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영원히 소외되어야 하는가 (눅5:27-32)
본문
얼마 전 신문에 한국판 장발쟝에 관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이 청년은 전과 5범인가 6범입니다. 그동안 교도소에서 복역하면서 기능사 자격증도 두 가지 땄습니다. 만기 출소를 하게 되어 이번에는 정말 죄를 짓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그 결심이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이곳 저곳에서 일자리를 얻으려고 애써 보았지만 사람들의 냉대만 받았고 그러다가 이틀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허기진 상태에서 엉겹결에 담을 뛰어 넘게 되었고 도적질도 못하고 붙잡히게 된 것입니다. 그 때가 출소한지 1주일이 채 못 된 시점이었습니다. 그 청년이 유혹에 다시 굴복하게 된 것에 대해서 비난받아야 하겠지만 우리 사회도 그의 죄에 대하여 책임이 없다고 하지 못할 것입니다. 한 번 도적질한 사람은 영원히 도둑놈으로 취급받아야 합니까 세 번, 네 번 강도질을 한 사람은 다시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입니까 본문 말씀은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죄인과의 상종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율법적인 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당연히 법과 질서를 지키는 데 있어서 그 사회의 모범 시민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자기들의 기준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을 경멸하는 태도를 취했습니다. 그들의 종교에 의하면 본문에서 문제가 된 레위와 같은 사람에게는 희망이 없습니다. 레위는 도로 길목에 위치한 세관에서 통행하는 사람들과 물품에 관해서 세금을 부과하여 거두어 들이는 세리였습니다. 그는 민족적인 자존심도 다 버리고 로마인에게 굽신거리며 많은 돈을 지불하고 세금 징수권을 따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의 세리들이 다 그랬던 것 같이 정해진 기준에 따라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제 멋대로 높은 세금을 부과하여 착복했던 것입니다. 일제시대에 일제의 앞잡이 노릇하던 사람들이 온갖 횡포를 부리며 사람들을 착취했기 때문에 두고두고 사람들의 원성을 샀던 것과 비교했을 때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습니다.그는 모든 종교 모임에서 배제되어야 했고, 그의 돈은 더러운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그로부터 돈을 받는 사람도 부정케 된다고 믿어졌습니다. 그에게는 증인으로 나설 자격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철저히 사회로부터 소외되었고 사람 대접을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세리들을 증오한 것은 그들의 악랄한 세금 징수 방법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세금 그 자체가 굴욕의 표시이며, 메시야에 관한 소망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의 민족과 땅을 버리셨다는 것을 생각나게 하기 때문이기도 하였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이러한 이유로 세리와 상종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그렇게 하는 것을 강도 높게 비난했습니다.
둘째로, 죄인을 부르신 분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당시 가장 유명하고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셨습니다. 그분은 대부분의 유대인들과 달리 경멸받는 세리 레위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나를 좇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의 명성과 평판에 욕이 될 것을 아셨지만 그를 제자로 부르신 것입니다. 성경은 그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좇았다고 말해 줍니다. 낯선 사람의 말 한 마디에 자기의 일생을 걸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시몬과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도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가 아니라 나중에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눅5:11). 레위는 주님의 부르심이 있기 전 어느 시점에 이미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했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마가복음 2:13에서 언급된 갈릴리 바닷가에서 그런 시간을 가졌는지도 모릅니다. 레위가 예수님을 위해서 집에서 큰 잔치를 베풀었는데 그의 초대에 응할 사람은 그와 같은 사람들뿐입니다. 성경은 그의 집에 모인 사람들이 세리와 죄인들 즉 사회로부터 소외받는 사람들이었다고 밝혀 줍니다.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앉으셨고 그들과 함께 식사하셨고 그들과 함께 대화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그렇게 하신다고 비난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자신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분명히 밝혀 주셨습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32절). 레위가 자기 한 사람 예수님께 부름 받은 것도 황송한데 그처럼 많은 죄인들을 잔치에 초대한 것도 따지고 보면 예수님의 지시에 의한 것인 듯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리와 죄인들이 영원히 소외받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들과 함께 하신 것은 그들에게 말씀을 전하셔서 회개시키고 새로운 생활을 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셋째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사람이 있습니다. 문민 정부가 개혁을 외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과거 경력 때문에 공직에서 쫓겨나야 했습니다. 부동산 투기한 경력, 뇌물 수수한 경력, 군사 정권에 참여한 경력 등등. 투기한 경력을 가진 사람은 죄인으로 낙인 찍히고 영원히 사회에서 소외받아야 하는 것입니까 과거 군사 정권에 참여한 사람은 무조건 그의 능력에도 불구하고 공직에서 배제되어야 하는 것입니까 전과가 있는 사람은 아무리 그 죄를 회개해도 사회에서 소외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까 뇌성마비 장애인들은 언제까지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이곳 저곳으로 옮겨다녀야 합니까 어디 그들뿐이겠습니까 가진 것이 없는 자들, 미혼모들, 에이즈 환자들, 동성연애자들도 있습니다. 이들의 죄가 대수롭지 않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예수님께서 본문에서 보여주신 본을 좇아야 할 것입니다. 레위는 부끄러운 과거 경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동족이 한결 같이 세리를 가장 큰 죄인으로 지목하고 있는데도 돈 때문에 그 직업을 선택했습니다. 그에게는 사회의 인정보다도, 이웃과의 교제보다도, 명예보다도 돈이 더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알게 된 후 죄악된 생활을 청산했습니다. 마태복음 9:9은 그에게 마태라는 다른 이름이 있음을 밝혀 줍니다. 그는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 한 사람으로 복음 전파에 힘썼으며 신약의 첫번째 책인 마태복음을 기록했습니다. 외롭고 소외받는 사람들로서 그 책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사람들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첫째로, 죄인과의 상종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율법적인 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당연히 법과 질서를 지키는 데 있어서 그 사회의 모범 시민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자기들의 기준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을 경멸하는 태도를 취했습니다. 그들의 종교에 의하면 본문에서 문제가 된 레위와 같은 사람에게는 희망이 없습니다. 레위는 도로 길목에 위치한 세관에서 통행하는 사람들과 물품에 관해서 세금을 부과하여 거두어 들이는 세리였습니다. 그는 민족적인 자존심도 다 버리고 로마인에게 굽신거리며 많은 돈을 지불하고 세금 징수권을 따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의 세리들이 다 그랬던 것 같이 정해진 기준에 따라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제 멋대로 높은 세금을 부과하여 착복했던 것입니다. 일제시대에 일제의 앞잡이 노릇하던 사람들이 온갖 횡포를 부리며 사람들을 착취했기 때문에 두고두고 사람들의 원성을 샀던 것과 비교했을 때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습니다.그는 모든 종교 모임에서 배제되어야 했고, 그의 돈은 더러운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그로부터 돈을 받는 사람도 부정케 된다고 믿어졌습니다. 그에게는 증인으로 나설 자격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철저히 사회로부터 소외되었고 사람 대접을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세리들을 증오한 것은 그들의 악랄한 세금 징수 방법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세금 그 자체가 굴욕의 표시이며, 메시야에 관한 소망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의 민족과 땅을 버리셨다는 것을 생각나게 하기 때문이기도 하였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이러한 이유로 세리와 상종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그렇게 하는 것을 강도 높게 비난했습니다.
둘째로, 죄인을 부르신 분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당시 가장 유명하고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셨습니다. 그분은 대부분의 유대인들과 달리 경멸받는 세리 레위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나를 좇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의 명성과 평판에 욕이 될 것을 아셨지만 그를 제자로 부르신 것입니다. 성경은 그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좇았다고 말해 줍니다. 낯선 사람의 말 한 마디에 자기의 일생을 걸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시몬과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도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가 아니라 나중에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눅5:11). 레위는 주님의 부르심이 있기 전 어느 시점에 이미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했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마가복음 2:13에서 언급된 갈릴리 바닷가에서 그런 시간을 가졌는지도 모릅니다. 레위가 예수님을 위해서 집에서 큰 잔치를 베풀었는데 그의 초대에 응할 사람은 그와 같은 사람들뿐입니다. 성경은 그의 집에 모인 사람들이 세리와 죄인들 즉 사회로부터 소외받는 사람들이었다고 밝혀 줍니다.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앉으셨고 그들과 함께 식사하셨고 그들과 함께 대화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그렇게 하신다고 비난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자신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분명히 밝혀 주셨습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32절). 레위가 자기 한 사람 예수님께 부름 받은 것도 황송한데 그처럼 많은 죄인들을 잔치에 초대한 것도 따지고 보면 예수님의 지시에 의한 것인 듯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리와 죄인들이 영원히 소외받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들과 함께 하신 것은 그들에게 말씀을 전하셔서 회개시키고 새로운 생활을 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셋째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사람이 있습니다. 문민 정부가 개혁을 외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과거 경력 때문에 공직에서 쫓겨나야 했습니다. 부동산 투기한 경력, 뇌물 수수한 경력, 군사 정권에 참여한 경력 등등. 투기한 경력을 가진 사람은 죄인으로 낙인 찍히고 영원히 사회에서 소외받아야 하는 것입니까 과거 군사 정권에 참여한 사람은 무조건 그의 능력에도 불구하고 공직에서 배제되어야 하는 것입니까 전과가 있는 사람은 아무리 그 죄를 회개해도 사회에서 소외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까 뇌성마비 장애인들은 언제까지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이곳 저곳으로 옮겨다녀야 합니까 어디 그들뿐이겠습니까 가진 것이 없는 자들, 미혼모들, 에이즈 환자들, 동성연애자들도 있습니다. 이들의 죄가 대수롭지 않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예수님께서 본문에서 보여주신 본을 좇아야 할 것입니다. 레위는 부끄러운 과거 경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동족이 한결 같이 세리를 가장 큰 죄인으로 지목하고 있는데도 돈 때문에 그 직업을 선택했습니다. 그에게는 사회의 인정보다도, 이웃과의 교제보다도, 명예보다도 돈이 더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알게 된 후 죄악된 생활을 청산했습니다. 마태복음 9:9은 그에게 마태라는 다른 이름이 있음을 밝혀 줍니다. 그는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 한 사람으로 복음 전파에 힘썼으며 신약의 첫번째 책인 마태복음을 기록했습니다. 외롭고 소외받는 사람들로서 그 책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사람들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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