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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창35:1-7)

본문

사람들은 흔히 자신의 지난 생애를 돌아 보며 파란만장이란 단어로 포 장하기를 좋아합니다. 사실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 글자 그대로 파란만장하지 않은 인생의 여 로를 지나온 사람이 과연 멀마나 되겠습니까마는 그래도 상당 부분은 과 장법이란 표현기법으로 포장되어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여기 진정으로 파란만장한 삶의 여로를 지나온 한 노인이 있습니다. 인생의 모든 우여곡절을 지내고 애굽왕 바로앞에선 이 노인은 창세기 47장9절에서 자신의 삶을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삼십 년입니다. 나의 나이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습니다.]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백삼십의 삶을 뒤돌아보며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다고 고백하는 이 노 인은 과연 어떤 삶의 여정을 지내왔습니까 어찌보면 그는 참으로 불쌍한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이라는 이름 그 대로 그는 속이기를 밥먹듯이 하고, 또 남을 속인 만큼 속기도하고 죽을 고생으로그 대가를 치르며 살아왔습니다. 그는 차남으로 태어나 장남의 권리를 빼앗기 위해 아버지를 속였고, 형을 속였습니다. 그리고 분노한 형의 복수를 피해 이곳 저곳 떠돌아 다 니면서도 기가 막힌 방법으로 사람들을 속여온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결 국 이런 그의 삶의 결과는 자신에게 다시 돌아왔습니다. 자신이 형을 속 여 장자권을 빼앗았던 것처럼 자신도 삼촌에게 속아 부인을 얻기 위해 14 년이나 머슴아닌 머슴의 삶을 살아야 했고, 또 자신이 아버지를 속였던 것처럼 아들들에게 속아 가장 사랑하던 아들 요셉이 죽은 줄로만 알고 17년간이나 눈물로 지새워야 했습니다. 그의 어런 속고 속이는 삶의 유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브람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 아브라함으로 개명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어느 누구도 그를 아브람이라 부르지 않았습니다. 사래 역시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속에 사라라는 새 이름을 부여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론 그 누구도 그녀를 사래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야곱 은 얍복나루에서 하나님과 밤이 새도록 씨름을하여 결국 하나님께로부터 용서해준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아울러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놀라 운 뜻의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부여받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그 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거나, 기억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습니다. 그 아름다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직 까지도 [속이는 자], [사기꾼]이란 뜻의 야곱이란 이름으로 불리워지고 있습니다. 그의 이런 파란만장하고도 험악한 인생여로는 창세기 34장에 이르러 그 극치에 이르고 있습니다. 가나안 땅 세겜에 정착한그는 사랑하는 딸 디나가 그 땅의 왕 하몰의 아들 세겜에게 강간을 당하는 치욕을 맛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두 아들 시므온과 레위가 복수를 빙자하여 그 성의 모든 남자들을 죽여버리는 끔찍한 일을 행하고야 말았습니다. 실로 엄청난 위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딸 디나의 불행, 그 리고 두아들의 야만적인 살인은 결국 그로 하여금 한 순간도 목숨의 위협 으로부터 안심할 수 없는 불안한 삶의 구석으로 강하게 몰아가고 있었습니다. 이 때 그는 하나님의 사랑가득한 음성을 듣게 됩니다. [일어나 벨엘로 올라가라!] 이 사랑의 음성에 결국 야곱은 일생 일대의 결단을 하게 됩니다. [그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그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이 절대 절명의 위기의 상활에서 [벧엘로 올라가라]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는 야곱의 결단은 과연 어떤의미가 있습니까 아니 우리에게 어떤 결단 을 요구하고 있습니까 벧엘 그곳은 바로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곳,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곳, 세상 끝날까지 야곱과 함께 해주시는 그리고 바로 이 자리 에 무릎꿇은 나와, 우리와 함께해주시는 하나님께서 계신 곳 입니다.
창세기 28장 야곱이 형 에서와 아버지를 속여 장자권을 빼앗은 이후 형의 보복을 피해 고난의 광야길을 정처없이 떠돌고 있을 때, 지친 몸을 이끌고 한 돌을 취하여 노숙을 하고 있을 그 때에 하늘로부터 사닥다리가 내려오고 천사가 오르락내리락 하는 꿈을 꾸었을 그 때에 하나님께서 그 에게 나타나셔서 내가 끝날까지 너와 함께 하며 내가 이곳을 너와 네 자 손에게 주고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신 바로 그곳이 벧엘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그 곳, 하나님의 능력이 있는 그 곳 하나님께서 야곱과 그 자손에게 주리라 약속하신 그 곳을 뒤로 한 채 30년이란 세월 을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도우심을 느끼면서도 그 앞으로 나오지 못했던 그 곳이 바로 벧엘이었습니다. 또한 벧엘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영원히 이어지는 곳입니다. 창세기28 장15절을 보면 극도의 위기와 불안에 처한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맺어주신 약속이 나타납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이 얼마나 놀랍고 위대한 약속입 니까 하나님께서는 비록 남을 속이는 약싹빠른 야곱이지만, 형과 아버 지를 속이고 도망다니고 있는 야곱이지만, 또한 앞으로도 비록 하나님의 은혜를 져버리고 세상으로 세상으로 뛰어나갈 야곱인줄 이미 알고 계시지 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지켜주시고 인도하시고 도와주시겠노라고 약속해 주시고 또한 그 약속을 끝까지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흠씬 배어있는 곳이 바로 벧엘입니다. 그리고 벧엘은 야곱의 하나님을 향한 서원이 살아있는 곳이었습니다.
창세기 28장 20122절을 보면 하나님의 임재와 도우심을 체험한 야곱 이 하나님께서원하는 약속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 나이다.] 그러나 자그마치 30년을 마치 하나님이 멀리계신 듯 그렇게 하나님을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왔고, 자신의 약속대로 형 에서와 화해하여 평안히 가나안으로 돌아온지도 어언 10년이 넘어가는데도 자신의 서원을 잊어버린 채 절대 절명의 위기에 처해서도 하나님을 찾지 못하는 그 야곱 을 향해 하나님께서 친히 나타나셔서 [이제 그 약 속의 땅, 그 도움의 땅, 그 서원의 땅] 벧엘로 올라가라고 말씀해 주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땅 벧엘을 떠나 온갖일들을 다 경험하고 또한 큰 부 도 누려보았지만 이제 결국 하나님이 안계신 삶 속에는 영원한 불안과 고 통밖에 없음을 체험하고 하나님 없는 삶의 허무함을 느낀 그 순간, 시시 각각 생명을 위협하는 두려움이 온통 그의 삶을 휘감는 순간에 은혜와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다시금 그를 그 은혜의 자리로 불러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야곱은 결심합니다. [그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오늘 우리의 삶이 바로 야곱과 같은 험악한 인생의 여로에 서있지 않 습니까 하나님의 사랑도 받아 보았고, 하나님의 임재하심도 느껴보았지 만지금 이순간도 약 속의 땅 벧엘을 떠나 자신의 삶을 찾아 헤매이는 야 곱처럼 이스라엘이란 약속의 이름을 가지고서도 그리스도인 답게, 이스라 엘 답게 하나님을 향해 마음 중심을 던지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경제라는 위기, 종교다원주의라는 위기, 물질 만능주의라는 위기가 오늘 우리의 삶을 한없는 불안과 두려움으로 몰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처음 은혜를 체험한 순간 기쁨과 감사를 억누르지 못해 하나님의 뜻대 로만 살겠노라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겠노라고 서원했지만 지금 이순간 끼지고 그 서원을 까맣게 잊어버린 채 내삶, 내 기쁨, 내 만족을 찾기에 급급해 있지 않습니까 이 순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 라오라!] 세상에 지치고 피곤한 영혼들이여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반드시 너를 지키고 도와주며, 반드시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한 이곳 벧엘로 돌아오라고 간절히 외치고 계십니다. 결단은 빠를수록 좋습니다. 때를 놓치면 기회가 영원히 안올 수도 있습니다. 이제 결단 합시다. [그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그렇다면 우리가 벧엘로 올라가기 위해 하여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창세기 35장 2절은 다음과 같은 세가지를 벧엘로 향해 올라가려는 모 든 사람들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이방신상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있는 우리에게 무슨 이방신상이 있다고 하십니까 하실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을 자세히 둘러보면 우리를 감싸 고 있는 이방신상, 즉 우상이 얼마나 많은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재물이 우상이 되고, 명예가 우상이 되었으며, 자녀가, 친구가, 공부가, 직장이 우상이 되어 하나님을 향하려는 우리의 삶과 생각을 한없 이 한없이 세상으로 세상으로 떠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 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우리의 마음이 가 있는 것 그 것이 바로 우리의 보물 이요 우리의 마음 사로잡고 있는 그것이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아니라면 그 모든 것은 우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자신의 주변을 한 번 둘러 봅시다. 얼마나 많은 우상이 아직도 나의 삶을 점령하고 있습니까 이 우상을 과감히 땅에 묻어 버릴 때 가장 극심한 고통과 위기 속에서도 능히 이길 힘을 주시는 벧엘의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로 자신을 정결케 할 것을 요구합니다. 자신을 정결케한다는 것은 오직 자신의 죄악됨과, 스스로는 죄에서 벗 어날 수 없음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힘입 어 완전히 회개하고 구속의 은총속에 자신을 깨끗하게 씻어야 함을 의미 합니다.
아직까지도 내가 무엇인가 할 수 있다. 나의 능력은 무한하다. 나만은 할 수 있다. 라는 교만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전적으로 의탁하 지 안거나, 못한다면 결단코 마지막 순간까지도 우리를 붙잡은 그 손을 놓지 않으시고 당신의 목숨까지라도 바쳐 우리를 살려주시고 보호하시는 벧엘의 하나님을 결단코 나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의 부족함을 온전히 고백하고 하나님께 전 적으로 의탁할 때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벧엘의 하나님을 소 유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의복을 바꾸어 입어야 합니다. 의복을 바꾸어 입는다 함 은 지금까지 우리의 삶을 지배했던 세속적 윤리와 도덕적 표준들을 버리 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깨끗한 삶을 우리의 삶에 감싸라는 말입니다. 남들도 다하니까. 이정도 쯤이야. 하는 세속적이고 가변적인 도덕기 준에 삶을 맡기지 말고, 세상에 계실 때 우리에게 보여주신 예수님의 삶 의 모습처럼 불의에는 기꺼이 항거하고, 정의를 위해서는 목숨도 아기지 않을 수 있는, 비겁한 안전보다는 정의로운 고난을 감수 할 수 있는 참으 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삶의 기준을 가지고 살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있는 우상의 모습과, 정결치 못한 교만함을 담대히 버리고, 하나님 원하시는 새 삶의 의복으로 갈아 입을 때에 비로소 우리는 영원한 도움이 되시는 벧엘의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 속에도 우리를 웅크리게 하는많은 위기들이 우리의 삶을 절망과 불안속으로 끌어들이려 하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불안과 절 망속에서 한탄만 하고 있겠습니까 언제까지 영원히 나를 지켜주시고 도 와 주시겠노라고 약속하신 그 벧엘의 하나님을 잊고 살겠습니까 언제까 지 내가 하나님께 약속했던 그 벧엘의 서원을 잊어버린 척 나의 욕심과, 만족만을 위해 모든 정열을 쏟는 그런 삶을 살겠습니까 미국 켄터키 주 살렘에 있는 한 광산에서 바위가 무너져 내려 5명의 광부가 갱속에 갇히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갱 속에는 빛도, 물 도, 양식도 없었습니다. 죽음에 처한 그들에게 있어어 할 수 있는 일이 나, 희망이라고 하나도 없는 절대 절명의 위기였습니다. 그 때 그 중 한 사람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예수인도하시 니 ] 그들은 쉬지 않고 찬송을 부르며 기도했습니다. 얼마나 지난 걸까 그들이 극적으로 구조되었을 때 그들은 모두 드러누워 찬송을 부르 고 있었습니다. 자그마치 53시간이나 지난 주일 아침에 그들은 다시 환 한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계속 찬송하며 기도했습니다. 앉아 있을 힘이없어지자 누워 서 찬송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멀리서 희미한 빛이 비쳐옴을 알았습니다." 구조된 한 광부의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갱속에서 뒤늦게 발견된 그들의 모자에 적혀 있는 이런 글귀였습니다. [우리를 발견했을 때 우리 몸이 이미 시체가 되 어 있더라도 슬퍼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하나님 품에 안겨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위기에 처한 성도들이 벧엘의 하나님을 바라보고, 모든 것을 그 분께 맡겨 버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처지와 능력과는 상관없이 우리를 반드시 지켜주시고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 이 삶의 위기, 경제의 위기, 신앙의 위기, 가정의 위기에 처해 있는 우리를 향해 간절히 외치시는 하나님의 절규를 언제까지 외면하겠습 니까 [일어나 벧엘로 올라오라!], [빨리 일어나 벧엘로 올라오라!] 이제 결단 합시다. 그리고 담대히 외칩시다. [그래! 일어나 벨엘로 올 라가자] 나를 움켜잡고 있던 재물과 명예 이 모든 우상을 버리고, 나의 삶을 추하게 만들던 교만을 깨끗이 닦아내고, 하나님 원하시는 새 삶의 의복을 갈아입고. 나를 끝까지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시겠노라고 약속하 시고 지금까지 한 번도 어기지 않으신 그분이 계신 곳 [그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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