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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법 (갈6:1-10)

본문

우리 남서울은혜교회가 빼 앗기지 않고 늘 우리 속에 있기를 소망하는 세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로는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시다' 라는 고백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형 제, 자매라는 말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원리가 되는 성도들의 삶이 있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로는 진정한 축복입니다. 진 정한 축복이라 함은 우리가 하나님 께로부터 무엇을 받았는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나눌 수 있느냐 까지 입니다. 아브라함에 게 약속하실 때에 "아브라함아, 내 가 너에게 복을 주고 너로 복의 근 원을 삼겠다"고 했습니다. 진정한 축복은 근원으로서의 축복입니다.
나 혼자만 복 받는 것이 아니라 내 가 복 받는 것 자체가 다른 사람에 게 또 다른 복을 안겨주는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나 혼자 잘 되는 것은 결코 축복일 수 없습니다. 우리 집이 안전하지만 옆집에서 불이 나 면 같이 불에 탑니다. 같이 잘 되어 야 합니다. 내가 잘되기 때문에 옆 에 있는 불행한 사람들이 더욱 불행 해진다면 그것은 행복이 아니라 저 주를 잉태하는 사건입니다. 이렇게 이 세 가지가 반드시 있었으면 좋겠 습니다. 그 중 가장 소중한 것은 진 정으로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요, 우리는 형제, 자매라는 고백으로 만 나 교제하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목사, 장로, 권사, 집사 이런 말 보다 형님, 아우님 하는 신앙고백으로 드 려지는 교회가 되기를 열망합니다.
직임으로 만나는 것은 비정한 것입니다. 형제, 자매의 사랑으로, 인격 으로 서로 만나야 됩니다.
갈라디아서는 우리가 예수 믿을 때 가장 영광스러운 것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라고 선포했 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자유입니다. 종과 손님은 규칙과 규율에 매 어 있지만 자녀는 어떤 것도 가능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자유는 선택에 의해서 행사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자기가 하나님 의 자녀로 새로 태어났는데도 과거 육체의 습관에 따라, 육체의 본질에 따라서 충동적으로 인생의 방향을 선택합니다. 그런가하면 어떤 사람 은 성령의 인도를 받고 성령을 좇아 삽니다. 그러면 성령께서는 우리 속 에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 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 제, 이 아름다운 열매를 그 인생 속 에 맺게 해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 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인생 을 선택하며 살아갑니다. 어떤 때는 잘못 선택해서 범죄할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인생의 범죄는 이 렇게 형성이 됩니다. 한 사람에게 약한 부분이 있습니다. 가령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그 어른에게 거짓말 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아내에게 자기를 오빠로 부르도록 하는 사건을 반복합니다. 그처럼 아 름다운 한 인격 속에 약점이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사단이 약점만 물고 늘어지기 보다는 강점도 물고 늘어 집니다. 그 예가 다윗입니다. 다윗은 아름다움을 잘 느끼는 풍성한 감성 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를 우리에게 남겨진 것만 해도 100편이나 쓴 사람입니다. 그런가하면 그가 음악을 연주하면 혼란스러웠던 사람의 정신 상태가 맑아질 정도로 음악의 명인 이었습니다. 3천년 후인 요즘 사람 들이 그것을 연구하기를 Music Therapy라고 합니다. 음악으로 치 료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미 3천 년 전에 그것을 할 줄 알았던 예술 가 중의 예술가였습니다.
그런데 아 름다움이 극히 발달된 사실은 귀한 일이지만, 반면 자기 눈에 든 아름 다운 여인을 보자 그는 결국 그 장 점이 약점으로 바뀌어지는 실수를 범합니다. 이렇게 장점이 약점이 된 경우를 조도 몇 번 보았습니다. 얼 마나 공부를 잘 하는지, 공부만 하 면 하여튼 유치원 때부터 대학원 때 까지 1등한 분 있습니다. 얼마나 장 점입니까
그런데 그 분은 자기는 절대로 틀릴 수 없다는 착각 속에 살더라구요. 어떻게 보면 장점이 그 인생을 참 초라하게 만들어버려요.
자기 인생을 바로 보지 못하도록 만 들어요. 장점이 약점으로 바뀌는 케 이스입니다.
그런가하면 사람이 어떤 때는 강한데, 어떤 시점에서는 약해 질 수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모세 에 대해서 "이 땅에 모세보다 온유 가 승한 사람이 없다"(민12:3)고 했 습니다. 그렇지만 거듭거듭 원망하 고 거듭거듭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어느 날 갑자기 화가 발동했습니다. 그래서 물을 달라고 외쳐대는 군중 앞에서 "내가 너희에 게 물을 주랴" 그러면서 지팡이로 두 번이나 반석을 칩니다. 하나님께서 이 사랑하는 지도자의 체면을 살 려주기 위해서 물을 줍니다만 그 다음에 그의 잘못을 지적하면서 가나 안 복지에 들어가지 못하겠다고 하 십니다. 그러니까 평생을 참 온유하 게 살았습니다. 이제까지 평생 건강 하게 잘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약해질 때가 있더란 말이예요.
제가 저를 보니까 '아하, 이래서 나 이가 들어가는가 보다' 싶습니다. 왜냐하면 과거에는 너그럽게 대하던 것이 노여워지려고 하는 경향성을 제 스스로 발견합니다. 우리 부모님 이 그러시더라구요. 저희 아버님이 참 관대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나이 가 드니까 쉽게 화를 내고 쉽게 참 지 못하십니다. 그래서 참 아버님이 이상하시다 생각했었는데 요즘 보니 까 제 속에 그것이 있더라구요. 그 때는 강하지만 지금은 약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그것이 어떤 때는 잠깐 약해졌다가 그 시간만 지 나면 회복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모두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기 한 사람이 범죄해서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답지 못하게 살 때 어떻게 해야되는가 우리가 형제, 자매로서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사 도 바울은 "형제들아, 형제들아."부 릅니다. 우리가 형제, 자매인 것을 먼저 알란 말입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 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 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 잡아 라." 범죄가 드러나면 어떻게 해야 된다구요 바로 잡아주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치료해주라는 말입니다.
또 이 말은 원상으로 회복시켜주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원상 으로 되돌리도록 도와주라는 말입니다. 누구에게 말입니까 "신령한 너희는." 그랬습니다. '너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선택해야 된다. 성령의 인도를 받고 성령을 좇아 사는 것을 선택해야 된다. 성령의 지배받는 삶 을 네가 선택해야 된다. 그런 신령 한 너는.' 그렇습니다. 우리가 성령 으로 하지 않고는 다른 사람의 연약 을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화가 복받치면 내 사고가 정지해버립니다. 그 상태는 올바른 상태가 아니 라고 말합니다. "신령한 너희는 성령을 의지하고 살고 있는 너는" 어 떻게요 "온유한 마음으로." 온유 한 마음은 어떤 마음입니까 우리 주님의 마음입니다. "수고하고 무거 운 짐 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 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온유 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 게 배우라."(마11:29) 말씀하신 그 온유함입니다. 이 온유는 부드러운 마음입니다. 이 온유는 여유있는 마음입니다. 이 온유는 넉넉한 마음입니다. 지금 눈 앞에 벌어지는 이 범 죄를 보고 어떻게 넉넉해진 마음, 여유 있는 마음을 갖습니까 그 비 결은 성령을 의지할 때만 가능합니다. 성령의 열매는 충성과 온유와 절제요. 그 마음이 성령을 의지해서 성령의 열매로 연약한 형제들을 바 로 세워주어야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한 가지 경고합니다. "네가 기억해야될 것 있는데 네가 다른 사람을 도와주면서 그 악 에 오염되지 말아라." 그렇게 말합니다. 모리악이라는 사람이 쓴 <루 이 타이스>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거기 보면 한 수도사가 창녀인 이 타이스를 몹시 사랑합니다.
그런데 도리어 그 여자는 성자로 만들고 자 기가 타락해요. 그러니까 우리에게 말하기를 "신령한 너희는 그를 바로 세워줄 뿐 아니라 그 죄의 오염에서 너를 잘 지키라"고 말합니다. 이것 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남의 짐을 지는 삶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 짐은 서로 지는 것입니다. "너희가 서로 짐을 지라"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제 삶의 과 거로 되돌아가 보았습니다. 이동원 목사가 참 연약할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한 30여 년 전 이야기입니다. 수원의 어느 집회를 갔더니 머 리는 장발족이고 빼빼 마른 친구! 지금 이동원 목사를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런 친구가 형님, 형님 좇아 와서는 자기가 당한 어려운 이야기 를 참 많이 했습니다. 이야기로 참 많은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그 때는 제가 좀 도와주었어요.
그런데 언젠 가 또 제가 어려우니까 그 친구가 나를 돕더라구요. 우리들이 서로 그 연약할 때 일으켜 세워주면 그 분이 건강해져서 또 나를 도와줍니다. 서 로 짐을 집니다. 여러분, 사람이 연 약할 때 서로 돕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고 특권인지 모릅니다. 유명 한 개혁자 루터가 너무 일이 어렵고 막막하니까 몹시 실망한 때가 있었 습니다. "하나님, 나는 더 이상 일을 못하겠습니다. 말로 포기할 때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본 자기 아내 가 실망한 남편 앞에 상복을 입고 나갔습니다. "여보, 오늘 누가 돌아 가셨소"하고 남편이 묻자 아내는 "돌아가셨어요.누가 돌아갔소하나님이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니 까 이 루터가 자기 아내를 향해서 역성을 내면서 "당신, 말을 해도.
말을 가려야지. 그런 망발이 어디 있느냐"고 하자 그 아내 캐더린이 자기 남편을 향해서 "여보, 하나님 이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당신이 왜 이렇게 실망합니까 당신에게 처음 진리로 깨닫게 해주신 분도 하나님 이셨고 어렵지만 그 모든 싸움에서 승리케 하셔서 여기까지 오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신데, 그 분이 당신과 동행하는데 옆에 계신 하나님이 죽 지 않았다면 왜 실망하느냐"고 합니다. 그 때 그는 정신을 차립니다.
그리고 다시 힘을 내서 위대한 종교 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냅니다.
사람들은 누구든지 연약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고로 어떤 때는 가까운 사람에게, 어떤 때는 멀리 있는 사람에게 우리들이 교회 안에서 얽힌 사람들 사이에서 서로 격려하고 일 으켜 세워주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자녀가 갖는 특권이고 영광입니다.
짐을 서로 져야 됩니다. 서로 짐을 지는 것은 서로 사랑한다는 다른 표현입니다. 이것은 또 그리스도의 법 입니다. 율법은 정죄합니다. 율법은 잘못을 지적합니다. 그러나 생명의 성령의 법인 그리스도의 법은 함께 삶입니다. 함께 용기를 줍니다. 함께 승리하게 만듭니다.
대표적인 예가 '싼다신'이 라는 인도의 성자입니다. 이 분이 복음 전도 여행길을 갔다가 히말라 야를 넘어옵니다. 몹시 추운 히말라 야를 넘어오는데 도중에 쓰러져 있는 한 사람을 봅니다. 이 사람이 곧 얼어죽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동행 하고 있는 사람에게 이 사람을 좀 같이 끌고 가자고 제안하자 그 동행 자가 말하기를 "이 추위에 우리가 이 사람에게 들러붙어 있으면 셋이 다같이 엉켜죽는다, 안된다, 어떻게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하냐 이 사람, 죽을 사람은 죽게 내버려두고 우리는 가자"고 합니다. 싼다 신이 안떠나니까 그 사람 혼자 떠났습니다. 싼다 신은 등에 얼어 죽어가는 사람을 업었습니다. 업고 낑낑거리 며 반나절을 왔습니다. 그 날 몹시 추운 날이었습니다. 먼저 간 사람은 너무 기온이 내려가니까 추위를 못 견뎌 걸음을 못 걷고 얼어죽어 있었 습니다.
그런데 거의 시체가 된 사람을 등에 업고 오는 사람은 서로 살끼리 부딪치고 열이 나서 땀을 뻘 뻘 흘리며 와서 그 덕분에 추위를 이겨 둘 다 같이 살았습니다.
여러분, 이 시간에 외로운 사람이 있습니까 당신의 외로움을 당신이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지 마 세요. 외로운 사람을 찾아가서 그 사람을 껴안는 수순부터 밟으십시 오. 내게 연약한 부분이 있습니까 그것을 내가 해결하려고 노력을 해 도 해결이 안되면 문제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고쳐주려고 애를 쓰고 그 사람의 짐을 질 때, 주께서 나를 통해서 그 분들을 치료해주실 줄로 믿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그 때 주 께서 놀라운 능력과 은혜로 내 인생 에도 큰 치료와 회복을 허락해주십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법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절대로 하 지 말아야될 것 있습니다. 누가 범 죄해서 우리에게서 끊어졌는데 그것 을 기화로 그 사람을 멸시하고 자기 의 우월성을 자랑하는 일을 해서는 안됩니다. 바리새인들은 이렇게 말 했습니다. "나는 이런 죄도 안지었 고 나는 저 세리처럼 저런 죄도 짓 지 않았고 나는 창녀처럼 나쁜 죄도 짓지 않았고 나는 하나님 앞에 거룩 하게 산 것을 감사합니다." 저자 거 리에서 손을 들고 기도하는 것을 향 해서 "회칠한 무덤"이라고 우리 주 님은 질책하셨습니다. 율법으로는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의 법 안에서는 저주받을 일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이는 자 라."(갈 6:3) 저 사람이 쓰러져 있는 것을 보면서 나는 서 있다고 지금 자고하느냐 웃기는 소리하지 말아 라. 네가 만약 쓰러지지 않고 건강 해서 자랑할 것이 있다면 하나님께 만 자랑하고 하나님께서 네게 주신 은혜를 살피면서 기뻐할 일이지 그 것을 가지고 쓰러져있고 연약해져있는 형제를 멸시하고 우월감에 젖는 다면 그것은 자기가 자기에게 속는 일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상대적인 선에 대해서 만 족합니다. '내가 그래도 저 사람보다는 더 선하다.' 하나님이 그것을 요 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시선 앞 에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런고로 '내 가 무엇인가 이루었다. 나는 그 유 혹에 안넘어간다. 나는 저들과 본질 적으로 다른 인생이다.'라는 것은 자 신을 속이는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주장하는 자세라는 말입니다. 그러 면서 "네가 너의 짐을 똑똑히 지고 가느냐" 묻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네가 네 생애를 범죄하고 무너져있는 사람과 비교해서 생각하지 말고 믿음 의 스승들과 비교해서 온전하게 서 있는가를 살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6절입니다.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 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지금 네 가 쓰러져있는 사람과 비교해서 만 족하지 말고 네게 영향을 주고 말씀 을 주고 네 앞서서 하나님의 사람으 로 멋지게 살았던 사람들과 비교하 면서 그들의 좋은 것을 네 삶 속에 이루어가라는 말입니다. 장점과 대 결해서 승리하라는 말입니다. 사람 들이 이렇게 잘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이 국어를 잘 하는데, 산수는 못합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과 이 야기할 때는, 저 사람은 나 보다 국 어를 못한다고 떠들고 다닙니다. 실 제로 문제는 산수를 잘 못하는 것이 거든요.
그런데 자기가 못하는 것은 보지 않고 조금 나은 것만 자랑하는 사람들, 이 사람들은 발전하지 않습니다. 여기 하나님의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될 것인가를 우리에게 말합니다. 내 믿음의 선배들이 살았던 그 귀한 삶을 좇아서 그들의 좋은 것을 같이 누려야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 들은 지난 4월, 충격적인간증을 들 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감격했는지 모릅니다. 그것을 사 모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실제로 내가 다 누리고 있습 니까 그 분들의 아름다운, 좋은 것 을 다 누리고 있느냐구요 주기철 목사님의 이야기를 들을 때에 연약 한 인생을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살 게 하시는 그 은혜를 우리가 보았습니다. 네가 성령을 의지해서 그 어 려움을 너도 극복하고 있느냐고 묻 고 있습니다. 그 좋은 것을 다 누리 고 있느냐고 묻고 있어요.
이번에 연길에 가서 두 사람을 보면서 참 마음의 깊은 감동과 사모함과 충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은 성백희씨라는 분입니다.
이 분은 원래 중학교 밖에 졸업하지 않은 분입니다. 선원으로 세계 도처 에 돌아다니다가 벤쿠버에서 어떤 분이 영어로 된 4영리를 읽어주는 것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세주와 주님으로 영접했습니다.
그래서 벤쿠버에 들리면 꼭 자신을 전도한 가정에 가서 지내고, 휴가 때는 한달 동안 그 집에서 머물면서 성경을 배우고 배 타고 다니면서도 계속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말씀으 로 자기를 양육해갔습니다. 그러다 가 캘거리로 가게되었는데 캘거리에 서 성경공부하는 그룹에 가서 이 분 이 간증을 하고 또 깨달은 성경을 나누기 시작할 때 사람들이 은혜를 받기 시작했어요. 그 중에 한국 사람들이 모여서 우리도 교회를 시작 하자고 해서 이 분을 중심으로 교회 가 시작되었습니다. 침례교는 신학 교 안다녀도 목사 안수를 줍니다.
이 분의 자질을 여러 사람들이 선하 게 인정해서 목사 안수했습니다. 그 분이 거기서 신학교에 들어가 공부 했습니다. 교회가 참 아름답게 부흥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중국으로 가라는 주님의 명령을 받고 그 분이 중국으로 떠납니다. 떠나기 전에 중 국을 어떻게 섬길까 연구하다가 치 과 기공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중국 에서 치과병원을 세워서 운영하는데 거기에 북한 사람들이 올 때마다 치 아를 치료해주었더니 '이런 좋은 의 료시설이 우리 조국에 있을 수 없는 가' 제안해서 지금 청진에도 병원 이 하나 있습니다. 그 분이 중국에 가서 사역한지가 12-13년 되는데 중국 사람에게 얼마나 존경을 받는 지 모릅니다. 심지어 북한 사람들도 이 분만은 참 존경합니다. 지금 청 진에 있는 병원에서 180명의 사람들 이 일합니다. 지난번에는 청진에 들 어갔다 나오다가 차가 전복되어서 사모님이 허리를 다치시고 목사님도 많이 다치셨습니다. 그래도 그 분과 함께 있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주는 성령의 충만함이 옆에서 훈훈히 전해져 오는 것을 느낍니다. 참 부 러웠습니다. 그 분 앞에서 저는 어 림도 없더라구요.
또 후배 한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이 중국 선교사로 부름받고 자 기는 특별한 능력이 없으니까 중국 에 버려진 고아들을 섬겨야겠다 생각을 해서 아무 것도 없는 곳에 고 아원을 설립했습니다. 설립 과정부터 정말 주님께서 도와주십니다. 조 그만 건물을 지어놓고 거기서 고아 들을 섬기면서 자기 아내와 약속합니다. '우리가 우리 자녀를 낳으면 이 고아들과 아무래도 차별이 되니 까 자녀 낳지 맙시다.' 그 결심을 합니다. 또 '우리가 고아원을 크게 하 면 아이들을 기계적으로 봐주게 되 니까 가족 단위 이상은 넘어가지 맙 시다.'
그런데 작년에 시에서 버렸다 고 해서 한 아이를 데려왔는데 자라 면 되겠거니 보니까 뇌성마비입니다. 그냥 팔 다리가 낙지처럼 흐늘 흐늘 합니다. 그 아이 이름을 신애 라고 지었습니다. 그 아이를 껴안고 기도하다가 하나님 앞에 더 버려진 장애 아이들을 위한 시설이 필요하 다고 간구를 했습니다. 그렇게 기도 했더니 미국 사람들, 불란서 사람들, 한국 학생들이 여름에 와서 집을 지 어줘 이제는 장애아이들을 섬길 수 있는 집을 하나 세웠습니다.
그런데 작년에 누군가 나은 지 하루 된 아 이를 그냥 그 문 앞에 버렸더래요.
울어서 나가보니까 핏덩어리가 있습니다. 이름을 주웠다고 해서 주은애 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주은 아이, 주은애
그런데 이 아이를 자세히 보니까 기형입니다. 혹이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그 이름도 혹을 하나 달자고 해서 애를 혜로 바꾸어서 '주은혜'로 바뀌었습니다. 이 친구가 그 아이를 수술해주어야겠다고 해서 호적을 만들고 여권을 만들어 남서 울교회 김경국 집사님 도움으로 서 울대학병원에서 혹 제거수술을 받았 습니다. 그 때 한국의 신문기자들이 이 멋있는 사건을 기사화하자고 달 려드는 것을 "당신들 이 아이 죽이 고 싶고, 이 아이의 수술을 방해하 고 싶으면 신문기사에 내라"고 했습니다. 그 분들은 신문에도 안내고 정말 주의 사랑으로 섬깁니다. 제가 그 분을 만나서 이야기하면 저를 선 배로 극진히 대접합니다만 그 친구 앞에서 저는 어림도 없더라구요. 그 분의 삶의 가르침 앞에 너무 초라한 나 자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인생 을 살아가면서 범죄하고 무너진 인 생을 보기도 하고 내가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이 때 우리가 다른 사람 이 무너져있는 모습을 볼 때 어떻게 해야됩니까 그 때 온유한 마음으로 저를 원상 회복시켜 주도록 도와야 됩니다. 그러면서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해야 됩니다. 생명의 법입니다.
함께 사는 법입니다. 그 때 하지 말 아야될 것 있습니다. 무엇을 하지 말아야 됩니까 우쭐대면 안됩니다.
무너진 사람 보고 나는 서있다고 자 랑하면 안됩니다. 만약 서있는 것을 자랑하고 싶으면 하나님의 은혜인줄 알고 겸손해야 됩니다. 내가 언제 무너질지 모릅니다. 똑같은 인생입니다. 아무도 세상의 무서운 유혹 앞에, 사탄의 궤계 앞에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면서 주께서 주 신 그 짐을 서로 지고 돕고 나아갑니다. 그러면서 우리들은 우리의 시 선을 실패하고 넘어진 사람이 아니 라 우리 앞서가신 분, 신앙의 스승 들에게 두고, 나를 가르치는 분들과 함께 그 분들의 좋은 것을 누리고 살고 있는가를 점검하기 바랍니다.
이럴 때, 내 인생은 능력있는 인생 으로 복되게 자랄 줄로 믿습니다.
이런 인생을 향해서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맺게 해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런 심령들이 모인 교회를 우리 주님께서 더 크고 영광 스럽게 축복해주실줄로 믿습니다.
이천년대를 시작하면서 이런 교회로 우리 남서울은혜교회가 자라기를 소 원해야겠습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영광의 법, 살리는 법, 열매 맺는 법, 풍성한 삶을 누리는 법, 이 법을 날마다 우리 속에 풍성히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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