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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오셨다 (눅2:15-20)

본문

어느새 성탄절도 끝이 나고 있다. 어제 밤을 절정으로 분위기는 식어가고 있다. 하지만 성탄이 끝나기 전에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려는 축복을 하나쯤 더 건져야 할 것이다. 그것이 오늘의 말씀이다. 성탄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고 한다. 누가 말했는가 바로 가브리엘이라는 천사이다. 그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직책 을 맡았다. 그런 그가 그렇게 표현했다면 얼마나 좋은 소식인가! 그러나 이 소식이 외쳐지는 순간에도 그 이후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은 여전히 아니었다. 여러분은 어떠한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인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것처럼 큰 기쁨인 가 내가 원하는 자리를 차지하고 내가 원하는 소망을 이루었다는 것처럼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인가 아니면 너무 심오하고 복잡해서 애매한 소식인가 솔직히 말해보라. 성탄절에 무엇을 기대 했었는가 막연한 행복이다. 그것 을 얻었는가 사실상 이 소식은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별 의미가 없다. 많 은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은 앞에서 말한 순전히 육적인 소원의 성취이다. 교회에 오래 나온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성탄절이 거의 2천번이나 되 풀이 되었지만 여전히 그 소식은 가슴에 아무런 기쁨을 주지 못한다. 이 소식이 기쁨이 되고 축복이 되려면 단 한 가지의 조건이 필요하다. 우리에게 영적인 눈이 열리기만 하면 된다. 비록 천국에 갔다오지 못했고 신비한 예언과 기적을 맛보지 못했더라도 상관이 없다.
이 영적인 눈은 특별한 사람에 게만 주어지는게 아니다. 누구든 마음을 가다듬고 조금만 살펴면 보이기 시작 한다. 그가 어디에 오셨나 그가 오신 것이 무슨 유익을 주는가 낮은 곳에 오셨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 구세주는 어떻게 비칠 것인가 우선 태어나는 것부터 사람들이 기피하는 상황이다. 누가 짐승 우리에 태어나기를 원할까 거기 깨끗 한 물이 있을까 거기 부드러운 캐시미론 이불이 있을까 따듯한 벽난로로 덮 혀진 자리가 있을까 그냥 맨 땅바닥이다. 그 위에는 짐승의 배설물로 덮였다. 불결한 곳이다. 악취가 충만한 곳이다. 단 몇 분도 있기 어려운 곳이다. 거기에 구세주는 태어났다. 이것이 표적이라는 것이다. 전세계의 짐승 우리 를 다 보아도 깨끗한 곳은 없다. 그리고 그런 곳에서 사람이 태어났다는 말은 들은적도 없다. 기차에서 버스에서 심지어는 비행기에서 탄생한 사람 이야기는 들었다. 하지만 짐승 우리에서 난 사람은 들어본 적이 없다. 그것이 바로 구세 주의 표적이었다. 누가 보던가 비참하고 괴상한 증거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조금만 마음을 낮추라. 그리고 자세히 살펴보라. 이것이 구세주를 만나는 태도이다. 이것이 설교를 듣는 자세이다. 이것이 교회에 나오는 마음이다. 목자들처럼 겸손해지는 것이다. 그러면 보인다. 찬란하게 빛나는 별을. 온 하늘과 땅에 충만한 축복의 따듯함을. 조금만 마음을 가다듬으라. 그러면 듣는다. 허다한 천군이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는 웅장한 광경을. 이 장면이 한 순간만 나타나고 사라진게 아니다. 오래오래 목자들에게 그 리고 동방박사들에게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에게 비쳐졌던 것이다. 여러분이 이 광경을 보게 되기를 내 얼마나 기도해 왔던가! 되풀이 2천번이 반 복된 성탄절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았던가 그냥 한 아기만 보이기에 세상으로 눈을 돌리지 않았던가! 다른 육적인 기쁨을 찾아 나서지 않았던가.
기쁨의 소식은 이것이다. 이렇게 더러운 곳에 누워서도 한없이 영광스러울 수 있다는 사실이다. 비록 빈손으로 나다녀도 이처럼 천군과 천사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단지 이 아기를 마음에 모시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목자들처럼 겸손히 마음을 낮추는 것이다. 자세히 자기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 를 살펴보라. 그러면 보인다. 충만한 영광이. 아름다운 축복이. 한 단계 더 들어가 보자. 그의 탄생은 비참했다. 그의 삶도 비참했다. 죽음은 말로 다 할 수 없이 처참했다. 적어도 세상적인 눈으로 보면 그렇다. 그러나 영적인 눈으로 떠보라. 환상과 계시와 엄청난 축복을 경험한 뒤에 보는게 아니다. 그저 조금만 겸손한 마음으로 보라. 마음을 낮추고 간절한 마음으로 들으라. 참된 영적인 눈은 겸손한 신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면 보인다. 그의 삶의 참 모습이. 그에게는 집이 없었다. 땅도 없었다. 고기잡을 배도 없었다. 물론 돈도 없었다. 그렇다고 돈을 뺏으려고 사람들을 잡아 죽였던가 밤낮 가족을 버리고 일만 했던가 슬퍼하며 술만 마셨던가 아니다. 가진게 없었어도 그는 수많은 사람들을 먹였다. 오천명 넘는 사람들에 게 떡과 생선을 먹였다. 세금을 내고 매사에 값을 다 지불했다. 그가 담당하신다 그에게 도전했던 것중 무서운 것이 몇 있었다. 그중 하나만으로도 손들고 말 것들이었다. 죽음이 도전했다. 병이 가난이 모든 저주가 그에게 도전했다. 지옥이 그에게 도전했다. 어두운 세력이 피흘리는 사탄과 허다한 귀신들이 폭 풍을 일으키고 군중을 선동하며 공격했다. 불길한 기운이 그를 덮어버렸다. 때 때로 우리가 두려워하는 그런 일은 거기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누가 그를 망하게 할 수 있었던가! 누가 그를 자포자기하게 하고 절망하게 하였던가! 누가 속이 뒤집혀서 잠을 못자게 만들고 술을 퍼마시게 했 던가! 어떤 문제가 그의 가슴을 짓눌러서 도대체 세상일이 지겹게 만들었던가! 아무도 없다. 그의 속에는 생명이 있었다. 그의 속에는 빛 그 자체가 있었다. 보라. 그가 지금 세상을 통치하는 것이 보이지 않는가!
눈뜨고 보라. 구세주를 모신 이들이여 겸손히 바라보라. 영적인 눈을 열어라. 그는 지금 지배하신다. 그는 지금 왕이시다. 그는 지금 나를 돕고 계신다. 나도 문제에 짓 눌려 있다. 나도 경쟁을 하고 남의 방해를 받는다. 오해를 받고 있다. 나도 목 적을 이루지 못하고 괴로워한다. 나도 약함과 병을 맛본다. 하지만 바라보라. 영적인 눈으로. 그가 이기지 않으시는가. 그가 통치하지 않는가. 이것이 기쁜 소식이다. 도저히 죽일 수 없는 생명이 오셨다. 저주가 망하게 할 수 없는 축복이 그 속에서 솟아난다. 세상을 지배하는 권능이 그 안에 포함 되어 있다. 겸손히 마구간까지 마음을 낮춘 사람들은 그를 만난다. 그에게 경 배하고 그를 마음에 모신 이는 실제로 그 생명을 누린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진다. 단지 믿기만 하면 그렇게 된다. 마음으로 보라. 그가 내속에 계심을. 영적인 사람으로 살도록 하자. 그러면 우리는 영적인 힘을 사용한다. 그를 의지하고 행동하라. 우리도 마찬가지의 삶을 살 수 있다. 아무 것도 없어도 그 생명과 능력을 의지하고 나아갈 수 있다. 모두 버리라는 말이 아니다. 세상것 들을 의지하지 말라는 말이다. 그것들을 구세주로 생각하지 말라는 말이다. 아 니라고 하지만 육적인 사람들은 전적으로 재산과 권력을 의지한다. 돈의 힘을 아는 사람은 돈으로 밀고 나간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돈으로 해결한다. 권력의 맛을 아는 사람은 그 것만을 목표로 나아간다. 하나님도 자기 욕심을 이루는 도구일뿐이다. 하나님 의 뜻도 정의도 아무 소용이 없다. 오직 권력을 목표로 나갈뿐이다.
언제나 결론은 권력으로 해결한다. 그럴수록 영적인 삶은 멀어지고 고통만 많아진다. 그러나 알라. 구세주를 모신 사람들. 영적인 삶을 원하는 사람들은 이 예수 를 의지한다. 그의 힘으로 그와 함께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그처럼 당당히, 그 처럼 정직하게 그처럼 헌신하고 희생한다. 그처럼 사랑하고 그처럼 기뻐한다. 그처럼 겸손하고 그처럼 믿는다. 재산을 의지하고 권력을 의지하고 교만하지 않는다. 언제나 섬기고 언제나 봉사한다. 이것이 영적인 삶이다. 그를 받아 만족하라 이제 한 가지 더 그의 특징을 살펴보자. 그는 세상사람들이 그렇게 열심을 내는 아무 것도 남긴게 없었다. 그는 책 한 권 남기지 않았다. 거대한 회사를 이룩하지 않았다. 아름다운 집을 짓지도 않았다. 재산도 남긴게 없었다. 사람들 이 원하는 어떠한 작품도 없었다. "내가 죽기 전에 이 정도의 업적은 남겨야 지"하고 말할게 없었다. 경탄할 만한 그 무엇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이름 없는 "노바디"였다. 겉으로 볼 때 그냥 비명 횡사한 비참한 젊은이일뿐이었다. 외모도 별로 잘난게 없었다. 사람들이 멸시하고 우습게 보 았다. 마지막에는 제자들까지도 배신했다. 그 무엇 하나 세상적으로 볼 때 제 대로 가진게 없었다. 누가 그런 재미 없는 삶을 살려고 생각이나 하겠는가! 그 의 삶 전체가 자신에게 아무 유익도 의미도 없는 무가치한 것인가 그러나 조금만 눈을 크게 뜨고 보라. 겸손히 바라보라. 영의 세계를 약간이 라도 감지할 수 있다면 볼 수 있다. 그만큼 멋진 삶을 산 사람이 없었다. 그는 자기 영혼이 한 일을 보고 만족히 여겼다.(사 53:11) 누가 그처럼 자기의 삶을 돌아다보면서 긍지를 가질 수 있으랴. 재벌의 총수로 죽으면 그렇게 될 것인 가 아니면 대통령으로 죽으면 그렇게 될 것인가 누군가 그는 자기의 삶에 완전히 만족했다. 그보다 더 멋진 삶이 없었기 때문이다. 천군천사가 그의 일을 도왔다. 그보다 능력있고 더 열매가 풍성한 삶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수없는 사람들의 영혼을 지옥에서 구했다. 많은 사람들을 의롭 게 하기 위해 그들의 죄악을 담당했다.
역사상 그보다 더 위대한 일을 한 이가 있는가 하나님 앞에 설 때 더 위대한 일이 있으리라 생각하는가 그는 과연 구세주이다. 욕심에 교만에 눈이 먼 인간들에게 진리를 보여주 신다. 자기 영혼에 아무 유익을 주지 못할 일을 위해서 새벽부터 밤까지 뛰는 게 인간이다. 자기 생명에 아무 도움을 주지 못하는 일에 모든 재산과 정력을 다 쏟아붓는게 인간이다. 조금만 눈을 크게 뜨라. 그리고 겸손히 그를 바라보라. 그는 너무도 재미있고 행복하고 신나는 삶을 우리에게 보여준 것이다. 수 천 년동안 성탄의 메시지는 들려졌다. 기쁨의 좋은 소식은 반복되었다. 사람들은 거기에 귀를 귀울이지 않았다. 듣기는 들어도 듣지 못하고 보기는 보 아도 보지 못했다. 매 번 같은 소리라고 생각하였다. 구세주의 아름다운 삶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빛이 어둠에 비취되 어둠이 알지 못하였다. 마음은 여전 히 경박한 소리에나 쏠렸다. 귀를 즐겁게 하는 말씀을 따랐다. 그러나 그의 삶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는 영육을 초월한 삶이 펼쳐진다. 겉으로 신통치 않게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거기 진정한 존경이 표해질 것이다. 거기 진정한 능력이 펼쳐질 것이다. 거기에 진정한 만족이 있을 것이다. 이 메시지를 받는 사람들은 볼 것이다. 영적인 눈으로. 하나님의 사람들을 둘러싸 고 있는 엄청난 영광을. 차고 넘치는 하늘의 축복을. 하나님을. 그를 받아들이라. 큰 소리로 고백하라. "나의 주 나의 하나님." 그처럼 살 아보라. 그처럼 생각하고 말하라. 날마다 시간마다 주되시는 그리스도를 의식 하고 그와 함께 있음을 알라. 그리고 참된 영광의 빛이 자신을 두르고 있음을 보라. 주되시는 그리스도를 따라서 언제나 겸손하게 사람들을 섬기라. 천사들 의 노래를 듣는가 하늘의 별을 보고 있는가 하나님을 만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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