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그 이름을 믿는 자 (요1:12)

본문

우리도 그렇지만 히브리 사람들도 이름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창세기 창조기사에도 짐승과 공중의 새와 들짐승이 이름이 다 지어진 후에야 그위치가 분명해졌다. 그래서 그들에게 있어서 상대방의 이름을 안다는 것은곧 그 사람의 정체를 아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름은 그 사람의 독특성과성품, 인품과 영혼까지 보여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성서에 나오는 중요한 인물들도 삶이 바뀌고 전환되었을 때 이름이 바뀌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야곱은 태어날 때부터 약삭 빨랐다는 이유로 도둑이라는 뜻인 야곱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을 근본부터새롭게 정리하려는 비장한 결단 속에서 시도되었던 하나님과의 대결, 불의와 비도덕성과 과실로 얼룩진 자신의 과거를 진지하게 맞서기 위해 밤을 틈타 홀로 하나님과 대면하였고 남성의 힘의 상징인 환도뼈가 절골됨으로 자기부정을 의미하게 된 그는 마침내 이름이 바뀌게 된 것이다. 이스라엘로.
온갖 잔꾀로 살아가던 한 인간이 모든 것을 청산하고 성실하고 진지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면서 희망적인 이름으로 바뀐 것이다.
삶을 이어가기 위해 고기잡는 어부였던 시몬이 자신의 목숨을 이어가기위해 살아가면서도 희망이 없이 살아가던 중에 예수를 만나 유일한 직업마져도 내버리고 창조적인 삶, 희생적인 삶을 살기 위해 예수를 따라 나섰을때 그의 이름 역시 베드로로 게바로 바뀌게 되었다. 본래 그가 가졌던 이름은 전혀 희망이 없는 막막하기만 함을 표현하는 사막, 황야라는 뜻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제는 희망적이고 강인한 의지가 담긴 바위라는 뜻의이름으로 바꿔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하나님'으로 할 것이냐 '하나님'으로 할 것이냐 하는 논쟁만 해도 한국교회 100년 동안 끌어오던 일이었다. 이처럼 이름은 사실상 별 것 아닐 것 같지만 매우 중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이 이름은 안디옥 교회에서 처음 불려진 말로서 핍박받는 자들의 이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 정도의 이기적인 사람들의 대명사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다시 말해 이름은 있으나 열매가, 내용이 없다는 얘기다. 이른바 유명무실하게 되었다. 본문에 의하면 예수의 이름을 믿고 영접하는 자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는 예수의 이름을 믿는다는 것에 대해 대단한 오해를 해왔던 것 같다. 예수의 뜻은 구세주라는 뜻이고 구세주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께서 나를구원하셨다는 사실을 머리로 동의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래서 세상에서 무슨 나쁜 짓을 하고 아무리 이기적으로 산다고 할지라도 어느 때인가 예수를 구세주로 믿겠다고 마음 속에 받아들이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고 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죄짓고 마음대로 살다가 죽기 직전에 예수를 믿겠다고 빈정거리기도 한다.
지금껏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성서에서 말하는 이름은 다만 부르기 위한수단만은 아니다. 이름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포괄하는 것이고 삶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의 이름을 믿는 자란 예수와 같이 삶을 사는 사람을 뜻한다.이 시대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는 삶이다.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예수를 따라가고자 하는 삶의 결단과 함께 버리는 것이다.사도바울은 그의 삶을 예수의 삶으로 바꾼 뒤에 이렇게 고백한다. 이 세상의 가치 있다고 열심히 좇아다니던 것들이 그리스도라는 새로운 가치 앞에서(십자가의 삶 속에서)똥오줌처럼 되어버렸습니다. 믿음이란 머리속의 사상이나 마음 속의 생각에 따른 것이 아니다.정말로 가난한 자들 고통받는이웃과 함께 하고, 그들의 세상의 가치기준에 따른 부족과 실수가 있더라도함께 할 수 있는 자세가 없다면, 다시 말해서 더욱 자신이 객관적인 옳바름 앞에서의 산산히 부서짐이 없이는 우리의 믿음이란 헛깨비에 불과한 것이고 더이상 하나님의 자녀일 수도 없는 것이다. 여러분은 과연 정말 예수의 이름을 믿는가 (본문 요한복음 1:12)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348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