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안에 속한 자 (고후5:14-21)
본문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모든 사람들은 기뻐한다. 따지고 보면 기뻐할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기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옛 습관을 아직도 벗어나지 못해서 구정이 기쁜 날로 되어 있지만 외국 사람이나 젊은 사람에게는 신정이 더 기쁜 날이며 의의 있는 날인 것같다. 그러나 어제나 오늘이나 시간의 연장이라는 의미로 생각할 때는 아무런 새로운 의의를 발견할 수가 없다. 또 죽음을 인간의 삶의 마지막이라고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설을 맞이했다면 나이가 한 살 더 많아진만큼 죽음이 가깝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슬픈 일이 될망정 기쁜 일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면 새해는 어떤 면에서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의의를 가져다주며 기쁨의 날이 될 수 있는가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 해와 달과 춘하추동 네 계절을 만드시고, 1년 12달과 365일과 24시간을 구분해 놓으심으로 우리 인간들의 생활에 절도를 만들어 주셔서 이것이 하나의 성장의 표준이 된다고 하는 면에서 의의가 있다고 본다. 마치 나무가 1년이 지나면 마디가 하나씩 더 생겨서 얼마나 자랐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과 같다. 또한 가지는 한 해 한 해를 단위로 세어가지고 새 희망과 기쁨으로 살 수 있다는 면에서 의의가 있다. 따지고 보면 하늘 아래 새 것이 있을 수 없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언제나 새롭다고 하는 말씀에서 또한 기독교인에게는 가장 큰 의의를 가지는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의미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 기독교인들은 어떤 태도로 생활해야 하는가를 본문 말씀을 통하여 살펴 보고자 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축복 없이는 잘 살 수가 없는데, 어떠한 생활을 해야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1.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한다. 죄악이 성행하고 온갖 부조리로 가득찬 인간사이에서도 이웃을 위한 조그마한 도움이나 자기 희생은 세상을 떠들석하게 만든다. 그러나 창조주 되시는 하나님께서 그것도 당신께서 만드신 피조물인 하찮은 우리를 위하여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심으로 모든 인간을 대신하여 죽기까지 하신 그크신 하나님의 사랑은 이미 우리들 가슴 속에서 전설의 동화처럼 잊혀져가고 있다. 타락한 인간은 그리스도 안에서 보다 그리스도를 떠난 바깥 세상을 더 좋아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 속에서 생활하면서도 적지 않은 죄악의 유혹에 시달리게 된다.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을 이기고 승리하는 기독교인이 되기 위해서는 항상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생각하고 판단하며 행동에 옮겨야 한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그리스도를 떠난 것들은 새로운 것이 될 수 없고 된다고 하더라도 거짓과 위선일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러한 모든 것들, 우리가 그리스도를 아는 것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과 이 이외의 어떠한 것들도 본문 18절에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므로 우리는 깊이 감사해야 한다. 삶도 죽음도 은혜도 믿음도, 심지어는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봉사조차도 우리의 공로로 된 것이 아니며 무조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인 것이다. 새 것이 된 우리, 복음을 조건없이 받은 우리, 그로 말미암아 천국을 허락받은 우리는 하잘 것 없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크신 사랑의 거울에 항상 비추어보며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한다. 본문 14절에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이라고 하였다. 원래 죽어야 할 존재는 우리 자신인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그 일을 떠맡으셨다는 말이다. 그 이유는 산 자들로 다시는 저희를 위하여 살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게 하려 함이었다(15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난 우리는 삶의 목표와 가치가 예수님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제는 나의 주인이 나 자신이 아니라 예수님이시기 때문이다. 십자가상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나를 대신하여 죽으셨기 때문에 곧 내가 죽은 것과 동일한 효과를 가진다.
그러므로 나는 죽었다. 지금 살아서 말하고 먹고 움직이는 나는 이미 옛날의 내가 아니요 "새로운 피조물"인 것이다(17절). 개선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재생을 의미한다. 옛 사람이 아닌 새 사람인 것이다. 우리는 가끔 옛날 생활을 그리워 한다. 죄짓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러한 유혹은 극복되어져야 한다. 나는 새로운 사람이므로 옛 풍속을 따를 수 없기 때문이다. 새 사람은 새 사람의 생활 방식이 있는 것이다. 우리의 생은 하나님께로부터 난것이므로(18절)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 하나님께서 주신 인생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마땅하다.
2. 화목을 이루어야 한다. 삶, 인생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아무리 고민하고 또 생각해도 뚜렷한 해답을 얻기란 대단히 어렵다. 때문에 스스로 지쳐서 생각하기를 그만두어 버린다. 그리고 오로지 이 세상에서 위대해지려는 꿈과 야망을 가슴에 품고 현실과 씨름하며 살아간다. 이웃을 끝없이 경계하고 오직 자신만을 위한 철저한 이기주의자가 되어 타인에게 절대로 시간을 허용해 주지 못하는 것이 오늘의 현대인들이다. 어쩌면 우리들도 이들과 마찬가지로 이런 모습들을 주님 앞에서 합리화시키며 "주님 잠깐만 참아 주십시오. 제가 위대하게 되어 주님의 복음을 전하면 그 영향력으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되지 않겠습니까"라는 전제하에 열심히 분주하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그 동안은 다른 사람이나 교회나 하나님 앞에서 지극히 이기적인 행동을 취하게 된다. 돌아보아야 할 지체들과 일들이 산적해 있고 주님은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 끊임없이 우리들에게 들려주시지만 이를 외면한채 대부분의 성도들은 자신과 자기 가족을 위한 삶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이제는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오직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하셨다(14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화목케 하는 직책을 주심으로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는 부탁을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전하고 있다. 화목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일임과 동시에 우리의 의무이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로 화목하게 하시고 또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다. 하나님과 적대관계에 있던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화목되었다. 이 본을 따라서 우리들은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과 서로 화목하게 살 수 있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사신이 되어"(20절) 다리 역할을 하여야 한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생겨나는 갈등도 다독거려주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되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특권과 새로운 피조물된 기쁨이 있기 마련이지만 거기에서 만족하고 방관해서는 안된다. 끊임없이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를 지켜나갈 수 있도록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하나님과의 원만한 관계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새해를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것은 개개인의 구체적인 환경에 따라 다르겠지만 참으로 지혜롭고 현명한 삶은 이 땅에서의 부귀나 영화나 명성을 위해 달려가는 삶이 아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세상의 시간대 위에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부탁하신 말씀을 명심하며(마 28:18-20, 행 1:8)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하늘에 소망을 두고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1.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한다. 죄악이 성행하고 온갖 부조리로 가득찬 인간사이에서도 이웃을 위한 조그마한 도움이나 자기 희생은 세상을 떠들석하게 만든다. 그러나 창조주 되시는 하나님께서 그것도 당신께서 만드신 피조물인 하찮은 우리를 위하여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심으로 모든 인간을 대신하여 죽기까지 하신 그크신 하나님의 사랑은 이미 우리들 가슴 속에서 전설의 동화처럼 잊혀져가고 있다. 타락한 인간은 그리스도 안에서 보다 그리스도를 떠난 바깥 세상을 더 좋아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 속에서 생활하면서도 적지 않은 죄악의 유혹에 시달리게 된다.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을 이기고 승리하는 기독교인이 되기 위해서는 항상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생각하고 판단하며 행동에 옮겨야 한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그리스도를 떠난 것들은 새로운 것이 될 수 없고 된다고 하더라도 거짓과 위선일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러한 모든 것들, 우리가 그리스도를 아는 것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과 이 이외의 어떠한 것들도 본문 18절에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므로 우리는 깊이 감사해야 한다. 삶도 죽음도 은혜도 믿음도, 심지어는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봉사조차도 우리의 공로로 된 것이 아니며 무조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인 것이다. 새 것이 된 우리, 복음을 조건없이 받은 우리, 그로 말미암아 천국을 허락받은 우리는 하잘 것 없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크신 사랑의 거울에 항상 비추어보며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한다. 본문 14절에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이라고 하였다. 원래 죽어야 할 존재는 우리 자신인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그 일을 떠맡으셨다는 말이다. 그 이유는 산 자들로 다시는 저희를 위하여 살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게 하려 함이었다(15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난 우리는 삶의 목표와 가치가 예수님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제는 나의 주인이 나 자신이 아니라 예수님이시기 때문이다. 십자가상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나를 대신하여 죽으셨기 때문에 곧 내가 죽은 것과 동일한 효과를 가진다.
그러므로 나는 죽었다. 지금 살아서 말하고 먹고 움직이는 나는 이미 옛날의 내가 아니요 "새로운 피조물"인 것이다(17절). 개선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재생을 의미한다. 옛 사람이 아닌 새 사람인 것이다. 우리는 가끔 옛날 생활을 그리워 한다. 죄짓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러한 유혹은 극복되어져야 한다. 나는 새로운 사람이므로 옛 풍속을 따를 수 없기 때문이다. 새 사람은 새 사람의 생활 방식이 있는 것이다. 우리의 생은 하나님께로부터 난것이므로(18절)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 하나님께서 주신 인생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마땅하다.
2. 화목을 이루어야 한다. 삶, 인생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아무리 고민하고 또 생각해도 뚜렷한 해답을 얻기란 대단히 어렵다. 때문에 스스로 지쳐서 생각하기를 그만두어 버린다. 그리고 오로지 이 세상에서 위대해지려는 꿈과 야망을 가슴에 품고 현실과 씨름하며 살아간다. 이웃을 끝없이 경계하고 오직 자신만을 위한 철저한 이기주의자가 되어 타인에게 절대로 시간을 허용해 주지 못하는 것이 오늘의 현대인들이다. 어쩌면 우리들도 이들과 마찬가지로 이런 모습들을 주님 앞에서 합리화시키며 "주님 잠깐만 참아 주십시오. 제가 위대하게 되어 주님의 복음을 전하면 그 영향력으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되지 않겠습니까"라는 전제하에 열심히 분주하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그 동안은 다른 사람이나 교회나 하나님 앞에서 지극히 이기적인 행동을 취하게 된다. 돌아보아야 할 지체들과 일들이 산적해 있고 주님은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 끊임없이 우리들에게 들려주시지만 이를 외면한채 대부분의 성도들은 자신과 자기 가족을 위한 삶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이제는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오직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하셨다(14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화목케 하는 직책을 주심으로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는 부탁을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전하고 있다. 화목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일임과 동시에 우리의 의무이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로 화목하게 하시고 또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다. 하나님과 적대관계에 있던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화목되었다. 이 본을 따라서 우리들은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과 서로 화목하게 살 수 있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사신이 되어"(20절) 다리 역할을 하여야 한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생겨나는 갈등도 다독거려주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되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특권과 새로운 피조물된 기쁨이 있기 마련이지만 거기에서 만족하고 방관해서는 안된다. 끊임없이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를 지켜나갈 수 있도록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하나님과의 원만한 관계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새해를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것은 개개인의 구체적인 환경에 따라 다르겠지만 참으로 지혜롭고 현명한 삶은 이 땅에서의 부귀나 영화나 명성을 위해 달려가는 삶이 아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세상의 시간대 위에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부탁하신 말씀을 명심하며(마 28:18-20, 행 1:8)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하늘에 소망을 두고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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