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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좋은 군사가 되라 (딤후2:1-13)

본문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을 ‘여호와 하나님의 군사’로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군사로 키워져야 합니다. 실제로 성경을 보면 제자라는 표현보다는 군사라는 표현이 훨씬 많습니다. 물론 복음서에는 “예수님의 제자”라는 표현이 나오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바울 서신으로 갈수록 제자는 거의 찾아볼 수 없고, 거의 다 군사라는 표현으로 묘사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디모데전서를 보면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또 에베소서 6장을 보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고 했습니다. 골로새교회의 두 번째 사역자였던 빌레몬의 아들 아킵보에게 빌레몬서 1장 2절에는 무엇이라고 되어 있습니까 “우리와 함께 군사된 아킵보.” 또 빌립보서 2장 25절을보면 골로새교회의 초대사역자였던 에바브로디도를 향해서 이렇게 묘사합니다.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된 자요.” 오늘 본문을 보니까 디모데를 향해서도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성도는 군사라는 의미입니다. 성도는 마귀를 멸하는 군사가 되어야 할 것이고, 마귀의 견고한 진을 파하는 군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확장을 위해서 최전선에 서 있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성도는 군사로 키우야 합니다. 좋은 군사의 조건 오늘 본문에 보니까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가 되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군사에도 두 가지의 종류가 있다는 것입니다. 좋은 군사가 있고, 나쁜 군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좋은 군사가 되는 길이 무엇인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확신을 가지라 확신이 있는 사람이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가 될 수 있습니다. 승리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하고, 복음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하고, 많은 증인들 앞에서 담대히 증거할 수 있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본문 2절에 보니까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고 했습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확신을 가지고 증거할 수 있는 사람을 키워야 한다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좋은 군사였습니다. 바울이 좋은 군사가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의 마음 가운데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얼마나 확신이 있었는지를 알려주는 중요한 구절이 사도행전 20장 24절입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바울은 복음을 위해서 죽겠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보다 더한 확신이 어디 있습니까 또 로마서 1장 16절을 보니까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복음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확신을 가지고 증거하였기에 많은 영혼이 변화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떻습니까 사도행전 4장 12절에 보니까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이들에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이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능력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강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좋은 군사가 되기 위해서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확신입니다. 여러분, 어려서 싸움 해보셨습니까 싸움 잘하는 사람의 특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승리에 대한 명확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싸움은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확신으로 하는 것입니다. 싸움은 우리가 통속적으로 말하는 ‘깡’으로 하는 것입니다. 깡이 센 아이들이 싸움을 잘합니다. 깡은 두려움을 압도하는 일종의 확신입니다. 확신있는 사람이 나아가면 당할자가 없습니다. 세일즈맨을 교육시킬 때 제일 먼저 가르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확신입니다. 물건을 잘 팔 수 있는 세일즈맨의 첫 번째 자격조건은 확신입니다. 물건에 대한 확신, 회사에 대한 확신이 있지 않고는 절대로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없습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은확신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영적인 싸움을 벌이는 그리스도의 군사들이 확신없이 나간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하나님 앞에서 이러한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는 좋은 군사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1) 말씀 확신을 가지는 것이 구호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확신의 사람이 될 수 있는 길을 성경은 두 가지로 이야기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슴입니다. 과거에 운동권세력들은 의식화 교육을 했습니다. 의식화라는 것은 철저하게 이론으로 교육시키는 것입니다. 그럴 때 확신이오기 때문입니다. 이론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철저한 교육이 있을 때에 확신을 가지고 나아갈 수 있습니다. “유령”이라는 영화를 아십니까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사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말하면서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하나님의 속성을 공유적 속성, 인간이 경험할 수 없는 하나님의 속성은 비공유적 속성이라고 했습니다. 비공유적 속성에는 자존성, 불변성, 무한성 등이 있습니다. 이런 것은 우리가 경험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공유적 속성을 영성, 지성, 도덕성, 주권성, 영광성의 다섯 가지로 나누고 있습니다. 먼저 우리는 영적으로 강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가 지성입니다. 성령님이 역사하시면 사람이 똑똑해집니다. 하나님이 지성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와 같은 사람을 보십시오. 그는 본래 학문없는 범인이었지만, 성령님의 은혜를 받고난 뒤에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도행전 2장의 설교를 보십시오. 얼마나 논리정연한지 모릅니다. 예수를 믿고 나면 똑똑해집니다. 하나님의 지성에 동참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도덕성이 있어야 합니다. 이는 정결하고 거룩한 자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고 했습니다. 그 다음은 하나님의 주권성입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다스리고 통치하고 계십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만물을 다스리고 통치하는 권한이 있습니다. 주권성을 우리 식으로 얘기한다면 리더십입니다. 객관적인 기준과 합리성을 가지고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마지막 한 가지는 유복성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의 속성에 동첨하는 사람들은 초라한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영광스러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형상을 닮는다고 말할 때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는 것은 영적으로 강한 사람을 만들고, 지성적으로 화려한 사람, 도덕적으로 깨끗한 사람, 주권적으로 리더십이 있는 사람, 영광스러운 인생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확신을 갖는 방법입니다. 몰라서는 안 됩니다. 우리 삶의 모든 행동에 대해서도 성경으로 주석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생각의 게으름은 범죄입니다. 생각해야 합니다. 말씀으로 씨름해야 합니다. 이것이 확신있는 사람들의 첫 번째 모습입니다. 성경은 “너희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고 했습니다. 확실한 일에 거하는 것이 바로 십자가 군병의 진정한 모습입니다.
2) 기도 그리고 두 번째 해야 할 일은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
그렇다면 도대체 얼마나 기도해야 합니까” 라고 묻습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아는 것은 확신이 올 때까지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라는 확신이 올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불신 가운데 놓일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삶을 각주하고, 기도를 통해서 그 말씀을 내속에 살아있는 능력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가 되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대가를 치르라 본문 3절에 보면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라고 했습니다. 얼마전에 어떤 경찰이 장난을 치다가 자기 동료를 오발로 죽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왜 이런 사건이 일어났을까요 훈련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사람에게 총 쏘는 기계적인 부분을 가르치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아마 바보들을 가르친다고 해도 10분이면 될 것입니다. 안전장치를 풀고, 방아쇠를 당겨라. 요약해서 가르치면 10초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총 하나를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몇 달, 몇 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강한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사고 없이 꼭 필요한 곳에 쓰이는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훈련입니다. 그리스도의 강한 군사가 되기 위해서는 반복적인 훈련이 필요합니다. 디모데전서 4장 7절에 보면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고 했습니다. 경건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반복적인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의 대표적인 예를 한번 볼까요 다윗을 보십시다. 다윗은 물맷돌의 대가였습니다. 제가 추측건대 오차가 거의 1cm의 내외였을 것 같습니다. 다윗은 양을 돌볼 때에도 물맷돌을 사용했습니다. 평소에도 사자나 곰과 같은 짐승과 싸워 이길 수 있을 정도로 훈련되어 있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훈련된 능력을 가지고 골리앗 앞에 서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이런 생각들을 합니다. 다윗이 골리앗 앞에 섰을 때는 골리앗의 모습에 겁이 나서 눈을 감고 물맷돌을 던졌다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해주셨기 때문에 물맷돌이 날아가서 정확하게 골리앗을 맞추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높이려고 합니다. 기적의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착각입니다.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다윗은 눈을 부릅뜨고 골리앗의 이마를 정조준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해서 평소의 실력대로,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물맷돌을 날렸을 것입니다. 그래서 한 방에 골리앗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훈련이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를 잘 믿는다는 것을 무슨 날도둑 되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이루어주실 것이기에 놀고 먹으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고도 승리할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옳지 않습니다. 좋은 결과를 위해서는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훈련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커다란 능력을 맛 보고난 다음에도 말씀의 검을 잘 사용할 수 있도록 얼마나 연구했는지 모릅니다. 그는 구약을 꿰뚫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여기 신학생들이 있습니까 훌륭한 목사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잘 다룰 수 있도록 연구하십시오. 말씀에 능숙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준비된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준비된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좋은 군사가 될 수 있습니다. 준비해 놓으면 기회는 우리에게 열매로 주어질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쓰임받고 싶습니까 새벽마다 교회에 나와 기도하십시오.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있을 정도로 준비하십시오. 그것이 성도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무기들을 잘 준비해 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3. 사소한 일애 매이지 말고 행동하라 본문 4절에 보면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군인들은 사소한 일에 얽매여서는 안됩니다. 군인은 오직 싸움밖에 몰라야 합니다. 명령만 떨어지면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군인에겐 부업이 있을 수 없습니다. 워렌 위어스비 목사님이 쓰셨던 책 중에 ‘이것이 그리스도인이다’ 라는 책에 재미있는 예화가 나와 있습니다. 미국에 남북전쟁이 있을 때 어떤 시계 수리자가 군에 징집되었는데 병영 안에서도 시계 수리를 열심히 했습니다. 대장님이 명령을 내립니다 “오늘 공격이다. 전진!” 그랬더니 못나간다고 버팁니다. 시계 수리할 것이 너무 많아서 못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워어스비 목사님은 이런 사람은 군인이라고 할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군인은 한 가지에 집중해야 합니다. 자기 자리를 지킬 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군인은 24시간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 ‘얽매이다’라는 말이 헬라어 원어는 ‘머리를 땋다, 꼬다’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 말을 들으면서 연상되는 사람이 없으십니까 저는 삼손이 떠오릅니다. 악한 여인 들릴라가 삼손의 힘의 원천을 물었을 때, 그는 자기의 머리르 땋으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 말은 틀린 말이었지만 그 때부터 그는 수치와 패배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사소한 일에 얽매이면 삼손과 같이 파멸의 인생이 됩니다. 또 하나 롯을 보십시오. 소돔과 고모라가 망한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처음에는 그 도시를 바라보다가, 도시에 들어가서 장막을 치고 살게 되었습니다. 조금씩 얽매이다 보니까 나중에는 큰 일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전쟁터에 나가기 전에 자신의 부인과 자식들을 모두 죽이고 나갔던 계백 장군을 기억하십니까 정말 죽이라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정신은 본받을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는 사소한 것은 끊고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중요한 일과 긴급한 일을 구분해야 합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악한 마귀가 중요한 일을 놓치게 만들기 위해서 자꾸만 바쁘게 만듭니다. 어떤 사람은 밤낮 결혼식 다닌다, 인사 다닌다, 누구를 만나야 한다, 뒷일을 처리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 일만 쫓아 다니다가는 진짜 중요한 일, 우리의 사명은 모두 놓치게 됩니다. 마귀의 마지막 때의 유혹의 내용은 바쁘게 만든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일들을 끊어버리고, 가장 중요한 일에 집중하는 하나님의 종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군사로 부르셨습니다. 악한 마귀와 싸워서 승리하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의 주업이 무엇입니까 영적 싸움입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마치고” 라는 바울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싸워야 합니다. 일해야 합니다. 교회는 배만 띄워놓고 뱃놀이하는 교회가 아니라 일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을 낚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위해서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사명자가 도십시오. “우리 교회는 한 20여 명 정도 모이는데 성도가 늘지는 않지만 너무나 화기애애한 교회입니다. 너무나 가족같은 교회입니다.” 이렇게 자랑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러나 이런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까 사명을 다하지 않는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지금도 죽어가는 영혼들이 얼마나 많은데, 20명의 성도들이 늘지 않고 가족같은 분위기만 유지한다고 좋은 교회입니까 말이 안됩니다. 하나님은 일하지 않을 때 핍박을 통해서라도 일하게 하십니다.
사도행전 8장에서 예루살렘 교회가 흩어지는 것을 보십시오. 피눈물을 흘리며 흩어져서 사명을 감당하지 않았습니까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까 일하는 교회입니다. 사명을 다하는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허왕된 이론이나 공허한 이상을 논하지 말고, 영적 실사구시의 자세로 나아가야 합니다. 실질적으로 일하십시오. 불신자를 건져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잘 훈련받는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어서 삶을 변화시키고 직장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 안에서 그리스도의 주권을 회복해야 합니다. 7급 공무원이라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할 때 주변에 많은 변화를 가져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과장, 부장이 되어 보십시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면 여러분 아랫사람들은 다 바르게 살 수 있지 않습니까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십시오. 왜 할 수 있는 일들도 하려고 하지 않으십니까 받은 바 능력을 가지고 권세를 사용하십시오. 변화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은 그리스도의 영적인 군사가 되어서 받은 바 능력들을 훈련으로 잘 다듬어 그것을 가지고 세상에 나가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주님의 종들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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