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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흥하고 나는 쇠하리라 (요1:7-34)

본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세례 요한의 마지막 증거가 증거되고 있다 요1장부터 예수를 증거한 세례요한은 이제자신의 사명이 다해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예수에 대한 세례요한의 증거를 1장부터 다시보자. 1:7 빛을 증거하러 온 자라고 했다. 1:15 예수가 자신보다 6개월 늦게 태어났지만 자신보다 먼저 계신 분이라는 것을 증거하고 있다. 이것은 예수가 곧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18절에서 확실히 밝히고 있다. 1:19-28 세례요한에게 사람들이 "네가 그리스도냐" 질문에 자신은 아니라고 했다.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바로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거했다. 1:29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1:34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했다. 끝까지 예수 한분 만을 증거하다 목베임 받아 순교한 세례요한의 삶은 우리가 누구를 위해 살고 누구를 증거하며 살아야 진정한 삶인지를 깨우쳐 주고 있다. 어느 누가 자신의 목숨이 아깝지 않겠는가 오늘 본문의 문맥을 볼 때 예수님과 니고데모와 대화가 끝나고 세례요한의 증거가 나온 것이 좀 의아해 보이지만 좀 더 깊이 살펴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리고자 하시는 뜻이 들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세례요한의 증거는 오늘 본문에서 예수에 대해 결론적으로 증거하고 있다. 6가지로 증거를 하고 있는 세례요한의 증거자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우리도 증거자의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첫 번째:세례를 베푸신 예수 22-26절 "이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세례를 주시더라 "
니고데모와 대화를 나누신 후에 예수님은 유대 땅으로 가셨다. 그리고 거기서 세례를 주셨다. "이후에"라는 뜻이 예루살렘 첫 방문 후라는 의미이다. 주님은 예루살렘의 강팍한 도시인들로부터 냉대를 받았지만 그들과 더 이상 다투지 않고 조용히 그 곳을 떠나 지방 사역을 시작하신 것이다. 뒤틀리고 강팍한 인심처럼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은 없다. 주님도 아픈 마음을 안고 조용히 시골에 내려오신 것이다. 시골에 오자 많은 사람들이 세례요한에게 오지 아니하고 예수님께 나아가 세례를 받았다. 이것을 본 세례요한 제자들은 격분해서 스승인 세례요한에게 말했다. "선생님이 증거하시던 자가 세례를 주매 사람들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세례로 문제가 되자 세례요한은 다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증거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세례 깊이 잠기다. 빠지다. 물로 씻어 깨끗케 하다. 세례에는 물속에 잠기는 침례가 있고 죄를 씻는 상징적인 예식으로서 물을 붓는 세례가 있다. 결례 정결케 되는 것을 말한다. 25절 세례요한의 제자와 유대인이 이 결례에 대하여 논쟁을 일으켰다. 어떤 논쟁이었는지는 26절에 요한의 제자 말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유대인은 세례요한의 세례보다 예수가 준 세례가 더 정결한 것이라고 했을 것이다. 여기에 격분한 요한의 제자는 스승인 요한에게 와서 "세례 받을 사람이 다 예수께 간다"고 한 것이다 이 말에 세례요한은 예수의 대해 다시 증거하게 된 것이다 본문에서 나타내고자 하는 말씀은 세례가 중심이 아니라 주님을 증거하는게 핵심이다. 세례는 하나의 부수적인 것이다. 우리가 세례받는 것도 .왜 세례를 우리가 받는가 주님을 증거하고 주님을 위해서 살기 위함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세례는 사람이 주는게 아니다. 올바른 신앙관과 하나님의 기름 부은 종이라면 누구에게 받아도 상관없다. 세례는 하나의 형식 이지만 그 세례를 통하여 오직하나님만 역사하신다. 유대인들은 누구한테 받아야 더 나은 것인가에 변논을 했다. 세례가 주는 의미를 잃고 있는 자들의 모습이다. 요한의 제자들 역시 세례의 의미를 모르고 있었다. 세례라는 것은 옛사람이 완전히 죽는다는 뜻이다. 완전히 죽고 새 사람으로 산다는 뜻이다. 유대인들은 세례를 놓고 누구의 세례가 더 나은가 떠들었다. 어떻게 보면 주님이 세례요한의 사역을 방해하는 것 같이 되었다. 멀리 가서 세례를 행해도 될 터인데 가까운 곳에서 예수님은 세례를 행하고 있었다. 주님의 행동은 세례요한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세례요한을 도와주고 있었다. 요한에게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를 다시 하게끔 하도록 하신 것이다. 주님도 세례요한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요한에게 주님은 마지막 증거를 하도록 하신 것이다. 세례요한의 사명이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러 온 자였다. 그런 요한에게 이제 마지막 주남의 증거를 선포하도록 하신 주님의 깊은 뜻을 사람들이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요한은 깨닫고 있었다. 유대인들은 세례에 초점을 맞추었고,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며 어디서 받아야 더 나은가에 변론하고 있다. 세례받은 것 중요하다. 누구에게 받느냐 중요하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세례를 받고 나서의 신앙생활이다. 오늘날도 세례를 받고 집사, 권사, 장로, 직임 중요하다. 그러나 받고나서 그 다음이 더 중요하다. 교회의 직임을 명예로 감투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예수를 위하고 교회를 위해서 준 직책이다. 요한의 제자들은 왜 세례를 받은지 모르기때문에 지금 불평하고 있다. 자신들의 스승인 세례요한이 왜 세례를 주는지 모르고 있기 때문에 격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세례요한은 알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예수를 영접하도록 하기 위해서 자신이 세례를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있는 요한은 가까운 데서 주님이 세례를 주고 있다 할지라도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오히려 감사했을 것이다. 이 시대 교회를 잘 택해야 하고 주의 종을 잘 만나야 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의 우리의 신앙이다. 세례를 받고 교회 직함을 받고 큰 교회를 다니고 좋은 말씀을 날마다 들은다 할지라도 우리의 신앙이 예수를 증거하지 못하는 신앙이라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유대인과 요한의 제자들과 다를바가 없을 것이다. 우리의 신앙 어디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가 요한처럼 오작 예수께 초점을 맞추며 살아가자. 세례받는 것 중요하다. 그러나 예수를 증거하는 삶은 더욱 중요하다.
두 번째:요한의 마지막 증거 27-30절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
요한의 마지막 증거가 시작된다 자신의 제자들에게 다시한번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라고 밝히고 이제 너희들이 이 사실을 증거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 말속에는 자신의 사명이 다 되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제 너희들이 나 대신 예수를 증거해야 한다"는 말이다. 자신의 삶은 이제 쇠하여야 된다고 말하고 있다.
27절 요한은 예수의 명성이 높아져 가는 것을 하늘에서 주신 것이라고 말히고 있다. 28절 자신의 누구인가를 다시 밝히고 있다.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 즉 예수의 길을 예비하러 온 자라는 것이다. 29절 예수를 신랑으로 증거하고 있다. 인간사에 가장 기쁜 날은 결혼식이다. 요한은 자신을 신랑 친구로 증거하고 있다. 이스라엘 결혼 풍습에는 "쇼쉬벤"이라는 제도가 있다. 신랑의 친구를 "쇼쉬벤"이라고 한다. 이 쇼쉬벤은 신랑보다 먼저 신부 집에 가서 신랑을 기다리고 있다가 신랑이 오면 "신랑이 온다" 외친다. 요한은 자신을 이 "쇼쉬벤"에 비교하고 있다. 30절 그 기쁨은 예수로 인해서 자신은 쇠해지는 것이 기쁨이라고 증거하고 있다. 예수로 인해서 축복 받고 잘 되어야 기쁨이지 어찌 예수로 인해 쇠해지는 게 기쁨이라고 했을까 요한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놀라운 비밀을 안 자다. 놀라운 신앙의 경지에 올라간 자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6가지로 증거하고 있는 세례요한의 증거를 살펴 보자.
1. 예수는 메시야라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다. 27-28절. 예수님이 세례를 주는 것은 하늘의 뜻이라고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분은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그리스도(Christ)와 메시야(Messiah)는 같은 말이다. 메시야는 히브리어이고 그리스도는 헬라어이다. 두 단어 모두 "기름 부음 받은 자" 라는 뜻이다. 즉 하나님이 기름 부은 메시아이심을 가리킨다. 당시에 세례요한을 따르는 세력을 굉장했다 따르는 무리들이 세례요한을 메시아로 알고 있었다. 자신이 메시야가 아니라고 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요한을 메시야로 믿고 있었다. 세례요한 세력이 굉장했다는 사실은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행19:1-7 에 보면 바울이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어떤 제자들을 만났는데 바울이 그들에게 "성령님을 받았느냐" 묻자 그들은 성령님도 알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요한의 세례는 알고 있다고 했다. 세례요한의 제자들은 이미 오래전에 에베소에 자리하고 있으면서 복음을 전하고 있었다. 세례요한의 인기가 어느정도 였는지 우리는 짐작이 간다 왜 그렇게 인기가 좋았는가 세례요한이 메시야 인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인기 속에 있는 세례요한은 단호히 자신은 메시야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조금만 능력 받으면 자신이 예수라고 하는 자가 얼마나 많은가 한국에만 자칭 예수라 하는 자들이 30명이라고 한다 마24장에서 주님은 마지막때 많은 사람들이 내가 그리스도라고 나타날것이라고 예언하셨다. 메시야는 오직 예수 한분 뿐이시다. 우리는 세례요한처럼 그 메시야을 증거해야 할 것이다.
2. 예수님은 신랑이시라는 것을 증거했다. 29-30절. 세례요한은 자신을 "쇼쉬벤"으로, 예수를 신랑으로 표현했다. 쇼쉬벤은 결코 결혼식의 주인공이 될 수없다. 신랑의 신부를 보호하기 위해서 신랑보다 먼저 신부 집에가서 신부를 보호하고 있다가 신랑이 나타나면 신부를 신랑에게 소개하고 쇼쉬벤은 사라진다. 신랑의 얼굴을 아는 자는 쇼쉬벤 한 사람 뿐이다. 신랑 음성도 아는 자는 쇼쉬벤 뿐이다. 신부 집에서 쇼쉬벤의 인기는 신랑이 오기 전 까지다 신랑이 오면 쇼쉬벤의 역할은 이제 필요가 없다. 신랑이왔는데도 쇼쉬벤이 설치면 신랑의 자리가 어찌 되겠는가 세례요한은 그런 의미로 자신은 이제 신랑되신 예수가 왔으므로 쇠하여야 되고 신랑되신 예수만 흥하여야 된다고 증거했다. 신랑의 기쁨을 보고 쇼쉬벤은 줄거워하며 사라진다. 세례요한 역시 자신도 그렇게 사라져야 한다고 증거하고 있다. 우리는 목사들을 보고 주님의 종이라고 한다. 오직 신랑만을 위해서 희생하다 사라진 쇼쉬벤처럼 주의 종들도 오직 주님만을 증거 하다가 쇠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주의 종들의 모습을 보면 그렇지 않은 모습들이 있다. 부를 누리고 혼자 영광을 다 받고 있고 자신을 나타내기에 애를 쓰는 자들이 있다. 세례요한의 말을 저들은 정녕 모르고 있는 것일까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오직 예수 한 분 만을 위해 살다간 세례요한 . 그는 젊은 30세의 나이를 예수를 위해 살다 간 위대한 신앙인이다 어느 누가 세례요한의 신앙을 따를수 있겠는가 제사장 가문의 외아들로서 요한에게는 부와 명예와 권력이 예비되어 있었지만 모두 다 뒤로하고 광야에 들어가서 예수를 기다리며 사람들에게 신랑 맞이할 신부의 모습을 갖추도록 세례를 주고 심령을 회개 시켰다. 이제 머지않아 그 신랑 되신 예수는 이 땅에 재림하실 것이다. 교회는 이제 "쇼쉬벤" 같은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성도들을 신랑 예수 만나기에 부족함 없는 신부의 모습으로 교회는 만들어 놓아야만 한다. 그것이 교회의 책임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가 다시오실 예수님을 알려주어야 한다 초림 예수를 모르고 준비 못한 저 유대인들의 모습이 되어서는 안된다. 무엇을 알어야 준비 할것이 아닌가 성경은 우리에게 이제 그리스도의 초보를 버리고 완전한 데로 나아가라고 했다. [히6:1-2]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 나아갈지니라 " 이제 우리는 초림으로 오신 예수에만 머물러 있지말고 신랑으로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고 거기에 대한 말씀으로 예언을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신랑으로 오실 주님을 우리들도 세례요한 처럼 증거하는 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세 번째:계속되는 요한의 증거
1. 예수님은 하늘로서 오신 분이시라는 것을 증거했다. 31절. 이것은 곧 메시야이심을 증거한 것이다. 요한 자신은 그리스도가 아니고 예수가 그리스도  즉 메시야라는 것을 증거했다. 땅에서 난 이는 세례요한 자신을 가리킨다. 하늘로서 오시는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다. 하늘로서 오신 분 . 세례요한에 비해 훨씬 우월성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 우월성은 상대적 우위의 개념이 아니라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탁월성을 나타내는 말이다. 세례요한이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위대한 자임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땅에서 난 자라는 점에서 예수의 신적 존재와 비길 상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세례요한은 예수가 하늘로 부터 오시는 이 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요한의 제자들과 유대인들은 보지 못했다. 보지 못한 그들에게 요한은 하늘로서 오신 분을 증거하고 있다. 하늘의 영광 보좌 다 버리시고 천한 인간의몸으로 오신 예수 ! 하늘로서 오신 예수를 보지 못하면 그 분을 천대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하늘로서 오신 예수를 본 자는 예수를 위해 살 수 밖에 없다. 이 놀라운 사실을 본 세례요한은 어찌 예수를 위해 살지 않을수가 있겠는가 이러한 놀라운 사실을 깨달은 것은 요한 뿐이 아니다 많은 사도들이 주의 종들이 이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예수만 흥한 삶을 살아 간 것이다 왜 우리가 예수를 위해 살지 못하는가 예수가 하늘로서 오신 분이라는 사실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왜 믿지 못하는가 땅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령님 안에서 거듭나야만 한다 거듭날 때 우리는 이 비밀을 깨닫게 될것이고 예수가 하늘로서 오신 분임을 믿을 때 우리는 예수를 위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2. 예수님은 하나님의 대변자이심을 증거했다. 32-34절 세례요한은 예수님의 하늘나라 증거를 사람들이 받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예수의 증거를 믿는 사람들이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늘나라와 진리에 대해 증거했지만 그증거를 많은 백성들, 종교인들은 믿지 아니했다. 그 증거를 믿는 자는 소수의 무리였다. 하나님의 대변자로서 하늘의 진리를 선포했지만 사람들은 하늘의 소리에 외면해 버렸다.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귀들 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막8:18]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 하늘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저 백성들의 모습은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 시대 수 많은 하나님의 말씀이 교회에서 그렇게도 많이 울려 퍼지는데도 정작 성도들의 삶은 말씀과 동 떨어진 삶을 살아가는 것을 볼 때 마음이 너무 아프다. 세례요한의 심정은 어떠 했을까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 했을까 말씀의 홍수 시대인 이 시대에 말씀을 듣는 자들이 많은데 왜 이럴까 말씀을 전하는 자들에게 잘못이 있을까 아니면 듣는 자들에게 있을까 34절에 보면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한다고 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만 하나님이 보내신 자들이 아닐까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위로를받는다. 예수님은 진실로 하늘에서 오신 하나님의 대변자 였지만 사람들은 그 하늘의 소리를 외면해 버렸다. 대변자는 전할 뿐이다. 그것이 대변자의 할 일이다. 대변자가 설득해서는 안된다. 설득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주의 종들은 단지 말씀을 뿌릴 뿐이다. 싹이 나고 키우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고전3: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 고린도 교회에 사도 바울이 복음을 뿌렸다. 그 복음을 받은 성도들을 아볼로는 잘 돌보았다. 그리고 그 신앙을 자라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셨다. 왜 사람들이 하늘의 증거를 듣지 않고 외면 하는가 또 혹시 들어도 왜 깨닫지 못하는가 마음이 완악하고 강팍했기 때문이다 [롬1:28]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 [골1:21]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 [마23:27] "화 있을진저 !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 완악하고 강팍한 시대를 향해서 그래도 주님은 저들의 죄를 지적하고 말씀을 선포하였다. 그러나 저들은 하늘의 소리를 깨닫지 못했다. 저들의 죄가 그 말씀을 듣지 못하게 만들었다. 지금도 곳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죄를 지적하고 책망하는 소리가 작기는 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은 지금도 우리의 죄를 지적하고 책망하는 소리가 이 땅에 울려 퍼지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의 소리가 이 땅에 울려퍼지고 있는 한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고 기쁨이 있는 것이다 이 땅에서 강력한 하나님의 대변자의 소리들이 더 많이 울려 퍼질 때 강팍한 자들의 심령이 변화되어 예수께 나오게 될 것이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 "
3.예수님은 성령님을 한량없이 지니신 것을 증거했다 34절. 성령님은 예수님과 동일한 존재로서 어디를 가시던지 성령님이 함께 동행했다. 예수님은 성령님이 충만한 상태에 계셨다. 예수님의 성령님충만에 대해 성경은 증거하고 있다. [눅4:18-19] "주의 성령님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 [행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님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님 세례는 예수를 믿을 때 만이 주어진다. 성령님 충만도 예수를 뜨겁게 믿을때만이 주어진다. 예수를 떠나서는 성령님 세례도 성령님충만도 주어지지 않은다. [요15:5]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 예수를 떠나서는 그 어떤 것도 할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예수를 온전히 믿지도 않고 온전히 예수를 사랑하지도 않고 예수를 온전히 의지 하지도 않으면서  전하지도 않으면서 마치 성령님의 역사처럼 예수를 전하는데 성령님의 역사는 절대로 예수를 떠나서는 역사하지 않으신다 성령님의 역사하는 곳에는 반드시 예수의 영광이 나타나야 하고 예수의 이름이 빛나야 한다. 예수 이름에 만이 성령님은 역사 하신다 창세 이래로 예수님과 성령님과 하나님은 떨어진 적이 없다. 항상 함께 계셨다. [요1:2-3]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
4. 예수님은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시는 분이시다.
35-36절 35절 아버지께서 만물을 독생자 예수에게 다 주셨는데 무엇꺼지 주셨는가 사람이 죽고사는 영생까지도 예수의 권세에 주셨다. 36절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한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한다고 했다.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은 예수라는 사실을 세례요한은 증거하고 있다. 본문은 인간들에게 이것이냐 저것이냐 양자 택일을 하라는 말씀이다. 예수를 믿고 영생에 이를 것인지 아니면 불순종 가운데 살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것인지 택하라는 것이다. 죽고 사는 것이 세상의 방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고 슨종하는 삶을 사느냐 안 사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우리에게 다른 구원의 길을 하나님은 주시지 않으셨다. 오직 예수 외에 다른 구원의 길은 없다. [행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세상 사주팔자에 내 운명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고 순종하느냐 ! 안하느냐! 에 우리 인생의 운명이 결정 난다는 사실을 잊지말자 ! 하나님은 모든 권세를 독생자 예수께 주셨다. 이 놀라운 사실을 우리만 알고 있을 것이 아니라 세례요한 처럼 우리도 저 세상에 이 놀라운 사실을 증거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운명이 예수한테 달려 있다는 사실을 잊지말고 날마다 오빅 예수 잊지말고 오직 예수 신앙으로 살아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떤 성도가 굼을 꾸었는데 천국을 가게 되었다. 금강석.홍보석.녹보석. 이름을 알수 없는 보석으로 꾸며진 천국을 보고 "내가 정말 천국에 왔구나" 하면서 걸어 가는데 큰 문이 하나 나오는데 계시록에 기록한 대로 큰 진주 문으로 된 문이었다. "야 내가 새 예루살렘 성에 왔구나" 하고 문을 두드렸다 문이 열리더니 베드로 사도가 내다 보면서 "누구인가" 묻더라는 것이다 "저는 아무 교회에서 온 아무개 장로 올시다" 베드로 사도가 " 이 성에 들어오려면 믿음표가 있어야 하는데 믿음표 가지고 왔느냐 "네 가져 왔습니다" 그리고 안주머니를 살펴보니 믿음표가 없는 것이다. 주머니를 다 뒤져 보아도 믿음표가 보이지 안했다. 이 사람은 베드로에게 "있는 줄 알았는데 없어졌습니다" 했다. 장사꾼이었던 이 분이 사정을 해보았다. "나에게는 믿음표가 없지만 아무 교회에 십년 이상을 다니고 했는데 좀 들어 갈수 없습니까 " 베드로가 하는 말이 "그것은 안되네 아무리 오래 다녀야 쓸데 있나 믿음표가 있어야지 그런게 아니올시다. 사실은 제가 그 교회에서 장로 일을 십여 년이나 봤습니다. 그래도 좀 들어갈수 없습니까 " 베드로 사도 하는 말이 "아니, 장로 십여 년이나 믿음없이 했으면 말썽꾸러기 였겠구먼. 그게 무슨 쓸데가 있어 " 하고 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 여러분 사도 베드로는 성질이 급한 분이다. 문을 꽝 닫는 소리에 깨 보니 꿈이었다. 그것이 꿈이었기에 다행이지 꿈이 아니었으면 어떻게 할뻔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예수를 얼마나 믿고 계십니까 내가 믿는 예수 얼마나 증거하고 계십니까 세례요한만이 예수를 증거하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다. 요한이 증거한 예수 우리도 증거해야만 한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내가 믿는 천국 ! 내가 믿는 예수 ! 내가 믿는 말씀 ! 증거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예수를 온전히 믿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예수님은 우리에게 증거자의 삶을 살기를 명령하셨다. [마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 " [행1:8] "오직 성령님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 예수를 믿고 영생을 소유한자는 예수를 증거하지 않을수 없다. 어찌 증거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이 놀라운 소식을 우리는 저 세상에 전해야만 한다. 아직도 이 놀라운 소식을 모르고 지옥으로 가는 저 불쌍한 영혼들에게 우리는 소리쳐 증거해야만 한다 [요3:36]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세례요한처럼 예수의 증거자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소리치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이것이 진정한 예수의 증거자의 참 모습이다. 우리 모두 이러한 증거자의 삶을 살다가 주님 앞에 설수 있는 자들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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