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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안에 머무는 삶 (요일2:28-3:3)

본문

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너희 가 그의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 보라 아버 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사랑하는 자들 아 우리가 지금은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 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 우선 28절을 생각해 보십시다., 이제도 , 자녀들아 , 그 안에 거하라. 자기의 사랑하는 영적 자녀들을 사랑이 담긴 표현으로 , 어린 자녀들아 하고 부르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자기의 제자들을 자녀들이라고 부른 분은 이 사도 요한의 선생 외에 바로 그의 사랑하는 제자 요한 뿐입니다. 자녀들아, 어린 자녀들아, , 그 안에 거하라. 여기서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 혹은 그리스도와의 연 합의 관계를 계속할 것을 잘 말하고 있습니다. , 혹은(엔아이) , 그 안에 있음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말하지마는 사도 요한은 그것보다 더 강하게 (엔아이) 있음이 아니라그것이 삶의 원리이고 그리고 그것이 생명의 바른 길임을 여기서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단지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만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그와 연합됨으로 살아야 할 것임을 여기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연합 되어 있음은 물리적인 관계의 맺음이 아닙니다. 물론 그렇게 맺음으로 인해서 관계가 한번 맺음으로 계속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와의 연합 혹은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삶은 계속해서 그 안에서 살아야 하고 그 길로 행해야만 되는 관계를 말합니다. 이건 인격 적인 관계이고 또 신령한 교제의 관계이기 때문에 교제가 계속되고 살아야 할 것임을 말합니다. 아무리 친한 친구도 오래 떨어져 있으면 그리고 교제가 없으면 떨어져 있는동안 교제가 없이 편지도 없이 서로 연락함이 없으면 그 정이 식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 친분이 계속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또 가까이 있는 거리에 계속해서 교제를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 고 여러가지 사정에 의해서 서로 인사하고 왕래하며 만남이 적으면 그 관계는 소원해져서 어떠한 중대한 일이 있을 때 사실 부탁하는 일이 쉽게 되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와의 안에 있음, 그와 함께 연합되어 있음, 그것도 물리적인 관계가 아니고 인격적인 결합의 관계이기 때문에 늘 그와 교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삶은 바로 그리스도 안에 있음, 혹은 이 안에 있는대로 , 그 안에 머물러 그의 생명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의 생명으로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 고 그것이 바른 삶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한번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신령한 은혜에 있어서 한 번 맺은 이 은혜의 결합 관계가 탈락하고 중간에 변형되는 것은 아니지만 계속해서 이 교 제를 계속하지 아니하면 그와의 생명의 교류관계가 풍성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풍성케 되는 길은 바로 그 생명을 원천으로 해서 우리가 계속해서 그 삶을 계속 하는 것입니다. 그 안에 머물러 있음, 그것은 단지 이렇게 어떤 장소 안에머물러져 있다 , 들어가 있다 , 그런 뜻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교제로 혹은 그로 인해서 오는 생 명의 흐름으로 공급으로 사는 것을 뜻합니다. 여기 물론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삶, 그리스도 안에 있음은 성령님에 의해서 이루어졌고 성령님에 의해서 우리가 그리스도와 결합되었는데 주님과 자꾸 계속하면(교제를) 성령님의 역 사를 인하여 우리에게 그의 생명이 이르러 넘쳐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 안에 거하라는 그냥 어떤 안에 장소 안에 삶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말 미암아 살고 그의 생명으로 사는 거를 말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음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삶을 뜻합니다. 그러면 도대체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혹은 그리스도와 교제하면 살 것인가, 그 안에 거할 것인가
첫째는, 우리가 말씀을 좇아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우리 안에 거하게 해서 우리가 그 말씀을 좇아 살 때에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역사하 시사 우리와 그리스도와의 교제가 더 풍성하게 되게 하고 그래서 그의 생명의 역사가 우리 에게서 더 풍성하게 흘러 넘치게 합니다. 그래 자꾸 교제하므로 생명이 흘러 넘칩니다. 우리가 말씀으로 살므로 말씀으로 살려고 노력하므로 그의 생명의 역사가 우리에게 와서 그 의 생명대로 살 수 있게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삶의 표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 가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 주의 말씀대로 사는 삶을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삶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기도를 열심히 하고 금식을 많이 하고 신령한 은사를 많이 사모해도 그의 법도대로 그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삶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자기의 육욕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자기가 수고하고 노력하는 것이지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의 교제대로 사는 삶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면 그의 생명의 법 칙대로 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생명이 오기 때문에 그 생명이 생명의 법칙대로 나 타나고 역사하기 마련입니다. 그 생명은 달리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삶 을 살므로 이루어집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 머무르는 삶은 다른 것이 아니라 그의 말씀대로 사는 것을 복음으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두번째로, 그리스도 안에 사는 삶의 가장 구체적인 표본은 표는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삶 을 말합니다. 물론 이것은 가장 중요한 것이 기도하는 삶이지마는 꼭 어떤 시간에 금식을 하고 오래 기도하고 그런 것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생활에 있어서 모든 문제를 다 주님과 의논하는 삶, 그것이 진정으로 주님이 원하시는 교제의 삶입니다. 우리는 많은 문제가 있으면 괴로워하고 번민하고 정말 한탄하고 가슴을 치다가 아무래도 안될 것 같은 정말적인 상황에 가면 기도원이나 산으로 가서 혹은 교회 찾아가서 기도합니다. 그렇 게 해서 문제를 해결 볼 수 있고 주님에게 모든 걸 의뢰하고 사태의 해결을 볼 수도 있지 마는 사실은 그것은 바른 교제의 삶이 못됩니다. 문제가 있을 대마다 항상 크고 어려운 문제, 가슴을 치고 한탄할 때만 가서 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문제에 의해서 주님과 의논 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 이런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옳습니까 주님이 내 자리에 서신다면 주님은 어떻 게 하시겠습니까 정말 바르고 합당하게 행동하는 것이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하고 항상 묻는 생활, 그것이 주 안에, 그 안에 거하며 그와 교제하는 삶입니다. 우리는 일정한 기간 가서 기도만 하고 오면 그 다음에는 그 힘에 의해서 내 마음대로 살 아도 되고 기도에서 온 힘이 소진될 때까지는 내 마음대로 살아도 좋을 줄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 소진되고 끝나고 나면 또 가야지요 그런 것은 바른 교제의 삶이 아니고 그와 같은 생활은 어떻게 보면 무당적 생활의 표현의 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주님과의 교제는 늘 인격적인 대화의 그런 삶이지 문제가 자기 앞에 이렇게 부닥쳐가지고 정말 어려 운 때 아무리 백방으로 해봐도 안되다가 그때 가서 더 큰 힘인 주님에게 가서 비는 것은 그것은 바른 교제의 삶이 아니고 그 안에 거하는 삶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 안에 살면 그와 늘 교제하는 삶을 살아 갑니다. 우리가 늘 주님께 기도하므로 그리고 또 그의 말씀대로 살 므로 그와 의논하므로 성령님의 역사로 계속해서 힘을 공급하시고 그의 생명의 힘을 우리에 게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여기대로 그렇게 주 안에 살지 않게 되면 우리가 탈선하는 행동을 취할 수가 있습니다. 다음 문장은 그걸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여기 현재형으로 지금그 안에 너희들은 머무르라고 하셨는데, 왜 그러냐 하면 자,그가 나타나시게 되면 갔다의 동사의 미래형 이라는 말을 우리가 여 러 말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는 숨김없이 항상 열려져 있음, 감추임 없음, 그리고 공평하게 다 드러낼 수 있는 것, 그런 것을라고 합니다. 우리말로 담대함을 얻는다. 모든 것을 감추고 있지 아니하고 다 드러낼 수 있는 것, 그러니까 결국 주님이 나타나셔도 감추인 것은 아무 것도 없고 떳떳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담대하게 하고 신뢰함, 라는 말을 신뢰라는 말로도 나타낼 수 있습니다. 혹은 마음이 너그러워 감추인 것이 없이 탁 드러낼 수 있는 것, 우리의 말은 많은 경우에 솔직하지 못합니다. 사실대로 열어놓지 못합니다. 감추는게 너무 많아요.
그런데 주님이 나 타내시게 되면 우리는 모든 것을 그러니까 이 신뢰하며 혹은 담대함이라는 말이 좋을른지 모르지만, 감추고 있음이 없음, 모든 것을 다 공개함, 혹은 자유로움, 그런 뜻으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정치적인 면에서 라는 말은 억압되지 아니하고 자기가 표현할 수 있는 것을 다 표현할 수 있는 그런 자유를 라는 말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모든 걸 감추임 없이 다 드러낼 수 있음, 그것이입니다. 주님이 나타내 심이 되면 우리가 담대함을 받고 얻고, 사실 주님이 나타나실 때에 여기서는 뒤의 라는 말로 주님이 심판주로 오시기 위해서 나타나심을 말합니다.
그러면 그 다음 문장을 또 읽어 봅시다. . 그의 강림 때에 그로부터서 수치를 당케 되지 않기 위해 서라. 자, 우리가 여기서 인제 라는 말을 썼는데 라는 말은 그 냥니까함께 있다 현존해 있다원래 그런 뜻이지마는 지배자 가 우리에게 오심, 혹은 통치자, 세계적인 통치자 황제가 어디에 도착하심, 그리고 하나님이 나타나심은 라는 말로 사용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통치자는 심판주로 모 든 권세를 다 가지신 분으로 이제 최종적으로 나타나심을 라고 합니다. 사도 요한에게 있어서는 주님의 우리와 함께 하심, 그리고 우리에게 영생이 주어져 있음이 늘 강 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여기서 라고 표시하므로 주님이 심판주로 모든 권세를 가지신 신인으로 모든 통치의 권세를 다 가지신 분으로 나타나심, 즉 앞으로 재림 심 판주로 오실 그때를 말합니다. 그때 우리가 담대함, 떳떳함을 갖고 그리고 거기서 부끄러움 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주 안에 거해야 된다. 주 안에 우리가 거하지 아니하고 계속 적으로 그렇게 살지 않으면 탈선할 때가 많아요. 한번 예수 믿으면 그냥 절로 되는 것이 아 니라. 그냥 내버려 두면 타락해서 미끌어져 내려 갑니다. 계속적으로 우리는 주님에게서 생 명을 공급받아서 그리스도인으로 새 생을 새로운 삶을 새 사람으로 새 생을 살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그냥 가만 내버려 두면 이렇게 나태하고 완악해져서 자기도 모르게 일어날 것이 그래서 아무런 몸으로 새긴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넘어갑니다. 그 러니까 우리가 그 안에 , 그 안에 계속해서 거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온갖 실수해서 범죄하고 부끄러운 일들을 행 하기 마련입니다. 여러분들도 경성해서 정신을 차리지 아니하면 여러분들의 신앙생활에 거 룩되라고 할 때 부끄럽고 참 주여 하고 부르지 않을 수 없는 그와같은 일들이 많이 생겨나 리라. 그러니까 , 주 안에 계속 머무름이 참으로 중요한 교훈입니다.
주의 생명이 계속적으로 공급되지 않으면 옛 사람을 못 당합니다. 옛 사람이 시간적으로 뒤에 있는게 아니예요. 옛 사람이 새 사람과 시간적으로 동시적입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사는 생이 새 사람이요 옛 사람으로 사는 것은 옛 사람이다. 둘이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시간적으로 예수 믿을 다 옛 사람 해결되어 버리고 이젠 새 사람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의 새 생명을 계속해서 공급받지 아니하면 우리는 옛 사람 의 생으로 그냥 돌아가 버리고 맙니다. 여러분 착각하시면 안되요. 우리가 기도를 많이 해 두면 그 기도의 힘이 소진할 때까지는 나는 그 힘으로 새 사람으로 잘 살 수 있게 해준다. 그러지 안해요. 곧 옛 사람이 발동한다. 순간 순간! 그걸 그냥 내버려 두면 그냥 진행된다. 그 생각이 퍼져 나오게 될 때, 나쁜 욕망이 일때, 혹은 나쁜 이런 육욕이 일어날 때 그걸 막아야지, 그냥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니까 아차 생각도 없이 그냥 내버려 두면 그냥 진 행된다. 그리고 우리는 사실 로마교회에서는 실제로 구체적으로 몸으로 행하므로 밖으로 나 온 것만 죄라고 합니다.
그런데 진짜 경성해 살지 않으면 다 마찬가지요. 속으로 생각하는 거는, 속으로 느끼는 감정은, 그런 육욕은 죄가 아닌 걸로 생각합니다. 왜 자연적으로 일 어났는데 왜 죄이겠어요 그러니까 로마교회는 자연을 이제까지는 자연적인 충동, 육욕, 그 런 생각을 아무런 문제가 안되는 걸로 생각합니다. 그것이 밖으로 나타날 때만 죄로 생각하는데, 마찬가지라! 다! 로마교회 뿐만 아니라 우리들도 많은 경우에 그리스도 안에 계속적 인 삶을 살고 있지 않으면 옛 사람의 그 육의 충동, 그런 생각들도 괜찮은 걸로 범연하게 아무런 죄가 안되는 걸로 생각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계속해서 그리스도 안에 그의 생명을 공급받아 살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아까도 말씀했거니와 그리스도와의 이 연합은 인격적인 연합이어서 가만히 있으면 생명이 절로 오는게 아닙니다.
그냥 물 흐르듯 가만 절로 위에서 낮은 데로 흘러 내리는게 아니다. 그와 계속해서 살며 그와 교제함으로 만이 그리스도의 부 활의 생명의 교제가 더 풍성해지므로 우리가 더 큰 신앙에 이르게 되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되고 그리고 생명이 계속해서 우리에게 반복됩니다. 그가 나타나시게 되면 우리가 담 대함, 혹은 떳떳함, 숨길 것이 없음, 누구든지 다 보고, 정말 모든 것을 판단할 때에 감출 것이 있는 사람처럼 그게 보통 당황하고 곤혹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다 떳떳하게 내놓을 수 있는데 그렇게 감출 것이 있으면 그것처럼 부끄러운 것이 없습니다. 참, 모두 다 심판대 앞에 서면 모든 것이 다 벌거벗은 것처럼 드러나게 되지마는 숨겨야 할 것이 있는 경우들이 상당히 많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부터서가 수치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 자,사람들에게 있어서 제일 참기 힘든 것이 무엇이냐 내가 보 기에는 수치를 당하는 것입니다. 참기 힘든 것이 고독의 일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수치처럼 참기 힘든 것이 없습니다. 고통도 참아낼 수 있습니다. 그것도 정당한 이유와 그리고 합리 화가 가능한데 그리고 참아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일 참기 힘든 것이 수치입니다. 여기 서 수치는 무엇을 말합니까 . 그의 강림 때, 그의 재림 때, 심판주로 오셨을 때 수치를 당한다. 우리는 다 상을 받고 칭찬을 받을 줄 로 그 앞에 나타나는데, 정죄와 그리고 심판에 이르는 것이 여기서 말하는 수치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수치는 그것이요. 수치는 뭐라고 정의해야 되는지 모르지만 자기가 받아야 될 정당한 대접에서 그 역의 대접을 받을 때 느끼는 감정이 수치라고 할 것입니다. 자, 그냥 초대 받아가는 것은 초대에 응하는 우리의 자유고 특권에 속합니다. 그러나 초 대 받아간 잔치에 가서도 부끄러울 것이 있도록 자기를 하고 가면 참 부끄러움이 됩니다. 우리나라에는 특별히 잔치복은 없지마는 옛날에 다 두루마기 입고 이렇게 깨끗한 옷을 입 고 초대받은 집에 가야 합니다. 더러운 옷 입고는 안가야 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내가 옛 날에 보면 잔칫집에 초대받았는데 끝내 안가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왜 옷이 더러우니 까! 핑게는 여러가지 있지마는 옷이 그러고 사는데 더러운 옷 입고가며는 비단 옷 입고 가 야할 데를 좋은 깨끗한 옷이 아니고 더러운 옷이기 때문에 그 축에 못 끼는거지요. 정당한 자기가 받아야 할 대접에 이르지 못한 것이지요.
그런데 그가 주님이 나타나실 때에 떳떳하 게보십시요 내가 이렇게 살았습니다하고 내놓지 못하고 그때 가서주여 주여 좀 은혜 를 베풀어서 다른걸로 이렇게 덮어 주십시요그러며는 참 보통 부끄러운 일이 아니지요. 그렇게 해서도 구원을 얻을 수 있어요. 바울 사도가 뭐라고 그랬습니까 그렇게 구원얻은 사람, 불에서 건짐 받은 것같은 구원을 얻었다. 그래서 내가 옛날에 어떤 목사님,그런 구원은 부끄러운 구원이다.부끄러운 구원도 있어요. 그래도 주의 은혜는 지금이라도 나를 가리워 주십시요. 주의 피로! 주님도 그때는 참 심판하시기가 곤란하실 거예요. 딱 줄을 지 어 나가야 되는데 그런 부끄러운 구원에 이를 수 있다. 지금 여기서 말하는 부끄러움은 영 정죄와 저주로 떨어져 버린다는 말이 아니고 그런 부끄러움을 말합니다. . 선악을 심판하시므로 영광과 상급과 그리고 사망과 형벌을 정하시기 때문입니다.
자, 왜 우리가 항상 주 안에 머물러야 하느냐 하면 심판대 앞에 가서도 사실 부끄러운 구원을 받아야 될 경우가 많이 있다. 얼마나 떳떳하지 못합니까 다 상급을 받고 기뻐하고 좋아하는데 그것 참 간신히 그 축에 끼어 있으면 얼마나 떳떳하지 못하고 부끄럽겠습니까 육 대 로 육의 욕심대로 아무렇게나 살면 주의 구원의 은혜 때문에 하나님이 내버리시지 못해서 구원에 이르게는 하신다. 그러나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떳떳하게 내놓을 것이 없습니다. 부 끄러운게 너무 많이 있다. 거기 서니 좋은데 그 가운데서라도 살아났으니 그것 참 떳떳하지 못하다. 그때 가서는! 지금은 참 그것이 달콤하고 그 맛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지마는! 그 때 가서는 그것처럼 부끄러운 것이 없다.그런 부끄러운 구원에 이르지 않으려면 그 안에 계속해서 머물러야 할 것입니다. 자, 그러면 우리가 계속해서 주 안에 머무르며는 그런 부끄러운 구원을 염려할 필요가 없 습니다. 거기서 부끄러움을 당치 않게 하기 위해서 주 안에 머무르라고 했으니 이 부끄러움 당함이 신자들이 당하는 영 마지막 돌이킬 수 없는 형벌과 사망에 이름이 아니라 저주에 이름이 아니라 구원을 얻으면서도 상급은 없는 그런 몸만 살짝 피해나온 그런 구원에 이르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러니 우리가 예수 믿었다고 해서 다 된 것이 아니다. 우리가 구원 에 이르러 가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님과의 교제를 항상 살아있는 산 교제로 늘 현재화 되어야 합니다.거하는 일에는 과거가 없지요. 그러니까을 쓰지 않았어요 항상!! 과거에 거했어도 지금 거하지 않으며는 거한게 아니고 미래 에 거할 것도 현재에 거한 것이 아니요. 지금 거하는 것!! 여기서를 무 시하고 그냥 이제라고만 했는데이제도! , 내 생각에는계속적인 그 안에 머무 름을 위해서 지금, 이제를 말했습니다. 계속적인 거함, 교제는 현재만이 가능합니다. 그런 아름다운 사랑, 교제의 추억들이 현재의 교제들을 아름답게 하지마는 현재의 교제가 없는 한은 과거의 아름다움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지요. 그러나 계속해서 주 안에 머무르고 살 때는 우리가 죄를 피하고 허물과 실수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의 복음, 생명 의 공급을 계속 받으므로 우리가 주 앞에 서서 상급 받을 수 있기를 늘 바라고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우리의 주와의 교제를 항상 쉬지않고 항상 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 이 오늘 주님이 가르치신 이 사도가 가르친 큰 교훈이요. 여기서 자녀들은 사도의 자녀들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다 하나님의 자녀라. 그래서 3장에 보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가 다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의 생명, 그 생명의 원천으로 계속해서 살 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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