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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과 모임 (히10:19-25)

본문

히브리서의 주제는 구원의 주이신 예수의 특이한 우월성을 기록함에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존재와 품성의 우월성을 말하고 있습니다(히 1:1-4:13). 뿐 아 니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단번에 이루신 속죄가 구약의 속죄제사와 여러 제사들 보다 탁월하다는 사실을 논증하고 있습니다(히 4:14-10:18). 예수께서 단 한번만 드 린 십자가의 속죄희생이 영원한 구원의 공효를 이루고 있음에 복음 종교의 우월성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다시 히브리서 저자는 이 책의 후반 부분에 와서 비교할 수 없는 탁월한 구원의 종 교를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인의 실제적 생활을 권면하고 있습니다(히 10:19-13:25). 우리는 여러 권면 중에 특별히 '그날'과 '모임'이라고 하는 말에 유의해 보기를 원 합니다. 본문 10장 25절에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라고 하였습니다. I.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그날 , 가까워오는 그날 이 무엇인가 히브리서 10장 25절에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고 하였습니다. '그날'이 무엇인가 가까워오는 그날이 어떤 날인가 로마서 13장 12절에는 …낮이 가까와 오는 날이라고 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전 서 5장 4절에는 …그날이 도적같이 임하는 날로 묘사하고 있습니다(벧후 3:10). 데살로니가후서 1장 10절에는 그날에 …그의 아들이 강림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날은 예수께서 강림하는 날이라고 하였습니다. 빌립보서 1장 10절에는 그리스도 의 날 이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8절과 고린도후서 1장 14절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 이 라고 하였습니다. 누가복음 17장 26절에는 인자의 때 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후 서 3장 12절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날 이라고 하였고, 요한복음 6장 39절에는 마지막 날 곧 끝날이라고 하였습니다. 유다서 6절에는 큰날 이라고 하였고, 마태복음 10장 15절에는 심판 날 , 로마서 2장 5절에는 …진노의 날 , 에베소서 4장 30 절에는 구속의 날 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모든 구약성경은 이날을 한결같이 여호와의 날 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날은
1 이미 작정되어 있는 날을 의미합니다.2 결정적인 날을 의미 합니다. 3 그날은 목적적인 날을 의미합니다.4 그날은 이 세상의 마지막을 의미합니다. 5 바로 주 예수께서 재림하는 최후 심판의 날이요, 또한 구원의 날을 말합니다. 6 결코 일어나고 말 대사건의 날입니다. 그 누구도, 그 무슨 이유로도 이날을 거절하거나, 피하거나, 보류하거나, 부정할 수 없는 필연적인 날입니다. 7지구촌에 살고 있는 모든 생존인류와 이미 이 세상에서 여러 세기에 죽은 사람들까지 당하고야 말 불가항력적인 날을 가리킵니다. 8 결코 요동될 수 없는 날, 취소될 수 없는 날, 역사 세계에 있어지고야 말 그 한날을 가리킵니다. 그 이유는 그날이 완전하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예정해 놓으신 날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입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는 날입니다(살전 4:16). 예수께서 열린 하늘을 통하여 백마를 타시고 충신과 진실의 이름으로, 그 머리에 면류관을 쓰시고, 불꽃같은 눈을 뜨시고, 피뿌린 옷을 입고 나타나시는 날입니다. 그 입에서 이한 검이 나와 만국을 치고, 철장으로 다스리시며,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를 나타내 시는 날입니다. 그가 입으신 옷과 다리에는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는 이름 쓴 것이 있고(계 19:11-16), 또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이름도 가졌습니다(계 19:13). 바로 어린양이 진노하는 날이라고 하였습니다(계 6:12-17). 모든 인류는 예 외 없이 그 어린양의 진노를 피할 수가 없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반면에 그는 신랑의 모습으로(마 25:1-13), 어린양의 혼인잔치의 신랑으로(계 19:7-9) 그리고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왕으로 나타나시는 날이라고 하였습니다 (계17:14). 영감의 성경은 그날이 가까워오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깨어있는 성도는 가까워오고 있는 그날을 보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느끼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대단한 지식입니다. 홍수심판을 예비하던 노아는 그와 그의 가족이 당할 '그날'을 보고 있었습니다. 느 끼고 있었습니다. 홍수심판의 날과 구원의 날을 한꺼번에 보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깨어 그날을 대비하는 각성의 삶을 살았습니다(히 11:7). 노아와 그 가족이 그런 각성의 삶을 산 것은 그가 그 시대에 은혜를 입어 방주구원의 계시를 받았기 때 문입니다(창 6:8, 14-22). 주님은 우리에게 노아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니라(마 24:37)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주의하고 있으라, 예비하고 있으라고 하였습니다.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라고 하였습니다(마 24:27, 38, 42, 44, 4
5).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교회(성도)는 '그날이 가까워 옴'을 보고, 느 끼고, 판단하고, 준비합니다. 전혀 이 세상의 감각이 아닌 하늘의 감각입니다. 육의 감각이 아닌 영의 감각입니다. 참으로 대단한 느낌입니다. 실로 그리스도인들만이 가 지고 대망하는 공개적 비밀의 날입니다. 바로 그날 입니다.
Ⅱ. 더욱 모이기를 힘쓰라 다시 본문 히브리서 10장 25절은 말하기를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 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고 하였습니다. '모임'과 '그날'은 대단한 관계성을 띠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날이 가까움을 보는 자는 더욱 모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여기 '모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행동하는 예배', '살아있는 예배', '움 직이는 예배'를 의미합니다. 바로 '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말하고 있습니다. 행동하는 예배, 곧 모이는 예배는 어떤 것인가
1. 하나님께 나아가는 예배입니다. 곧 신전(神前) 인격적 예배입니다. 히브리서 10장 22절에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모임'의 중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배의 대상과 중심 목적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속죄 받은 그리스도인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향하여 예배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간다는 말 자체는 하나님께 예배하러 가는 중심을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께 예배하는 자를 찾고 계신다고 하였습니다(요 4:23). 그것은 사실상 창조 본연(創造 本然)이었습니다. 인생의 인생 된 전부였습니다(전 12:13).
그러므로 행동하는 예배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전인이 동원되어 그 하나님의 얼굴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른바 신전(神前) 인격의 예배입니다. 하나님 중심의 예 배입니다. 우상이나, 다른 신이나, 그 어떤 사람이 아닌 하나님 자신께로 나아가는 예배입니다.
2. 구원론적 예배입니다. 사실상 모든 인간은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결정적인 이유는 예수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10장 19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라고 하였습니다. 20절에는 예수만이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살아 있는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21절에는 예수만이 하나님 의 집을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만의 피, 살아있는 유일의 길, 큰 제사장이라고 한 말에 유의해야 합니다. 예수의 피는 십자가 대속의 죽음입니다(요 19:30).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길은 사망을 이기고 하늘의 문을 여신 예수의 부활(고전 15:20)입니다. 하나님의 집의 큰 제사장이신 예수는 지금 보좌 우편에 좌정하사 우리를 위하여 대도하고 축복 하시는 예수입니다(롬 8:34, 히 7:24-25). 이 사실을 가리켜 23절에는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 이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구원의 도리입니다. 바로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예배의 내용이고 동력입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 앞에서 높이 들고 그 이름에 감사하는 구원의 잔입니다(시 116:12-13).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이러한 예수의 구원의 소망을 굳게 붙잡 고 나아가야 된다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 가자고 하였습니다(히 10:22). 이것이 바로 구원론적 예배입니다(히 10:23).
3. 공동체적 예배입니다. 행동하는 예배는 서로서로 함께 하는 공동체적 예배라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서 10 장 24절에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 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25절 중에는 …오직 권하라 고 하였습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에 동요되 지 않도록 서로 권하면서 모이기에 더욱 힘쓰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성령님 받은 이후에 처음 교회가 그러했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다함께 모였습니다. 모여서 함께 사도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서로 함께 교제했습니다. 함께 성찬을 나누고(떡을 떼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찬송하였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사랑과 선행을 함께 나누었습니다(행 2:42-4
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성경을 기록하던 당시 초대 교회 안에도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이 있었습니다(히 10:25). 저들의 분명한 정체가 누구인지는 잘 알 수 없습니다. 회당 모임을 중시하는 유대 주의적 율법적 성향을 좋아하는 사람들인지 모릅니다. 아니면 당시 유행하던 이른바 영지주의(Gnosticism)를 신봉했던 사람들인지도 모릅니다. 저들은 지적 우월의 교만 에 빠져 교회에서 더 배울 것이 없다고 무리를 충동하고 있었던 자들인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세속적 쾌락주의에 빠져 교회의 경건생활에 염증을 느낀 나머지 자기와 함께 하는 세속적 친구들을 선동했던 자들인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당시 유대교적 박 해나 국가의 박해를 두려워한 나머지 기독교 예배의 공동체를 싫어한 종류의 사람들 인지도 모릅니다. 어떤 경우든 저들 가운데는 모이기를 폐하는 선동적인 무리가 있었습니다. 말하자 면 하나님께 나아가 예수의 구원을 감사하며, 영광을 돌리는 공동체 예배를 폐하는 무리들입니다. 저들은 결국 배교자의 길에 빠져 버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히 10:26-39). 정말 현대인들은 모임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다양화 되어가고 다변화 되어 가는 세상의 구조가 복잡해질수록 유유상종(類類相從)하는 사람의 모임은 날로 더해 가고 말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그날이 가까워오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사탄도 예수 재 림의 마지막 때를 알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음을 알 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두루 찾아다니고 있다고 하였습니다(벧전 5:8).
이 사탄이 대적하는 궤계 중에 하나가 그날을 대망하고 모이는 그리스도인의 공동체적 예배를 대적하는 일입니다. 바로 처음 예루살렘 교회의 유 대주의가 그러했고, 초기 박해 300년 로마제국이 기독교 집회를 방해했습니다. 그 결 과 카타콤(지하) 교회가 생기게 된 것입니다. 일제 박해시에 한국 교회도 모임의 방 해를 받았습니다. 사탄은 기독신자들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예수 이름으로 모이는 예배의 공동체를 파괴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어떻게든 하나님을 중심하는 신자들의 구원론적 예배의 공동체를 해체시키려고 발광을 합니다. 그러나
2,000년 기독교는 모 임(예배) 운동을 통하여 구원의 복음을 파수하고, 전하여 왔습니다. 지상에 존재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교인들의 모임을 본질적 요소로 하고 있습니다. 교회란 말 자체가 '밖에서+불러냄'을 받은 무리를 뜻하는 합성어입니다. 세상(밖)에서 하나님의 자녀를 불러내어 모이게 한 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가 함께 모이지 않고 개인행동에 방임되면 그 사람의 신앙은 허황해집니다. 힘을 잃게 됩니다. 그리고 강한 세속의 유혹이나 이단의 유혹에 끌려 가게 되어 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이는 신앙의 공동체, 예배의 공동체, 섬김의 공동체, 나눔의 공동체에서만이 자기 영적 성장이 가능해집니다. 타오르는 숯불이 하 나뿐일 땐 곧 식어버립니다. 그러나 타오르는 숯불 여러 개가 합쳐질 때 무서운 열량 의 힘을 갖게 되지 않는가! 구원에 이르는 개인 개인의 영적 성장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공동체적 모임에서 이 루어집니다. 또한 모이는 공동체를 통하여 밖으로 뻗어가는 복음운동이 유력해집니다. 모여서 함께 말씀을 받고, 모여서 함께 기도하고, 모여서 함께 찬송할 때 하나님 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모여서 함께 감사하고, 함께 전도하고, 함께 감사연보를 할 때 개척 교회가 생기고, 세계선교의 문이 열리고, 큰 기독교 문화운동이 일어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믿음의 연보가 모일 때 그것이 복음 전파 운동의 큰 밑거름이 되 어 마침내 축복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복음 운동을 위하여 모이는 공동체 운동은 생명같이 귀한 것입니다. 저 유명한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죠지 워싱턴(J. Washington)은 그의 일평생에 한번도 교회 예배에 빠진 일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 인물이었기에 하나님이 그를 붙 잡고 크게 사용하신 것이 아닌가! <
※ 그날과 모임! 이것은 예수의 재림 앞에 살고 있는 종말 교회의 결정적인 예배운동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행동하는 예배를 말합니다. 행동하는 예배는 하나님 앞에서, 예수 구원 의 잔을 높이 들고 함께 하는 공동체적 예배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중심의 예 배, 구원론적 예배, 함께 하는 공동체적 예배를 말하고 있습니다.> 모이기를 폐하면 죽습니다. 그러나 모이기를 힘쓰면 승리합니다.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별들의 전쟁에 승리하는 결정적인 비결 입니다. 그날과 모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한국 교회가 받은 여러 류의 복음적 모임 운 동이 오늘의 한국 교회를 있게 한 것입니다. 주일낮예배, 밤예배, 수요기도회예배, 새벽기도회, 금요철야기도회, 각종 구역모임 과 예배, 여러 류의 성경공부 모임, 각 기관들의 모임….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 구원을 중심하고, 함께 하는 공동체적 모임이 별들의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비결입니다. 사탄에게 모임을 빼앗기지 마십시오. 그것은 사실상 별들의 전쟁의 결정적인 패 인이 됩니다. 모이면 삽니다. 모이면 은혜를 받습니다. 모이면 축복을 받습니다. 모 이면 믿음이 자랍니다. 모이기를 힘쓰는 자에게 하나님이 만나 주십니다. 그날과 모 임! 이것은 바로 또 하나의 기독교 표적이 아닌가!-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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