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눅17:11-19)
본문
할렐루야! 새로운 칠 월을 맞이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약 두 달 간 여러분의 기도에 힘입어 연세대에서 열리는 세미나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이번 전체 세미나의 주제는 “한국 교회는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서구 교회가 성장과 침체와 쇠퇴를 반복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한국 교회는 성장이냐 아니면 침체냐의 갈림길에서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
먼저 이 시간 말씀을 들으면서 내 개인의 믿음이 성장하게 하옵소서!
대부분의 한국 교회는 일 년에 두 번의 감사절을 갖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6월을 보내고 7월 첫 번째 주일을 맞이하여 지키는 맥추감사주일이며, 또한 번의 감사절은 한 해가 가기 전 11월에 지키는 추수 감사주일입니다.
그 중 오늘 우리가 지키는 맥추 감사 주일은 출애굽기 23장 16절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맥추절은 일 년 중 육개월이 지나고 첫 번째 열매를 드리는 절기로 칠칠절 또는 초실절로 불리고 있습니다.
유월절 이후 49일이 지나 지키는 절기라는 뜻으로 칠칠절, 처음으로 익은 열매를 드린다는 의미로 초실절(初實節)로 불리우는데 저는 맥추감사절을 맞이하면서 제 스스로 세 가지 질문에 스스로 다짐하면서 말씀을 준비하였습니다.
첫째, 내가 먼저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감사하는가
내가 먼저 식물이나 동물로 태어나지 않고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감사하게 하옵소서!
사람이 사는 것은 감사하면서 살든지 원망하면서 살든지 둘 중 한 길을 가게 되지만 성도들의 삶은 감사의 생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간으로 태어난 것을 감사한다면 결코 헛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감사하는 그 사람은 세월만 보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저를 잠간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 씌우시며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케 하셨느니라.”(히브리서2장6-8절)
둘째, 내가 한국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감사하는가
세상에 수많은 나라가 있으며, 우리나라보다 잘 사는 나라도 있으나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사람으로 태어나 여기 살고 있는 것을 감사하게 하옵소서!
자신이 살고 있는 문화에 대하여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그 사람의 인격과 삶이 비뚤어진 사람이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직도 우리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은 나에게 향하신 주님께 감사할 제목입니다.
특별히 내가 한국 사람으로 태백에 살게 하심을 감사하게 하옵소서!
셋째, 내가 기독교인이 된 것을 감사하는가
내가 사람이 된 것도 감사하고 또한 한국 사람으로 태어난 것도 감사하지만 그 중 기독교인이 된 것에 감사하게 하옵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 나오는 것이 힘듭니까
감사하면서 성전에 출입하게 하옵소서!
성가대로 교사로 제직으로 봉사하는 것이 힘듭니까
감사하면서 이 모든 직분을 감당케 하옵소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함이며, 구체적으로 나를 살리시기 위함입니다. 주님께서는 나를 살리시기 위해, 우리를 죄악에서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이 사랑을 깨닫고 감사하게 하옵소서!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로니가전서5장16-18절)
물론 우리 기독교인들은 모두 감사한다고 고백하지만 그러나 내 생활이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일어나는 감사로 충만케 하옵소서!
믿지 않는 가정에서 신앙 생활을 한다고 하여도 감사하게 하옵소서!
믿지 않는 직장에서 신앙 생활을 한다고 하여도 감사하게 하옵소서!
믿지 않는 삶의 현장에서 신앙 생활을 한다고 하여도 감사하게 하옵소서!
하박국 선지자는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 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 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하박국3장17-18절)라고 깊은 감사를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우리들도 하박국 선지자와 같이 비록 아무 것도 없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을 인하여 주님을 찬양하고 송축하게 하옵소서!
본문에는 열 명의 나환자가 나옵니다.
이 나병환자는 감사의 세 가지 조건을 다 상실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째, 이들은 사람이면서 사람의 대접을 받지 못하고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나병환자들은 레위기 13장에 의하면 문둥 환자는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윗입술을 가리우고 “부정하다. 부정하다.”라고 외쳐 자신이 문둥 환자임을 밝혀 다른 사람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함은 물론 진 밖에서 살아야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열 명의 문둥병자는 사람이면서도 사람의 대접을 받지 못하고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나 우리들도 어떤 의미에서는 겉으로는 나환자가 아닐찌언정 모두 주님 앞에 다 치유 받아야 할 환자입니다.
하여튼 이 열 사람은 사람이면서도 사람의 대접을 받지 못하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둘째, 이들은 사람이면서 동족(同族)의 대접을 받지 못하고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나병이 들면 같은 동족이라도 천벌을 받은 것으로 생각하였기에 정상적인 사람들과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하였고 별거하여 살게 하였습니다.
같은 이스라엘 민족이면서도 동족으로 생활하지 못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같은 동족이면서 함께 생활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나병환자이면서 시인이었던 한하운씨는 ‘보리피리’라는 시에서
“보리 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ㄹ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꽃 동산 어린 때 그리워 피-ㄹ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인환(人)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피-ㄹ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幾山河)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ㄹ 닐니리“라고 인간으로 갖는 그리움을 표현하였습니다.
아버지가 나환자이면서 아들이 정상적일지라도 그 아들이 받는 냉대는 견딜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이들은 사람이면서도 같은 동족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였습니다.
셋째, 이들은 사람이면서 예수 그리스도와 떨어져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나병에 걸린 사람들은 동서 고금을 물론하고 혐오스럽고 고치기 어려운 병으로 인식되어 의도적으로 격리되어 살게 하였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제사장으로부터 나병으로 판명되면 그 순간부터 그 사람은 “부정하다.”고 선언되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격리되어 살게 하였습니다. 본인이 아무리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어도 다른 곳으로 가고 싶어도 함부로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는 자유가 박탈되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도 세상 법으로부터 격리되었기에 예수 그리스도와 떨어져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마침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게 될 때 이 나환자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나환자들이 예수님을 찾아간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먼저 이 나환자들을 찾아 오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께서 먼저 이 땅에 찾아오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들은 때로는 우리들이 예수님을 믿어 준 것같고, 내가 교회에 나간 것처럼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주님께서 나를 불러주심을 감사하게 됩니다.
바울은 자신을 어머니 뱃 속에서 자신을 불러주심을 감사하였습니다.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갈라디아서1장15절)
이 나환자들은 예수님을 찾아가 만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이들을 찾아 오셨습니다.
이들은 주님을 만나자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라고 외쳤습니다.
한 마디로 자신들을 불쌍히 여겨 달라는 호소였습니다.
우리들은 사람 대접도 받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동족으로부터도 버림 받은 사람들로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었던 사람들입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님께서는 이들에게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들은 주님의 말씀대로 제사장에게 가다가 자신의 몸이 깨끗함을 받은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엄청난 기적의 역사였습니다.
본문의 말씀이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첫째, 우리 모두는 주님의 긍휼하심을 입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한 촌에 들어가시니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거늘”(누가복음17장11-13절)
어느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하심을 입지 않고는 살 수 없습니다.
본문에 모두 열 명의 나환자가 나오는데 이 ‘열’은 성경적으로 ‘세상의 만수(滿數)’를 의미합니다. 이는 세상 모든 사람,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 주님 앞에 긍휼을 입지 않고는 살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들은 ‘건강’에 대하여 ‘신체적인 건강’만을 의미하지만 그러나 ‘건강’의 진정한 의미는 ‘신체적이고 신체적이며 영적인 건강’ 모두를 포함합니다.
어느 누구도 주님의 긍휼하심을 입지 않고는 완전한 건강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긍휼을 베푸실 때 이 놀라운 긍휼하심이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둘째, 우리 모두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가라사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저희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누가복음17장14절)
나환자가 제사장에게 가려면 자신의 몸의 나병이 모두 나은 것을 확인하고 가서 만나야 됩니다.
그런데 이들은 자신들의 몸이 낫지도 않은 상태에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가다가 깨끗함을 입은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아는대로 구약의 아람 왕의 군대장군 나아만 장군은 유명한 장군이었지만 문둥병자였습니다. 이때 이스라엘 당에서 온 작은 계집 아이가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서시면 그 병이 낫겠다.”고 말하였습니다.
이 말을 듣고 나아만 장군이 선지자 엘리사에게 오자 엘리사는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여전하여 깨끗하리라.”(열왕기하5장10절)
고 전했습니다. 처음 나아만 장군은 이 말을 멸시하고 떠나다 그 종들이 와서 순종할 것을 권면하여 그 말씀에 순종한 결과 그는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그는 깨끗함을 받고 물에 들어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들어가고 나오고 다시 들어가고 일곱 번을 순종하였을 때 깨끗함을 입었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깨끗함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셋째, 우리 모두는 주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 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저는 사마리아 인이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누가복음17장11-19절)
우리 인생은 모두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본문에는 열 사람이 깨끗함을 입었으나 그 중 한 사람이 예수님께 와 감사하였습니다. 나머지 아홉 사람도 속으로 감사했을는지 모릅니다. 그들이 먼저 찾아간 사람은 그들의 가족이 될 수도 있었고, 친척이나 제사장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는 자신의 병을 고친 예수님께 단 한 사람, 사마리아 사람만이 감사를 드렸습니다. 놀라운 일은 주님께서는 그에게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람은 육체적인 질병 뿐만 아니라 영적인 구원까지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맥추감사절을 맞이하면서 무엇이 있어야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먼저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감사하게 하소서!
내가 먼저 한국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감사하게 하소서!
내가 먼저 기독교인으로 불러주심을 감사하게 하소서!
이제는 주의 긍휼하심을 입고 살게 하옵소서!
주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게 하옵소서!
주님께 감사하면서 살게 하옵소서!
이 놀라운 은총이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약 두 달 간 여러분의 기도에 힘입어 연세대에서 열리는 세미나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이번 전체 세미나의 주제는 “한국 교회는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서구 교회가 성장과 침체와 쇠퇴를 반복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한국 교회는 성장이냐 아니면 침체냐의 갈림길에서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
먼저 이 시간 말씀을 들으면서 내 개인의 믿음이 성장하게 하옵소서!
대부분의 한국 교회는 일 년에 두 번의 감사절을 갖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6월을 보내고 7월 첫 번째 주일을 맞이하여 지키는 맥추감사주일이며, 또한 번의 감사절은 한 해가 가기 전 11월에 지키는 추수 감사주일입니다.
그 중 오늘 우리가 지키는 맥추 감사 주일은 출애굽기 23장 16절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맥추절은 일 년 중 육개월이 지나고 첫 번째 열매를 드리는 절기로 칠칠절 또는 초실절로 불리고 있습니다.
유월절 이후 49일이 지나 지키는 절기라는 뜻으로 칠칠절, 처음으로 익은 열매를 드린다는 의미로 초실절(初實節)로 불리우는데 저는 맥추감사절을 맞이하면서 제 스스로 세 가지 질문에 스스로 다짐하면서 말씀을 준비하였습니다.
첫째, 내가 먼저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감사하는가
내가 먼저 식물이나 동물로 태어나지 않고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감사하게 하옵소서!
사람이 사는 것은 감사하면서 살든지 원망하면서 살든지 둘 중 한 길을 가게 되지만 성도들의 삶은 감사의 생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간으로 태어난 것을 감사한다면 결코 헛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감사하는 그 사람은 세월만 보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저를 잠간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 씌우시며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케 하셨느니라.”(히브리서2장6-8절)
둘째, 내가 한국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감사하는가
세상에 수많은 나라가 있으며, 우리나라보다 잘 사는 나라도 있으나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사람으로 태어나 여기 살고 있는 것을 감사하게 하옵소서!
자신이 살고 있는 문화에 대하여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그 사람의 인격과 삶이 비뚤어진 사람이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직도 우리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은 나에게 향하신 주님께 감사할 제목입니다.
특별히 내가 한국 사람으로 태백에 살게 하심을 감사하게 하옵소서!
셋째, 내가 기독교인이 된 것을 감사하는가
내가 사람이 된 것도 감사하고 또한 한국 사람으로 태어난 것도 감사하지만 그 중 기독교인이 된 것에 감사하게 하옵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 나오는 것이 힘듭니까
감사하면서 성전에 출입하게 하옵소서!
성가대로 교사로 제직으로 봉사하는 것이 힘듭니까
감사하면서 이 모든 직분을 감당케 하옵소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함이며, 구체적으로 나를 살리시기 위함입니다. 주님께서는 나를 살리시기 위해, 우리를 죄악에서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이 사랑을 깨닫고 감사하게 하옵소서!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로니가전서5장16-18절)
물론 우리 기독교인들은 모두 감사한다고 고백하지만 그러나 내 생활이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일어나는 감사로 충만케 하옵소서!
믿지 않는 가정에서 신앙 생활을 한다고 하여도 감사하게 하옵소서!
믿지 않는 직장에서 신앙 생활을 한다고 하여도 감사하게 하옵소서!
믿지 않는 삶의 현장에서 신앙 생활을 한다고 하여도 감사하게 하옵소서!
하박국 선지자는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 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 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하박국3장17-18절)라고 깊은 감사를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우리들도 하박국 선지자와 같이 비록 아무 것도 없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을 인하여 주님을 찬양하고 송축하게 하옵소서!
본문에는 열 명의 나환자가 나옵니다.
이 나병환자는 감사의 세 가지 조건을 다 상실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째, 이들은 사람이면서 사람의 대접을 받지 못하고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나병환자들은 레위기 13장에 의하면 문둥 환자는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윗입술을 가리우고 “부정하다. 부정하다.”라고 외쳐 자신이 문둥 환자임을 밝혀 다른 사람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함은 물론 진 밖에서 살아야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열 명의 문둥병자는 사람이면서도 사람의 대접을 받지 못하고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나 우리들도 어떤 의미에서는 겉으로는 나환자가 아닐찌언정 모두 주님 앞에 다 치유 받아야 할 환자입니다.
하여튼 이 열 사람은 사람이면서도 사람의 대접을 받지 못하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둘째, 이들은 사람이면서 동족(同族)의 대접을 받지 못하고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나병이 들면 같은 동족이라도 천벌을 받은 것으로 생각하였기에 정상적인 사람들과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하였고 별거하여 살게 하였습니다.
같은 이스라엘 민족이면서도 동족으로 생활하지 못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같은 동족이면서 함께 생활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나병환자이면서 시인이었던 한하운씨는 ‘보리피리’라는 시에서
“보리 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ㄹ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꽃 동산 어린 때 그리워 피-ㄹ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인환(人)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피-ㄹ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幾山河)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ㄹ 닐니리“라고 인간으로 갖는 그리움을 표현하였습니다.
아버지가 나환자이면서 아들이 정상적일지라도 그 아들이 받는 냉대는 견딜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이들은 사람이면서도 같은 동족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였습니다.
셋째, 이들은 사람이면서 예수 그리스도와 떨어져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나병에 걸린 사람들은 동서 고금을 물론하고 혐오스럽고 고치기 어려운 병으로 인식되어 의도적으로 격리되어 살게 하였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제사장으로부터 나병으로 판명되면 그 순간부터 그 사람은 “부정하다.”고 선언되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격리되어 살게 하였습니다. 본인이 아무리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어도 다른 곳으로 가고 싶어도 함부로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는 자유가 박탈되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도 세상 법으로부터 격리되었기에 예수 그리스도와 떨어져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마침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게 될 때 이 나환자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나환자들이 예수님을 찾아간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먼저 이 나환자들을 찾아 오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께서 먼저 이 땅에 찾아오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들은 때로는 우리들이 예수님을 믿어 준 것같고, 내가 교회에 나간 것처럼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주님께서 나를 불러주심을 감사하게 됩니다.
바울은 자신을 어머니 뱃 속에서 자신을 불러주심을 감사하였습니다.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갈라디아서1장15절)
이 나환자들은 예수님을 찾아가 만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이들을 찾아 오셨습니다.
이들은 주님을 만나자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라고 외쳤습니다.
한 마디로 자신들을 불쌍히 여겨 달라는 호소였습니다.
우리들은 사람 대접도 받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동족으로부터도 버림 받은 사람들로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었던 사람들입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님께서는 이들에게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들은 주님의 말씀대로 제사장에게 가다가 자신의 몸이 깨끗함을 받은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엄청난 기적의 역사였습니다.
본문의 말씀이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첫째, 우리 모두는 주님의 긍휼하심을 입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한 촌에 들어가시니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거늘”(누가복음17장11-13절)
어느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하심을 입지 않고는 살 수 없습니다.
본문에 모두 열 명의 나환자가 나오는데 이 ‘열’은 성경적으로 ‘세상의 만수(滿數)’를 의미합니다. 이는 세상 모든 사람,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 주님 앞에 긍휼을 입지 않고는 살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들은 ‘건강’에 대하여 ‘신체적인 건강’만을 의미하지만 그러나 ‘건강’의 진정한 의미는 ‘신체적이고 신체적이며 영적인 건강’ 모두를 포함합니다.
어느 누구도 주님의 긍휼하심을 입지 않고는 완전한 건강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긍휼을 베푸실 때 이 놀라운 긍휼하심이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둘째, 우리 모두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가라사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저희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누가복음17장14절)
나환자가 제사장에게 가려면 자신의 몸의 나병이 모두 나은 것을 확인하고 가서 만나야 됩니다.
그런데 이들은 자신들의 몸이 낫지도 않은 상태에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가다가 깨끗함을 입은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아는대로 구약의 아람 왕의 군대장군 나아만 장군은 유명한 장군이었지만 문둥병자였습니다. 이때 이스라엘 당에서 온 작은 계집 아이가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서시면 그 병이 낫겠다.”고 말하였습니다.
이 말을 듣고 나아만 장군이 선지자 엘리사에게 오자 엘리사는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여전하여 깨끗하리라.”(열왕기하5장10절)
고 전했습니다. 처음 나아만 장군은 이 말을 멸시하고 떠나다 그 종들이 와서 순종할 것을 권면하여 그 말씀에 순종한 결과 그는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그는 깨끗함을 받고 물에 들어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들어가고 나오고 다시 들어가고 일곱 번을 순종하였을 때 깨끗함을 입었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깨끗함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셋째, 우리 모두는 주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 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저는 사마리아 인이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누가복음17장11-19절)
우리 인생은 모두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본문에는 열 사람이 깨끗함을 입었으나 그 중 한 사람이 예수님께 와 감사하였습니다. 나머지 아홉 사람도 속으로 감사했을는지 모릅니다. 그들이 먼저 찾아간 사람은 그들의 가족이 될 수도 있었고, 친척이나 제사장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는 자신의 병을 고친 예수님께 단 한 사람, 사마리아 사람만이 감사를 드렸습니다. 놀라운 일은 주님께서는 그에게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람은 육체적인 질병 뿐만 아니라 영적인 구원까지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맥추감사절을 맞이하면서 무엇이 있어야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먼저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감사하게 하소서!
내가 먼저 한국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감사하게 하소서!
내가 먼저 기독교인으로 불러주심을 감사하게 하소서!
이제는 주의 긍휼하심을 입고 살게 하옵소서!
주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게 하옵소서!
주님께 감사하면서 살게 하옵소서!
이 놀라운 은총이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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