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 (고전2:12-16)
본문
마음은 생각을 만들어 내고 생각은 행동을 결정하고 동기를 부여합니다. 사람은 마음의 생각을 따라 행동하게 되기 때문에 그가 어떤 마음을 품느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가 좌우됩니다. 바울은 본문 16절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다는 것은 신령한 마음 즉 성령님께서 주시는 마음을 뜻합니다. 그 마음을 가졌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본문이 밝혀 주고 있습니다.
1.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됩니다. 12절을 보면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으로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는 것들을알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한평생을 살아가느라면 실로 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은혜를 입고 살게 됩니다. 그러나 그 은혜를 모든 사람이 기억하거나 갚으며 사는 것은아닙니다. 그 은혜나 도움을 잊고 사는 사람도 있고 기억은 하지만 갚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갚기는 커녕 삶은 산수화처럼 곱고 아름답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기억하고 감사하는 삶은 그 어느 아름다움에서도 비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본문은 하나님께로서 온 영인 성령님을 받아야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된다고 했습니다. 성령님을 충만히 받을 수록 하나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혜들을 낱낱이 기억하고 감격하고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시대는 하나님의 은혜는 물론 부모 형제 이웃들에게 대한 고마움을 모르고 사는 불감증 중병에 걸려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라는 용어가 점차 퇴화해 가고 있습니다. 정신분석 학자들은 비정상적인 사회에서 표출되는 집단심리 현상 가운데[집단 히스테리]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구성원 전체가 히스테리 환자처럼 발작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경기침체, 계속되는 무더위,부정적인 사회현상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다 보면 우리들 역시 집단 히스테리에 걸릴 가능성이 많은 것입니다. 어느 유치원에서 원아들에게 역할극을 시키고 그 아이들의 교육환경이나가정환경을 연구확인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를 한쌍 으로 묶어 부부역할을 하도록 했습니다. 사이좋고 오손 도손 얘기를 나누는 부부가 있는가 하면, 앓는 소리를 내며 누워있는 부부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소리를 지르고 싸움을 벌리는 부부도 있었습니다. 그 아이들의 역할은 가정에서 본 그대로를 연출한 것입니다. 오손도손 사 이좋게 사는 것을 지켜보는 아이들은 그 모습을 흉내냈습니다. 부모가 입원해 있거나 병을 앓고 있는 집의 아이들은 그 흉내를 낸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이틀이 멀다하고 싸우고 소리지르고 물건을 집어던지는가 하면 히스테리 발작을 일삼는 부모 밑에 있는 아이들은 역할극도 그런 것 을 해낼 수 밖에 없고, 그림을 그려도 그런 그림을 그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 불감증을 고치고 집단적 히스테리를 치료하려면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은혜를 깨닫고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신령한 것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13절을 보면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 하고 오직 성령님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 느니라"고 했습니다. 미국에서 진행된 월드컴 축구경기를 보려면 미국엘 가야 합니다. 그러나 텔레비젼 중계를 통해 보는 방법이 있습니다. 하늘의 별을 눈으로 관찰하고 세는 것은 어렵습다만 천체를 보는 망원경이 나 첨단 장비로 볼 수 있습니다. 육안으로 내장이나 위장을 들여다 볼 수는 없습다만 내시경으로는 샅샅이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신령한 세계 역시 육신의 눈이나, 경험이나, 지식으로는 볼 수도 없고, 이 해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본문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라고 했고, "신령한 일로 분별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작은 먼지만 들어가도 쑤시고 아픈 눈으로 신령한 세계를 볼 수 없습니다. 변덕스런 인간의 경험으로는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거나 깨달을 수가 없 습니다. 돋보기 안경을 껴도 글씨를 보지 못하는 눈으로 영원하시고 영존하 시고 신령하신 하나님의 보겠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신령한 눈으로 봅시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신령한 지식으로 분별합니다.
그래서 본문 14절을 보면 "이런 일은 영적으로야 분별한다"고 했습니다. 얼핏 보면 세상 지식과 신령한 지식이 비슷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알곡과 가라지처럼 전혀 다른 것입니다. 팔레스타인 지방 밀밭에 나가보면 밀과 가라지가 동시에 섞여 자라고 있습니다 .
그런데 색깔이나,크기나,모양이 비슷하기 때문에 가라지를 골라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추수때가 되면 가라지는 분별이 쉬워집니다. 이유는 가라지는 열매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가라지는 엘러지의 원인 이 되기 때문에 사람에 손해를 줍니다. 세상 지식과 신령한 지식의 경우 비슷합니다.처음엔 오히려 세상 지식이 더 중요하다고 필요한 것처럼 보입니다만 세월이 지날수록 신령한 지식이 사람을 만들어, 역사를 만들고, 가치를 만드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동남아에서 가장 좋은 비싼 차가 많은 나라 그리고 돈이 흔하고 흥청거리 기 좋은 나라를 홍콩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요즈음 홍콩은 10대들의 자살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그 원인을 급속한 경제성장과 정신적 공백, 이혼율의 급증으로 오는 가정 붕괴와 갈등, 1997년 중국으로 통치권이 이양되는 국가사회 심리 의 불안, 상급학교 진학문제가 주는 정신적 압박감, 메마른 고층아파트 문 화의 단조로움, 부부 맞벌이로 인한 대화의 단절 등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영적 존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영적 조건이나 문제가 충족되지 않으면 제 아무리 좋은 환경이나 조건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해결되 지 않는 것입니다. 세속적인 것으로 신령한 것을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신령한 것으로는 신령한 것과 세속적인 것들을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영적인 존재임을 망각하고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문제를 세상 지식과 경험만으로 풀어가려고 한다든지 해결하려고 한다면 엄청난 장벽에 부딪치게 될 것입니다. 신령한 것은 신령한 것으로 풀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했다는 것이나 예수님이 내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은 신령한 사건입니다. 그 신령한 사건을 세상 지식으로 믿으려고 한다면 죽을 때까지 고개를 기웃거리다가 말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신령한 믿음을 소유하게 되면 그 어느 것 하나도 고개를 갸우뚱 거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교회를 들락거리고 감동도 감격도 없이 찬송을 부르고 하나님의 존재를 시 인도 부인도 못하는 어중간한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지금 이시간 신령한 믿음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신령한 마음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신령한 것은 신령한 것으로 믿고 풀어야 합니다.
3. 판단받을 일이 없게 됩니다. 15절을 보면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세 가지 뜻이 있습니다.
1)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영적 판단력을 갖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신령한 판단력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을 보면 성령님께서 주시는 은사 가운데 영분별의 은사가 나옵니다. 본문도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전공이 신학이기 때문에 다른 분야는 잘 모릅니다. 그래서 제 서가에는 주로 신학분야의 책이 많이 꽂혀 있습니다. 대학에서는 철학을 전공했 고, 일반대학원에서는 사회학 분야를 공부했습니다만, 가장 오랫동안 그리고 지금도 계속 접하고 공부하는 분야는 신학분야입니다. 그래서 세상 돌아 가는 것이나 정세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하느라면 세상일의 옳고 그릇됨이 선하 게 떠오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하고 있는 일이나 행동의 옳고 그릇됨이 훤하게 드러납니다. 저는 그것을 성령님께서 주시는 영적 판단력, 혹은 분별 능력이라고 봅니다. 성령님충만하고 말씀이 충만하면 영분별과 판단력이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2) 다른 사람으로부터 판단을 받지 않게 됩니다. 본문 15절을 보면 "신령한 자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성령님충만하고 신령한 삶을 사는 사람은 남의 눈에 거슬리거나 지탄받을 일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충만한 사람은 남에 게 유익을 줄지언정 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덕을 세울지언정 깨뜨리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감싸고 덮어주고 일으켜 세워주기 때문에 어 느 곳에서나 누구든지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됩니다. "쉿 쉿' 바람 소리를 내지 않더라도, 성령님충만하다고 떠들지 않더라도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나 성령님충만한 사람은 하나님이 그를 인정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게 되는 것입니다.
3) 사단이 그를 판단하지 못합니다. 사단은 계속 그리스도의 사람들에게 도전합니다. "너는 아무것도 아니다 너는 죄인이다. 너는 소망이 없다. 너는 죽는다. 너는 패배자다. 너는 교회 를 다녀도 구원받기 힘들다"라면서 괴롭히고 정죄합니다. 그러나 성령님충만 한 사람은 그런 것들이 겁나지 않습니다. 이유는 내가 예수님의 은혜로 죄 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됐다는 것을 확증해 주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2:3을 보면 '누구든지 성령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예수를 주시 라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죄사함 받았다. 하나님의 자녀다. 너는 소망이 있다. 너는 영생을 얻었다."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마귀도 건드리지 못합니다.
4) 주님의 마음을 헤아립니다.
16절을 보면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자녀들은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려야 합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려면 그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주의 마음을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나를 향하신 주님의 뜻이 있고 기대가 있습니다. 그것을 알려면 내가 신령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눈짓만 해도 알아 차리는 것을 마음 이 통한다고 말합니다. 내가 주의 뜻을 알고 그 뜻을 순종하려면 주님의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그 마음은 성령님충만할 때 성립되는 것입니다. 음식을 즐기는 각 나라 사람들의 방법이 각각 다릅니다. 블란서 사람들은 향을 즐깁니다. 그들의 음식은 향기가 나야 합니다. 불란서는 세계에서 가 장 향수문화가 발달된 나라이기도 합니다. 이태리 사람들은 맛을 즐깁니다. 그래서 그들은 각종 소스가 발달되어 있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색깔을 중요 시 합니다. 음식담는 그릇도 각양각색이고 음식도 색깔의 변화를 중요시하 고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양을 중요시합니다. 세계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 [곱배기] 를 주문하는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습니다.그리고 밥주걱으 로 밥을 풀때도 꾹꾹 눌러푸고 산더미처럼 쌓아올려 푸는 것는 우리네 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마음을 즐기고 중요시합니다. 예수가 멋있고 맛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다면 그것이 살 맛이 고, 살멋인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습니까 오 주님, 나는 지금 주님의 마음 갖기는 것이 내 소원입니다. 지금 내 마음 속에 성령님으로 임재하여 주옵소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소서. 아멘.
1.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됩니다. 12절을 보면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으로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는 것들을알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한평생을 살아가느라면 실로 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은혜를 입고 살게 됩니다. 그러나 그 은혜를 모든 사람이 기억하거나 갚으며 사는 것은아닙니다. 그 은혜나 도움을 잊고 사는 사람도 있고 기억은 하지만 갚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갚기는 커녕 삶은 산수화처럼 곱고 아름답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기억하고 감사하는 삶은 그 어느 아름다움에서도 비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본문은 하나님께로서 온 영인 성령님을 받아야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된다고 했습니다. 성령님을 충만히 받을 수록 하나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혜들을 낱낱이 기억하고 감격하고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시대는 하나님의 은혜는 물론 부모 형제 이웃들에게 대한 고마움을 모르고 사는 불감증 중병에 걸려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라는 용어가 점차 퇴화해 가고 있습니다. 정신분석 학자들은 비정상적인 사회에서 표출되는 집단심리 현상 가운데[집단 히스테리]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구성원 전체가 히스테리 환자처럼 발작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경기침체, 계속되는 무더위,부정적인 사회현상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다 보면 우리들 역시 집단 히스테리에 걸릴 가능성이 많은 것입니다. 어느 유치원에서 원아들에게 역할극을 시키고 그 아이들의 교육환경이나가정환경을 연구확인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를 한쌍 으로 묶어 부부역할을 하도록 했습니다. 사이좋고 오손 도손 얘기를 나누는 부부가 있는가 하면, 앓는 소리를 내며 누워있는 부부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소리를 지르고 싸움을 벌리는 부부도 있었습니다. 그 아이들의 역할은 가정에서 본 그대로를 연출한 것입니다. 오손도손 사 이좋게 사는 것을 지켜보는 아이들은 그 모습을 흉내냈습니다. 부모가 입원해 있거나 병을 앓고 있는 집의 아이들은 그 흉내를 낸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이틀이 멀다하고 싸우고 소리지르고 물건을 집어던지는가 하면 히스테리 발작을 일삼는 부모 밑에 있는 아이들은 역할극도 그런 것 을 해낼 수 밖에 없고, 그림을 그려도 그런 그림을 그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 불감증을 고치고 집단적 히스테리를 치료하려면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은혜를 깨닫고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신령한 것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13절을 보면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 하고 오직 성령님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 느니라"고 했습니다. 미국에서 진행된 월드컴 축구경기를 보려면 미국엘 가야 합니다. 그러나 텔레비젼 중계를 통해 보는 방법이 있습니다. 하늘의 별을 눈으로 관찰하고 세는 것은 어렵습다만 천체를 보는 망원경이 나 첨단 장비로 볼 수 있습니다. 육안으로 내장이나 위장을 들여다 볼 수는 없습다만 내시경으로는 샅샅이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신령한 세계 역시 육신의 눈이나, 경험이나, 지식으로는 볼 수도 없고, 이 해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본문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라고 했고, "신령한 일로 분별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작은 먼지만 들어가도 쑤시고 아픈 눈으로 신령한 세계를 볼 수 없습니다. 변덕스런 인간의 경험으로는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거나 깨달을 수가 없 습니다. 돋보기 안경을 껴도 글씨를 보지 못하는 눈으로 영원하시고 영존하 시고 신령하신 하나님의 보겠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신령한 눈으로 봅시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신령한 지식으로 분별합니다.
그래서 본문 14절을 보면 "이런 일은 영적으로야 분별한다"고 했습니다. 얼핏 보면 세상 지식과 신령한 지식이 비슷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알곡과 가라지처럼 전혀 다른 것입니다. 팔레스타인 지방 밀밭에 나가보면 밀과 가라지가 동시에 섞여 자라고 있습니다 .
그런데 색깔이나,크기나,모양이 비슷하기 때문에 가라지를 골라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추수때가 되면 가라지는 분별이 쉬워집니다. 이유는 가라지는 열매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가라지는 엘러지의 원인 이 되기 때문에 사람에 손해를 줍니다. 세상 지식과 신령한 지식의 경우 비슷합니다.처음엔 오히려 세상 지식이 더 중요하다고 필요한 것처럼 보입니다만 세월이 지날수록 신령한 지식이 사람을 만들어, 역사를 만들고, 가치를 만드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동남아에서 가장 좋은 비싼 차가 많은 나라 그리고 돈이 흔하고 흥청거리 기 좋은 나라를 홍콩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요즈음 홍콩은 10대들의 자살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그 원인을 급속한 경제성장과 정신적 공백, 이혼율의 급증으로 오는 가정 붕괴와 갈등, 1997년 중국으로 통치권이 이양되는 국가사회 심리 의 불안, 상급학교 진학문제가 주는 정신적 압박감, 메마른 고층아파트 문 화의 단조로움, 부부 맞벌이로 인한 대화의 단절 등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영적 존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영적 조건이나 문제가 충족되지 않으면 제 아무리 좋은 환경이나 조건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해결되 지 않는 것입니다. 세속적인 것으로 신령한 것을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신령한 것으로는 신령한 것과 세속적인 것들을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영적인 존재임을 망각하고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문제를 세상 지식과 경험만으로 풀어가려고 한다든지 해결하려고 한다면 엄청난 장벽에 부딪치게 될 것입니다. 신령한 것은 신령한 것으로 풀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했다는 것이나 예수님이 내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은 신령한 사건입니다. 그 신령한 사건을 세상 지식으로 믿으려고 한다면 죽을 때까지 고개를 기웃거리다가 말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신령한 믿음을 소유하게 되면 그 어느 것 하나도 고개를 갸우뚱 거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교회를 들락거리고 감동도 감격도 없이 찬송을 부르고 하나님의 존재를 시 인도 부인도 못하는 어중간한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지금 이시간 신령한 믿음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신령한 마음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신령한 것은 신령한 것으로 믿고 풀어야 합니다.
3. 판단받을 일이 없게 됩니다. 15절을 보면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세 가지 뜻이 있습니다.
1)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영적 판단력을 갖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신령한 판단력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을 보면 성령님께서 주시는 은사 가운데 영분별의 은사가 나옵니다. 본문도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전공이 신학이기 때문에 다른 분야는 잘 모릅니다. 그래서 제 서가에는 주로 신학분야의 책이 많이 꽂혀 있습니다. 대학에서는 철학을 전공했 고, 일반대학원에서는 사회학 분야를 공부했습니다만, 가장 오랫동안 그리고 지금도 계속 접하고 공부하는 분야는 신학분야입니다. 그래서 세상 돌아 가는 것이나 정세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하느라면 세상일의 옳고 그릇됨이 선하 게 떠오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하고 있는 일이나 행동의 옳고 그릇됨이 훤하게 드러납니다. 저는 그것을 성령님께서 주시는 영적 판단력, 혹은 분별 능력이라고 봅니다. 성령님충만하고 말씀이 충만하면 영분별과 판단력이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2) 다른 사람으로부터 판단을 받지 않게 됩니다. 본문 15절을 보면 "신령한 자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성령님충만하고 신령한 삶을 사는 사람은 남의 눈에 거슬리거나 지탄받을 일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충만한 사람은 남에 게 유익을 줄지언정 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덕을 세울지언정 깨뜨리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감싸고 덮어주고 일으켜 세워주기 때문에 어 느 곳에서나 누구든지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됩니다. "쉿 쉿' 바람 소리를 내지 않더라도, 성령님충만하다고 떠들지 않더라도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나 성령님충만한 사람은 하나님이 그를 인정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게 되는 것입니다.
3) 사단이 그를 판단하지 못합니다. 사단은 계속 그리스도의 사람들에게 도전합니다. "너는 아무것도 아니다 너는 죄인이다. 너는 소망이 없다. 너는 죽는다. 너는 패배자다. 너는 교회 를 다녀도 구원받기 힘들다"라면서 괴롭히고 정죄합니다. 그러나 성령님충만 한 사람은 그런 것들이 겁나지 않습니다. 이유는 내가 예수님의 은혜로 죄 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됐다는 것을 확증해 주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2:3을 보면 '누구든지 성령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예수를 주시 라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죄사함 받았다. 하나님의 자녀다. 너는 소망이 있다. 너는 영생을 얻었다."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마귀도 건드리지 못합니다.
4) 주님의 마음을 헤아립니다.
16절을 보면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자녀들은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려야 합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려면 그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주의 마음을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나를 향하신 주님의 뜻이 있고 기대가 있습니다. 그것을 알려면 내가 신령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눈짓만 해도 알아 차리는 것을 마음 이 통한다고 말합니다. 내가 주의 뜻을 알고 그 뜻을 순종하려면 주님의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그 마음은 성령님충만할 때 성립되는 것입니다. 음식을 즐기는 각 나라 사람들의 방법이 각각 다릅니다. 블란서 사람들은 향을 즐깁니다. 그들의 음식은 향기가 나야 합니다. 불란서는 세계에서 가 장 향수문화가 발달된 나라이기도 합니다. 이태리 사람들은 맛을 즐깁니다. 그래서 그들은 각종 소스가 발달되어 있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색깔을 중요 시 합니다. 음식담는 그릇도 각양각색이고 음식도 색깔의 변화를 중요시하 고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양을 중요시합니다. 세계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 [곱배기] 를 주문하는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습니다.그리고 밥주걱으 로 밥을 풀때도 꾹꾹 눌러푸고 산더미처럼 쌓아올려 푸는 것는 우리네 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마음을 즐기고 중요시합니다. 예수가 멋있고 맛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다면 그것이 살 맛이 고, 살멋인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습니까 오 주님, 나는 지금 주님의 마음 갖기는 것이 내 소원입니다. 지금 내 마음 속에 성령님으로 임재하여 주옵소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소서. 아멘.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