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예수의 가르치신 복 (마5:3-10)
본문
예수님의 제자 도마의 일생 가운데 이러한 일화가 남아 있습니다 외경에 의하면 도마는 노예 신분으로 목수가 되어서 인도에 건너갔다고 합니다. 그 당시 인도에 가기가 너무 어려웠기 때문에 노예가 되어 팔려 가는 길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도마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흔연히 자원하여 노예가 되고, 목수 기술을 배워 인도로 건너갔습니다. 그의 기술이 뛰어남을 보고 인도 왕은 거액의 돈을 주면서 왕궁을 지으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리하여 왕궁을 지으려는데 마침 인도에 참혹한 흉년이 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어 가고 있습니다. 이 모습을 본 도마는 감히 그 큰 돈으로 사치스런 집을 지을 수가 없어서 그 돈으로 양식을 구하여 죽어 가는 사람들을 많이 살리고 구제를 하였다고 합니다. 날자가 되어 왕이 궁전을 살펴보니 궁전은 되어 있지를 않고 돈은 도마가 다 허비햅버리고 말았습니다. 왕은 화가나서 도마에게 사형 언도를 내리고 죽일 날짜까지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도마의 사형 집행 전날에 왕의 사촌 동생이 죽었습니다. 죽어서 여호와 하나님 나라에 가서 묘한 환상을 보고 깨어나 돌아왔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가보니 대단히 화려한 큰 궁전이 하나 있는데 너무 좋아서 곁에 가 보았는데 그것은 바로 자기의 형인 인도 왕의 궁전이었습니다.
그래서 천사에게 “이 궁전을 누가 지었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사도 도마가 왕을 위해 지은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죽음에서 깨어나 돌아와서 그 사실을 형에게 이야기해 준 것 입니다. 그 때 왕은 깜짝 놀랐습니다. 도마를 죽이려는 판인데 그가 자기를 위해 하나님 나라에 큰 궁전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왕은 도마를 석방시켜 주고, 오히려 도마의 말을 따라서 개종하여 예수를 믿게 되고, 도마를 도와서 힘써 복음 전도를 했다는 일화가 남아 있습니다. 현세만 바라보던 왕은 좋은 궁전에서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는 것이 복인 줄 알았엇지만, 그러나 영적인 눈이 열려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고, 하나님 나라의 보화를 보았을 때 그의 생명이 변화 되었던 것이다. .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 복이고, 어떤 삶이 복된 삶인지 분명히 가르치시고 보여주셨습니다. 여러분! 복이 무엇 입니끼 예수를 만난 것이 복 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이 복 입니다. 그분을 닮아 가고 그분을 따라가는 것이 곧 복 입니다. 오늘 봉독해 드린 말씀을 우리는 흔히 산상수훈(山上垂訓) 혹은 산상보훈(山上寶訓)의 첫 부분입니다. 이 산상보훈은 단순히 인간의 도덕적 기준을 가르치신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에게 요구하시는 윤리의 대 강령 입니다. 특히 팔복은 신앙생활의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예수님은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먼저 제자들을 부르셨다. 그들은 배와 그물을 내버려두고 주님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는데 팔복은 바로 이런 사람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팔복은 그리스도의 제자된 사람들만이 소유할 수 있는 복 입니다.
그렇다면 제자는 어떤 사람일까요
첫째, 배우는 사람 입니다. 제자란 말의 원 뜻은 “배우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배우되 적당히 배우는 사람이 아니라 철저하게 배우는 사람인 것 입니다. 주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결심했다면 생의 초점을 그리스도를 배우는 데 두어야 합니다. 그분의 인격과 삶과 교훈을 배우는 것 입니다.
둘째, 훈련된 사람 입니다. 영어로 제자(disciple)라는 단어와 훈련(discipline)이라는 단어가 같은 어근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훈련 없는 제자는 있을 수 없습니다. 옛날 위대한 스승 아래서 도제(徒弟)가 되어 그의 가르침과 기예(技藝)를 배우기 원했던 제자들은 그들의 생애를 걸고 그 스승의 요구하는 혹독한 훈련 앞에서 자신을 바쳤습니다. 주님의 제자는 어떤 훈련을 받아야 하는가 자신을 나누어주는 훈련, 내 이웃을 구체적으로 사랑하는 훈련, 복음을 전하는 훈련, 기도하는 훈련, 나에게 말씀을 주실 때 그 말씀에 구체적으로 순종할 줄 아는 훈련, 이 훈련 앞에 나 자신을 드리겠다는 결심과 함께 삶을 출발한 사람, 그가 참 제자 입니다.
셋째, 따라가는 사람 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를 부르실 때마다 언제나 예외 없이 강조하신 말씀이 있는데 그것은 “나를 따라 오라”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겠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부터 시작해서 내 생애를 걸고 그 분을 계속 따라 가는 것 입니다. 주님은 언제나 나를 장미꽃 화원으로만 인도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때는 험한 가시밭길도 넘어가야 합니다. 그래도 따라가는 것이 제자 입니다. 어느 때는 험준한 산 계곡을 거쳐 산 정상으로 날 끌고 가실 때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때 땀을 아끼지 않고 올라갈 수 있어야 합니다. 캄캄한 정글 깊숙이 우리를 끌고 가실지도 모릅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처럼 풀무불 속으로 우리를 이끄실 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계속 따라가야 합니다. 어떤 조건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따라가고자 하는 자가 제자 입니다.
2.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복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셨다. 우리는 먼저 복에 대한 바른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복과 흔히 사람들이 말하고 있는 복의 개념은 차이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부자가 되어 쾌락을 누리는 것이 복이라 생각 합니다. 그래서 이런 것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온유하기보다는 거칠고 사나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이 청결해서는 안되고 적당히 거짓말도 섞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을 긍휼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사람을 보고도 못본체 하고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싸움도 불사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항상 마음이 가난 했습니다. 죄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고 애통하셨습니다. 병들어 고생하는 사람들이나 굶주려 있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대적하는 자들에 대하여 온유한 마음으로 그들을 용서하고 핍박을 받아도 기뻐하고 즐거워하셨습니다. 이제 주님은 제자된 우리들에게 이런 삶을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을 따라오라고 십니다. 이와 같은 주님의 성품을 닮아 가는 것이 복이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예수를 만난 것이 복이요,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것이 복 입니다.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 가는 것이 곧 복 입니다.
3. 팔복은 곧 여덟 가지의 덕목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천국의 윤리를 가르치시면서 여덟 가지 덕목에다가 복을 약속 하셨습니다. 그 중에 처음 네 가지는 반성, 통회, 순종, 득의하여 자신이 구원받는 길을 말합니다. 다음 네 가지는 그리스도의 의를 얻은 성도들이 이웃에게 대하여 가지는 생활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마음을 비운 사람에게 복이 온다. 가난한 사람은 항상 무엇인가 필요로 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돈이 가난하면 돈이 필요하고, 지식이 가난하면 지식이 필요하고, 신분이 가난하면 높은 신분을 찾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말씀하신 가난은 심령의 가난입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요 자기에게는 의가 없는 줄 알고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과 사죄를 구하는 사람 입니다. 하나님이 없어도 살 수 있다는 사람,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 없다는 사람은 영적으로 부자가 아닙니다. 교만한 사람 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주님의 도우심을 기다립니다.
둘째, 울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에게 복이 있습니다.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웃으며 살기 원하지 울며 살려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웃기 위하여 먼저 울어야 합니다. 가을에 웃으려면 봄에 울어야 합니다. 노후에 웃으려면 젊을 때 울어야 합니다. 영원한 세계에서 웃으려면 현세에서는 울어야 합니다. 다윗이나 베드로처럼 자신의 죄와 부족을 깨닫고 회개하는 울음을 울어야 합니다. 예레미야 처럼(렘 4:19) 세상을 바라보고 울어야 한다.
셋째, 온유한 성품을 소유한 사람에게 복이 있습니다. 세상적으로 생각하면 강한 자가 땅을 차지하고 온유한 사람은 빼앗길 것 같지만 주님은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온유란 어느 극단에 서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모세처럼(민 12:1-3)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것이 온유 입니다. 더 나아가 온유한 사람은 겸손한 마음의 소유자 입니다. 예수님의 온유를 배워야 합니다.(마 11:28). 천국의 복은 온유한 사람의 것 입니다.
넷째, 의에 목말라 하는 사람에게 복이 있습니다. 돈보다, 명예보다, 권세나 출세보다 우선하는 것이 의로운 것 입니다. 그래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17) 하였습니다. 사람이 밥을 한 번 먹었다고 평생 배부른 것이 아입니다. 한 번 물을 마셨다고 평생 갈증을 못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매 끼니 때마다 밥을 먹어야 합니다. 이처럼 한 번 의롭게 살았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평생 계속해서 정의롭게 살아야 한다.
다섯째, 다른 사람들에게 긍휼을 베푸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긍휼을 베푼다는 말은 단순히 불쌍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피부 속에 들어가서 그의 입장에 서서 이해하는 것 입니다. 내가 그와 같은 처지와 형편에 내려 와서 함께 체험하는 것 입이다.
그러므로 긍휼 속에는 용서가 있습니다. 내가 남을 긍휼히 여길 때 주님도 우리를 긍휼히 여기실 것 입니다.
여섯째, 청결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복이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종교적 전승에 따라 청결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그 청결은 형식적 이었습니다. 엣세네파 사람들은 금욕주의를 통해 청결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청결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가 청결 입니다. 성령님으로 거듭나 말씀 안에서 살아갈 때 그 심령이 청결해 집니다. 일곱째, 평화를 이루어 나가는 사람에게 복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성공하려면 3P가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인내(Patience), 실천력(Practice), 그리고 평화(Peace) 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평화 입니다. 주님은 이 땅에 평화를 만들러 오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이 평화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여덟째, 고난에 참여하여 승리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18-20을 보면 고난도 세 가지가 있습니다. 내가 죄 짓고 내 잘못 때문에 당하는 고난이 있습니다. 또 애매하게 당하는 고난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이 있습니다. 이 고난이 진짜 고난 입니다. 이 고난을 받은 자가 복이 있습니다. 죄와 타협하고 불의와 타협하는 사람은 고난이 없습니다. 그러나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딤후 3:12)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핍박과 고난을 당한다면 경건하게 살아간다는 증거요, 하늘의 상급이 클 것이기 때문에(딤후 4:7-8) 복이 있다고 하신 것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인이란 현실만 바라보고 좌절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칭찬과 하늘의 상급을 바라보고 지금의 어려움을 참고 이겨 나가는 사람이 성도 입니다. 우리의 구세주 예수님도 이런 삶을 사셨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그런데 도마의 사형 집행 전날에 왕의 사촌 동생이 죽었습니다. 죽어서 여호와 하나님 나라에 가서 묘한 환상을 보고 깨어나 돌아왔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가보니 대단히 화려한 큰 궁전이 하나 있는데 너무 좋아서 곁에 가 보았는데 그것은 바로 자기의 형인 인도 왕의 궁전이었습니다.
그래서 천사에게 “이 궁전을 누가 지었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사도 도마가 왕을 위해 지은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죽음에서 깨어나 돌아와서 그 사실을 형에게 이야기해 준 것 입니다. 그 때 왕은 깜짝 놀랐습니다. 도마를 죽이려는 판인데 그가 자기를 위해 하나님 나라에 큰 궁전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왕은 도마를 석방시켜 주고, 오히려 도마의 말을 따라서 개종하여 예수를 믿게 되고, 도마를 도와서 힘써 복음 전도를 했다는 일화가 남아 있습니다. 현세만 바라보던 왕은 좋은 궁전에서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는 것이 복인 줄 알았엇지만, 그러나 영적인 눈이 열려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고, 하나님 나라의 보화를 보았을 때 그의 생명이 변화 되었던 것이다. .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 복이고, 어떤 삶이 복된 삶인지 분명히 가르치시고 보여주셨습니다. 여러분! 복이 무엇 입니끼 예수를 만난 것이 복 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이 복 입니다. 그분을 닮아 가고 그분을 따라가는 것이 곧 복 입니다. 오늘 봉독해 드린 말씀을 우리는 흔히 산상수훈(山上垂訓) 혹은 산상보훈(山上寶訓)의 첫 부분입니다. 이 산상보훈은 단순히 인간의 도덕적 기준을 가르치신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에게 요구하시는 윤리의 대 강령 입니다. 특히 팔복은 신앙생활의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예수님은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먼저 제자들을 부르셨다. 그들은 배와 그물을 내버려두고 주님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는데 팔복은 바로 이런 사람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팔복은 그리스도의 제자된 사람들만이 소유할 수 있는 복 입니다.
그렇다면 제자는 어떤 사람일까요
첫째, 배우는 사람 입니다. 제자란 말의 원 뜻은 “배우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배우되 적당히 배우는 사람이 아니라 철저하게 배우는 사람인 것 입니다. 주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결심했다면 생의 초점을 그리스도를 배우는 데 두어야 합니다. 그분의 인격과 삶과 교훈을 배우는 것 입니다.
둘째, 훈련된 사람 입니다. 영어로 제자(disciple)라는 단어와 훈련(discipline)이라는 단어가 같은 어근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훈련 없는 제자는 있을 수 없습니다. 옛날 위대한 스승 아래서 도제(徒弟)가 되어 그의 가르침과 기예(技藝)를 배우기 원했던 제자들은 그들의 생애를 걸고 그 스승의 요구하는 혹독한 훈련 앞에서 자신을 바쳤습니다. 주님의 제자는 어떤 훈련을 받아야 하는가 자신을 나누어주는 훈련, 내 이웃을 구체적으로 사랑하는 훈련, 복음을 전하는 훈련, 기도하는 훈련, 나에게 말씀을 주실 때 그 말씀에 구체적으로 순종할 줄 아는 훈련, 이 훈련 앞에 나 자신을 드리겠다는 결심과 함께 삶을 출발한 사람, 그가 참 제자 입니다.
셋째, 따라가는 사람 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를 부르실 때마다 언제나 예외 없이 강조하신 말씀이 있는데 그것은 “나를 따라 오라”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겠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부터 시작해서 내 생애를 걸고 그 분을 계속 따라 가는 것 입니다. 주님은 언제나 나를 장미꽃 화원으로만 인도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때는 험한 가시밭길도 넘어가야 합니다. 그래도 따라가는 것이 제자 입니다. 어느 때는 험준한 산 계곡을 거쳐 산 정상으로 날 끌고 가실 때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때 땀을 아끼지 않고 올라갈 수 있어야 합니다. 캄캄한 정글 깊숙이 우리를 끌고 가실지도 모릅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처럼 풀무불 속으로 우리를 이끄실 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계속 따라가야 합니다. 어떤 조건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따라가고자 하는 자가 제자 입니다.
2.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복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셨다. 우리는 먼저 복에 대한 바른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복과 흔히 사람들이 말하고 있는 복의 개념은 차이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부자가 되어 쾌락을 누리는 것이 복이라 생각 합니다. 그래서 이런 것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온유하기보다는 거칠고 사나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이 청결해서는 안되고 적당히 거짓말도 섞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을 긍휼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사람을 보고도 못본체 하고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싸움도 불사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항상 마음이 가난 했습니다. 죄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고 애통하셨습니다. 병들어 고생하는 사람들이나 굶주려 있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대적하는 자들에 대하여 온유한 마음으로 그들을 용서하고 핍박을 받아도 기뻐하고 즐거워하셨습니다. 이제 주님은 제자된 우리들에게 이런 삶을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을 따라오라고 십니다. 이와 같은 주님의 성품을 닮아 가는 것이 복이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예수를 만난 것이 복이요,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것이 복 입니다.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 가는 것이 곧 복 입니다.
3. 팔복은 곧 여덟 가지의 덕목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천국의 윤리를 가르치시면서 여덟 가지 덕목에다가 복을 약속 하셨습니다. 그 중에 처음 네 가지는 반성, 통회, 순종, 득의하여 자신이 구원받는 길을 말합니다. 다음 네 가지는 그리스도의 의를 얻은 성도들이 이웃에게 대하여 가지는 생활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마음을 비운 사람에게 복이 온다. 가난한 사람은 항상 무엇인가 필요로 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돈이 가난하면 돈이 필요하고, 지식이 가난하면 지식이 필요하고, 신분이 가난하면 높은 신분을 찾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말씀하신 가난은 심령의 가난입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요 자기에게는 의가 없는 줄 알고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과 사죄를 구하는 사람 입니다. 하나님이 없어도 살 수 있다는 사람,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 없다는 사람은 영적으로 부자가 아닙니다. 교만한 사람 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주님의 도우심을 기다립니다.
둘째, 울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에게 복이 있습니다.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웃으며 살기 원하지 울며 살려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웃기 위하여 먼저 울어야 합니다. 가을에 웃으려면 봄에 울어야 합니다. 노후에 웃으려면 젊을 때 울어야 합니다. 영원한 세계에서 웃으려면 현세에서는 울어야 합니다. 다윗이나 베드로처럼 자신의 죄와 부족을 깨닫고 회개하는 울음을 울어야 합니다. 예레미야 처럼(렘 4:19) 세상을 바라보고 울어야 한다.
셋째, 온유한 성품을 소유한 사람에게 복이 있습니다. 세상적으로 생각하면 강한 자가 땅을 차지하고 온유한 사람은 빼앗길 것 같지만 주님은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온유란 어느 극단에 서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모세처럼(민 12:1-3)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것이 온유 입니다. 더 나아가 온유한 사람은 겸손한 마음의 소유자 입니다. 예수님의 온유를 배워야 합니다.(마 11:28). 천국의 복은 온유한 사람의 것 입니다.
넷째, 의에 목말라 하는 사람에게 복이 있습니다. 돈보다, 명예보다, 권세나 출세보다 우선하는 것이 의로운 것 입니다. 그래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17) 하였습니다. 사람이 밥을 한 번 먹었다고 평생 배부른 것이 아입니다. 한 번 물을 마셨다고 평생 갈증을 못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매 끼니 때마다 밥을 먹어야 합니다. 이처럼 한 번 의롭게 살았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평생 계속해서 정의롭게 살아야 한다.
다섯째, 다른 사람들에게 긍휼을 베푸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긍휼을 베푼다는 말은 단순히 불쌍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피부 속에 들어가서 그의 입장에 서서 이해하는 것 입니다. 내가 그와 같은 처지와 형편에 내려 와서 함께 체험하는 것 입이다.
그러므로 긍휼 속에는 용서가 있습니다. 내가 남을 긍휼히 여길 때 주님도 우리를 긍휼히 여기실 것 입니다.
여섯째, 청결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복이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종교적 전승에 따라 청결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그 청결은 형식적 이었습니다. 엣세네파 사람들은 금욕주의를 통해 청결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청결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가 청결 입니다. 성령님으로 거듭나 말씀 안에서 살아갈 때 그 심령이 청결해 집니다. 일곱째, 평화를 이루어 나가는 사람에게 복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성공하려면 3P가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인내(Patience), 실천력(Practice), 그리고 평화(Peace) 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평화 입니다. 주님은 이 땅에 평화를 만들러 오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이 평화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여덟째, 고난에 참여하여 승리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18-20을 보면 고난도 세 가지가 있습니다. 내가 죄 짓고 내 잘못 때문에 당하는 고난이 있습니다. 또 애매하게 당하는 고난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이 있습니다. 이 고난이 진짜 고난 입니다. 이 고난을 받은 자가 복이 있습니다. 죄와 타협하고 불의와 타협하는 사람은 고난이 없습니다. 그러나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딤후 3:12)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핍박과 고난을 당한다면 경건하게 살아간다는 증거요, 하늘의 상급이 클 것이기 때문에(딤후 4:7-8) 복이 있다고 하신 것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인이란 현실만 바라보고 좌절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칭찬과 하늘의 상급을 바라보고 지금의 어려움을 참고 이겨 나가는 사람이 성도 입니다. 우리의 구세주 예수님도 이런 삶을 사셨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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