이것은 그의 신앙의 상태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말은 언제나 자신을 낮추어서 하도록 되어졌습니다.이것이 인륜이며,도덕입니다.
그런데 하물며,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높이고, 하나님의 사람을 낮추면 되겠습니 까
바울은 이어서 자신을 사도로 부름을 받았다 라고 말합니다.
사도라는 말은 사명을 받은자,보냄을 받은자,또는 부르심을 받은자,라는 뜻입니다.
사람의 가치는 그가 가지고 있는 사명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물건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것이 왜 만들어졌느냐 또 어디서 어떻게 씌여 지느 냐에 따라서 그것이 소중히 여김을 받느냐 천히 여김을 당하느냐가 결정 됩니다.
바울은 스스로 그리스도의 종이 되기를 원했지만 하나님은 그 바울을 복음을 위 해서 사도로 세우신 것입니다.
이것이 믿는 성도들과 하나님과 의 영적인 관계입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포기하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높이시고,우리를 더 귀한 일을 위해서 쓰시는 것입니다.
또 바울이 전한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2절 )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말씀하는 약속은 역사성을 말합니다.
또선지자들로 하여금 미리 예언하셨고,후에 육신으로 오셨다는 것은 복음의 두 가지 차원을 말하는데,하나는 약속이며,또 하나는 약속에 대한 현실적인 성취입니다.
바울은 성경과 수천년의 역사의 바탕 위에 서있었습니다. 이 얼마나 진정한 전 도자입니까 요즈음도 우리나라에는 자기 나름대로의 설을 만들어 주장하는 일이 있지만 오 래 가지를 못합니다.(감람나무,문예수)
약속이 없이는 성취가 없습니다.약속을 통해서 은혜도 축복도 임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통해서 주신 이 약속은 남김없이 예수를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은 한마디로 예수가 하나님임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냐에 대해서는 문화권마다 다를수 있습니다.(민중신학,희망 의 신학,풍류신학 등등) 그러나 그 분이 하나님이심을 부인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신학적으로는 예수를 종말론적 계시자라고 말합니다.(하나님의 아들이 라는 말이 너무나 포괄적이기 때문에 보다 확실한 의미를 찾기 위해서) 예수님이 최종적인 하나님의 계시이고,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최후의 증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계시에다 덛 붙이려고 합니다.자신이 특 별한 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그럴리가 없습니다. 우리는 누구나다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것을 받은 것입니다.
6절에는 '너희는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 라'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을 믿은 모든 성도들은 복음을 위해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명만을 소중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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