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택하신 자들의 원한 (눅18:1-8)
본문
어떤 도시에 한 과부가 억울한 일을 당하였습니다. 그녀는 사회적으로 비천하고, 연약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자기를 억울하게 만든 그 사람을 원수와 같이 여기고 있었습니다(눅18:3). 그녀는 마침내 한 재판관을 찾아갔습니다. 이 재판관은 여호와 하나님도 두려워 할 줄 모르고, 또 사람을 무시하는 파렴치한 법관이었습니다. 아마도 이 재판관은 헤롯이나, 로마 정부에 의해 유급으로 고용된 치안 판사 중의 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당시 이러한 재판관들은 악명으로 이름이 높았습니다(눅18:2). 이 사실을 재판관 자신도 인정하고 있었습니다(18:4b). 공식적으로 저들의 명칭은 다야네 게제롯(Dayyaneh Gezeroth) 곧 ‘형벌을 부과하는 재판관’이란 뜻이었으나, 일반 대중들은 ‘다야네 게젤롯’(Dayyaneh Gezeloth) 곧 ‘강도 재판관’이라 부를 만큼 불의한 자들이었습니다. 그 과부는 이러한 재판관을 찾아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라고 호소하였습니다(18:3b). 그러나 그 불의한 재판관에게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과부는 막무가내로 그 재판관을 찾아가서 괴롭혔습니다. 마침내 그 재판관은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비록 그가 불의한 재판관이었지마는 그 과부의 말한 것을 들어주었다고 하였습니다(눅18:5). 이것은 우리 주님께서 종말(끝날)에 대한 교훈을 하신 다음에(17:20-37) 들려주신 비유적 이야기였습니다(눅18:1).
주께서 들려주신 이 비유적 이야기는 바로 하나님께서 밤낮 부르짖는 그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시고 만다는 교훈을 알려 주신 목적이라고 하였습니다. I. 그 택하신 자들이란 누군 인가 여기 18장 7절에 택하신 자들이란 그 택하신 자들을 의미하는데, 그는 바로 로마서 8장 33절에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 하리요라고 한 사람들입니다. 골로새서 3장 12절에는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는 신자라고 하였습니다. 디도서 1장 1절에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믿음이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에베소서 1장 4절로 6절에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그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 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들이 되게 한 자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바로 그 택하신 자들이란 세상에서 특별하게 지정 받은 하나님의 자녀(롬8:14-16) 곧 성도들, 그리스도인들을 지칭함입니다.
Ⅱ. 그 택하신 자들의 원한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성도들의 한 맺힌 기도의 소원을 두고 한 말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기도는 ‘일종의 원한’과도 같은 것입니다. 한 맺힌 소원의 기도입니다. 어떤 기도가 원한의 기도인가
1. 항상 계속되는 기도입니다. 18장 1절에 항상 기도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항상(πντοτε)이란 말은 ‘필연성을 띠고 있는 기도’를 말합니다. 마치 우리의 호흡 작용이 생명 운동에 필연성을 띠고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에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한 것입니다. 사무엘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서 결단코 범치아니하고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기도할 수밖에 없는 원한을 갖고 있습니다. 그 큰 이유는 우리가 살고 있는 장소가 이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원수 곧 사탄이 이 세상에서 왕노릇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항상 택하신 자들을 대적하고, 송사하고, 정죄하며,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 버리려 하는 생명의 원수들이 우리를 도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롬8:31, 33, 34, 35). 뿐만 아니라 사탄이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아 울부짖고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근신하라 깨어라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벧전5:8, 4:7).
그러므로 여기 ‘항상’있는 기도는 기도의 계속만을 의미함이 아니고, 기도의 습관화, 기도의 생활화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18장 7절 중에는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밤낮으로 습관이 되어 버린 기도입니다.
2. 낙심을 모르는 기도입니다. 18장 1절이 또 말하기를 .낙심치 말아야 될 것을.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낙심(γκακω)은 ‘피로해짐’, ‘지침’, ‘실망’을 뜻합니다. ‘낙심치 말아야’ 하는 말은 (μ εγκακεν) ‘악에게 굴복하지 않는다’, ‘겁장이가 되지 않는다’는 뜻으로 담대한 승리와 확신에 찬 기도를 가리킵니다. 겨우 겨우 기도하거나, 불안 속에서 기도하거나,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마지못하여 기도함이 아니고, 약속을 소망하고 확신하면서 미래지향적인 기도를 한다는 뜻입니다. 그 마음이 갈 곳을 정해 놓고 움직이고 있는 상태의 기도를 가리킵니다. 왜 낙심을 모르는 기도인가
첫째, 뜨거운 집념 곧 한 맺힌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비유 중에 8장 3절에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라고 한 말을 보게 됩니다. 18장 5절에도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고 한 말을 봅니다. 18장 7절에는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이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원한’이라고 하는 것은 잠시라도 잊을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것은 낮이나 밤이나, 앉을 때나, 섰을 때나, 누웠을 때나 길을 가고 있을 때를 막론하고 자기의 전 인생을 억누르고 있는 것입니다.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끊어버릴래야 끊어 버릴 수 없고, 상관하지 아니할래야 상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컨대 질병에서 고침을 기다리는 기도라든가, 가난에서의 해방을 기다리는 기도라든가, 구령, 특히 골육의 구원을 갈망하는 기도 같은 것들입니다. 더우기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는 공동체적 원한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이것입니다(마6:33). 하나님 나라 곧 교회 운동의 왕성을 추구하는 기도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한이 맺힌 기도가 됩니다. 마치 억울한 일을 당한 이 과부에겐 아무것도 눈에 안보였습니다. 다만 그 원한을 풀기 위하여 비록 불의한 재판관일지라도 그를 찾아 밤낮으로 번거롭게 하는 일을 계속하였습니다. 불의한 재판관도 이 여자가 자기를 번거롭게 한 여자임을 알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아예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고 말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낙심 따위는 아랑곳없었습니다. 그녀가 불의한 재판관 인줄을 모를 리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녀에게 있는 ‘원한’이 이 모든 것을 개의치 않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그 택하신 자들의 기도가 이러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낙심을 몰라야 된다는 것입니다. 한 맺힌 소원은 낙심 따위에게 물러설 줄 모릅니다.
둘째, 주님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18장 7절에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소원은 불의한 재판관이 아닌 살아 계신 하나님께 올려지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인격적인 하나님께 올려지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그의 자녀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 택하신 자들의 원한(기도)은
1 풀어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맺힌 것을 풀듯이, 꼬이고 감긴 것을 풀듯이, 그 택하신 자들의 인생사의 문제들을 해결해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2 오래 참아 기다리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3 내가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신다(18:8)고 하였습니다. 물론 이 응답의 시기는 하나님이 주장하고 계시는 때를 가리킵니다. 우리로서 예기치 못한 때 응답하신다는 뜻입니다. 우리들에게 기도하라고 하신 분이 주님 자신입니다. 그리고 그 기도에 응답하시겠다고 하신 분이 주님 자신입니다. 그는 이렇게 명령과 약속을 함께 주었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마7:7).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자가 있겠는가 너희가 악할 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였습니다(마7:8-11).
그러므로 그 택하신 자들은 하나님의 일에, 기도하는 일에, 소원하는 일에 낙심을 용납하지 아니합니다.
Ⅲ. 믿음의 기도입니다. 18장 8절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 믿음을 보겠느냐고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기도 응답에 대한 주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는 자들이 있다고 걱정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재림에 대한 약속도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고, 택자들의 한 맺힌 기도에 대한 주님의 응답도 믿지 못하는 자들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말씀을 바꾸어 말하면 믿어야 된다는 뜻입니다. 믿고 기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면서 믿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고 하였습니다(막9:23). 믿고 기도하는 자들에게는 병고침이 이루어진다고 하였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한다고 하였습니다(약5:15). 토레이(Toray) 선생의 말을 기억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무엇을 얻기 위하여 얼마 동안 기도하다가 성취되지 않으면 그렇게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가 보다 하고, 그 기도를 그만 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입니다.
우리는 기도하기 시작할 때 먼저 조심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아서 시작해야 되고, 또 기도를 시작했으면 이룰 때까지 계속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종교 개혁 시대의 요한 부렌즈(John Brenz)는 그를 잡아죽이려는 로마 카톨릭의 폭도들을 피하여 도망치던 중 갑자기 짚단 속에 숨고 말았습니다. 그 때 폭도들이 그 주변에 들이닥쳤는데 저들이 창을 가지고 그 짚단을 찔렀습니다. 그 때 그는 한 창끝에 찔려 창끝에 칼이 그 몸에 두어 치나 들어간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발각되 되지 않고 10일이 넘도록 그 짚단 속에 숨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매일 매일 닭이 와서 그 짚단에 알을 낳아 주므로 그것을 먹고, 원수가 떠나기까지 살았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죽는 법이 없습니다. 중국의 선교사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가 회개하게 된 것은 그 어머니의 한 맺힌 기도의 산물이었습니다. 그 모친이 언젠가 자기 집을 떠나 80마일 떨어진 곳에서도 그 아들의 회개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바로 그 시간 그 아들은 어머니 집에서 전도지를 보고 있던 순간 요한복음 19장 30절에 내가 다 이루었다는 주님의 말씀 앞에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실은 나중에 아들이 회개한 간증을 어머니께 하게 될 때 알게 된 일이었습니다. 나중에 그는 중국 선교사로 사명을 받아 배를 타고 중국으로 오던 항해 중이었습니다. 그 배는 불행하게 식인종들이 사는 섬으로 잘못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배가 섬에 가까이 접근하는 것을 보았던 식인종 수백 명이 잡어먹을 먹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기뻐하고 춤을 추면서 창을 들고 바닷가로 몰려나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선교사 테일러를 실은 배의 사공은 이 섬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사력을 다했으나, 바람 때문에 이제는 어쩔 수 없는 절망의 지경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사공이 하는 말이 “이젠 할 수 없습니다” 라고 낙심의 말을 하였습니다. 그 때 테일러가 그 사공에게 말하기를 이제 우리가 할 일이 하나 더 남아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배 안에는 신자 네 사람이 타고 있지 않은가 이제 각각 자기 자리에 돌아가서 하나님께 기도하자고 하였습니다. 바로 그 시간 배 안에 있는 사람들의 기도는 터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바로 순간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저들이 기도를 계속하던 그 시간 갑자기 바람의 방향이 바꾸어지고, 그 바람을 받은 배의 돗이 돌면서 그 식인종의 섬에 들어가게 됨을 면하게 된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기도는 우리가 사용하는 승리의 무기요 방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경향 교회는 바로 23년간 작고 큰 ‘원한’을 갖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지금 우리가 성공리에 진행 중인 개척 교회 운동이나 신학교 운동이나, 세계 선교 운동이나, 문화 매체 곧 문서 선교, 방송 선교, 영상 선교(T.V) 운동이 우리 경향인의 한 맺힌 기도 응답의 결실이었음은 우리 모두의 체험적인 표적입니다. 다시 우리에게는 ‘원한’의 기도를 받았습니다. 바로 새성전 건축 운동입니다. 여기에 개인기도, 가정 기도, 각 기관 그룹 릴레이 기도, 각 구역 기도 전 교우 금요밤 심야 기도, 건축 위원회 기도, 은밀한 기도, 정한 기도, 무시기도, 서원의 기도, 금식 기도 등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이러한 기도가 바로 우리 자신들이 ‘하나님의 택자’라고 하는 입증입니다. 그 택하신 경향인 여러분! 항상 기도합시다. 낙심 말고 기도합시다. 믿음으로 기도합시다. 적어도 우리 경향인은 반시동안 하늘이 고요한 평화로운 시기에 왜 내가 살고 있는 가를 알고 있습니다. 평화 시대를 사는 자로서의 값이 무엇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계를 받았습니다. 세계 선교의 비젼을 받았습니다. 바로 예수 세계화 운동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받은 새성전 건축 운동은 이 시대 하늘에 하나님이, 하늘로부터 우리에게 내려 준 큰 보자기 속에 쌓인 하늘에 그릇으로 여겨야 합니다. 이 하늘에서 내려온 하늘의 그릇 속에 세계 인류를 담기 위하여 새 성전 건축의 축복을 감당하고 있습니다(행10:9-23).
주께서 들려주신 이 비유적 이야기는 바로 하나님께서 밤낮 부르짖는 그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시고 만다는 교훈을 알려 주신 목적이라고 하였습니다. I. 그 택하신 자들이란 누군 인가 여기 18장 7절에 택하신 자들이란 그 택하신 자들을 의미하는데, 그는 바로 로마서 8장 33절에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 하리요라고 한 사람들입니다. 골로새서 3장 12절에는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는 신자라고 하였습니다. 디도서 1장 1절에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믿음이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에베소서 1장 4절로 6절에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그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 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들이 되게 한 자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바로 그 택하신 자들이란 세상에서 특별하게 지정 받은 하나님의 자녀(롬8:14-16) 곧 성도들, 그리스도인들을 지칭함입니다.
Ⅱ. 그 택하신 자들의 원한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성도들의 한 맺힌 기도의 소원을 두고 한 말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기도는 ‘일종의 원한’과도 같은 것입니다. 한 맺힌 소원의 기도입니다. 어떤 기도가 원한의 기도인가
1. 항상 계속되는 기도입니다. 18장 1절에 항상 기도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항상(πντοτε)이란 말은 ‘필연성을 띠고 있는 기도’를 말합니다. 마치 우리의 호흡 작용이 생명 운동에 필연성을 띠고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에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한 것입니다. 사무엘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서 결단코 범치아니하고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기도할 수밖에 없는 원한을 갖고 있습니다. 그 큰 이유는 우리가 살고 있는 장소가 이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원수 곧 사탄이 이 세상에서 왕노릇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항상 택하신 자들을 대적하고, 송사하고, 정죄하며,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 버리려 하는 생명의 원수들이 우리를 도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롬8:31, 33, 34, 35). 뿐만 아니라 사탄이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아 울부짖고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근신하라 깨어라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벧전5:8, 4:7).
그러므로 여기 ‘항상’있는 기도는 기도의 계속만을 의미함이 아니고, 기도의 습관화, 기도의 생활화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18장 7절 중에는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밤낮으로 습관이 되어 버린 기도입니다.
2. 낙심을 모르는 기도입니다. 18장 1절이 또 말하기를 .낙심치 말아야 될 것을.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낙심(γκακω)은 ‘피로해짐’, ‘지침’, ‘실망’을 뜻합니다. ‘낙심치 말아야’ 하는 말은 (μ εγκακεν) ‘악에게 굴복하지 않는다’, ‘겁장이가 되지 않는다’는 뜻으로 담대한 승리와 확신에 찬 기도를 가리킵니다. 겨우 겨우 기도하거나, 불안 속에서 기도하거나,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마지못하여 기도함이 아니고, 약속을 소망하고 확신하면서 미래지향적인 기도를 한다는 뜻입니다. 그 마음이 갈 곳을 정해 놓고 움직이고 있는 상태의 기도를 가리킵니다. 왜 낙심을 모르는 기도인가
첫째, 뜨거운 집념 곧 한 맺힌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비유 중에 8장 3절에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라고 한 말을 보게 됩니다. 18장 5절에도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고 한 말을 봅니다. 18장 7절에는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이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원한’이라고 하는 것은 잠시라도 잊을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것은 낮이나 밤이나, 앉을 때나, 섰을 때나, 누웠을 때나 길을 가고 있을 때를 막론하고 자기의 전 인생을 억누르고 있는 것입니다.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끊어버릴래야 끊어 버릴 수 없고, 상관하지 아니할래야 상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컨대 질병에서 고침을 기다리는 기도라든가, 가난에서의 해방을 기다리는 기도라든가, 구령, 특히 골육의 구원을 갈망하는 기도 같은 것들입니다. 더우기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는 공동체적 원한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이것입니다(마6:33). 하나님 나라 곧 교회 운동의 왕성을 추구하는 기도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한이 맺힌 기도가 됩니다. 마치 억울한 일을 당한 이 과부에겐 아무것도 눈에 안보였습니다. 다만 그 원한을 풀기 위하여 비록 불의한 재판관일지라도 그를 찾아 밤낮으로 번거롭게 하는 일을 계속하였습니다. 불의한 재판관도 이 여자가 자기를 번거롭게 한 여자임을 알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아예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고 말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낙심 따위는 아랑곳없었습니다. 그녀가 불의한 재판관 인줄을 모를 리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녀에게 있는 ‘원한’이 이 모든 것을 개의치 않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그 택하신 자들의 기도가 이러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낙심을 몰라야 된다는 것입니다. 한 맺힌 소원은 낙심 따위에게 물러설 줄 모릅니다.
둘째, 주님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18장 7절에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소원은 불의한 재판관이 아닌 살아 계신 하나님께 올려지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인격적인 하나님께 올려지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그의 자녀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 택하신 자들의 원한(기도)은
1 풀어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맺힌 것을 풀듯이, 꼬이고 감긴 것을 풀듯이, 그 택하신 자들의 인생사의 문제들을 해결해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2 오래 참아 기다리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3 내가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신다(18:8)고 하였습니다. 물론 이 응답의 시기는 하나님이 주장하고 계시는 때를 가리킵니다. 우리로서 예기치 못한 때 응답하신다는 뜻입니다. 우리들에게 기도하라고 하신 분이 주님 자신입니다. 그리고 그 기도에 응답하시겠다고 하신 분이 주님 자신입니다. 그는 이렇게 명령과 약속을 함께 주었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마7:7).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자가 있겠는가 너희가 악할 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였습니다(마7:8-11).
그러므로 그 택하신 자들은 하나님의 일에, 기도하는 일에, 소원하는 일에 낙심을 용납하지 아니합니다.
Ⅲ. 믿음의 기도입니다. 18장 8절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 믿음을 보겠느냐고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기도 응답에 대한 주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는 자들이 있다고 걱정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재림에 대한 약속도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고, 택자들의 한 맺힌 기도에 대한 주님의 응답도 믿지 못하는 자들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말씀을 바꾸어 말하면 믿어야 된다는 뜻입니다. 믿고 기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면서 믿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고 하였습니다(막9:23). 믿고 기도하는 자들에게는 병고침이 이루어진다고 하였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한다고 하였습니다(약5:15). 토레이(Toray) 선생의 말을 기억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무엇을 얻기 위하여 얼마 동안 기도하다가 성취되지 않으면 그렇게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가 보다 하고, 그 기도를 그만 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입니다.
우리는 기도하기 시작할 때 먼저 조심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아서 시작해야 되고, 또 기도를 시작했으면 이룰 때까지 계속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종교 개혁 시대의 요한 부렌즈(John Brenz)는 그를 잡아죽이려는 로마 카톨릭의 폭도들을 피하여 도망치던 중 갑자기 짚단 속에 숨고 말았습니다. 그 때 폭도들이 그 주변에 들이닥쳤는데 저들이 창을 가지고 그 짚단을 찔렀습니다. 그 때 그는 한 창끝에 찔려 창끝에 칼이 그 몸에 두어 치나 들어간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발각되 되지 않고 10일이 넘도록 그 짚단 속에 숨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매일 매일 닭이 와서 그 짚단에 알을 낳아 주므로 그것을 먹고, 원수가 떠나기까지 살았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죽는 법이 없습니다. 중국의 선교사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가 회개하게 된 것은 그 어머니의 한 맺힌 기도의 산물이었습니다. 그 모친이 언젠가 자기 집을 떠나 80마일 떨어진 곳에서도 그 아들의 회개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바로 그 시간 그 아들은 어머니 집에서 전도지를 보고 있던 순간 요한복음 19장 30절에 내가 다 이루었다는 주님의 말씀 앞에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실은 나중에 아들이 회개한 간증을 어머니께 하게 될 때 알게 된 일이었습니다. 나중에 그는 중국 선교사로 사명을 받아 배를 타고 중국으로 오던 항해 중이었습니다. 그 배는 불행하게 식인종들이 사는 섬으로 잘못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배가 섬에 가까이 접근하는 것을 보았던 식인종 수백 명이 잡어먹을 먹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기뻐하고 춤을 추면서 창을 들고 바닷가로 몰려나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선교사 테일러를 실은 배의 사공은 이 섬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사력을 다했으나, 바람 때문에 이제는 어쩔 수 없는 절망의 지경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사공이 하는 말이 “이젠 할 수 없습니다” 라고 낙심의 말을 하였습니다. 그 때 테일러가 그 사공에게 말하기를 이제 우리가 할 일이 하나 더 남아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배 안에는 신자 네 사람이 타고 있지 않은가 이제 각각 자기 자리에 돌아가서 하나님께 기도하자고 하였습니다. 바로 그 시간 배 안에 있는 사람들의 기도는 터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바로 순간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저들이 기도를 계속하던 그 시간 갑자기 바람의 방향이 바꾸어지고, 그 바람을 받은 배의 돗이 돌면서 그 식인종의 섬에 들어가게 됨을 면하게 된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기도는 우리가 사용하는 승리의 무기요 방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경향 교회는 바로 23년간 작고 큰 ‘원한’을 갖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지금 우리가 성공리에 진행 중인 개척 교회 운동이나 신학교 운동이나, 세계 선교 운동이나, 문화 매체 곧 문서 선교, 방송 선교, 영상 선교(T.V) 운동이 우리 경향인의 한 맺힌 기도 응답의 결실이었음은 우리 모두의 체험적인 표적입니다. 다시 우리에게는 ‘원한’의 기도를 받았습니다. 바로 새성전 건축 운동입니다. 여기에 개인기도, 가정 기도, 각 기관 그룹 릴레이 기도, 각 구역 기도 전 교우 금요밤 심야 기도, 건축 위원회 기도, 은밀한 기도, 정한 기도, 무시기도, 서원의 기도, 금식 기도 등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이러한 기도가 바로 우리 자신들이 ‘하나님의 택자’라고 하는 입증입니다. 그 택하신 경향인 여러분! 항상 기도합시다. 낙심 말고 기도합시다. 믿음으로 기도합시다. 적어도 우리 경향인은 반시동안 하늘이 고요한 평화로운 시기에 왜 내가 살고 있는 가를 알고 있습니다. 평화 시대를 사는 자로서의 값이 무엇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계를 받았습니다. 세계 선교의 비젼을 받았습니다. 바로 예수 세계화 운동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받은 새성전 건축 운동은 이 시대 하늘에 하나님이, 하늘로부터 우리에게 내려 준 큰 보자기 속에 쌓인 하늘에 그릇으로 여겨야 합니다. 이 하늘에서 내려온 하늘의 그릇 속에 세계 인류를 담기 위하여 새 성전 건축의 축복을 감당하고 있습니다(행1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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