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기를 (빌3,17)
본문
유별나게 쉬 지나가는 것 같으다. 이제 벌서 한 주만 있으면 새해가 된다. 모두들 이맘 때가 되면 지나온 한 해를 뒤돌아 보게된다. 큰 기업들로부터 시작해서 작은 개인에 이르기 까지 한 해를 뒤 돌아 보게 된다. 우리들도 년말을 맞아서 우리들의 육신만이 아니라 영적인 삶도 함께 뒤 돌아 볼 수 있어으면 한다.
1,바울의 믿음 " 17절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 받으라 또 우리로 본을 삼은 것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 사도 바울은 지금 즉 로마의 감옥에 있는 처지로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나를 본 받으라" 고 말하고 있다. 이 말에는 우리들이 생각을 좀 많이 해야할 문제를 주는 것 같으다. 제되로라면 감옥 밖에 있는 사람이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사람을 면회 가서 위로도 하고 격려도 하면서 "나를 본 받으라"고 해야함이 옳다.
그런데 오늘의 장면은 정 반대로 감옥에 있는 분이 감옥 밖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나를 본 받으라"고 권하고 있다. 감옥 밖에 있었던 빌립보 성도들이 이 바울의 편지를 받고 얼마나 얼굵이 붉어 졌겠는가 얼마나 부끄러웠겟는가 오늘 사도 바울의 편지를 보고 있는 우리들은 어떤가 부끄럽기는커녕 아무렇지도 않다. 왜 아무렇지도 않은가 정말 우리들이 아무렇지도 않을만큼 우리들의 신앙의 생활이 바울처럼 떳떳하단 말인간 흠과 티가 없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다면야 그 이상 무었을 더 바라랴만 그렇지가 못하기 때문에 문제가 더 심각한 것이다. 그럼 나를 본 받으라고 말한 사도 바울은 어떻게 살았길래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바울은 철저하게 자신의 유익 대신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구하는 삶을 살 았다(고전8;13, 10;23, 24, 33.) 바울은 항상 자신을 쳐 복종시키기 위해 노력한 사람이다.(고전9;27) 바울은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버린 사람이다.(빌3;7-8) 바울은 그리스도 때문에 고난을 기꺼이 받은 사람이다(고후10;23-27) 바울은 그리스도를 열심히 본 받은 사람이다.(고전11;1) 바울은 충분이 사람들에게 "나를 본 받으라"고 말할 수 있는 분이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의 일생은 접어두고 다만 한해만이라도 뒤돌아 보면서 여러분들의 일가와 친지 그리고 자식들 또는 여러분을 잘 알고 있는 분들을 앞 에 두고 그들에게 "나를 본 받으라"고 말할 수 있는지요 구약성경 여호수아24;15절에서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여호수아는 자기를 따르던 백성들과 자식들을 불러 모아 놓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가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그때 백성들이 일제히 마음을 같이하여 여호수아처럼 살겠다고 다짐을 했었다. 이는 여호수아의 말은 곧 그의 삶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 일성이가 살고 있는 북녘땅은 지금 어떤가 위대한 수령 위대한 아바이가 살고 있는 분녘 땅은 어떤가 김 일성 말고는 아무도 위대한 사람이 없는 것 같으다. 사도 바울은 고전11;1절에서 "내가 그리스도를 본 받은 자 된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바울은 다른이들에게 나를 본받으라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살았다.
2,바울을 본 받자. " 왜 우리들은 사도 바울처럼 "나를 본 받으라"고 말할 수 없는가 우리가 믿음으로 살았더라면 이때즘 "나를 본받으라"고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살았더라면 이때즘 "나를 본받으라"고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나를 본받으라"는 말을 할 수 없는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남을 살지 못하고 자기의 유익만을 챙기면서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철저히 자기를 져서 복종시킴이 아니라 남들을 복종시킬려는 삶을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스도 때문에 버리는 삶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스도 때문에 고난이 아니라 영광을 받으려는 욕심이 앞섰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스도를 열심히 본 받으려는게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를 나타 내려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연말이 되었는데도 우리들은 그럴듯하게 무얼 남긴것도 없고 또 아무런 할 말이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이제라도 사도 바울을 본 받는 사람이 되자.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 그리스도를 보여 줄 수 있었던 사도 바울을 닮은 사람이 되자. 사도 바울은 저와 여러분을 향하여 외치고 있다. "나를 본 받으라"고 말하고 있다.
3,그대로 행하는 자 17절을 다시 보자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 받으라 또 우리로 본을 삼은 것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 17절 중반에서 사도 바울은 자기를 본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할 것을 지시한다. "우리로 본을 삼은 것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 지금 여기 이 말은 너희들이 정말로 나를 본받았다면 너희들을 통하여 너를 본 받아 살고 있는 사람들을 내게 보여달라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너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 줄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네 주위에 있는냐고 묻고 있는 말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의 사람인 여러분들 때문에 사랑의 사람인 여러분들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위해 죽고 못사는 그런 사람들이 있는가 지금 주님께서는 예수 믿는 나, 나 때문에 그리스도를 본 받는 사람을 보이기를 바라고 있다. 사도 바울은 로마의 검옥에서 그의 일생을 정리하시면서 그의 삶을 곁에서 지켜 보았던 사람들을 향하여 "나를 본받으라"고 했던 것처럼 여럽누들도 여러분들의 생을 정리하시는 날 여러분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나를 본 받으라"고 말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1,바울의 믿음 " 17절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 받으라 또 우리로 본을 삼은 것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 사도 바울은 지금 즉 로마의 감옥에 있는 처지로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나를 본 받으라" 고 말하고 있다. 이 말에는 우리들이 생각을 좀 많이 해야할 문제를 주는 것 같으다. 제되로라면 감옥 밖에 있는 사람이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사람을 면회 가서 위로도 하고 격려도 하면서 "나를 본 받으라"고 해야함이 옳다.
그런데 오늘의 장면은 정 반대로 감옥에 있는 분이 감옥 밖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나를 본 받으라"고 권하고 있다. 감옥 밖에 있었던 빌립보 성도들이 이 바울의 편지를 받고 얼마나 얼굵이 붉어 졌겠는가 얼마나 부끄러웠겟는가 오늘 사도 바울의 편지를 보고 있는 우리들은 어떤가 부끄럽기는커녕 아무렇지도 않다. 왜 아무렇지도 않은가 정말 우리들이 아무렇지도 않을만큼 우리들의 신앙의 생활이 바울처럼 떳떳하단 말인간 흠과 티가 없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다면야 그 이상 무었을 더 바라랴만 그렇지가 못하기 때문에 문제가 더 심각한 것이다. 그럼 나를 본 받으라고 말한 사도 바울은 어떻게 살았길래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바울은 철저하게 자신의 유익 대신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구하는 삶을 살 았다(고전8;13, 10;23, 24, 33.) 바울은 항상 자신을 쳐 복종시키기 위해 노력한 사람이다.(고전9;27) 바울은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버린 사람이다.(빌3;7-8) 바울은 그리스도 때문에 고난을 기꺼이 받은 사람이다(고후10;23-27) 바울은 그리스도를 열심히 본 받은 사람이다.(고전11;1) 바울은 충분이 사람들에게 "나를 본 받으라"고 말할 수 있는 분이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의 일생은 접어두고 다만 한해만이라도 뒤돌아 보면서 여러분들의 일가와 친지 그리고 자식들 또는 여러분을 잘 알고 있는 분들을 앞 에 두고 그들에게 "나를 본 받으라"고 말할 수 있는지요 구약성경 여호수아24;15절에서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여호수아는 자기를 따르던 백성들과 자식들을 불러 모아 놓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가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그때 백성들이 일제히 마음을 같이하여 여호수아처럼 살겠다고 다짐을 했었다. 이는 여호수아의 말은 곧 그의 삶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 일성이가 살고 있는 북녘땅은 지금 어떤가 위대한 수령 위대한 아바이가 살고 있는 분녘 땅은 어떤가 김 일성 말고는 아무도 위대한 사람이 없는 것 같으다. 사도 바울은 고전11;1절에서 "내가 그리스도를 본 받은 자 된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바울은 다른이들에게 나를 본받으라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살았다.
2,바울을 본 받자. " 왜 우리들은 사도 바울처럼 "나를 본 받으라"고 말할 수 없는가 우리가 믿음으로 살았더라면 이때즘 "나를 본받으라"고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살았더라면 이때즘 "나를 본받으라"고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나를 본받으라"는 말을 할 수 없는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남을 살지 못하고 자기의 유익만을 챙기면서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철저히 자기를 져서 복종시킴이 아니라 남들을 복종시킬려는 삶을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스도 때문에 버리는 삶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스도 때문에 고난이 아니라 영광을 받으려는 욕심이 앞섰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스도를 열심히 본 받으려는게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를 나타 내려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연말이 되었는데도 우리들은 그럴듯하게 무얼 남긴것도 없고 또 아무런 할 말이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이제라도 사도 바울을 본 받는 사람이 되자.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 그리스도를 보여 줄 수 있었던 사도 바울을 닮은 사람이 되자. 사도 바울은 저와 여러분을 향하여 외치고 있다. "나를 본 받으라"고 말하고 있다.
3,그대로 행하는 자 17절을 다시 보자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 받으라 또 우리로 본을 삼은 것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 17절 중반에서 사도 바울은 자기를 본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할 것을 지시한다. "우리로 본을 삼은 것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 지금 여기 이 말은 너희들이 정말로 나를 본받았다면 너희들을 통하여 너를 본 받아 살고 있는 사람들을 내게 보여달라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너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 줄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네 주위에 있는냐고 묻고 있는 말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의 사람인 여러분들 때문에 사랑의 사람인 여러분들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위해 죽고 못사는 그런 사람들이 있는가 지금 주님께서는 예수 믿는 나, 나 때문에 그리스도를 본 받는 사람을 보이기를 바라고 있다. 사도 바울은 로마의 검옥에서 그의 일생을 정리하시면서 그의 삶을 곁에서 지켜 보았던 사람들을 향하여 "나를 본받으라"고 했던 것처럼 여럽누들도 여러분들의 생을 정리하시는 날 여러분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나를 본 받으라"고 말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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