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갈6:1-5)
본문
1. 이런 기도문을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 .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의지하여 저희들은 성스럽게 택함을 입어 가지고 글자 그대로 민족의 대표가 되었습니다. 그러하오나 우리들의 책 임이 중차대한 것을 저희들은 느끼고 우리 자신이 진실로 무력한 것을 생각 할 때 지(智)와 인(仁)과 용(勇)과 모든 덕(德)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 앞 에 이러한 요소를 저희들이 간구하나이다. . 중략(中略) . 역사의 첫 걸음을 걷는 오늘의 우리의 환희와 우리의 감격에 넘치는 이 민족적 기쁨을 다 하나님에게 영광과 감사를 올리나이다. 이 모든 말씀을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을 받들어 기도하나이다. 아-멘"
위의 기도문은 1948년 5월 31일 제헌 국회 제 1차 본 회의록에 속기된 것으로 이승만 임시 의장이 단상 의장 석에 등단하여 전 국회의원들에게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자고 제의하여 이윤영 목사가 기도한 것입니다. 그러니 까 우리 나라 국회는 맨 처음 기도로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이렇게 시작한 제헌 국회는 우리 나라의 기초가 되는 헌법을 만들었고, 어제는 바로 그 날을 기념한 제헌절 51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일제에서 해방되어 우리들 스스로 우리의 헌법을 1948년에 갖게 되었을 때, 우린 얼 마나 감격했었습니까 이 법이 있기에 우린 비로소 국가가 되었으며 우리의 권리를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법을 갖고 있는 우리가 힘써야 할 것은 그 법을 존중하고 준 수하는 것입니다. 법은 준수될 때 비로소 그 가치를 갖습니다. 더욱이 헌법 은 국가의 절대권을 갖고 있는 것으로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말 그대 로 모든 이들이 이 법을 지켜야 합니다. 자기에게 유익이 되면 지키고, 해 가 되면 무시한다면 그것은 우리 스스로의 자존권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일찍이 소크라테스 같은 이는 아테네 시민으로 살다가 말년에 모함을 당해 그 법으로 사형을 언도 받았을 때, 많은 이들이 '이 법이 틀렸다, 이 것은 악법이다' 하여 법을 무시하고, 요즘 유행하듯이 해외로 도피할 것을 권하였으나 응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이 법이 틀렸다고는 하지만, 내가 그 동안 이 법의 지배하에 살았는데, 그것이 이제 내게 불리하다고 부인하고 도망간다면 옳은 자세가 아니다'라고 하며 그 유명한 "악법도 법이다!"란 말을 남기고 그 법에 따라 태연히 사형을 당하였습니다. 우리 사회의 정치인들이나 지도자들을 가만 보면 실망스럽게도 이와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자신에게 이로울 때는 법을 찾다가 해롭거나 손해가 될 때에는 악법이기에 필요 없다는 그런 식의 통치자와 지도자가 너 무 많습니다. 법은 절대로 준수돼야 합니다. 그 누구든지 그 공동체의 법은 지켜야 공동체는 건강해 지고, 삽니다.
2. 여기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리스도의 공동체에 주어진 법이 하나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이라면 절대적으로 지켜야 하는 법입니다. 무엇일까요 요13:34-35절,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 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 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내가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말씀 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계명, 즉 그리스도의 법을 지킴으로 알 수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로써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어떻게 하는 것이 서로 사랑하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이 알려줍니다. 2절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그리스도의 법, 그 사랑의 법은 서로 짐을 나눠짐으로 성취됩니다. 어떤 짐이기에 그럽니까 여기서 쓰인 짐이란 단어는 헬라 원어로 "바 레"(bare)라고 하는데 매우 무거운 짐을 뜻합니다. 본문에서 그것은 죄의 짐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죄의 짐만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특별히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 감당하기 어렵고 힘든 짐들을 뜻합니다.
특별히 요19:1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을 때 이 단 어를 쓰고 있습니다. 자기 혼자 지기 힘든 무거운 짐을 말합니다. 눅11:4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당시 민중의 지도자라고하는 바리새인들, 율법사들에 대한 책망이 나옵니다. "가라사대 화 있을진저 또 너희 율법사 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 도다!" 사람들에게 이거 하지 마라, 저거 하지 마라 하면서 끊임없이 무거운 규례와 전통들을 짐 지우고, 자기들은 그들을 도와줄 생각은 하지 않고 감시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하지 말라고 근엄하게 명 할수록 자기들은 그것들을 다 지키는 고귀한 신분인 것같이 여기고, 일반 대중들은 하찮게 본다는 것입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감당키 어려운 규례 와 전통만 만들어 놓고, 그것을 사람들이 지키나 안 지키나 감시하는 공동 체는 진정 사랑의 공동체가 아닙니다. 그 규례와 전통, 규칙들이 꼭 지켜야 할 것이면 그것을 감당할 수 있도록 사람들을 도와주고, 불필요한 것들은 것들이라면 과감히 없애주는 것, 즉 강한 자들이 약한 자들을 붙들어 주는 것이 사랑의 공동체, 예수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시 지도자들과는 달리 수많은 율법 조항에 눌려 있는 백성들을 향 해 율법 조항들을 완벽하게 지킬 것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그 수많은 율법 의 조항보다는 정신이 더 중요하다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수고 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바리새인 같은 지도자들은 감시자였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도움이요, 위로 요, 함께 그 짐을 나누는 친구였습니다. 그러기에 초대교회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법을 이렇게 성취하였습니다.
행15장에 보면,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님을 받기 시작하 였습니다. 그래서 전통에 얽매인 당시 교인들, 특별히 지도자들은 그들에게 도 온전한 유대인같이 율법을 지키도록 강요하였습니다. '단순히 예수만 믿 어서는 안 된다,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할례를 받고, 그 수많은 율법 조 항들을 자기들 유대인같이 무조건 다 지킬 것을 강요하였습니다. 즉 초신자 들에게 너무 많은 것들을 요구하였습니다. 이에 초대 교회 지도자들이 모여서 회의를 한 결과, 사도 베드로는 이 렇게 강변(强辯)하였습니다. "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 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 냐"(행15:10) 유대인 자기들도 너무 무거워 제대로 지지 못하던 율법 조항 들을 왜 이방인에게 지우게 하느냐는 강변입니다. 그래서 초대 교회 총회장 인 야고보는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이방인 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성령님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가한 줄 알았노니"(행15:28) 예수 믿고 구원 받는데 다른 조건, 율법 이 없다는 것입니다! 요즘 젊은이들 옷차림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정신이 하나 없습니다. 어느 주일날 목사님이 배꼽티를 입고 온 자매를 보았습니다. 목사님 은 보기 민망하여 그랬습니다. "자매님, 배꼽은 가리고 오시지요" 그랬더니 자매 왈, "목사님, 왜 그러세요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 보기를 원하신다는 데요." 어릴 때 여름철에 교회 가면 광고 시간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교회에 올 때는 소대나시(소매 없는 윗도리) 입고 오지 마시 오. 스레빠(슬리퍼) 끌고 오지 마시오.'
그런데 요즘은 어떻습니까 아마 그런 복장으로 오지 말라고 한다면 젊은이는
둘째고, 주부들도 못 올 것입니다. 전통적 입장에서 무작정 금하고 야단 칠 일이 아닙니다. 머리에 물들이고, 파마하고, 이리 볶고 저리 볶고 하는 것, 우리 젊은 이들이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못 마땅해 하는 어른들이 많습니다. 나 역시 그러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요란한 머리를 심란하게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렇게 머리카락에 물들인 것과 구원과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머리카락에 빨갛게, 노랗게 물들이면 구원 못 받을까 아니다.
그런데 왜 난 못 마땅해 하는가 구원과는 전혀 관계 없는 것인데, 왜 나는 그것을 마치 마귀 쳐다보듯이 하는가 이것은 내 전통 적 시각, 굳어버린 의식에서 비롯된 편협한 감정은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면서 다시 쳐다보니 애처로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나 예뻐지고 싶으 면 저랬을까 저렇게 물들이려면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보통 정성이 아닌 데. ' 그랬더니, 내 마음이 얼마나 편안해지고, 그들이 얼마나 사랑스러 워지는지., 단번에 예수님의 마음이 이럴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들어왔습니다. 우리 주님은 그 감당키 어려운 무거운 짐들을 벗겨주신 분입니다. 꼭 지켜야 할 것들은 책망하지 않고 도리어 붙들어 주시고, 힘을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 정말 사랑의 공동체, 사랑이 충만한 교회가 되기를 원한다면, 진정 그리스도의 교회가 되기를 원한다면 우리 서 로 이해하고, 무거운 짐을 지어주지 말고, 그것을 붙들어 주고, 그 무거운 짐들을 덜어주기 위해 노력합시다. 그럴 때 우리는 정말 사랑의 공동체, 그리스도의 교회가 될 것입니다. 책망 보다 이해가 앞 서 가는 교회, 좋은 교회입니다.
3.
그런데 이러한 짐을 서로 나누어 짐으로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고 2절에 말씀하셨는데, 5절에 가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각각 자기 의 짐을 질 것임이니라" 이 말씀은 2절 말씀과 서로 상반되는 것이 아닙니 까 조금 의미가 다릅니다. 2절의 짐과 5절의 짐이란 단어가 서로 다릅니다. 말씀드린 바와 같이 2절의 짐은 '바레'로, 무거운 짐을 말합니다. 그러나 5절의 짐은 '포르티온'(phortion)으로 가벼운 짐을 말합니다. 일군이나 군 인들이 지고 갈 수 있는 한도의 짐을 말합니다. 각자가 감당할 수 있는 정 도의 짐, 보따리 짐 정도를 말합니다. 즉 하나님 앞에서 각자 자신이 져야 할 책임을 말합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에게 주어진 짐들이 있습니다. 결코 남에게 미룰 수 없는 짐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감당할 수 있고, 또 감당해야만 하는 짐입니다. 다소 그것이 힘이 들더라도 그것은 내가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그렇고, 교회에서도 그러하며, 직장에서도 그러합니다. 주부는 주부로의 책임, 가장은 가장으로, 자녀는 자녀로의 책임이 다 있습니다. 나 에게 주어진 그 일들을 내가 감당해야 합니다. 찬송가에도 이런 찬송이 있 지 않습니까 "내 주의 지신 십자가 우리는 안 질까 뉘게나 있는 십자가 내게도 있도다." 부모에게 미룰 것이 아닙니다. 식구들에게 떠넘길 것도 아 닙니다. 애꿎은 이웃들에게 책임을 물을 것도 아닙니다. 내가 감당해야 하는 짐, 그 짐은 내가 감당해야 합니다! 비록 그것이 십자가 짐같은 고난이 라도 자신이 감당해야 합니다. 세계적인 영어 사전인 웹스터 사전을 쓴 다니엘 웹스터(D. Webster)는 어느 날 친구들로부터 좌우명을 말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웹스터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일찍이 나의 온 생애를 통하여 내 마음을 사로 잡고 있는 좌우명은, 하나님께 향한 나의 개인적 책임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My Individual Responsibility to God! 하나님께 향한 책임의식, 이 짐을 각각 자신이 져야 합니다. 남에게 미루려고, 남만 탓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일입니다.
4. 법(法)이란 한자를 아실 것입니다.
물 수(水) 자에 갈 거(去) 자입니다. 법이란 무엇인가요 물이 자연스레 흘러가는 것입니다. 아니, 물이 자연스레 흐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뜻, 그리스도의 사랑, 그리스도의 말씀, 진실을 우리들의 삶 속에, 이 사회 속에 그대로 흐르게 하는 것 이 그리스도의 법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이 그리스도의 사랑, 진실, 뜻이 물 흐르듯 그대로 흘러갈 수 있습니까 서로 사랑함으로! 무거운 짐, 감당키 어려운 짐들을 서로 나누어 져야 합니다. 팔짱 끼고, 무관심하게, 냉랭하게 '너 잘 지키나 안 지키나 보자' 하고 있으면 절대로 그리스도의 사랑이 흐르지 않습니다. 또한 자기가 져야 할 책임을 남에게 자꾸 미루고 있어도 그리스도의 사랑은 흐를 수 없습니다. 자기가 져야할 사명, 책임을 안 진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그 짐을 얹혀준다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괴롭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법, 그 사랑의 법!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 공동 체, 교회를 이루기 위해 우리의 법을 지켜야 합니다. 이 사랑의 법을 지켜 가고 성취할 때 우리는 온전한 신앙 공동체를 이룰 수 있습니다. 무거운 짐 을 서로에게 더 이상 지우지 마십시오. 감당하기 어려운 무거운 짐은 서로 나누어 지십시오. 혼자 지고 끙끙 앓는 이들을 돌아보고, 도와주십시오. 동 시에 자기가 져야할 짐은 자기가 지십시오. 누군가가 져 주겠지 하지 말고, 자기의 짐은 자기가 지십시오. 그리할 때 우리의 삶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넘칠 것이며, 우리 공동체, 왕십리 중앙 교회는 그리스도의 교회로 강건해 질 것입니다. 감시하고 지적하고, 야단치는 교회보다는 이해하고, 감싸주고, 나누어 짐지는 교회, 그 뿐 아니라 자기가 해야 할 일은 자기가 하는 그런 교회, 건강한 교회입니다.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진심 으로 바랍니다.
위의 기도문은 1948년 5월 31일 제헌 국회 제 1차 본 회의록에 속기된 것으로 이승만 임시 의장이 단상 의장 석에 등단하여 전 국회의원들에게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자고 제의하여 이윤영 목사가 기도한 것입니다. 그러니 까 우리 나라 국회는 맨 처음 기도로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이렇게 시작한 제헌 국회는 우리 나라의 기초가 되는 헌법을 만들었고, 어제는 바로 그 날을 기념한 제헌절 51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일제에서 해방되어 우리들 스스로 우리의 헌법을 1948년에 갖게 되었을 때, 우린 얼 마나 감격했었습니까 이 법이 있기에 우린 비로소 국가가 되었으며 우리의 권리를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법을 갖고 있는 우리가 힘써야 할 것은 그 법을 존중하고 준 수하는 것입니다. 법은 준수될 때 비로소 그 가치를 갖습니다. 더욱이 헌법 은 국가의 절대권을 갖고 있는 것으로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말 그대 로 모든 이들이 이 법을 지켜야 합니다. 자기에게 유익이 되면 지키고, 해 가 되면 무시한다면 그것은 우리 스스로의 자존권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일찍이 소크라테스 같은 이는 아테네 시민으로 살다가 말년에 모함을 당해 그 법으로 사형을 언도 받았을 때, 많은 이들이 '이 법이 틀렸다, 이 것은 악법이다' 하여 법을 무시하고, 요즘 유행하듯이 해외로 도피할 것을 권하였으나 응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이 법이 틀렸다고는 하지만, 내가 그 동안 이 법의 지배하에 살았는데, 그것이 이제 내게 불리하다고 부인하고 도망간다면 옳은 자세가 아니다'라고 하며 그 유명한 "악법도 법이다!"란 말을 남기고 그 법에 따라 태연히 사형을 당하였습니다. 우리 사회의 정치인들이나 지도자들을 가만 보면 실망스럽게도 이와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자신에게 이로울 때는 법을 찾다가 해롭거나 손해가 될 때에는 악법이기에 필요 없다는 그런 식의 통치자와 지도자가 너 무 많습니다. 법은 절대로 준수돼야 합니다. 그 누구든지 그 공동체의 법은 지켜야 공동체는 건강해 지고, 삽니다.
2. 여기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리스도의 공동체에 주어진 법이 하나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이라면 절대적으로 지켜야 하는 법입니다. 무엇일까요 요13:34-35절,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 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 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내가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말씀 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계명, 즉 그리스도의 법을 지킴으로 알 수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로써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어떻게 하는 것이 서로 사랑하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이 알려줍니다. 2절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그리스도의 법, 그 사랑의 법은 서로 짐을 나눠짐으로 성취됩니다. 어떤 짐이기에 그럽니까 여기서 쓰인 짐이란 단어는 헬라 원어로 "바 레"(bare)라고 하는데 매우 무거운 짐을 뜻합니다. 본문에서 그것은 죄의 짐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죄의 짐만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특별히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 감당하기 어렵고 힘든 짐들을 뜻합니다.
특별히 요19:1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을 때 이 단 어를 쓰고 있습니다. 자기 혼자 지기 힘든 무거운 짐을 말합니다. 눅11:4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당시 민중의 지도자라고하는 바리새인들, 율법사들에 대한 책망이 나옵니다. "가라사대 화 있을진저 또 너희 율법사 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 도다!" 사람들에게 이거 하지 마라, 저거 하지 마라 하면서 끊임없이 무거운 규례와 전통들을 짐 지우고, 자기들은 그들을 도와줄 생각은 하지 않고 감시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하지 말라고 근엄하게 명 할수록 자기들은 그것들을 다 지키는 고귀한 신분인 것같이 여기고, 일반 대중들은 하찮게 본다는 것입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감당키 어려운 규례 와 전통만 만들어 놓고, 그것을 사람들이 지키나 안 지키나 감시하는 공동 체는 진정 사랑의 공동체가 아닙니다. 그 규례와 전통, 규칙들이 꼭 지켜야 할 것이면 그것을 감당할 수 있도록 사람들을 도와주고, 불필요한 것들은 것들이라면 과감히 없애주는 것, 즉 강한 자들이 약한 자들을 붙들어 주는 것이 사랑의 공동체, 예수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시 지도자들과는 달리 수많은 율법 조항에 눌려 있는 백성들을 향 해 율법 조항들을 완벽하게 지킬 것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그 수많은 율법 의 조항보다는 정신이 더 중요하다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수고 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바리새인 같은 지도자들은 감시자였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도움이요, 위로 요, 함께 그 짐을 나누는 친구였습니다. 그러기에 초대교회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법을 이렇게 성취하였습니다.
행15장에 보면,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님을 받기 시작하 였습니다. 그래서 전통에 얽매인 당시 교인들, 특별히 지도자들은 그들에게 도 온전한 유대인같이 율법을 지키도록 강요하였습니다. '단순히 예수만 믿 어서는 안 된다,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할례를 받고, 그 수많은 율법 조 항들을 자기들 유대인같이 무조건 다 지킬 것을 강요하였습니다. 즉 초신자 들에게 너무 많은 것들을 요구하였습니다. 이에 초대 교회 지도자들이 모여서 회의를 한 결과, 사도 베드로는 이 렇게 강변(强辯)하였습니다. "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 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 냐"(행15:10) 유대인 자기들도 너무 무거워 제대로 지지 못하던 율법 조항 들을 왜 이방인에게 지우게 하느냐는 강변입니다. 그래서 초대 교회 총회장 인 야고보는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이방인 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성령님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가한 줄 알았노니"(행15:28) 예수 믿고 구원 받는데 다른 조건, 율법 이 없다는 것입니다! 요즘 젊은이들 옷차림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정신이 하나 없습니다. 어느 주일날 목사님이 배꼽티를 입고 온 자매를 보았습니다. 목사님 은 보기 민망하여 그랬습니다. "자매님, 배꼽은 가리고 오시지요" 그랬더니 자매 왈, "목사님, 왜 그러세요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 보기를 원하신다는 데요." 어릴 때 여름철에 교회 가면 광고 시간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교회에 올 때는 소대나시(소매 없는 윗도리) 입고 오지 마시 오. 스레빠(슬리퍼) 끌고 오지 마시오.'
그런데 요즘은 어떻습니까 아마 그런 복장으로 오지 말라고 한다면 젊은이는
둘째고, 주부들도 못 올 것입니다. 전통적 입장에서 무작정 금하고 야단 칠 일이 아닙니다. 머리에 물들이고, 파마하고, 이리 볶고 저리 볶고 하는 것, 우리 젊은 이들이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못 마땅해 하는 어른들이 많습니다. 나 역시 그러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요란한 머리를 심란하게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렇게 머리카락에 물들인 것과 구원과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머리카락에 빨갛게, 노랗게 물들이면 구원 못 받을까 아니다.
그런데 왜 난 못 마땅해 하는가 구원과는 전혀 관계 없는 것인데, 왜 나는 그것을 마치 마귀 쳐다보듯이 하는가 이것은 내 전통 적 시각, 굳어버린 의식에서 비롯된 편협한 감정은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면서 다시 쳐다보니 애처로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나 예뻐지고 싶으 면 저랬을까 저렇게 물들이려면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보통 정성이 아닌 데. ' 그랬더니, 내 마음이 얼마나 편안해지고, 그들이 얼마나 사랑스러 워지는지., 단번에 예수님의 마음이 이럴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들어왔습니다. 우리 주님은 그 감당키 어려운 무거운 짐들을 벗겨주신 분입니다. 꼭 지켜야 할 것들은 책망하지 않고 도리어 붙들어 주시고, 힘을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 정말 사랑의 공동체, 사랑이 충만한 교회가 되기를 원한다면, 진정 그리스도의 교회가 되기를 원한다면 우리 서 로 이해하고, 무거운 짐을 지어주지 말고, 그것을 붙들어 주고, 그 무거운 짐들을 덜어주기 위해 노력합시다. 그럴 때 우리는 정말 사랑의 공동체, 그리스도의 교회가 될 것입니다. 책망 보다 이해가 앞 서 가는 교회, 좋은 교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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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러한 짐을 서로 나누어 짐으로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고 2절에 말씀하셨는데, 5절에 가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각각 자기 의 짐을 질 것임이니라" 이 말씀은 2절 말씀과 서로 상반되는 것이 아닙니 까 조금 의미가 다릅니다. 2절의 짐과 5절의 짐이란 단어가 서로 다릅니다. 말씀드린 바와 같이 2절의 짐은 '바레'로, 무거운 짐을 말합니다. 그러나 5절의 짐은 '포르티온'(phortion)으로 가벼운 짐을 말합니다. 일군이나 군 인들이 지고 갈 수 있는 한도의 짐을 말합니다. 각자가 감당할 수 있는 정 도의 짐, 보따리 짐 정도를 말합니다. 즉 하나님 앞에서 각자 자신이 져야 할 책임을 말합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에게 주어진 짐들이 있습니다. 결코 남에게 미룰 수 없는 짐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감당할 수 있고, 또 감당해야만 하는 짐입니다. 다소 그것이 힘이 들더라도 그것은 내가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그렇고, 교회에서도 그러하며, 직장에서도 그러합니다. 주부는 주부로의 책임, 가장은 가장으로, 자녀는 자녀로의 책임이 다 있습니다. 나 에게 주어진 그 일들을 내가 감당해야 합니다. 찬송가에도 이런 찬송이 있 지 않습니까 "내 주의 지신 십자가 우리는 안 질까 뉘게나 있는 십자가 내게도 있도다." 부모에게 미룰 것이 아닙니다. 식구들에게 떠넘길 것도 아 닙니다. 애꿎은 이웃들에게 책임을 물을 것도 아닙니다. 내가 감당해야 하는 짐, 그 짐은 내가 감당해야 합니다! 비록 그것이 십자가 짐같은 고난이 라도 자신이 감당해야 합니다. 세계적인 영어 사전인 웹스터 사전을 쓴 다니엘 웹스터(D. Webster)는 어느 날 친구들로부터 좌우명을 말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웹스터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일찍이 나의 온 생애를 통하여 내 마음을 사로 잡고 있는 좌우명은, 하나님께 향한 나의 개인적 책임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My Individual Responsibility to God! 하나님께 향한 책임의식, 이 짐을 각각 자신이 져야 합니다. 남에게 미루려고, 남만 탓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일입니다.
4. 법(法)이란 한자를 아실 것입니다.
물 수(水) 자에 갈 거(去) 자입니다. 법이란 무엇인가요 물이 자연스레 흘러가는 것입니다. 아니, 물이 자연스레 흐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뜻, 그리스도의 사랑, 그리스도의 말씀, 진실을 우리들의 삶 속에, 이 사회 속에 그대로 흐르게 하는 것 이 그리스도의 법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이 그리스도의 사랑, 진실, 뜻이 물 흐르듯 그대로 흘러갈 수 있습니까 서로 사랑함으로! 무거운 짐, 감당키 어려운 짐들을 서로 나누어 져야 합니다. 팔짱 끼고, 무관심하게, 냉랭하게 '너 잘 지키나 안 지키나 보자' 하고 있으면 절대로 그리스도의 사랑이 흐르지 않습니다. 또한 자기가 져야 할 책임을 남에게 자꾸 미루고 있어도 그리스도의 사랑은 흐를 수 없습니다. 자기가 져야할 사명, 책임을 안 진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그 짐을 얹혀준다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괴롭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법, 그 사랑의 법!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 공동 체, 교회를 이루기 위해 우리의 법을 지켜야 합니다. 이 사랑의 법을 지켜 가고 성취할 때 우리는 온전한 신앙 공동체를 이룰 수 있습니다. 무거운 짐 을 서로에게 더 이상 지우지 마십시오. 감당하기 어려운 무거운 짐은 서로 나누어 지십시오. 혼자 지고 끙끙 앓는 이들을 돌아보고, 도와주십시오. 동 시에 자기가 져야할 짐은 자기가 지십시오. 누군가가 져 주겠지 하지 말고, 자기의 짐은 자기가 지십시오. 그리할 때 우리의 삶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넘칠 것이며, 우리 공동체, 왕십리 중앙 교회는 그리스도의 교회로 강건해 질 것입니다. 감시하고 지적하고, 야단치는 교회보다는 이해하고, 감싸주고, 나누어 짐지는 교회, 그 뿐 아니라 자기가 해야 할 일은 자기가 하는 그런 교회, 건강한 교회입니다.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진심 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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