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새로운 물질관 (출12:11)
본문
우리가 집착하는 물질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보시는가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출 12:11). 신앙 생활을 시작하면 여러 가지 방해물을 만나게 됩니다. 여러 가지 방해물을 만난 그리스도인들은 신앙 생활을 포기하거나 비뚤어 진 신앙의 소유자로 변질됩니다. 대표적인 방해물로는 먼저 믿었다 고 하나 모범을 보여 주지 못하므로 주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상처 를 주는 교인이 있습니다. 항상 유혹의 손길을 뻗는 친구가 있습니다. 마음을 굳게 먹고 신앙의 자세를 가다듬을 때 다가오는 가 족의 방해가 있습니다. 신앙의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게 하는 환경도 방해물입니다. 이러한 방해물들은 모두가 외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더욱 고차원적 으로 그리스도인을 넘어뜨리고 성숙의 노정에서 멈추게 하는 신앙의 방해물은 바로 우리 내부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내부에는 수 많은 방해 요소가 있지만, 이중에 가장 치명적인 것은 "잘못된 물질관"입니다. 돈은 사람에게 대단한 영향력을 끼칩니다. 사람을 울고 웃게 만들 고, 사람의 성격과 사람됨까지도 변하게 하는 것이 돈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해서 세상과 유리(遊離)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물질의 영향력은 계속 따라옵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신앙 의 새 출발을 할 때 물질에 대한 새로운 가치관을 정립해 놓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원치 않으시는 잘못된 물질관으로 인하여 기형 적인 신앙인으로 전락하고 신앙의 대열에서 낙오하는 불행한 순간을 맞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상을 상징하는 애굽을 벗어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의 새로운 삶을 시작할 때,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는 신앙의 낙오자를 막기 위하여 출발 전에 갖추어야 할 준 비 자세 세 가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첫째, 허리에 띠를 띠라.둘째, 발에 신을 신으라.셋째, 손에 지팡이를 잡으라. 제 7계단에서는 첫번째와 두번째 자세가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 인들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아보았습니다. 허리에 띠를 띠 라는 것은 신앙의 길에 쉼이 없다는 것을 알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발에 신을 신으라는 것은 신앙의 길이 만사 형통한 것만이 아님 을 예시하는 말씀이었습니다. 마지막 세번째 자세인 손에 지팡이를 잡으라는 하나님의 권고는 신 앙의 길을 갈 때 새로운 물질관이 필요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이제 "지팡이를 잡고"라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들에게 교훈하시는 새로운 물질관의 구체적인 의미가 무엇 인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손에 지팡이를 잡으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팡이를 잡으라" 하신 데에는 분명한 의도가 있으셨습니다. 요즈음 우리가 어른들이 나가실 때 지팡이를 잡고 가시라고 하면, 그것은 힘 없고 늙으셨으니 지팡이 를 의지하고 다니시라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그러므로 아직 정정 하신 부모님께 "지팡이를 잡고 가십시오" 하면, 아니 저 놈이 나를 늙은이 취급하나, 빨리 죽으라는 거야 하며 기분 나빠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약 반세기 전인 1940년대에는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모자 와 단장을 들고 다니는 것이 유행이었습니다. 그 당시 지팡이를 잡으라는 말은 부모님들을 기분 좋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의도가 멋내라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지팡이가 나이 든 세 대에게는 의지할 대상과 멋을 상징하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지팡이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른 의미를 주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지팡이를 권고하시는 하나님의 의도는 멋을 내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의지하기 위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는 양을 몰고 갈 것을 위해서 지팡이를 잡으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성경에는 지팡이라는 도구가 종종 등장합니다. 모세의 지팡이, 아 론의 지팡이, 다윗의 지팡이, 다윗이 시편 23편에서 읊은 주 하나님의 지팡이 등, 이 모든 지팡이는 의지하기 위한 것도 멋을 내기 위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언급하신 지팡이는 양 을 몰고 갈 때 쓰는 지팡이를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지팡이를 잡고"라는 하나님의 권고는 "너희의 여행 길 에 양을 몰고 가라"는 명령이었습니다. 물론 지팡이가 험한 광야 에서 몸을 지탱시켜 주며 가시덤불을 헤쳐 나가는 데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지팡이를 들고 가야 하는 가장 큰 목적 은 양을 몰고 가는 데 있었습니다. 그러면 양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민족은 유목 민족입니다. 이스 라엘에게 양은 재산과 물질과 돈과 풍요의 상징입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 사람들의 물질의 상징은 무엇입니까 아마도 집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미국 사람들은 집과 자동차를 제일로 친다고 합니다 만, 한국 사람들은 자동차는 아니고 집인 것 같습니다.
프랑스 사람에게는 물질의 상징이 옷이라고 합니다. 영국 사람에게는 우산 이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양이 곧 그 사람의 물질의 소유를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팡이를 잡으라는 말씀은 양을 몰고 가라는 명령이며, 결국 이스라엘의 신앙의 여정에 물질이 필요함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고를 들은 이스라엘 민족은 다양한 반응을 나타냈을 것 입니다. "아니, 하나님이 능력으로 함께하신다는 새로운 인생길이 라더니, 기껏해야 조상 대대로 하던 양 치는 일을 또 해야 먹고 살아 그러면 그렇지, 능력은 능력이고 물질은 물질이지" 하며 있는 대로 모든 양을 다 몰고 나가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편으로는 "아니야, 뭔가 잘못된 지시야. 하나님께서 함께하 시고 그 놀라운 기적으로 우리를 이끄시는데 무슨 놈의 양이야. 이제 양 치는 일은 안 해도 돼" 하고 아예 지팡이를 잡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양을 몰고 그 험한 광야의 길을 가게 하 셨습니까 조상들처럼 양을 치며 먹고 살게 하기 위해서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40년 동안 하늘에서 매일 밤 만나를 내 리시며 고기가 필요할 때 메추라기를 보내시며, 물이 필요할 때 반석이 갈라져 생수가 넘쳐 흐르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민족을 먹이 셨습니다. 그러면 왜 양을 몰고 가라고 하셨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이유는, 4 0년 동안의 여행에서 하나님께 제사드릴 제물이 항상 준비되어 있 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곧,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 때문에 양을 몰고 가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생존과 번영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여 광야에서 양을 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팡이를 잡으라"는 권고는 우리에게 새로운 물질관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즉, 신앙의 길에는 물질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데, 그 물질은 그리스도인의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는 물질에 대한 새로운 가치관을 갖게 하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의 물질에 대한 가치관이 나름대로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하나님 앞에 나오기 전에는 모두 근본적으로 동일합니다. 즉, 자기 자신을 위하여 물질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돈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달려듭니까 남에 게 이익이 된다면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유익이 되고 절대로 필요한 것이라고 느끼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자신의 생 존, 안정, 행복, 번영을 위하여 절대적으로 물질의 필요성을 느 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질의 필요성을 철저히 자기 중심적인 자 리에서 인식하고 있는 모습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의 물질관인 것입니다. 이런 태도가 신앙 생활에 연결되면,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의 길을 걸어가면서도 한눈을 팔고 그 자리에 멈추어 서기도 하며 비뚤어진 눈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보며 잘못된 길로 가기도 합니다.
올바른 물질관
세상에서 사람의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바로 물질, 돈이라는 것 입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같이 많이 가지려고 하는 것이 돈입니다. 사람들은 원하는 대로 소유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불만과 원 망과 짜증 속에서 낙심하며 삶에서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질이 사람을 따라 움직이기보다는 사람이 물질에 좌우되는 경 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물질에 대한 새로운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그리스도인은 신앙 생활 중에 물질이 넉넉하지 못할 때 두 가지 반응을 보입니다.
첫째로, 신앙을 버리고 물질을 따라갑니다. "하나님 아버지, 돈을 조금 더 벌고 믿겠습니다", "물질을 위 해서 잠시 신앙 생활을 쉬었다가 나중에 잘 믿겠습니다." 이는 신앙을 포기하고 마귀를 친구 삼아 물질을 좇고 있는 경우입니다.
둘째로, 매사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며 좌절과 낙망 가운데 있습니다. "아니 무슨 놈의 교회가 헌금만 받아! 그 돈을 다 어디에 쓰지 이 교회에는 마음에 안 드는 것이 많아." 왜 그리스도인이 이렇게 비판적으로 사물을 보게 됩니까 자신에게 물질이 부족하고 생활의 안정과 번영에 이득이 없으므로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나 주위 것들을 보는 데 비판적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는 분별의 눈으로 잘못된 것을 바라보아야지, 비판의 눈으로 모 든 것을 보기 시작하면 신앙이 성장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바로 물질의 필요성을 자신의 안정, 번영, 생존, 즐거움에 연결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삶이나 나에게 필요한 안정과 복이 하나님 손에 있으며 내가 물질을 필 요로 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을 위하여 살고 싶기 때문이라는 새로 운 생각이 있다면, 조금 더 벌겠다고 신앙을 포기하지는 않습니다. 물질이 적다고 해서 낙담하거나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지는 않습니다. 빌립보서 4장 12절은 살면서 부딪히게 되는 물질적인 형편에 따 라 신앙이 좌우되지 않고 어려움 속에서도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담 대함을 보이는 사도 바울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물질에 대해 지나치게 집착하고 물질과 관계 된 문제에서 잘못된 자세를 보이는 것은 자신의 욕구를 세상에서 이루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또다른 잘못된 자세는 비성경적 인 물질 배척 사상에 물들어 있는 것입니다. 자신을 위하여는 물 질을 사랑하지 않아야 하지만 하나님을 위하여는 물질을 소유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여 가난하게 살면서 스스로 만족하고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어느 훌륭하신 목사님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 성도가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부자라면 아예 싫어하신다면서요" 그러자 목사님이 이렇게 대답하셨다고 합니다. 아니요, 저는 부자라고 다 싫어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믿음 없는 부자는 돌아보지 아니하지만 믿음 있는 부자는 좋아합니다. 하나님께서도 믿음 없는 부자는 싫어하시고 불쌍하다 하시지만 믿음이 있는 부자는 인정하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성도라면 누구 나 믿음과 함께 어느 정도의 물질도 가지고 있기를 원하십니다. 오늘날 믿음의 길을 가고는 있지만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못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세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부자를 싫어하시고 물질의 풍요를 원치 않으신다는 잘못된 생각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지팡이를 잡지 않고 신앙의 길을 떠난 자입니다. "신앙의 길을 가는데 하나님께서 때마다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시지 않겠어!
그런데 무슨 물질이 필요해" 하며 아예 물질에 무관심한 자들입니다. 스스로 빈궁 한 자리를 찾아 들어가면서 하나님께서 빈궁한 것을 기뻐하신다고 착각하는 자들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하나님께서 믿음 있는 자들의 소유물을 통해 일하신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만 외쳤지 행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드러낼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물질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자에 게 하나님께서 물질을 허락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제한하며 스스로 가난한 자리 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들은 빌립보서 4장 19절 말씀을 반복해서 보아야 할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 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둘째로, 물질에 대한 새로운 가치관을 지니지 못한 채 신앙의 길 을 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렇지, 신앙의 길을 가더라도 물질은 따로 내게 필요한 거야. 물질을 더 많이 소유해야지" 하며 하나님의 근본적 의도 를 모른 채 물질에 너무 강한 애착을 가지는 것입니다. 왜 물질 이 필요한지를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물질을 얻기 위하여는 신앙을 유보하고서라도 아무 일이나 다 하고자 하는 이들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남 다르게 물질에 집착하여 노력하고 애쓰지만 마음대로 부유하게 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신앙인에게는 절대로 물질의 풍요를 주시지 않습니다. 그가 아무리 열심히 뛰고 사업을 계획하더라도 하나님은 앞 길을 막으십니다. 왜 물질이 필요한지 알 때까지 실패하고 넘어지는 일 밖에는 당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길을 막으시기 때문에 바른 물질관이 정립될 때까지는 궁핍함 가운데 지내게 됩니다. 이들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義)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는 말씀의 뜻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때가 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팡이를 잡으라는 하나님의 근본 의도를 깨달아 새로운 물질관, 즉 "나의 모든 삶은 오직 주님의 손에 있나이다. 그리고 물질을 필요로 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입니다"라고 고백하지만 아직 가난한 사람들이 그 예(例)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쓰시는 때가 있으며 높이시는 때가 있습니다. 사람을 부요 하게 하시는 때가 있습니다. 바로 그 "때"가 임하지 않은 것 때문에 잠시 가난하게 사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신자들을 꼭 높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 5:6)는 말씀은 연단 속에 있는 가난한 자 들에게 장래를 약속하며 위로를 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해 나가면서 물질을 상징하는 양을 항상 소유하였고 또 필요로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들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희생(제사) 때문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그리스도인들에게 물질은 항상 필요합니다. 또한 물질은 소유해야만 합니다. 성도의 물질 소유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물질을 구할 때, 하나님께서 능력의 손을 펼치사 우리가 바라는 것 이상으로 채워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세상적인 물질관에 따라 생활하여 하나님과 멀 어지고 물질에 대한 걱정으로 고민하며 살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잘못된 물질관으로 인해 하나님을 위하여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X신자가 되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또한 새로 운 물질관을 지니지 못하여 애쓰고 노력하는 일마다 실패하는 사람 이 되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당신은 자신의 안정과 행복과 생존을 위해 물질 을 좇아가고 있는지, 아니면 하나님을 위하여 그 물질을 필요로 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이 시간 당신의 손에 많은 물질이 주어진다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자신 의 일입니까, 하나님의 일입니까 왜 물질을 소유하고자 하는지, 왜 돈을 벌려고 하는지, 그 목적을 확인하여 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을 뒤로 하고 달려가던 길에서 멈추어 서십시오. 물 질 때문에 생긴 마음 속의 낙망과 짜증의 그림자를 거두어 내십시 오. 당신의 생존과 안정과 풍요는 주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믿으 십시오. 당신이 추구하는 물질은 오직 하나님의 일과 그의 영광을 위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생활에 임하십시오. 당신이 하나님을 위하여 물질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 물질을 좇아 가던 피곤한 삶에서 해방되어 물질이 따라오는 편안하고 기쁜 삶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영적 지팡이를 굳게 잡으십 시오. 그리고 주께 이렇게 고백해 보십시오. "저를 위해서는 아무 것도 원치 않습니다. 그러나 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온 세상의 물질과 부(富)를 필요로 합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신앙 의 새 출발을 할 때 물질에 대한 새로운 가치관을 정립해 놓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원치 않으시는 잘못된 물질관으로 인하여 기형 적인 신앙인으로 전락하고 신앙의 대열에서 낙오하는 불행한 순간을 맞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상을 상징하는 애굽을 벗어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의 새로운 삶을 시작할 때,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는 신앙의 낙오자를 막기 위하여 출발 전에 갖추어야 할 준 비 자세 세 가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첫째, 허리에 띠를 띠라.둘째, 발에 신을 신으라.셋째, 손에 지팡이를 잡으라. 제 7계단에서는 첫번째와 두번째 자세가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 인들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아보았습니다. 허리에 띠를 띠 라는 것은 신앙의 길에 쉼이 없다는 것을 알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발에 신을 신으라는 것은 신앙의 길이 만사 형통한 것만이 아님 을 예시하는 말씀이었습니다. 마지막 세번째 자세인 손에 지팡이를 잡으라는 하나님의 권고는 신 앙의 길을 갈 때 새로운 물질관이 필요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이제 "지팡이를 잡고"라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들에게 교훈하시는 새로운 물질관의 구체적인 의미가 무엇 인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손에 지팡이를 잡으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팡이를 잡으라" 하신 데에는 분명한 의도가 있으셨습니다. 요즈음 우리가 어른들이 나가실 때 지팡이를 잡고 가시라고 하면, 그것은 힘 없고 늙으셨으니 지팡이 를 의지하고 다니시라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그러므로 아직 정정 하신 부모님께 "지팡이를 잡고 가십시오" 하면, 아니 저 놈이 나를 늙은이 취급하나, 빨리 죽으라는 거야 하며 기분 나빠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약 반세기 전인 1940년대에는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모자 와 단장을 들고 다니는 것이 유행이었습니다. 그 당시 지팡이를 잡으라는 말은 부모님들을 기분 좋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의도가 멋내라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지팡이가 나이 든 세 대에게는 의지할 대상과 멋을 상징하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지팡이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른 의미를 주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지팡이를 권고하시는 하나님의 의도는 멋을 내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의지하기 위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는 양을 몰고 갈 것을 위해서 지팡이를 잡으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성경에는 지팡이라는 도구가 종종 등장합니다. 모세의 지팡이, 아 론의 지팡이, 다윗의 지팡이, 다윗이 시편 23편에서 읊은 주 하나님의 지팡이 등, 이 모든 지팡이는 의지하기 위한 것도 멋을 내기 위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언급하신 지팡이는 양 을 몰고 갈 때 쓰는 지팡이를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지팡이를 잡고"라는 하나님의 권고는 "너희의 여행 길 에 양을 몰고 가라"는 명령이었습니다. 물론 지팡이가 험한 광야 에서 몸을 지탱시켜 주며 가시덤불을 헤쳐 나가는 데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지팡이를 들고 가야 하는 가장 큰 목적 은 양을 몰고 가는 데 있었습니다. 그러면 양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민족은 유목 민족입니다. 이스 라엘에게 양은 재산과 물질과 돈과 풍요의 상징입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 사람들의 물질의 상징은 무엇입니까 아마도 집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미국 사람들은 집과 자동차를 제일로 친다고 합니다 만, 한국 사람들은 자동차는 아니고 집인 것 같습니다.
프랑스 사람에게는 물질의 상징이 옷이라고 합니다. 영국 사람에게는 우산 이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양이 곧 그 사람의 물질의 소유를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팡이를 잡으라는 말씀은 양을 몰고 가라는 명령이며, 결국 이스라엘의 신앙의 여정에 물질이 필요함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고를 들은 이스라엘 민족은 다양한 반응을 나타냈을 것 입니다. "아니, 하나님이 능력으로 함께하신다는 새로운 인생길이 라더니, 기껏해야 조상 대대로 하던 양 치는 일을 또 해야 먹고 살아 그러면 그렇지, 능력은 능력이고 물질은 물질이지" 하며 있는 대로 모든 양을 다 몰고 나가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편으로는 "아니야, 뭔가 잘못된 지시야. 하나님께서 함께하 시고 그 놀라운 기적으로 우리를 이끄시는데 무슨 놈의 양이야. 이제 양 치는 일은 안 해도 돼" 하고 아예 지팡이를 잡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양을 몰고 그 험한 광야의 길을 가게 하 셨습니까 조상들처럼 양을 치며 먹고 살게 하기 위해서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40년 동안 하늘에서 매일 밤 만나를 내 리시며 고기가 필요할 때 메추라기를 보내시며, 물이 필요할 때 반석이 갈라져 생수가 넘쳐 흐르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민족을 먹이 셨습니다. 그러면 왜 양을 몰고 가라고 하셨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이유는, 4 0년 동안의 여행에서 하나님께 제사드릴 제물이 항상 준비되어 있 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곧,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 때문에 양을 몰고 가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생존과 번영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여 광야에서 양을 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팡이를 잡으라"는 권고는 우리에게 새로운 물질관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즉, 신앙의 길에는 물질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데, 그 물질은 그리스도인의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는 물질에 대한 새로운 가치관을 갖게 하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의 물질에 대한 가치관이 나름대로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하나님 앞에 나오기 전에는 모두 근본적으로 동일합니다. 즉, 자기 자신을 위하여 물질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돈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달려듭니까 남에 게 이익이 된다면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유익이 되고 절대로 필요한 것이라고 느끼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자신의 생 존, 안정, 행복, 번영을 위하여 절대적으로 물질의 필요성을 느 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질의 필요성을 철저히 자기 중심적인 자 리에서 인식하고 있는 모습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의 물질관인 것입니다. 이런 태도가 신앙 생활에 연결되면,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의 길을 걸어가면서도 한눈을 팔고 그 자리에 멈추어 서기도 하며 비뚤어진 눈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보며 잘못된 길로 가기도 합니다.
올바른 물질관
세상에서 사람의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바로 물질, 돈이라는 것 입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같이 많이 가지려고 하는 것이 돈입니다. 사람들은 원하는 대로 소유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불만과 원 망과 짜증 속에서 낙심하며 삶에서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질이 사람을 따라 움직이기보다는 사람이 물질에 좌우되는 경 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물질에 대한 새로운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그리스도인은 신앙 생활 중에 물질이 넉넉하지 못할 때 두 가지 반응을 보입니다.
첫째로, 신앙을 버리고 물질을 따라갑니다. "하나님 아버지, 돈을 조금 더 벌고 믿겠습니다", "물질을 위 해서 잠시 신앙 생활을 쉬었다가 나중에 잘 믿겠습니다." 이는 신앙을 포기하고 마귀를 친구 삼아 물질을 좇고 있는 경우입니다.
둘째로, 매사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며 좌절과 낙망 가운데 있습니다. "아니 무슨 놈의 교회가 헌금만 받아! 그 돈을 다 어디에 쓰지 이 교회에는 마음에 안 드는 것이 많아." 왜 그리스도인이 이렇게 비판적으로 사물을 보게 됩니까 자신에게 물질이 부족하고 생활의 안정과 번영에 이득이 없으므로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나 주위 것들을 보는 데 비판적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는 분별의 눈으로 잘못된 것을 바라보아야지, 비판의 눈으로 모 든 것을 보기 시작하면 신앙이 성장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바로 물질의 필요성을 자신의 안정, 번영, 생존, 즐거움에 연결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삶이나 나에게 필요한 안정과 복이 하나님 손에 있으며 내가 물질을 필 요로 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을 위하여 살고 싶기 때문이라는 새로 운 생각이 있다면, 조금 더 벌겠다고 신앙을 포기하지는 않습니다. 물질이 적다고 해서 낙담하거나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지는 않습니다. 빌립보서 4장 12절은 살면서 부딪히게 되는 물질적인 형편에 따 라 신앙이 좌우되지 않고 어려움 속에서도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담 대함을 보이는 사도 바울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물질에 대해 지나치게 집착하고 물질과 관계 된 문제에서 잘못된 자세를 보이는 것은 자신의 욕구를 세상에서 이루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또다른 잘못된 자세는 비성경적 인 물질 배척 사상에 물들어 있는 것입니다. 자신을 위하여는 물 질을 사랑하지 않아야 하지만 하나님을 위하여는 물질을 소유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여 가난하게 살면서 스스로 만족하고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어느 훌륭하신 목사님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 성도가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부자라면 아예 싫어하신다면서요" 그러자 목사님이 이렇게 대답하셨다고 합니다. 아니요, 저는 부자라고 다 싫어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믿음 없는 부자는 돌아보지 아니하지만 믿음 있는 부자는 좋아합니다. 하나님께서도 믿음 없는 부자는 싫어하시고 불쌍하다 하시지만 믿음이 있는 부자는 인정하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성도라면 누구 나 믿음과 함께 어느 정도의 물질도 가지고 있기를 원하십니다. 오늘날 믿음의 길을 가고는 있지만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못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세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부자를 싫어하시고 물질의 풍요를 원치 않으신다는 잘못된 생각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지팡이를 잡지 않고 신앙의 길을 떠난 자입니다. "신앙의 길을 가는데 하나님께서 때마다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시지 않겠어!
그런데 무슨 물질이 필요해" 하며 아예 물질에 무관심한 자들입니다. 스스로 빈궁 한 자리를 찾아 들어가면서 하나님께서 빈궁한 것을 기뻐하신다고 착각하는 자들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하나님께서 믿음 있는 자들의 소유물을 통해 일하신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만 외쳤지 행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드러낼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물질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자에 게 하나님께서 물질을 허락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제한하며 스스로 가난한 자리 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들은 빌립보서 4장 19절 말씀을 반복해서 보아야 할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 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둘째로, 물질에 대한 새로운 가치관을 지니지 못한 채 신앙의 길 을 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렇지, 신앙의 길을 가더라도 물질은 따로 내게 필요한 거야. 물질을 더 많이 소유해야지" 하며 하나님의 근본적 의도 를 모른 채 물질에 너무 강한 애착을 가지는 것입니다. 왜 물질 이 필요한지를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물질을 얻기 위하여는 신앙을 유보하고서라도 아무 일이나 다 하고자 하는 이들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남 다르게 물질에 집착하여 노력하고 애쓰지만 마음대로 부유하게 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신앙인에게는 절대로 물질의 풍요를 주시지 않습니다. 그가 아무리 열심히 뛰고 사업을 계획하더라도 하나님은 앞 길을 막으십니다. 왜 물질이 필요한지 알 때까지 실패하고 넘어지는 일 밖에는 당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길을 막으시기 때문에 바른 물질관이 정립될 때까지는 궁핍함 가운데 지내게 됩니다. 이들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義)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는 말씀의 뜻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때가 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팡이를 잡으라는 하나님의 근본 의도를 깨달아 새로운 물질관, 즉 "나의 모든 삶은 오직 주님의 손에 있나이다. 그리고 물질을 필요로 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입니다"라고 고백하지만 아직 가난한 사람들이 그 예(例)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쓰시는 때가 있으며 높이시는 때가 있습니다. 사람을 부요 하게 하시는 때가 있습니다. 바로 그 "때"가 임하지 않은 것 때문에 잠시 가난하게 사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신자들을 꼭 높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 5:6)는 말씀은 연단 속에 있는 가난한 자 들에게 장래를 약속하며 위로를 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해 나가면서 물질을 상징하는 양을 항상 소유하였고 또 필요로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들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희생(제사) 때문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그리스도인들에게 물질은 항상 필요합니다. 또한 물질은 소유해야만 합니다. 성도의 물질 소유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물질을 구할 때, 하나님께서 능력의 손을 펼치사 우리가 바라는 것 이상으로 채워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세상적인 물질관에 따라 생활하여 하나님과 멀 어지고 물질에 대한 걱정으로 고민하며 살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잘못된 물질관으로 인해 하나님을 위하여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X신자가 되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또한 새로 운 물질관을 지니지 못하여 애쓰고 노력하는 일마다 실패하는 사람 이 되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당신은 자신의 안정과 행복과 생존을 위해 물질 을 좇아가고 있는지, 아니면 하나님을 위하여 그 물질을 필요로 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이 시간 당신의 손에 많은 물질이 주어진다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자신 의 일입니까, 하나님의 일입니까 왜 물질을 소유하고자 하는지, 왜 돈을 벌려고 하는지, 그 목적을 확인하여 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을 뒤로 하고 달려가던 길에서 멈추어 서십시오. 물 질 때문에 생긴 마음 속의 낙망과 짜증의 그림자를 거두어 내십시 오. 당신의 생존과 안정과 풍요는 주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믿으 십시오. 당신이 추구하는 물질은 오직 하나님의 일과 그의 영광을 위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생활에 임하십시오. 당신이 하나님을 위하여 물질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 물질을 좇아 가던 피곤한 삶에서 해방되어 물질이 따라오는 편안하고 기쁜 삶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영적 지팡이를 굳게 잡으십 시오. 그리고 주께 이렇게 고백해 보십시오. "저를 위해서는 아무 것도 원치 않습니다. 그러나 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온 세상의 물질과 부(富)를 필요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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