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마음 (빌2:5-11)
본문
사람이 정직하게 산다는 것이 생각보다는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특별히 자신의 마음에 대해 정직하게 인정하고 사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감정에 대해 노력인지 위선인지 혼란스러워 하는 경우가 신앙인 가운데도 종종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무릇 지킬만한 어떤 것보다 마음을 지키라고 말하고 있기도 합니다. 성경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만큼 인간의 생활에서 마음이 중요하다는 말일 것입니다. 예수님도 우리의 신앙을 요구하실 때 형식보다는 마음을 요구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야 할 것입니다. 내 마음은 무엇에 관심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신앙인들의 고민은 이렇습니다. 예수님을 닮고 싶은데 어렵다는 것입니다. 과연 닮고 싶은데 어렵기만해서 안되는 것일까요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일까요 우리는 이러한 시각, 즉 예수를 닮고 싶다는 말을 하지만 그것은 신앙의 양심에 국한 된 것이고 실제적으로 닮고 싶은 인생은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은 것을 완벽하게 소유한 사람을 소망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정직한 마음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각에서 우리의 진실을 찾아 볼 필요도 있을 것입니다. 어떠면 우리가 예수님을 닮기 어려워하는 것은 우리의 관심이 그리스도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으로부터 무시당하고 조롱당하는 일에 대해 흥분하거나 분노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그리고 그때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으로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존재가 무시 당하거나 조롱 당한다는 느낌이 들면 모든 지식을 동원하여 분노하며 흥분합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삶에 감격과 만족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진정으로 여호와 하나님과 누리는 교제를 하기 원한다면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를 어렵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어 해결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러한 전제, 즉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또 하나의 비밀한 약속인 것입니다. 본문은 이렇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리고 바울은 이 마음의 특징과 삶의 결과를 선언합니다. 이제 우리는 이 말씀을 근거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신앙인다운 삶이 되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그리스도의 마음은 순종하는 마음이다(빌2:6-8)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사는 삶이 어떤 삶인가에 대해 바울 사도는 명쾌하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6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과 같이 되었고” 이 말씀에 보면 예수님의 순종은 겸손이 먼저 선재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었다는 것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 있다는 말로 해석을 해도 틀린 해석이 아닐 것입니다. 진정한 순종은 진정한 겸손을 요구합니다. 진정한 겸손이라는 말은 자신의 자존감이나 생각이나 기준을 포기하고 상대의 요구를 옳다고 인정하는 동의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앞에서 자신을 부인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부인하지 않는다면 결코 지금의 자신을 변화 시킬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람을 변하게 하는 것은 세월이 아니라 마음인 것입니다. 결코 신앙의 경륜이나 종교적인 형식의 반복속에서 변화를 경험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진정한 변화는 바로 자신의 마음의 변화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은 바로 나를 부인하는 겸손으로부터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겸손이 순종이라는 행동적인 열매를 맺게 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겸손은 구체적인 순종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결코 하나님의 뜻에 동의 한다는 지적인 동질감에 멈추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으로 오심에 순종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인간의 연약함을 지니시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인간의 연약함을 겟세마네 동산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물론 성경 여러 곳에서 인간의 연약함이 나타나지만 내적인 연약함이 선명하게 드러난 곳은 바로 겟세마네의 기도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할 수 있거든 이 잔을 내게서 피하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여기서 예수님은 자신의 인간의 뜻을 밝힙니다. 인간이기에 고백할 수 밖에 없는 연약함을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만약 여기까지가 예수님의 결단이었다면 우리의 구속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을 품기원한다면 그것은 바로 순종을 원한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에 나타나는 많은 신앙인들의 비극은 하나님의 뜻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순종하지 않는 인간의 이기심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순종을 거부하기 위해 환경이나 자신의 연약함을 호소합니다. 내가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거나 싫어서가 아니라 환경이 그리고 나의 연약함이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진정 하나님이 나에게 순종을 원하신다면 먼저 환경을 변화시켜주시고 나에게 남들보다 부끄럽지 않은 힘을 달라고 말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다고 강력하게 협박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것처럼 말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순종하지 못하는 잘못을 범하는 것입니다. 결코 자신의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없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의 마음은 사랑입니다.(빌2:8) 성경은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여기서 순종의 한계와 내용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자 한다면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다면 바로 기록된 것처럼 “죽기까지”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이 순종해야 할 내용이었습니다. 그것은 십자가였습니다.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어야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도대체 십자가에 죽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며 순종일 수 밖에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에 비밀은 바로 우리의 죄를 위한 사랑의 순종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랑이 없이는 순종이 불가능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희생이었으며 인간으로서는 예상할 수 없는 일방적인 사랑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아무런 조건도 제시하지 않으시고 그렇게 하나님의 사랑앞에 순종하셨습니다. 우리의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은 이렇게 다릅니다. 우리는 타인의 희생앞에 감동할 줄은 알지만 자신을 희생하는데는 대단히 인색합니다. 그것이 인간의 한계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신앙의 힘은 어디에 있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물질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또 육신의 재능적인 면에서 일방적인 희생은 거부합니다. 거부정도가 아니라 분노의 마음으로 노예가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분노를 합리화 시킵니다. 거기에는 사랑이 없습니다. 그 분노에는 그리스도의 마음이 없습니다. 그래서 고통을 경험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살기를 원한다면 계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사랑의 논리에서 벗어나야 할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무지를 인정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이 절대라고 믿는 사람일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앞에서 조차 자신을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인간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가장 무서운 사람인 것입니다.
3. 그리스도의 마음의 결과(빌2:9-11)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살았을 때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경험될 것인가 우리는 물어야 할 것입니다. 과연 그러한 인생이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본문은 이 순종이 나타난후 하나님의 간섭이 분명하게 보여지고 있습니다. 이 영광은 모든 인간이 경험하고 볼 수 있는 완전한 영광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순종과 사랑의 결단을 감추지 않으시고 모든 창조앞에 선포하시며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만나는 영광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산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이 나의 인생에 간섭할 수 밖에 없다는 말이기도 한 것입니다. 여기서부터는 우리의 상식과 생각으로 경험할 수 없는 인생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진정 의미있는 인생을 살기 원한다면 우리는 다른 어떤 것보다 그리스도의 마음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며 그 마음을 우리안에 품기 위한 간절한 소망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마음이 없다면 우리는 이기적인 생각에 노예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잘못된 집착과 분노로 자신의 인생을 비참하게 전락시키며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던져주는 어리석은 인생으로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며 세상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빼어라 그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다면 우리는 사랑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자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그리스도의 마음에 사랑이 나타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만약 형제자매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하는데 나의 그 어떤 것이 장애가 된다면 그 어떤 원칙도 포기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것이 원칙이며 신앙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저는 여러분과의 관계가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자하는 열망이 나와 여러분의 공통적인 고민의 주제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우리 눈에 있는 편견과 이기심과 계산적인 들보를 빼고 예수님의 겸손과 사랑과 순종의 마음으로 형제의 눈에 티를 제거해 주기를 바랍니다. 진정 우리 교회안에서 마음적으로 경제적으로 육신적으로 어려운 사람이 누군가를 살펴보며 나의 작은 사랑이 필요한 곳이 있다면 순종하며 삽시다. 우리는 형제고 자매입니다. 결코 우리는 서로를 아프게 해야 할 이유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오히려 서로의 아픔을 나누어야 할 사람들이 여기에 모였습니다. 이제는 서로를 책임지는 성실한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야 할 것입니다. 내 마음은 무엇에 관심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신앙인들의 고민은 이렇습니다. 예수님을 닮고 싶은데 어렵다는 것입니다. 과연 닮고 싶은데 어렵기만해서 안되는 것일까요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일까요 우리는 이러한 시각, 즉 예수를 닮고 싶다는 말을 하지만 그것은 신앙의 양심에 국한 된 것이고 실제적으로 닮고 싶은 인생은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은 것을 완벽하게 소유한 사람을 소망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정직한 마음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각에서 우리의 진실을 찾아 볼 필요도 있을 것입니다. 어떠면 우리가 예수님을 닮기 어려워하는 것은 우리의 관심이 그리스도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으로부터 무시당하고 조롱당하는 일에 대해 흥분하거나 분노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그리고 그때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으로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존재가 무시 당하거나 조롱 당한다는 느낌이 들면 모든 지식을 동원하여 분노하며 흥분합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삶에 감격과 만족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진정으로 여호와 하나님과 누리는 교제를 하기 원한다면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를 어렵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어 해결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러한 전제, 즉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또 하나의 비밀한 약속인 것입니다. 본문은 이렇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리고 바울은 이 마음의 특징과 삶의 결과를 선언합니다. 이제 우리는 이 말씀을 근거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신앙인다운 삶이 되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그리스도의 마음은 순종하는 마음이다(빌2:6-8)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사는 삶이 어떤 삶인가에 대해 바울 사도는 명쾌하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6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과 같이 되었고” 이 말씀에 보면 예수님의 순종은 겸손이 먼저 선재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었다는 것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 있다는 말로 해석을 해도 틀린 해석이 아닐 것입니다. 진정한 순종은 진정한 겸손을 요구합니다. 진정한 겸손이라는 말은 자신의 자존감이나 생각이나 기준을 포기하고 상대의 요구를 옳다고 인정하는 동의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앞에서 자신을 부인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부인하지 않는다면 결코 지금의 자신을 변화 시킬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람을 변하게 하는 것은 세월이 아니라 마음인 것입니다. 결코 신앙의 경륜이나 종교적인 형식의 반복속에서 변화를 경험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진정한 변화는 바로 자신의 마음의 변화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은 바로 나를 부인하는 겸손으로부터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겸손이 순종이라는 행동적인 열매를 맺게 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겸손은 구체적인 순종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결코 하나님의 뜻에 동의 한다는 지적인 동질감에 멈추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으로 오심에 순종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인간의 연약함을 지니시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인간의 연약함을 겟세마네 동산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물론 성경 여러 곳에서 인간의 연약함이 나타나지만 내적인 연약함이 선명하게 드러난 곳은 바로 겟세마네의 기도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할 수 있거든 이 잔을 내게서 피하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여기서 예수님은 자신의 인간의 뜻을 밝힙니다. 인간이기에 고백할 수 밖에 없는 연약함을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만약 여기까지가 예수님의 결단이었다면 우리의 구속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을 품기원한다면 그것은 바로 순종을 원한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에 나타나는 많은 신앙인들의 비극은 하나님의 뜻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순종하지 않는 인간의 이기심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순종을 거부하기 위해 환경이나 자신의 연약함을 호소합니다. 내가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거나 싫어서가 아니라 환경이 그리고 나의 연약함이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진정 하나님이 나에게 순종을 원하신다면 먼저 환경을 변화시켜주시고 나에게 남들보다 부끄럽지 않은 힘을 달라고 말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다고 강력하게 협박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것처럼 말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순종하지 못하는 잘못을 범하는 것입니다. 결코 자신의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없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의 마음은 사랑입니다.(빌2:8) 성경은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여기서 순종의 한계와 내용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자 한다면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다면 바로 기록된 것처럼 “죽기까지”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이 순종해야 할 내용이었습니다. 그것은 십자가였습니다.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어야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도대체 십자가에 죽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며 순종일 수 밖에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에 비밀은 바로 우리의 죄를 위한 사랑의 순종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랑이 없이는 순종이 불가능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희생이었으며 인간으로서는 예상할 수 없는 일방적인 사랑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아무런 조건도 제시하지 않으시고 그렇게 하나님의 사랑앞에 순종하셨습니다. 우리의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은 이렇게 다릅니다. 우리는 타인의 희생앞에 감동할 줄은 알지만 자신을 희생하는데는 대단히 인색합니다. 그것이 인간의 한계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신앙의 힘은 어디에 있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물질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또 육신의 재능적인 면에서 일방적인 희생은 거부합니다. 거부정도가 아니라 분노의 마음으로 노예가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분노를 합리화 시킵니다. 거기에는 사랑이 없습니다. 그 분노에는 그리스도의 마음이 없습니다. 그래서 고통을 경험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살기를 원한다면 계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사랑의 논리에서 벗어나야 할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무지를 인정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이 절대라고 믿는 사람일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앞에서 조차 자신을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인간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가장 무서운 사람인 것입니다.
3. 그리스도의 마음의 결과(빌2:9-11)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살았을 때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경험될 것인가 우리는 물어야 할 것입니다. 과연 그러한 인생이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본문은 이 순종이 나타난후 하나님의 간섭이 분명하게 보여지고 있습니다. 이 영광은 모든 인간이 경험하고 볼 수 있는 완전한 영광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순종과 사랑의 결단을 감추지 않으시고 모든 창조앞에 선포하시며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만나는 영광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산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이 나의 인생에 간섭할 수 밖에 없다는 말이기도 한 것입니다. 여기서부터는 우리의 상식과 생각으로 경험할 수 없는 인생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진정 의미있는 인생을 살기 원한다면 우리는 다른 어떤 것보다 그리스도의 마음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며 그 마음을 우리안에 품기 위한 간절한 소망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마음이 없다면 우리는 이기적인 생각에 노예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잘못된 집착과 분노로 자신의 인생을 비참하게 전락시키며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던져주는 어리석은 인생으로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며 세상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빼어라 그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다면 우리는 사랑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자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그리스도의 마음에 사랑이 나타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만약 형제자매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하는데 나의 그 어떤 것이 장애가 된다면 그 어떤 원칙도 포기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것이 원칙이며 신앙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저는 여러분과의 관계가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자하는 열망이 나와 여러분의 공통적인 고민의 주제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우리 눈에 있는 편견과 이기심과 계산적인 들보를 빼고 예수님의 겸손과 사랑과 순종의 마음으로 형제의 눈에 티를 제거해 주기를 바랍니다. 진정 우리 교회안에서 마음적으로 경제적으로 육신적으로 어려운 사람이 누군가를 살펴보며 나의 작은 사랑이 필요한 곳이 있다면 순종하며 삽시다. 우리는 형제고 자매입니다. 결코 우리는 서로를 아프게 해야 할 이유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오히려 서로의 아픔을 나누어야 할 사람들이 여기에 모였습니다. 이제는 서로를 책임지는 성실한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권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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