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롬8:1-17)
본문
오늘 본문의 말씀은…. 사도 바울이 로마서 7장에서 겉 사람과 속 사람의 싸움에서 선을 행하기를 원하는 속 사람을 겉 사람이 이기고, 미워하는 바 악을 행하게 되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로마서 7:24절/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오호라!”의 탄식을 발하며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자신의 곤고한 모습을 고백하고 있다. 바로 우리들 자신의 모습이다. 로마서 7:25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 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곧 속 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섬기고 (선을 행하기를 원하고) 육신으로는 곧 겉 사람은 죄의 법을 섬긴다 (미워하는 악을 행한다) 다시 말해서, 속 사람과 겉 사람의 끝없는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자신이 겉 사람의 승리로 끝나고 있음에 “오호라!”의 탄식을 외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인 로마서 8장에 들어와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승리!”를 외치고 있다. 결코 정죄함이 없다! 율법의 요구가 다 이루어지게 하셨다!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이다! 곧 하나님의 자녀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바로 사도 바울의 엔 크리스토(ν Χριστ:in Christ)이다. 사도 바울의 이 엔 크리스토(ν Χριστ:in Christ)는 그리스도 예수와의 신비한 연합을 뜻한다. 사도 바울의 애용구로 에배소서에서 가장 많이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애용구를 살펴보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롬3:24), 예수 그리스도 안에(살전1:1), 그리스도 안에(롬9:1), 예수 안에(엡2:22), 주 안에(롬16:2), 그 안에(엡1:11), 등 모두 같은 말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의 승리입니다.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율법의 요구가 다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의 를 가진 자이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곧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사도 바울이 말씀하시는엔 크리스토(ν Χριστ:in Christ)의 사람들 바로 새로운 피조물이요,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것이 된 사람들입니다. 그들에 관해서 오늘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져 합니다.
1.결코 정죄함이 없는 자이다-(죄에서 해방된 자)-본문 1-2절/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님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 였음이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님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1.정죄함이 없다. 예수 안에 있는 나에게 결코 정죄함 없네 이것이 바로 은혜이다. 정죄 받아야 마땅한데, 징벌을 받아야 마땅한데, 멸망을 받아야 마땅한데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이 모든 형벌을 면케 하시고, 자녀의 자리로 옮겨 주시고 이제는 정죄함이 없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은혜이다. 여기서 우리 성도들이 한 가지 먼저 알아두어야 할 사실은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법을 어겨도 “죄가 아니다”는 말씀이 아니다. 법을 어기면 죄가 된다.
2.생명의 성령님의 법 로마서 6:15절/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말씀과 죄를 지어도 괜찮다는 말씀은 전혀 다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단호하게 밝힌다. “그럴 수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생명의 성령님의 법 아래 있는 자이다. 그래서, 생명의 성령님의 법에 순종해야 한다. 자신을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느냐에 따라 죄의 종이 되기도, 의의 종이 되기도 한다(롬6:16-18).
3.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 로마서 6:18절/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죄에게서 “해방”이 되었다는 말은 죄를 지어도 좋다는 것이 아니다. 의의 종이 되었다는 말이다. 의를 행할 때 죄에서 해방이 되는 것이다. 사망에서 해방이 되는 것이다. 갈라디아 5:16-18절/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님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 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님을 거스리고 성령님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 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 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님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성령님을 좇아 행하라” 생명의 성령님의 법에 순종하라는 말씀이다. 다시 말해서 의의 종이 되라는 것이다. 의의 종 곧 성령님의 소욕을 좇는 것은 육신의 소욕을 거스리는 것이요, 서로 대적하여 싸우는 일이라고 했다. “성령님의 인도하신 바가 되면” 의의 종이 되느냐, 죄의 종이 되느냐 곧 속 사람과 겉 사람의 싸움에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때에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곧 승리를 하게 된다는 말씀이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자” 바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 이 예수 안에 있는 자 만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다. 그것은 예수 안에 있는 자 에게 그리스도의 영이 있기 때문이다. 히브리 12:4절/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 “너희가 죄와 싸우되”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면 누워서 떡 먹기로 죄를 이기고 승리하는 게 아니다. 피 흘리기까지 대항해야 승리가 있는 것이다. 이 말씀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않고서는 피 흘리기까지 죄와 대항하여 싸울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육체의 소욕을 거스리고 성령님의 소욕을 좇아 죄와 싸우는 자입니다. 그리 쉽게 승리를 얻을 수 있었다면 “오호라!”의 탄식을 외쳤겠는가 사도 바울은 승리를 위해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했다고 했습니다(고전9:27). 어디 그뿐인가요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했습니다(고전15:31).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생명의 성령님의 법으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자입니다. 그래서, 죄를 지어도 괜찮다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성령님의 소욕을 좇는 의의 종이 되라는 것입니다. 육체의 소욕을 거스려 죄와 싸워 이기고 의의 종이 되는 삶 누워 떡 먹기로, 그리 쉬운 게 아닙니다. 내 몸을 쳐 복종시켜야 합니다. 날마다 죽는 십자가 앞에 자신을 내려놓는 삶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이 시간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 안에 있는 자로서 나는 피 흘리기까지 죄와 싸우는 삶을 살아가는지 그래서, 승리하는 삶인지 아니면, 너무도 쉽게 무너지고 마는지 한 번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2.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한 자이다-(복음 안에 있는 자)-본문 3-4절/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 려 하심이니라/ 율법은 “의의 표준”으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의의 요구”이다. 곧 “율법의 요구”이다. 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의의 요구” 곧 “율법의 요구”에 “완전히 충족”할 때에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율법의 요구”는 온 율법을(100%), 항상(쉬지 않고 계속), 하나에도 거치지 않고(100%) 완전히 지켜야 하는 것이다.
1.육신이 연약하여 할 수 없다. 범죄한 아담의 후손은 이 “율법의 요구”를 이룰 수가 없다. 그래서, 본문 3절은 “육신이 연약하여 할 수 없다”고 했다. 어떻게 우리가 온 율법을(100%), 항상(쉬지 않고 계속), 하나에도 거치지 않고(100%) 완전히 지킬 수 있겠는가 “육신이 연약하여 할 수 없다” 이 말씀은 내가 100% 완전히는 못하지만 10%, 20%, 30% 등은 할 수 있다는 말씀이 아니다. 범죄한 아담의 후손은 그 “범죄”에 대한 흠도 없고, 점도 없는 대속의 제물 이 없다는 말씀이다. 범죄한 아담의 후손으로 “생명”을 대속할 “죄 없는 생명”을 가진 자가 없기 때문이다.
2.하나님은 하신다. 그래서, “죄 없는 생명”으로 하나님 자신이 친히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이다. 바로 “성육신” 하신 것이다. 그 “성육신” 하신 하나님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그 예수님은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셨다. 그래서, 우리와 똑같은 성정을 가지셨다. 죄 있는 육신으로 오신 게 아니다.
그렇다면 그 예수님도 “대속의 제물”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셨기에 죄는 없으셨고, 우리와 똑같은 성정을 가지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친히 체휼하셨다. 모 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셨으나 범죄치 아니하셨다. 그래서, 죄를 알지도 못하셨다고 한다(고후5:21).
㉡.육신에 죄를 정하셨다.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신 그 육신에 죄를 정하신 것이다. 자신이 범죄하여 정죄하심으로 죄를 정하신 것이 아니다. 세상 죄를 짊어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그에게 온 세상의 죄를 정하신 것이다. 여기서 죄를 “정했다” 하는 말은 카타크리노(κατακρινω)란 단어로 정죄하다, 선고하다, 저주하다란 뜻이다. “죄를 정했 다”에서 부정과거의 시제를 사용함으로 한 번 죄를 정하심으로 영원히 죄를 정하신 것이 된다.
㉢.십자가에서 징벌하셨다. 히브리 9:12절/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오직 자기 피로”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는 영원한 속죄를 이루지 못한다. 오직 자기 피로 곧 “죄 없는 생명”으로 “범죄한 생명”을 속죄해야 영원한 속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고후 5:21절/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죄 없는 생명”으로 “범죄한 생명”을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이다. 곧 “죄를 정하셨다”는 말씀이다.
3.예수를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율법의 요구” 로마서 3:21-22절/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 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 ”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얻는 하나님의 의는 “율법의 요구”가 “완전히 충족” 되어질 때 가능하다. 그러나, 범죄한 아담의 후손으로서는 그 “율법의 요구”를 “완전히 충족”시킬 수 없다.
그러므로 범죄한 아담의 후손 자신에게서 출발하는 하나님의 의는 있을 수가 없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이 하나님의 한 의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의 이다.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켜서 얻는 하나님의 의 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하나님의 의 이다. 그 예수 그리스도는 그가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셔서, 육신에 죄를 정하시고, 대속의 제물이 되심으로 염소와 송아지의 피가 아닌 자신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율법의 요구”를 “완전히 충족” 하시어 다 이루었다 그 예수 그리스도는 그가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셔서 우리와 똑같은 성정을 가지시고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시되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셨으나 범죄치 아니하시고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셨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이 하나님의 한 의는 내가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켜 얻는 하나님의 의 가 아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대신해서 다 이루셨다 하시고, “율법의 요구”를 “완전 충족”하시어 이루신 하나님의 의 이다. 이 하나님의 한 의는 믿음으로 얻는 하나님의 의 이기에 모든 믿는 자에게 차별이 없다.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 로 율법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율법 있는 유대인도, 율법 없는 이방인도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얻는 하나님의 의 이기에 차별이 없다. 이 하나님의 한 의 내가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서 얻는 하나님의 의 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어 주신 하나님의 의 입니다. 그러기에 은혜입니다. 그러기에 기쁜 소식입니다. 다시 말해서 복음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신 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율법 외에 하나님의 의 를 얻은 자입니다. 복음 안에 있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대신 정죄를 당하신 자이요,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와 함께 죽은 자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율법에 대하여 죽은 자이요(롬7:4), 죄에 대하여 죽은 자입니다(롬6:2). 그래서, 사망이 주장하지 못하는 자입니다(롬6:9). 다시는 사망이 왕 노릇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죄를 담당하신 자이요(벧전2:24),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자입니다(요5:24).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3.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자이다-(하나님의 자녀)-본문 9절/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 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람 바로 엔 크리스토(ν Χριστ:in Christ)의 사람이다. 이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영이 있다고 했다. 바로 하나님의 영이다.
1.영에 속한 자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자 곧 엔 크리스토(ν Χριστ:in Christ)의 사람들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다고 했다. 다시 말해서 육신에 속한 자가 아니라 영에 속한 자이다.
2.영을 좇아 행하는 자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사망이요,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 그러나,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내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영의 인도하심을 좇아 살아간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영 곧 하나님의 영에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자가 바로 하나님의 자녀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짖는다.
3.몸의 행실을 죽이는 자 본문 13절/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다시 말해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영의 일을 생각하고, 육신의 생각을 버려야 한다. 몸의 행실 죽이는 일 곧 육체의 소욕을 버려야 영의 일을 하게 되고, 생명과 평안에 이르게 된다. 육체의 소욕을 따르려는 몸의 행실을 죽이고 성령님의 소욕을 따르는 일 “오호라!”의 탄식을 외쳐야 할만큼 힘든 일이다. 그러나,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면 가능한 일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그의 안에 있는 성령님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합니다.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게 합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려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십니다(롬8:26). 로마서 8:37절/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최후 승리는 항상 엔 크리스토(ν Χριστ:in Christ)의 사람들입니다. 환난, 곤고, 핍박, 기근, 적신, 위험, 칼이라도 우리가 넉넉히 이깁니다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기에 우리가 넉넉히 이깁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최후의 승리자입니다. 이런 최후의 승리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바로 사도 바울의 엔 크리스토(ν Χριστ:in Christ)이다. 사도 바울의 이 엔 크리스토(ν Χριστ:in Christ)는 그리스도 예수와의 신비한 연합을 뜻한다. 사도 바울의 애용구로 에배소서에서 가장 많이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애용구를 살펴보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롬3:24), 예수 그리스도 안에(살전1:1), 그리스도 안에(롬9:1), 예수 안에(엡2:22), 주 안에(롬16:2), 그 안에(엡1:11), 등 모두 같은 말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의 승리입니다.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율법의 요구가 다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의 를 가진 자이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곧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사도 바울이 말씀하시는엔 크리스토(ν Χριστ:in Christ)의 사람들 바로 새로운 피조물이요,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것이 된 사람들입니다. 그들에 관해서 오늘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져 합니다.
1.결코 정죄함이 없는 자이다-(죄에서 해방된 자)-본문 1-2절/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님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 였음이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님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1.정죄함이 없다. 예수 안에 있는 나에게 결코 정죄함 없네 이것이 바로 은혜이다. 정죄 받아야 마땅한데, 징벌을 받아야 마땅한데, 멸망을 받아야 마땅한데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이 모든 형벌을 면케 하시고, 자녀의 자리로 옮겨 주시고 이제는 정죄함이 없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은혜이다. 여기서 우리 성도들이 한 가지 먼저 알아두어야 할 사실은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법을 어겨도 “죄가 아니다”는 말씀이 아니다. 법을 어기면 죄가 된다.
2.생명의 성령님의 법 로마서 6:15절/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말씀과 죄를 지어도 괜찮다는 말씀은 전혀 다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단호하게 밝힌다. “그럴 수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생명의 성령님의 법 아래 있는 자이다. 그래서, 생명의 성령님의 법에 순종해야 한다. 자신을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느냐에 따라 죄의 종이 되기도, 의의 종이 되기도 한다(롬6:16-18).
3.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 로마서 6:18절/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죄에게서 “해방”이 되었다는 말은 죄를 지어도 좋다는 것이 아니다. 의의 종이 되었다는 말이다. 의를 행할 때 죄에서 해방이 되는 것이다. 사망에서 해방이 되는 것이다. 갈라디아 5:16-18절/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님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 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님을 거스리고 성령님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 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 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님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성령님을 좇아 행하라” 생명의 성령님의 법에 순종하라는 말씀이다. 다시 말해서 의의 종이 되라는 것이다. 의의 종 곧 성령님의 소욕을 좇는 것은 육신의 소욕을 거스리는 것이요, 서로 대적하여 싸우는 일이라고 했다. “성령님의 인도하신 바가 되면” 의의 종이 되느냐, 죄의 종이 되느냐 곧 속 사람과 겉 사람의 싸움에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때에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곧 승리를 하게 된다는 말씀이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자” 바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 이 예수 안에 있는 자 만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다. 그것은 예수 안에 있는 자 에게 그리스도의 영이 있기 때문이다. 히브리 12:4절/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 “너희가 죄와 싸우되”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면 누워서 떡 먹기로 죄를 이기고 승리하는 게 아니다. 피 흘리기까지 대항해야 승리가 있는 것이다. 이 말씀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않고서는 피 흘리기까지 죄와 대항하여 싸울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육체의 소욕을 거스리고 성령님의 소욕을 좇아 죄와 싸우는 자입니다. 그리 쉽게 승리를 얻을 수 있었다면 “오호라!”의 탄식을 외쳤겠는가 사도 바울은 승리를 위해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했다고 했습니다(고전9:27). 어디 그뿐인가요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했습니다(고전15:31).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생명의 성령님의 법으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자입니다. 그래서, 죄를 지어도 괜찮다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성령님의 소욕을 좇는 의의 종이 되라는 것입니다. 육체의 소욕을 거스려 죄와 싸워 이기고 의의 종이 되는 삶 누워 떡 먹기로, 그리 쉬운 게 아닙니다. 내 몸을 쳐 복종시켜야 합니다. 날마다 죽는 십자가 앞에 자신을 내려놓는 삶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이 시간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 안에 있는 자로서 나는 피 흘리기까지 죄와 싸우는 삶을 살아가는지 그래서, 승리하는 삶인지 아니면, 너무도 쉽게 무너지고 마는지 한 번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2.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한 자이다-(복음 안에 있는 자)-본문 3-4절/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 려 하심이니라/ 율법은 “의의 표준”으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의의 요구”이다. 곧 “율법의 요구”이다. 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의의 요구” 곧 “율법의 요구”에 “완전히 충족”할 때에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율법의 요구”는 온 율법을(100%), 항상(쉬지 않고 계속), 하나에도 거치지 않고(100%) 완전히 지켜야 하는 것이다.
1.육신이 연약하여 할 수 없다. 범죄한 아담의 후손은 이 “율법의 요구”를 이룰 수가 없다. 그래서, 본문 3절은 “육신이 연약하여 할 수 없다”고 했다. 어떻게 우리가 온 율법을(100%), 항상(쉬지 않고 계속), 하나에도 거치지 않고(100%) 완전히 지킬 수 있겠는가 “육신이 연약하여 할 수 없다” 이 말씀은 내가 100% 완전히는 못하지만 10%, 20%, 30% 등은 할 수 있다는 말씀이 아니다. 범죄한 아담의 후손은 그 “범죄”에 대한 흠도 없고, 점도 없는 대속의 제물 이 없다는 말씀이다. 범죄한 아담의 후손으로 “생명”을 대속할 “죄 없는 생명”을 가진 자가 없기 때문이다.
2.하나님은 하신다. 그래서, “죄 없는 생명”으로 하나님 자신이 친히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이다. 바로 “성육신” 하신 것이다. 그 “성육신” 하신 하나님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그 예수님은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셨다. 그래서, 우리와 똑같은 성정을 가지셨다. 죄 있는 육신으로 오신 게 아니다.
그렇다면 그 예수님도 “대속의 제물”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셨기에 죄는 없으셨고, 우리와 똑같은 성정을 가지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친히 체휼하셨다. 모 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셨으나 범죄치 아니하셨다. 그래서, 죄를 알지도 못하셨다고 한다(고후5:21).
㉡.육신에 죄를 정하셨다.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신 그 육신에 죄를 정하신 것이다. 자신이 범죄하여 정죄하심으로 죄를 정하신 것이 아니다. 세상 죄를 짊어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그에게 온 세상의 죄를 정하신 것이다. 여기서 죄를 “정했다” 하는 말은 카타크리노(κατακρινω)란 단어로 정죄하다, 선고하다, 저주하다란 뜻이다. “죄를 정했 다”에서 부정과거의 시제를 사용함으로 한 번 죄를 정하심으로 영원히 죄를 정하신 것이 된다.
㉢.십자가에서 징벌하셨다. 히브리 9:12절/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오직 자기 피로”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는 영원한 속죄를 이루지 못한다. 오직 자기 피로 곧 “죄 없는 생명”으로 “범죄한 생명”을 속죄해야 영원한 속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고후 5:21절/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죄 없는 생명”으로 “범죄한 생명”을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이다. 곧 “죄를 정하셨다”는 말씀이다.
3.예수를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율법의 요구” 로마서 3:21-22절/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 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 ”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얻는 하나님의 의는 “율법의 요구”가 “완전히 충족” 되어질 때 가능하다. 그러나, 범죄한 아담의 후손으로서는 그 “율법의 요구”를 “완전히 충족”시킬 수 없다.
그러므로 범죄한 아담의 후손 자신에게서 출발하는 하나님의 의는 있을 수가 없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이 하나님의 한 의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의 이다.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켜서 얻는 하나님의 의 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하나님의 의 이다. 그 예수 그리스도는 그가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셔서, 육신에 죄를 정하시고, 대속의 제물이 되심으로 염소와 송아지의 피가 아닌 자신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율법의 요구”를 “완전히 충족” 하시어 다 이루었다 그 예수 그리스도는 그가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셔서 우리와 똑같은 성정을 가지시고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시되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셨으나 범죄치 아니하시고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셨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이 하나님의 한 의는 내가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켜 얻는 하나님의 의 가 아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대신해서 다 이루셨다 하시고, “율법의 요구”를 “완전 충족”하시어 이루신 하나님의 의 이다. 이 하나님의 한 의는 믿음으로 얻는 하나님의 의 이기에 모든 믿는 자에게 차별이 없다.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 로 율법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율법 있는 유대인도, 율법 없는 이방인도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얻는 하나님의 의 이기에 차별이 없다. 이 하나님의 한 의 내가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서 얻는 하나님의 의 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어 주신 하나님의 의 입니다. 그러기에 은혜입니다. 그러기에 기쁜 소식입니다. 다시 말해서 복음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신 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율법 외에 하나님의 의 를 얻은 자입니다. 복음 안에 있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대신 정죄를 당하신 자이요,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와 함께 죽은 자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율법에 대하여 죽은 자이요(롬7:4), 죄에 대하여 죽은 자입니다(롬6:2). 그래서, 사망이 주장하지 못하는 자입니다(롬6:9). 다시는 사망이 왕 노릇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죄를 담당하신 자이요(벧전2:24),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자입니다(요5:24).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3.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자이다-(하나님의 자녀)-본문 9절/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 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람 바로 엔 크리스토(ν Χριστ:in Christ)의 사람이다. 이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영이 있다고 했다. 바로 하나님의 영이다.
1.영에 속한 자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자 곧 엔 크리스토(ν Χριστ:in Christ)의 사람들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다고 했다. 다시 말해서 육신에 속한 자가 아니라 영에 속한 자이다.
2.영을 좇아 행하는 자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사망이요,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 그러나,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내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영의 인도하심을 좇아 살아간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영 곧 하나님의 영에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자가 바로 하나님의 자녀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짖는다.
3.몸의 행실을 죽이는 자 본문 13절/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다시 말해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영의 일을 생각하고, 육신의 생각을 버려야 한다. 몸의 행실 죽이는 일 곧 육체의 소욕을 버려야 영의 일을 하게 되고, 생명과 평안에 이르게 된다. 육체의 소욕을 따르려는 몸의 행실을 죽이고 성령님의 소욕을 따르는 일 “오호라!”의 탄식을 외쳐야 할만큼 힘든 일이다. 그러나,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면 가능한 일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그의 안에 있는 성령님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합니다.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게 합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려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십니다(롬8:26). 로마서 8:37절/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최후 승리는 항상 엔 크리스토(ν Χριστ:in Christ)의 사람들입니다. 환난, 곤고, 핍박, 기근, 적신, 위험, 칼이라도 우리가 넉넉히 이깁니다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기에 우리가 넉넉히 이깁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최후의 승리자입니다. 이런 최후의 승리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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